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조차 바람핀 너에게 쓰는 편지.

하지만201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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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예정대로라면 나는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도시락을 싸고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너 주려고 그동안 모아놓은 것들을 갖고

낑낑거리며 너에게 면회를 갔겠지.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무거워도 가는 내내 널 생각하며 입이 귀에 걸릴듯, 바보처럼 웃으면서 갔을거야.

 

그리고 지난 토요일.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

몇주동안 토요일 면회만 바라보고 살던 우리.

 

 

 

 

 

 

 

그날

나는 너에게 헤어지자고 했어.

그것도 전화통화로.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모아서 너 맛있는 밥 먹이겠다며.

면회 2주 전부터 뭐가 제일 맛있을까. 뭐가 제일 먹고싶을까. 인터넷 뒤져가며 모아놓은 레시피들.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모아서 8단 도시락 싸가겠다며 사놓은 예쁜 도시락통.

길거리 지나가면서 자꾸 니 생각이 나서 사놓았던 핸드크림, 바디워시, 맛있는 군것질 거리들..

 

모두 너와 함께 했어야 했지만 나는 그날 혼자 그것들 붙잡고 울 수 밖에 없었어.

 

 

 

 

 

몇 주전 네이트 판에서 군대 가있는 남자친구 2년동안 뒷바라지하면서 기다렸지만

제대하자 마음이 변한 남자친구와 헤어진 글을 봤었지.

많은 사람들이 읽었더라.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팠지.

 

그 날 저녁 너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 글 이야기를 잠시 꺼냈었어.

그러자 너는 정색하면서 지나가는 소리로라도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그런 글 자꾸 읽지 말라고

자꾸 그러면 기다리기 힘들어지는 건 너라며. 자기는 절대 그런일 없을 것이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힘들게 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오늘도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나. 앞으로 이러지 말자 다짐하며

 

나도 이 글을 가볍게 넘겼었지.

 

 

 

 

 

그런데 헤어진지 이틀.

오늘 다시 읽어본 이 글은 한 글자 한 글자 눈물이 나게 만든다.

 

 

 

 

 

 

 

 

알고 지낸지 8년. 지지고 볶고 6년.

 

6년동안 우리는 어쩌면 붙어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어.

하지만 서로 한 구석에 항상 자리를 만들어 놓았었지.

 

서로? 적어도 나는.

 

 

 

 

니가 군대를 간 지 11개월 됐었을까.

11개월 동안 넌 내게 마음을 표현해줬어.

군인을 어떻게 만나. 하던 내 마음은 어쨌든 너라는 답을 찾았고

너의 제대가 1년 정도 남은 작년 마지막 달. 우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어.

 

 

멀리 떨어져있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채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난 너무 행복했어.

 

그동안 보냈던 6년보다 니가 군대에 있는 동안 보낸 50일은 더 많은 행복을 줬던것 같아.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기로 한 뒤 갖게 된 9박 10일의 첫 휴가.

 

1년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1년만에 안기는 너의 품이었지만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 온 듯 우린 너무 행복하게 보냈지.

매일 저녁 전화로 그리고 편지로.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짜던 우리의 계획대로 하루가 1초인 마냥

그렇게 바쁘게 행복하게 보냈고.

 

내 마음은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굳혀졌었지

 

 

 

 

 

 

 

그리고 니가 복귀하기 전날밤

 

 

간단하게 술 한잔하던 그 날밤.

 

 

 

너에게 온 문자 한 통.

내가 그 문자를 보지 않았더라면 난 이 생각을 하며 아직도 웃고 있을까.

 

 

 

 

 

 

 

훔쳐본것도 아니었지.

니가 내 눈 앞에서 직접 확인한 문자.

 

좀 더 정확히 말해 나란히 앉아 니 품에 안긴채로 확인한 문자.

 

 

 

 

 

내가 모르는 번호. 내가 모르는 이름으로 온 문자.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며칠동안 왜 이렇게 변했냐는 절절한 문자.

 

 

 

 

이런 문자는 누구에게서 온 것이며. 왜 이런 내용이 오냐는 내 물음.

지금 이 순간 니가 나한테 솔직한만큼 나도 앞으로 그만큼 솔직하겠다는 내 울음섞인 원망에

넌 모든걸 털어놓았어.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오래전 끝난 사이였지만 지난 휴가때 연락이 닿아 만났고 그날 잤다고. 

