평소에는 판을 즐겨보고 쓰는데 오늘은 필자가 야구狂 이므로 현재 대두되고있는 이른바 '최희섭 신드롬' 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일단 최희섭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출생 1979년 3월 16일 (전라남도 영암) 신체 196cm, 99kg 소속팀 기아 타이거즈 (내야수) 학력 고려대학교 데뷔 1999년 시카고 컵스 입단 최희섭은 큰키와 육중한 몸으로 메이저리그 시절 BigChoi . 빅초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특유늬 한손으로 휘두르는 풀스윙으로도 메이저리그 담장을 훌쩍넘기는 . 당시 기사를 응용하자면 인간이 가질수 없는. 배리 본즈보다 더한 파워를 지닌 타자라고 설명했다. 해외파 특별지명으로 기아타이거즈에 2007년 입단했으나. 시차적응과 스트라이크존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며 2년간 이른바 '삽질'만 해야 했다. 그러나 V10을 달성한 2009년 3할 30홈런 100타점 이라는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찍어 자신이 왜 기아의 4번타자인가를 입증하며 5번타자인 김상현과 함께 CK포를 구축하게 된다. 이런 최희섭이 왜 트레이드 구설수에 오르며 또 왜 확정된 것일까? 그 이유를 따져보기 위해 2010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1. 2010년 스프링캠프. 주장의 자리와 성적. 여기서 최희섭은 김상훈의 뒤를이어 주장완장을 차게 된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던 최희섭은 시즌을 열심히 준비했고 또 시즌초반. 자신의 괴력을 보여주며 팀내에서 점점 입지가 굳혀져 갔다. 그러나 김상현이 발목부상으로 잠깐 전열에서 이탈한 사이. 최희섭에게 투수들의 집중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변화구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기시작했고 0.286의 타율과 21홈런을 쳐내는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전년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다시 절치부심하던 2011년 시즌. 팀내에서 조금씩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성적면에서도 크게 떨어진다. 2011년도 에 기아의 주전선수들중에는 부상을 안당하면 신기하다는 소리가 나돌정도로 엄청난 부상쇼크에 시달렸다. 최희섭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복귀하자마자 손에 공을 맞는가하면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장타력과 컨택능력 저하로인해 7번타자로 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맞는다. 거기에 새로 영입된 이범호가 활약을 하면서 팬들은 점점 최희섭을 멀리하게 되었고 이것이 심적,육체적 스트레스가 된것으로 생각된다. 2. 코칭스태프의 전면개편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기아타이거즈는 감독을 조범현감독에서 선동렬감독으로 교체했다. 전년도까지 기아에있었던 황병일 수석코치 자리는 이순철 해설위원이 맞게되었다. 최희섭은 기아의 황병일 코치와 아주 돈독한 사이였다. 자신이 커리어하이 시즌을 찍을때도 그는 황병일 코치의 이름을 자주언급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코칭스태프의 개편이 단행되면서 이순철코치는 가장먼저 최희섭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이것이 친밀도가 떨어지는 계기가 되지않았나 생각한다. 사람들은 '훈련 잘시키려고 그러는거지 왜그렇게 민감하냐?' 라며 물을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이순철 코치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최희섭 이라고 말했던 기사가 뜨고 뒤이어 최희섭의 문제점과 이순철코치가 어떻게 바꿔놓을것인가를 대두 시켰다면. 줄여말해 최희섭은 문제 덩어리라 이순철 코치의 조력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된다. 과연 보통사람이 이 말을듣고 정상적으로 생각할수 있을까? 3.팬들의 야유 광주의 기아팬들은 롯데팬 못지않게 야구에 열광한다. 그런데 야구경기에서 병살타를 치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삼진들 당하고 한창 연승을 달려야 할 기간에 부상으로 주춤하고. 거기에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악플이나 좋지 않은 기사들이 나돈다면 선수의 심적 부담은 엄청나다. 2년동안 팬들의 야유, 수비만 잘한다고 붙여진 '수비섭' 항상 병살에 무안타라며 삽질한다고 붙여진 '최희삽' 이라는 별명은 그를 구단과 팬들에게서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원인을 알아보았으니 저녁을 먹은후 어느쪽이 득이 되는지 따져보자.
