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사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없는것 같아도 있을거 같다. 뭐 내가 대표적인 부류고... 난 우리집안 사정 아는사람은 진짜 친한 사람이나 물어보는 사람들밖에 모르니까. 그래서 음... 뭐 난 이런 얘기 어려워 하진 않아. 물어보면 다 말해주니까. 그래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것 같아서 이렇게 남겨보려고 해. 서로 용기가 되잘까? 위안이랄까? 뭐 아무튼 그런거지 공감하자고~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될까. 난 태어날때부터 힘들게 태어났어. 태어나자마자 심장판막천공 이라는 병을 달고 태어났거든. 만분의 일 꼴로 걸린다는데 내가 그 만분의 일인거지. 칠삭둥인지라 미숙아였던 나는 수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몇날 몇일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게 비쌌나봐. 병원비로 수천만원을 썼다고 해. 그땐 우리 친정에 돈이 조금 있어서 그걸로 충당했단 얘기를 들었어.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판막에 난 구멍이 자동으로 막혔어. 이렇게 자연적으로 막히는 것도 만분의 일이래. 난 그러니까 일억분의 일이야!!!!! (지금이야 다행으로 생각하지 훗날 몇년간은 이걸 저주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이렇게 간신히 살아나서 한 7년간은 행복했었어. 내가 7살때까지. 7살이면 어느정도 컸거든. 난 어렸을때부터 조숙해서 눈치하난 엄청 빨랐어. 눈치가 빠르니까 집안 돌아가는게 눈에 슬슬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빨리 난리가 날줄은 상상도 못했었지. 어느날 부모님이 싸움하는걸 눈으로 봤어. 다음날은 엄마가 가출하셨더라. 편지 하나만 남겨놓고. 엄마가 돌아온건 며칠 후였어. 누나랑 내가 자꾸 눈에 밟혀서 돌아오셨대. 이건 그냥 식사 전 에피타이저 수준이었어. 우리집 좀있으면 파탄난다. 이렇게 엄마가 가출하셨던게 내가 8살때니까. 그 해에 이사를 한번 가게 되고 새로 장만한 집에 컴퓨터를 하나 들여놓게 돼. 요놈의 컴퓨터가 재앙의 시작이었어 아오 욕할수도 없고. 우리 아빠가 원래 도박을 좀 좋아해. 예전에도 도박을 좀 했었어. 지 버릇 남 못준다고.. 컴퓨터로 몇날 몇일을 포커 고스톱 막 이런걸 해. 일도 잘 안나가고 마냥 게임만 하고 그나마 나가서 일한 돈도 집에 가져오지도 않고 나가서 다 써버리고. 그러면 가정이 잘 돌아가겠니? 안돌아가지. 이 때문에 내가 2학년때 엄마랑 아빠가 또 싸워. 실제로 이혼했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3년의 기회를 주지. 3년의 기회동안 잘하면 재결합 하겠다고. 어땠을거 같아? 하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지 물어봐야 그게 그거고. 그래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대로야. 아빠는 전혀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엄마까지 일을 하게 만들었어.(이건 굉장히 필터링한거) 우리 생활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시궁창. 그리고 3년 후 완전히 갈라서고 누나와 나는 엄마와 함께 살게되지. 엄마와 살던 그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어. 스트레스 받을게 없었거든. 비록 먹고싶은거 맘대로 못먹고 정부 지원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면서도 그렇게 셋이서 오손도손 살았어. 하지만 내가 6학년이 되던 해에 엄마는 우리 친정에 전화를 하게 돼. 나랑 누나는 세살 터울이라 내가 중1이 되면 누나는 고1이 되는거지. 우리 엄마도 불행하게 자라서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자격증도 없고 그나마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정말 이때 서러웠던건 남들보다 두세배 더 많이 계약하고 야간에 남아서 일을 해도 단지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월급을 더 적게 받는거였어. 아무튼 이렇게 적은 월급으로 월세내고 세금내고 전기세 수도세 내고나면 남는게 얼마 없어. 근데 우리는 커가니까 돈 들데는 점점 많아지고 물가도 오르고 월급만 그대로잖아. 가뜩이나 빡빡하게 살았는데 나 마저 중학교에 들어가면 더 이상 버틸수가 없을거 같으셨나봐. 어느날 누나가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더라고. (훗날 알았지만 누나랑 엄마랑 사전에 얘기를 했었다고 해. 원래는 나만 보내기로 했지만 누나는 나만 보낼수 없다고 같이 친정으로 따라오고. 