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통이 독일 대통령 만난적이 없다고 개소리하는 주진우 깜빵이나 처가라.

역사왜곡하지마라!20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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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라서 독일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았다.

1964년에 박정희가 독일에 간 것은 맞지만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다. 독일은 이미 민주화가 돼서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 잡은 사람 온다고 해서 만나주지 않는다. 박정희는 오자마자 민주화ㆍ시민단체 인사들 데모해서 호텔에서 한발짝도 바깥에 못나갔다고 한다. 함보른탄광 간 건 맞는데 나머지는 다 거짓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것은 독재자이기 때문이라는 것. 독재자에 무게가 실려 있다.

‘꼼수 기자’의 신상자료를 검색해 보니 1973년생. 1964년 독일 방문은 그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또 성숙된 사고력으로 박정희 시대를 체험하지 못한 그가 잘못된 학습으로 비틀려진 모양이다.

박정희 정부가 국가적 고난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자 해외에 눈을 돌렸을 때 최초로 도움의 손길을 뻗쳐준 나라가 독일이다. 당시는 우리와 같은 분단국 서독이었고, 박정희는 서독 대통령 뤼브케의 초청 형식으로 방문했던 것. 한국 대통령이 유럽 땅을 밟은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 얼마나 우리 신세가 처량했는지…. 독재자라서 만나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초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요 방문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뤼브케는 그후 67년에 한국을 방문해 우리와 돈독한 인연을 맺었다.


 








 


 


 



◇ (좌)한독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는 1964년 12월 8일자 경향신문. (우)서독 차관의 용도 그래프. ⓒ 대한뉴스 캡처


 


 


 


 



 


 


◇ 1964년 12월 7일 본 공항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환영식에 나란히 선 모습. ⓒ 국가기록원


 


 


 



 


◇ 1964년 12월 11일 박정희 대통령의 베를린장벽 방문. ⓒ 국가기록원


 


 



 


◇ 박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뤼브케 대통령을 맞아 1967년 3월 3일 제1차 한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 국가기록원


 


 


주진우 개소리 주장


 


육영재단 분쟁.

얼마 전까지 분쟁이 있었다. 용역이 동원되고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내로라 하는 깡패들, HID, 재향군인회 다 왔는데 그쪽에서 박근령이 눌러놓은 땅을 몰아낼 때 박근혜 쪽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동원한 것이 굉장했다. 


 


 


->  재산이라 함은 소유권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덩어리다.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은 재단법인이고, 영남대학교는 학교법인이다. 어느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예컨대 영남대 설립자가 박정희인데, 인천 인하대학이 인하공과대학으로 출범할 때 설립자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고 해서 ‘꼼수 기자’는 지금의 인하대를 이승만이 남긴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그는 반골(反骨)답게 까칠하게 덤벼드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강연 중에 이성을 잃고 흥분상태에서 생뚱맞은 거짓소리를 쏟아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