최희섭 트레이드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되는가.
평소에는 판을 즐겨보고 쓰는데 오늘은 필자가 야구狂 이므로 현재 대두되고있는
이른바 '최희섭 신드롬' 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일단 최희섭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출생 1979년 3월 16일 (전라남도 영암) 신체 196cm, 99kg 소속팀 기아 타이거즈 (내야수) 학력 고려대학교 데뷔 1999년 시카고 컵스 입단최희섭은 큰키와 육중한 몸으로 메이저리그 시절
BigChoi . 빅초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특유늬 한손으로 휘두르는 풀스윙으로도
메이저리그 담장을 훌쩍넘기는 . 당시 기사를 응용하자면 인간이 가질수 없는.
배리 본즈보다 더한 파워를 지닌 타자라고 설명했다.
해외파 특별지명으로 기아타이거즈에 2007년 입단했으나. 시차적응과 스트라이크존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며 2년간 이른바 '삽질'만 해야 했다.
그러나 V10을 달성한 2009년 3할 30홈런 100타점 이라는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찍어
자신이 왜 기아의 4번타자인가를 입증하며 5번타자인 김상현과 함께 CK포를 구축하게 된다.
이런 최희섭이 왜 트레이드 구설수에 오르며 또 왜 확정된 것일까?
그 이유를 따져보기 위해 2010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1. 2010년 스프링캠프. 주장의 자리와 성적.
여기서 최희섭은 김상훈의 뒤를이어 주장완장을 차게 된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던 최희섭은 시즌을 열심히 준비했고 또 시즌초반.
자신의 괴력을 보여주며 팀내에서 점점 입지가 굳혀져 갔다.
그러나 김상현이 발목부상으로 잠깐 전열에서 이탈한 사이.
최희섭에게 투수들의 집중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변화구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기시작했고
0.286의 타율과 21홈런을 쳐내는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전년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다시 절치부심하던 2011년 시즌.
팀내에서 조금씩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성적면에서도 크게 떨어진다.
2011년도 에 기아의 주전선수들중에는 부상을 안당하면 신기하다는 소리가 나돌정도로
엄청난 부상쇼크에 시달렸다. 최희섭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복귀하자마자 손에 공을 맞는가하면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장타력과 컨택능력 저하로인해 7번타자로 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맞는다.
거기에 새로 영입된 이범호가 활약을 하면서 팬들은 점점 최희섭을 멀리하게 되었고
이것이 심적,육체적 스트레스가 된것으로 생각된다.
2. 코칭스태프의 전면개편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기아타이거즈는 감독을 조범현감독에서 선동렬감독으로 교체했다.
전년도까지 기아에있었던 황병일 수석코치 자리는 이순철 해설위원이 맞게되었다.
최희섭은 기아의 황병일 코치와 아주 돈독한 사이였다. 자신이 커리어하이 시즌을 찍을때도
그는 황병일 코치의 이름을 자주언급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코칭스태프의 개편이 단행되면서
이순철코치는 가장먼저 최희섭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이것이 친밀도가 떨어지는 계기가 되지않았나 생각한다.
사람들은 '훈련 잘시키려고 그러는거지 왜그렇게 민감하냐?' 라며 물을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이순철 코치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최희섭 이라고 말했던 기사가 뜨고
뒤이어 최희섭의 문제점과 이순철코치가 어떻게 바꿔놓을것인가를 대두 시켰다면.
줄여말해 최희섭은 문제 덩어리라 이순철 코치의 조력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된다.
과연 보통사람이 이 말을듣고 정상적으로 생각할수 있을까?
3.팬들의 야유
광주의 기아팬들은 롯데팬 못지않게 야구에 열광한다.
그런데 야구경기에서 병살타를 치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삼진들 당하고
한창 연승을 달려야 할 기간에 부상으로 주춤하고. 거기에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악플이나
좋지 않은 기사들이 나돈다면 선수의 심적 부담은 엄청나다.
2년동안 팬들의 야유, 수비만 잘한다고 붙여진 '수비섭' 항상 병살에 무안타라며 삽질한다고 붙여진
'최희삽' 이라는 별명은 그를 구단과 팬들에게서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원인을 알아보았으니 저녁을 먹은후 어느쪽이 득이 되는지 따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