내가 누나를 끔찍하게 따라서 누나가 걱정이 됬나봐.) 집에 가자고. 집에 할머니랑 삼촌들 오셨다고. 집에 가니까 엄마도 먼저 와있었어. 그때 딱 느낌이 오더라. 아. 이제 엄마랑 안녕이구나. 그렇게 난 친정으로 가게 돼. 친정으로 가서 적응하긴 힘들었어. 지금도 살짝 미적응 상태긴 한데... 괜히 눈치보이고 엄마도 보고싶고... 밤이면 밤마다 울었어.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누나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는거...? 이 시기는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셔서 집안 사람들이 다들 예민할 때라 눈치를 엄청봤지. 학교는 다행히 시골이라 아이들이 착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어. 초등학교는 어찌저찌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가고. 누나가 나랑 같은 중학교 나왔는데 중학교가 되게 작아. 그리고 사립이라서 선생님들이 다 우리 집안 사정을 아니까 배려도 많이 해주셔서 버틸수가 있었어. 누나도 있었구. 중학교는 그나마 살만했다. 애들이랑 트러블 한두번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넘겼고. 대신 이때 위안이 됬던 음악때문에 고등학교 내내 스트레스를 받게되지. 고등학교에 입학했어. 기숙사에 들어갔어. 머리는 좋아서 장학금도 타면서 다녔어. 선생님들도 넌 못해도 성균관대는 갈 수 있을만한 애랬어. 그만큼 성적도 나왔고. 근데 집에서 공부할 여건을 안만들어 주더라. 원래 공부에 뜻은 없었어. 시키니까 하는거였지. 그래도 장학금 꼬박꼬박 받고 손가락안에 들면서 공부를 하는데. 기숙사비 급식비도 안내주고. 맨날 사감선생님한테 불려다니니까 이게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거야. 거기에다... 우리집 여건 뻔히 아는데 음악한다고 차마 말이 안나오는거 있지? 솔직히 우리 삼촌들 나랑 누나 대학보낼만한 능력 되는 사람들이었어. 그런데 돈을 안내준건 우리 아빠 정신차리라고 안내주는 거였대. 하지만 정신을 너무 늦게 차리더라.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얼마 전에서야 정신을 차리더라... 막상 고2때는 열심히 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때 기숙사를 퇴사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퇴사했어. 어느날 룸메이트가 그러더라. 장난식으로 그런진 모르겠는데... "야 너 돈 못내서 기숙사 짤린다매?" 나 그날 밤새도록 울고 그달에 바로 퇴사했어. 그래도 고2때까진 열심히 했다... 고3이 되니까 정말 내 진로를 놓고 막막 하더라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난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집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큰거야. 그러다 보니까 자꾸 방황하게 되고 겉돌게 되고 담임 선생님이랑 학년부장 선생님이랑 트러블 생기고.... 성적은 자꾸 떨어지지 공부는 손에 안잡히지..... 음악은 하고싶지.... 하.... 그 후는 지방 국립대에 입학 했어. 기본이 있으니까 어느정도 커버가 되더라고. 나 아직 꿈 접은거 아니야. 내가 할수있는 여건 내에서 음악 할꺼야. 내가 여태 살면서 버텨온 원동력이 뭐냐면 있지..? 보란듯이 성공해서 나 비웃고 괄시했던 사람들한테 보여주는거. 그 사람들이 나한테 도움을 원하면 기꺼이 도와주는거. 이게 내 복수니까! 또 하나의 원동력은 내가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들 내가 할수있는 능력 내에서 도와주는거야. 어려웠던 그 와중에 나한테 도움줬던 그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꺼야.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기꺼이 밝힐게. 만약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 이건 잊지 말자. 절대로 가정사는 창피한게 아니야. 다만 힘들뿐이야. 우리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건 아니잖아? 좀 어감이 이상한가? 아무튼 긴글 읽어줘서 고맙구. 우리 다함께 힘내자!!!! 서로 응원하면서. 자 힘내자 친구들!! 본의 아니게 반말투로 썼습니다. 저희 대학 12학번 익명 게시판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거라서요 ㅎㅎ 물론 글쓴이 본인이구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가정사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가정사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없는것 같아도 있을거 같다.