그 이후로 연락 안 했는데 휴가나오니까 자꾸만 연락이 온다고.

근데 얘한테는 내가 처음인데 어떻게 매몰차게 할 수가 있냐고.

 

 

 

'걔랑 잤어.'

 

 

그 이쁜 입에서. 방금 전까지 나밖에 없다고.

미안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던 그 이쁜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 수가 있을까.  

 

 

씩씩한 내가. 성격 밝은 내가. 남 앞에서 그렇게 울어본 건 처음이었어. 아마 앞으로도 없겠지.

 

 

그날 밤

우리가 집에 가던 길 내내 난 울기만 했고. 넌 미안하단 말 밖에 하지 못했어.

 

 

 

 

근데 나는 울면서도 미안해했어.

 

어쨌든 우리가 다시 만나기로 한 이전인데.

그래. 그땐 내가 없었으니까. 군인이잖아. 그럴 수 있는거니까.

 

 

 

오히려

너의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날 자책하기도 했지.

이런게 말로만 듣던 판도라의 상자구나 생각하면서 너를 이해하려고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어.

 

 

 

 

 

복귀날.

미안해서 내 얼굴 보기도 미안하다는 너를 데리고 나와 따뜻한 점심을 먹이고 들여보냈지.

한숨도 못 잤지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울면서 그리고 웃으면서 너를 보냈어.

이렇게 가면 5월이 되야만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 여자애.. 우리랑 같은 중학교 나온 동창.

술에 취해 집에 가서는 졸업앨범도 찾아봤어.

 

 

자꾸만 겹쳐지더라.

너와 함께 했던 모든 것에 같이 갔던 카페도. 같이 갔던 거리도.

니 왼쪽에 내가 있듯이. 니 오른 쪽엔 그 아이가 있는 느낌.

 

 

 

 

 

 

하지만

마지막에 니가 내 손에 쥐어준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보면서 난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

 

 

이해해야지. 이해하자.

 

시간이 흐르면서 난 조금씩 나아졌고, 이해해가고 있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빡빡한 스케쥴이지만 난 어떻게든 날짜를 빼서 면회날을 잡았고

신나게 도시락도 준비했고, 이쁜 옷을 입으려고 쇼핑도 다녔지.

다시 행복해진듯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너의 편지.

 

편지가 도착하면 분홍색 편지지를 가장 먼저 읽어보라던 니 말대로

그 편지를 가장 먼저 읽었어.

 

 

 

 

 

 

 

 

 

 

그리고 나는 길거리에서 주저앉았지.

 

 

 

 

그날 밤 거짓말을 했다는 너의 말과 함께 시작하는 편지는 정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많은 내용.

 

 

 

 

 

 

 

'그 아이랑 안 잤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술 기운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고.

자기도 왜 그런 객기를 부렸는지 모르겠다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한 너의 선의의 거짓말이었을까. 진실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넌 내가 그동안 힘들어 한 이유를 그 아이랑 너랑 잤다는 그 사실 하나때문이라고 생각했었나봐.

내가 널 이해한 이유를 잘 몰랐나봐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에는 

 

 

 

 

 

 

 

그 여자애랑은 그렇게 지난휴가를 보낸 이후에도 연락을 했었고

이번 휴가를 나와서도 계속 연락이 와서 살갑게 문자를 주고 받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지난 날에 대한 기억일뿐

 

나에겐 지금 너밖에 없다고.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내가 널 이해한 이유는

과거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니까.

나랑 다시 만나기로 한 이후로 연락한 적 없다고 하니까.

 

그래서 난 널 이해한거야.

 

 

 

 

 

눈치 빠른 내가.

'며칠동안'이라고 오는 그 아이 문자에 아무것도 못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니?

 

 

 

단지

난 니가 아니라고 하니까.

니가 아니라고 하니까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에도 가만히 묻어두고 이해했던거야.

 

 

 

 

그날 저녁 온 너의 전화.

난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로 그 이야기를 꺼냈고.

자긴 나름대로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보낸 건데

내가, 속이 좁은 내가, 그 의도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이

화를 내면서 짜증을 내면서 끊더라.

 

 

 

 

그리고 먼저 너에게 연락할 방법 없는 나에게

넌 그날 밤에도 그 다음날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

 

 

 

 

 

 

 

참..

군인 남자친구는 나에게 물어볼 기회도 이해할 기회도 끝낼 기회도 먼저 주지 않더라.

