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종교이지요. 내용의 유치함 신빙성 여부를 떠나, 내가 이리저리 이 세상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었노라 스스로 주장하는 존재가 과연 하나님일 수 있을까요? 자신을 받들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존재가 하나님일 리가 있을까요? 자신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을 가리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과 잔인함을 보여준 다음 , 자신을 받들 것을 스스로 요구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자신을 받드는지 아니 하는지 편을 가르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어느 무지한 나라의 독재자, 문신을 새긴 폭력배의 모습? 만약 신이 이런 모습을 띄고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업자 제사장들이 만들어내고 오늘날의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수금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전 우리나라의 무당들이 산신령을 '모시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위에 군림하던 것과 같은 모양새이지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사람을 죽이고 저주하는 여호와 예수의 모습이 자신에 대한 치성이 모자라다고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했다는 예전 조선시대 무당들의 산신령, 용왕과 무엇이 다른가요. 자신에게 정성(바치는 제물)이 부족하다고 사람을 벌하는 산신령이나 용왕이 하나님일 수 없듯이, 자신에 대한 숭배여부로 사람에게 복을 주거나 저주를 내리는 여호와 예수 따위가 신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신령중에서 주관적 판단으로 거룩하다해서 "성령"이라 부르는 건 자유겠지만- 결코 이 세상의 섭리를 주관하는 하나님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들이 내세운 가짜 하나님은 항상 헌금함을 지키고 있습니다. 무당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산신령을 모셨듯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또한 유대의 제사장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만든 민속신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들 유대의 무당 제사장들이 이후(기원전 6세기 바빌론견문시) 당시 중동 선진세력 바빌론, 앗시리아, 페르시아의 창조주개념을 접하고, 그 무속신을 우주의 창조주로 만들어 조작편집해 만든 것이 유대교의 여호와이고, 그 넘이 외아들을 이 세상에 구원이란 걸 하러 보냈다는 조잡스럽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탄생한 것이 기독교란 종교이지요.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이렇게 조잡스럽게 만들어진 그들의 기독신 여호와 예수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하나님"이란 이름을 훔쳐 하나님이라 속이고 있는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말의 하나님/하느님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수천년 전 부터 사람들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끔직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 맙소사' , 못된 놈이 설쳐댈 때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정의가 보상받지 못할 때 '하늘도 무심하시지' ,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 죽으면 그의 종교와는 관계없이 '하늘나라로 떠났다''하나님 곁으로 갔다' 등 이미 쓰고계신 생활중의 우리말 표현들을 살펴보면, 우리 한국인이 수천년 가슴에 간직해 온 하나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요. 우리 선조들께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우리에게 전해 준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자 안 믿는 자를 가리는 그런 유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을 받들었든지 말았든지 상관없이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벌하는 정의의 존재이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협박하는 법이 없이 마치 부모와 같이 조용히 우리를 보우하는 그런 존재이지요. 결코 자신을 받들 것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 '하나님'의 형상물을 만들어 절하고 노래하고 돈을 거두는 일은 이전에 이 땅에서 단 한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뛰어 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런 멋지고 소중한 우리민족의 "하나님"의 이름을 개신교가 1880년대부터 그들의 선교계략의 일환으로 훔쳐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신교가 남용하여도 엄연히 '하나님'이란 이름이 가지는 깊은 뜻은 한국인이 일상에서 쓰는 용어에서 그 뜻이 조금도 흔들림없이 견고히 남아 있는 것이고, 개신교인들이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두고 하나님하나님 할 때마다 거부감이 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일본의 단무지를 암만 김치라 불러도 김치가 될 수 없지요. 자신을 믿는 자 안믿는 자를 가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협박하기 좋아하는 기독신 여호와가 '하나님'이 될 수없다는 것은 그들의 검은 책을 읽으면 금방 아실 수 있겠지요.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이게 '하나님'이야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헌금함 옆에 놓여진 하나님은 그 헌금함을 어디선가 구해서 거기에 가져다 놓고 그 모인 돈을 걷어가 당신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침을 튀기며 세고 있는 자들의 수금신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님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어느 축구선수가 믿는 것같은 그런 이기적인 '하나님'을 믿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자신들의 수금신을 '하나님'이라 속여파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세요. 하나님은 누구의 소개로 알게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자신의 부모를 누구의 소개로 만나셨습니까? <교회가 하는 모든 활동의 궁극적 목적/그들이 당신의 믿음을 그리 바라는 유일한 이유> <개신자들이 거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흔히 짓는 표정, 눈을 감는다, 성령이 와 있다고 집중해서 자기 암시를 해본다> 16
'하나님'을 파는 자들에게 속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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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종교이지요.