뭐 내가 대표적인 부류고... 난 우리집안 사정 아는사람은 진짜 친한 사람이나 물어보는 사람들밖에 모르니까.
그래서 음... 뭐 난 이런 얘기 어려워 하진 않아. 물어보면 다 말해주니까.
그래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것 같아서 이렇게 남겨보려고 해.
서로 용기가 되잘까? 위안이랄까? 뭐 아무튼 그런거지 공감하자고~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될까.
난 태어날때부터 힘들게 태어났어. 태어나자마자 심장판막천공 이라는 병을 달고 태어났거든.
만분의 일 꼴로 걸린다는데 내가 그 만분의 일인거지.
칠삭둥인지라 미숙아였던 나는 수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몇날 몇일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게 비쌌나봐.
병원비로 수천만원을 썼다고 해. 그땐 우리 친정에 돈이 조금 있어서 그걸로 충당했단 얘기를 들었어.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판막에 난 구멍이 자동으로 막혔어.
이렇게 자연적으로 막히는 것도 만분의 일이래. 난 그러니까 일억분의 일이야!!!!!
(지금이야 다행으로 생각하지 훗날 몇년간은 이걸 저주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이렇게 간신히 살아나서 한 7년간은 행복했었어. 내가 7살때까지.
7살이면 어느정도 컸거든. 난 어렸을때부터 조숙해서 눈치하난 엄청 빨랐어.
눈치가 빠르니까 집안 돌아가는게 눈에 슬슬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빨리 난리가 날줄은 상상도 못했었지.
어느날 부모님이 싸움하는걸 눈으로 봤어.
다음날은 엄마가 가출하셨더라. 편지 하나만 남겨놓고.
엄마가 돌아온건 며칠 후였어. 누나랑 내가 자꾸 눈에 밟혀서 돌아오셨대.
이건 그냥 식사 전 에피타이저 수준이었어. 우리집 좀있으면 파탄난다.
이렇게 엄마가 가출하셨던게 내가 8살때니까. 그 해에 이사를 한번 가게 되고
새로 장만한 집에 컴퓨터를 하나 들여놓게 돼.
요놈의 컴퓨터가 재앙의 시작이었어 아오 욕할수도 없고.
우리 아빠가 원래 도박을 좀 좋아해. 예전에도 도박을 좀 했었어.
지 버릇 남 못준다고.. 컴퓨터로 몇날 몇일을 포커 고스톱 막 이런걸 해.
일도 잘 안나가고 마냥 게임만 하고 그나마 나가서 일한 돈도 집에 가져오지도 않고 나가서 다 써버리고.
그러면 가정이 잘 돌아가겠니? 안돌아가지. 이 때문에 내가 2학년때 엄마랑 아빠가 또 싸워.
실제로 이혼했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3년의 기회를 주지. 3년의 기회동안 잘하면 재결합 하겠다고.
어땠을거 같아? 하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지 물어봐야 그게 그거고.
그래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대로야.
아빠는 전혀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엄마까지 일을 하게 만들었어.(이건 굉장히 필터링한거)
우리 생활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시궁창.
그리고 3년 후 완전히 갈라서고 누나와 나는 엄마와 함께 살게되지.
엄마와 살던 그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어. 스트레스 받을게 없었거든.
비록 먹고싶은거 맘대로 못먹고 정부 지원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면서도 그렇게 셋이서 오손도손 살았어.
하지만 내가 6학년이 되던 해에 엄마는 우리 친정에 전화를 하게 돼.
나랑 누나는 세살 터울이라 내가 중1이 되면 누나는 고1이 되는거지.
우리 엄마도 불행하게 자라서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자격증도 없고 그나마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정말 이때 서러웠던건
남들보다 두세배 더 많이 계약하고 야간에 남아서 일을 해도
단지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월급을 더 적게 받는거였어.
아무튼 이렇게 적은 월급으로 월세내고 세금내고 전기세 수도세 내고나면 남는게 얼마 없어.
근데 우리는 커가니까 돈 들데는 점점 많아지고 물가도 오르고 월급만 그대로잖아.
가뜩이나 빡빡하게 살았는데 나 마저 중학교에 들어가면 더 이상 버틸수가 없을거 같으셨나봐.
어느날 누나가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더라고.
