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를 예비하는 삶이 됩시다.

Zuiletzhan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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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신년 “방주를 예비하는 삶이 됩시다.”

2012년 1월 8일 순복음 제일 교회

주일 1부 예배

경기도 광명시 광명 3동 156-5

02)849-5269

창세기 6장 13~14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는 급속도록 타락하고 부패하여 주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 하셨고 주님의 진노는 마침내 대홍수 심판을 내리시게 되었습니다.

인간 본성 자체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스스로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죄악만 가득하고 타락한 시대적 정황 속 에서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가는 노아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였습니다.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셔서 롯의 가족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시대적으로 의인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 심판은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계까지 멸절시키셨지만 노아와 그 가족들과 선별된 생축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렇게 방주를 예비하는 것이 말세가 가까워지는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설교하고자 합니다.

 

1.방주의 의미

방주는 심판을 면하는 구원의 도구입니다. 창세기 5장에 셋의 계보, 즉 믿음의 계보를 볼 때 노아 시대에도 노아 이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숭배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25~26,5장 전체)현재 시대를 비견할 진데 노아 이 외에도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 할 것은 “교회==방주” 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즉 교회 안에서도 선별된 구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있는데도 왜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을 까요? 왜 노아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순종 할 수 있었는가? 에 대한 전제가 필요 되겠습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베드로 후서 2장 5)

 

2.우리 안에 방주를 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세기 6장 3)

노아 시대에 죄악으로 부패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은 것을 창세기 6장1-2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됨이라..” 이것은 불신자들 과 다를 바 없이 성도들의 믿음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여기서 사람의 딸들이란 창세기 4장16~24에 언급된 살인자 가인의 자손들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살해하기 전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자체가 열납 되지 못하였던 악인이었습니다. 열납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지 않고 그 죄를 다스리지 못하여 동생을 살해하고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혀 평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육신의 자손들과 셋의 믿음의 아들들이 결혼 하는 것은 영적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것에 비견 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에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 것을 율법으로 정하십니다.(신명기 7장 3-4)

이것은 이방인과 결혼을 통하여 그들이 주님의 백성을 유혹하므로 이방신을 섬기게 만들어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걱정하시어 율법으로 정하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방여자들과 혼인 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그 의 사후에 나라가 분열 되어 폐가 망신당하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13)

신약시대에 비견하면 세상의 유혹에 현혹되어 육신이 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하게 적용 될 수 있습니다. (롬12:1~2)

세상과 야합하여 적당히 살아가려는 신앙생활은 온전한 하나님의 음성조차 듣지 못하는 왜곡된 삶을 야기합니다. 노아는 의인의 삶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선별하였고 준행하였습니다만 (창세기 6장 9~22,7장 1~5) 노아가 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같은 하나님을 숭배하던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고 불순종하였습니다.(마태복음 24장 37~38) 그들이 노아의 권면을 듣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 세상과 타협하였기 때문에 심판에 대하여 무뎌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7~51 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방주를 예비하는 것은 주님의 법안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 말세의 심판을 피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44)

 

3. 그렇다면 방주는 어떻게 지어야 하는 가?

 

1) 성령의 충만함으로 방주를 지어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장 16~18)

 

2)기도의 방주를 예비하여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모근 일을 능히 피하고 앞에 서도록 항상 기로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 34~36)

 

3)말씀의 방주를 예비하여야 합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마태복음 7장 24~27)

 

4)물질의 방주를 얻어야 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꿇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장19~21)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람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장 24)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것은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라 는 것과 일맥 상통 합니다.(마태복음 6장 33) 각박한 세상 한 푼이라도 모아 자기 잇속을 채우려고 아귀다툼하는 현실입니다만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찾으시는 날 땅에 쌓아둔 재물은 하나도 내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두 주인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에 상세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제 설교를 정리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다고 말씀 하신 것처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디며, 유혹을 이기는 방주를 예비하는 삶이되어야 합니다. 상기에 언급한 방주는 환난의 날에 핍박과 유혹에서도 믿을 지키고 영혼을 보존하는 수단입니다. 충만한 성령세례를 받아 육신의 욕심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며, 믿음의 반석을 준비하고 ,물질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사용 하므로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현하는 . 그러할 때 주님의 진노의 심판 때에 두려움과 벌거벗은 자가 아닌(요한계시록 17장 15), 기쁨과 감사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