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혁명역량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범민련남측본부'와 '한총련'에 대한 이적 규정을 철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을 사대 매국적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파쇼 폭압기구 해체 투쟁과 함께 범민련을 통일 애국단체로 부각시키는 합법화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김일성 교시, 1993년 8월 3호 청사 확대회의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안철수 쏠림 현상’을 분석한 저서를 낸 민경우(閔庚宇) 前범민련남측본부 사무처장은 2004년 옥중(獄中)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왜 간첩이 됐는지를 해명했던 인물이다.
閔씨는 2004년 7월7일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 기고문(제목: 「나는 간첩인가?」)에서 “40살이 된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나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 등의 사상과 노선을 갖고 있는 것이 내가 간첩이 된 이유일까?”라며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고 3때부터 무작정 Marx(마르크스)에 대해 알고 싶었다. 84년에 대학에 입학해 당시의 학생들처럼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에 참가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차례 연행되었다가 훈방되고 실제 구속되어 형을 살기도 했다. 86년 무렵부터 학생운동권에는 반미와 통일문제가 급부상했다. 80년 광주학살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증거는 비교적 뚜렷했다. 그 시간 이후로 나는 반미주의자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부터 나는 북의 주체사상이나 통일정책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처지가 못 되지만 공안기관은 나를 골수 주사파쯤으로 분류할 것이다. 나는 북의 통일정책을 상당부분 지지한다.”
그는 이어 자신이 몸담았던 利敵단체 범민련에 대해 “조국통일에 뜻이 있으면 남북해외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면서 “범민련이 북의 조종을 받는 단체라고 규정하지만 통일운동의 입장에서 북한 동포와 대화-접촉하는 것은 당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묘한 것은 북에서 남파된 오리지널 간첩은 몇 명 없거나 아예 감옥에 오지 않는다”면서 “90년대 후반 발생한 간첩 사건의 대부분은 나처럼 북한과 적당히 연관된 ‘사이비 간첩’”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일본의 범민련 조직을 통해 범민련 북측조직과 200번쯤 전화-팩스-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농민, 노동자, 재야 운동가들이 북을 방문하고 북의 동포들이 남을 방문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한 번도 북에 가보지 못했고 북한 사람을 만나본 일도 없다...(중략) 나는 2003.12.1 또다시 연행되어 2004.5.24 1심 재판에서 간첩이라고 판결 받았다. 2심, 대법원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閔씨는 “우리(범민련)는 서울시내에 사무실을 두고 공개적으로 북과 접촉하고 협력하고자 했다”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중략) 어제 만남이 함께 공을 차는 것이었다면 오늘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고 내일은 미국의 만행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합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옥중기고> 마지막에 “나는 민족의 자주를 위해 함께 싸우고 싶다”고 밝힌 뒤 “아마도 이게 내가 간첩이 된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밝혔다.
내가 간첩이 된 이유..민경우!!!!!!!!!
민경우가 스스로 밝힌 "내가 간첩이 된 이유"
"나는 北의 통일정책을 상당부분 지지한다"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혁명역량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범민련남측본부'와 '한총련'에 대한 이적 규정을 철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을 사대 매국적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파쇼 폭압기구 해체 투쟁과 함께 범민련을 통일 애국단체로 부각시키는 합법화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김일성 교시, 1993년 8월 3호 청사 확대회의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안철수 쏠림 현상’을 분석한 저서를 낸 민경우(閔庚宇) 前범민련남측본부 사무처장은 2004년 옥중(獄中)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왜 간첩이 됐는지를 해명했던 인물이다.
閔씨는 2004년 7월7일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 기고문(제목: 「나는 간첩인가?」)에서 “40살이 된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나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 등의 사상과 노선을 갖고 있는 것이 내가 간첩이 된 이유일까?”라며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고 3때부터 무작정 Marx(마르크스)에 대해 알고 싶었다. 84년에 대학에 입학해 당시의 학생들처럼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에 참가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차례 연행되었다가 훈방되고 실제 구속되어 형을 살기도 했다. 86년 무렵부터 학생운동권에는 반미와 통일문제가 급부상했다. 80년 광주학살에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증거는 비교적 뚜렷했다. 그 시간 이후로 나는 반미주의자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부터 나는 북의 주체사상이나 통일정책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처지가 못 되지만 공안기관은 나를 골수 주사파쯤으로 분류할 것이다. 나는 북의 통일정책을 상당부분 지지한다.”
그는 이어 자신이 몸담았던 利敵단체 범민련에 대해 “조국통일에 뜻이 있으면 남북해외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면서 “범민련이 북의 조종을 받는 단체라고 규정하지만 통일운동의 입장에서 북한 동포와 대화-접촉하는 것은 당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묘한 것은 북에서 남파된 오리지널 간첩은 몇 명 없거나 아예 감옥에 오지 않는다”면서 “90년대 후반 발생한 간첩 사건의 대부분은 나처럼 북한과 적당히 연관된 ‘사이비 간첩’”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일본의 범민련 조직을 통해 범민련 북측조직과 200번쯤 전화-팩스-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농민, 노동자, 재야 운동가들이 북을 방문하고 북의 동포들이 남을 방문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한 번도 북에 가보지 못했고 북한 사람을 만나본 일도 없다...(중략) 나는 2003.12.1 또다시 연행되어 2004.5.24 1심 재판에서 간첩이라고 판결 받았다. 2심, 대법원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閔씨는 “우리(범민련)는 서울시내에 사무실을 두고 공개적으로 북과 접촉하고 협력하고자 했다”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중략) 어제 만남이 함께 공을 차는 것이었다면 오늘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고 내일은 미국의 만행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합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옥중기고> 마지막에 “나는 민족의 자주를 위해 함께 싸우고 싶다”고 밝힌 뒤 “아마도 이게 내가 간첩이 된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관련기사 바로가기1] '간첩출신' 민경우, 안철수 옹호(擁護)서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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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바로가기2] 간첩출신 민경우가 정리한 '안철수의 대기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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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바로가기3] 류근일, 안철수 지지 책 펴낸 '간첩'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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