(훗날 알았지만 누나랑 엄마랑 사전에 얘기를 했었다고 해. 원래는 나만 보내기로 했지만
누나는 나만 보낼수 없다고 같이 친정으로 따라오고. 내가 누나를 끔찍하게 따라서 누나가 걱정이 됬나봐.)
집에 가자고. 집에 할머니랑 삼촌들 오셨다고. 집에 가니까 엄마도 먼저 와있었어.
그때 딱 느낌이 오더라. 아. 이제 엄마랑 안녕이구나.
그렇게 난 친정으로 가게 돼.
친정으로 가서 적응하긴 힘들었어. 지금도 살짝 미적응 상태긴 한데...
괜히 눈치보이고 엄마도 보고싶고... 밤이면 밤마다 울었어.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누나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는거...?
이 시기는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셔서 집안 사람들이 다들 예민할 때라 눈치를 엄청봤지.
학교는 다행히 시골이라 아이들이 착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어.
초등학교는 어찌저찌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가고.
누나가 나랑 같은 중학교 나왔는데 중학교가 되게 작아. 그리고 사립이라서
선생님들이 다 우리 집안 사정을 아니까 배려도 많이 해주셔서 버틸수가 있었어. 누나도 있었구.
중학교는 그나마 살만했다. 애들이랑 트러블 한두번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넘겼고.
대신 이때 위안이 됬던 음악때문에 고등학교 내내 스트레스를 받게되지.
고등학교에 입학했어. 기숙사에 들어갔어.
머리는 좋아서 장학금도 타면서 다녔어.
선생님들도 넌 못해도 성균관대는 갈 수 있을만한 애랬어. 그만큼 성적도 나왔고.
근데 집에서 공부할 여건을 안만들어 주더라.
원래 공부에 뜻은 없었어. 시키니까 하는거였지. 그래도 장학금 꼬박꼬박 받고
손가락안에 들면서 공부를 하는데. 기숙사비 급식비도 안내주고.
맨날 사감선생님한테 불려다니니까 이게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거야.
거기에다... 우리집 여건 뻔히 아는데 음악한다고 차마 말이 안나오는거 있지?
솔직히 우리 삼촌들 나랑 누나 대학보낼만한 능력 되는 사람들이었어.
그런데 돈을 안내준건 우리 아빠 정신차리라고 안내주는 거였대.
하지만 정신을 너무 늦게 차리더라.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얼마 전에서야 정신을 차리더라...
막상 고2때는 열심히 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때 기숙사를 퇴사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퇴사했어.
어느날 룸메이트가 그러더라. 장난식으로 그런진 모르겠는데...
"야 너 돈 못내서 기숙사 짤린다매?"
나 그날 밤새도록 울고 그달에 바로 퇴사했어.
그래도 고2때까진 열심히 했다...
고3이 되니까 정말 내 진로를 놓고 막막 하더라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난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집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큰거야.
그러다 보니까 자꾸 방황하게 되고 겉돌게 되고 담임 선생님이랑 학년부장 선생님이랑 트러블 생기고....
성적은 자꾸 떨어지지 공부는 손에 안잡히지.....
음악은 하고싶지....
하....
그 후는 지방 국립대에 입학 했어.
기본이 있으니까 어느정도 커버가 되더라고.
나 아직 꿈 접은거 아니야. 내가 할수있는 여건 내에서 음악 할꺼야.
내가 여태 살면서 버텨온 원동력이 뭐냐면 있지..?
보란듯이 성공해서 나 비웃고 괄시했던 사람들한테 보여주는거.
그 사람들이 나한테 도움을 원하면 기꺼이 도와주는거. 이게 내 복수니까!
또 하나의 원동력은
내가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들 내가 할수있는 능력 내에서 도와주는거야.
어려웠던 그 와중에 나한테 도움줬던 그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꺼야.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기꺼이 밝힐게.
만약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 이건 잊지 말자.
절대로 가정사는 창피한게 아니야. 다만 힘들뿐이야.
우리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건 아니잖아?
좀 어감이 이상한가?
아무튼 긴글 읽어줘서 고맙구. 우리 다함께 힘내자!!!!
서로 응원하면서.
자 힘내자 친구들!!
본의 아니게 반말투로 썼습니다.
저희 대학 12학번 익명 게시판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거라서요 ㅎㅎ
물론 글쓴이 본인이구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