내용의 유치함 신빙성 여부를 떠나, 내가 이리저리 이 세상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었노라 스스로 주장하는 존재가 과연 하나님일 수 있을까요?
자신을 받들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존재가 하나님일 리가 있을까요?
자신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을 가리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과 잔인함을 보여준 다음 , 자신을 받들 것을 스스로 요구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자신을 받드는지 아니 하는지
편을 가르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어느 무지한 나라의 독재자, 문신을 새긴 폭력배의 모습?
만약 신이 이런 모습을 띄고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업자 제사장들이 만들어내고
오늘날의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수금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전 우리나라의 무당들이 산신령을 '모시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위에 군림하던 것과 같은 모양새이지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사람을 죽이고 저주하는 여호와 예수의 모습이
자신에 대한 치성이 모자라다고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했다는
예전 조선시대 무당들의 산신령, 용왕과 무엇이 다른가요.
자신에게 정성(바치는 제물)이 부족하다고 사람을 벌하는 산신령이나 용왕이
하나님일 수 없듯이, 자신에 대한 숭배여부로 사람에게 복을 주거나
저주를 내리는 여호와 예수 따위가 신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신령중에서
주관적 판단으로 거룩하다해서 "성령"이라 부르는 건 자유겠지만-
결코 이 세상의 섭리를 주관하는 하나님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들이 내세운 가짜 하나님은 항상 헌금함을 지키고 있습니다.
무당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산신령을 모셨듯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또한 유대의 제사장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만든 민속신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들 유대의 무당 제사장들이 이후(기원전 6세기 바빌론견문시)
당시 중동 선진세력 바빌론, 앗시리아, 페르시아의 창조주개념을 접하고,
그 무속신을 우주의 창조주로 만들어 조작편집해 만든 것이
유대교의 여호와이고, 그 넘이 외아들을 이 세상에 구원이란 걸 하러 보냈다는
조잡스럽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탄생한 것이 기독교란 종교이지요.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이렇게 조잡스럽게 만들어진
그들의 기독신 여호와 예수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하나님"이란 이름을 훔쳐
하나님이라 속이고 있는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말의 하나님/하느님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수천년 전 부터 사람들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끔직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 맙소사' , 못된 놈이 설쳐댈 때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정의가 보상받지 못할 때 '하늘도 무심하시지' ,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 죽으면
그의 종교와는 관계없이 '하늘나라로 떠났다''하나님 곁으로 갔다' 등
이미 쓰고계신 생활중의 우리말 표현들을 살펴보면,
우리 한국인이 수천년 가슴에 간직해 온 하나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요.
우리 선조들께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우리에게 전해 준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자 안 믿는 자를 가리는 그런 유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을 받들었든지 말았든지 상관없이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벌하는
정의의 존재이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협박하는 법이 없이
마치 부모와 같이 조용히 우리를 보우하는 그런 존재이지요.
결코 자신을 받들 것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 '하나님'의 형상물을 만들어 절하고 노래하고 돈을 거두는 일은
이전에 이 땅에서 단 한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뛰어 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런 멋지고 소중한 우리민족의 "하나님"의 이름을 개신교가 1880년대부터
그들의 선교계략의 일환으로 훔쳐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신교가 남용하여도 엄연히 '하나님'이란 이름이 가지는 깊은 뜻은
한국인이 일상에서 쓰는 용어에서 그 뜻이 조금도 흔들림없이 견고히 남아 있는 것이고,
개신교인들이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두고 하나님하나님 할 때마다 거부감이 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일본의 단무지를 암만 김치라 불러도 김치가 될 수 없지요.
자신을 믿는 자 안믿는 자를 가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협박하기 좋아하는 기독신 여호와가 '하나님'이
될 수없다는 것은 그들의 검은 책을 읽으면 금방 아실 수 있겠지요.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이게 '하나님'이야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헌금함 옆에 놓여진 하나님은 그 헌금함을 어디선가 구해서
거기에 가져다 놓고 그 모인 돈을 걷어가 당신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침을 튀기며 세고 있는 자들의 수금신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님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어느 축구선수가 믿는 것같은 그런 이기적인 '하나님'을 믿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자신들의 수금신을 '하나님'이라 속여파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세요.
하나님은 누구의 소개로 알게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자신의 부모를 누구의 소개로 만나셨습니까?
<교회가 하는 모든 활동의 궁극적 목적/그들이 당신의 믿음을 그리 바라는 유일한 이유>
<개신자들이 거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흔히 짓는 표정,
눈을 감는다, 성령이 와 있다고 집중해서 자기 암시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