늘 그렇듯이 전화가 울릴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그리고 면회가 기다리고 있던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온 너의 전화.

 

 

난 그날 내가 묻어두고 있던 모든 것을 물어봤지.

 

 

그래. 내 예상이 맞더라

 

휴가도 아니고 부대에 있는 너에게 그 여자애가 무슨 수로 먼저 연락을 하겠니.

니가 부대에 있는 동안 연락을 계속 했겠지.

그 여자애랑 통화하느라 다 쓴 카드때문에, 나에겐 콜렉트콜로 전화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난 매달 나오는 청구서 요금이 우리 이만큼 절절하게 사랑해요 보여주는 훈장인 마냥..

 

 

그리고

그렇게 미니홈피를 좋아하던 니가 나랑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싸이를 안 한 이유.

싸이를 왜 안하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아무렇게나 둘러대던 너.

여자친구 있는거 누가 아냐는 내 물음에 부대사람들이라고 대답하던 너.

친한 친구들도 여자친구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나인지는 모른다는 너.

휴가 전부터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겠다고 다짐하더니 막상 휴가가 되서는 말도 없던 너.

 

그리고 이번 휴가. 연락 안 되던 하루.

 

 

 대답을 들었지

 

그래. 그 여자애는 내 존재를 몰랐구나.

아니 그 여자애 뿐만 아니라 아무도 몰랐구나.

 

 

 

 

내가 있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너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니가 그 곳에 있는 동안 난 내가 괜히 다른 마음을 품을까.

페북이든 카톡이든. 모든 곳에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했는데.

 

 

 

니가 있는 세상에서 난 없는 거였구나.

 

 

 

 

군대에 가기 전에도 똑같은 문제로 속을 썩였던 너지만.

적어도 이번엔 다를 줄 알았어.

6년동안 몇번씩 속아왔지만 그래도 이번엔 다르겠지.

이번만큼은 내 맘도 이렇게 단단하듯 너도 그렇겠지.

나한테 미안해서라도. 그런일은 없겠지. 생각했었어

 

 

 

 

넌 아직도 계속 전화를 해.

 

 

 

니가 전화 올 때쯤이면 전화기를 꺼놔.

그리고 니가 전화를 못 하는 밤 열시가 넘으면 다시 전화를 켜.

 

티비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는 밥도 안 먹고, 방에 쳐박혀 있을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밀리지 않고 겨우겨우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

그래야만 오히려 내가 버틸 수가 있거든.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끝내고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모든 것들이 떠올라.

 

 

행복했던 기억부터 마지막 날 니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

 

수없이 주고 받은 편지.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마지막 날 너에게 온 그아이의 문자.

 

나밖에 없다고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하던 니 입. 그리고 마지막 날 모진 단어들만 쏟아내던 니 입.

 

 

 

나와 전화를 끊고 다시 그 여자애와 웃으며 통화했을 너를 떠올리면 잠을 못 자.

아니 어 나보다 그 아이와 먼저 통화했을수도 있겠구나.

 

 

 

똑부러진단 소리 듣는 내가. 그렇게 눈치 빠른 내가.

왜 내 남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을까.

남들 다 말하고 욕하는 남자들 중 하나인데.

아니야 자기는 상황이 다르니까.

자기는 나에게는 확실히 진심이니까.

왜 그렇게 합리화 했을까.  

왜 내 남자는 1%라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읽어만 보던 판.

평소 저기다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라는 생각도 해 본 판인데.

 

이야기를 아는 내 친구들이 볼 수도 있고,

발렌타인 데이로 들떠있는 글들속에서 더 우울해지진 않을지란 생각도 들지만.

혹시나 이렇게라도 쓰면 내 맘이 조금이나마 후련해지지 않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써본다.

 

그리고

아직 너한테 못다한 이야기가 많지만, 못들은 이야기가 많지만

니 전화를 받는 순간 내가 다시 돌아가버릴까봐.

받질 못하겠어.

 

니가 언젠간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맘에 여기다가 글을 남긴다.

 

 

아마 별일없이 지나갔다면

지금쯤 나도 초콜릿이나 도시락을 자랑하는

글을 썼을수도있겠지.

 

그래.

난 아직도 니 진심은 믿어  

 

 

 

 

 

 

근데

 

이젠 니 진심만 있으면 니가 누구와 연락을 하던 누구와 입을 맞추고 무슨 이야기를 하던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여자 찾을 수 있길 바랄게.

 

 

 

11월까지.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