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굳어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오바마 캠프의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정책팀장이 지지자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바마 후보가 부시 대통령,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다른 점은 북한에 대한 고위급 직접외교를 포함한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특파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발언이었다. 그는 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오바마 후보가 국가 안보를 위해 중요한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북한에 대해) 대통령 자신이 직접 개입된 외교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새로 들어설 오바마 정부는 미북(美北) 정상회담도 고려할 정도로 대화 자세가 돼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런 발언이 나올 정도로 오바마 캠프의 대북정책은 대화에 역점을 뒀다.
그러나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북한의 도발적인 자세였다. 김정일은 오바마 정부의 유화적인 손짓을 거부한 채 대결하는 자세로 나왔다. 2009년 4월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5월의 핵실험으로 대화론자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버렸다. 그때 북한의 행동이 오죽 답답했으면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여한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이 김정일의 실명(實名)을 거론하며 비판했겠는가.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3~4년 전 미국과 북한 간에 벌어진 상황을 연상시킨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온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 '엄격한 사과'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탈북(脫北)을 부추길 생각이 없다"고 공개발언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유연한 대북정책'엔 남북한 공존을 위해 대화를 최우선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휴전선 너머로 보이는 29살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움직임엔 적개심만 담겨 있다. 전임자와는 판이한 정책을 펴는 류 장관에 대해서도 '철면피' '대결 광신자' '얼간이'라고 조롱한다. 중국 쿤밍(昆明)시에서 열린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북한 팀이 한국 팀과의 경기를 거부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무조건 배척하면서 정권이 바뀌기만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김정은은 지난 2008년 말 새로운 기회가 온 줄도 모르고 강경정책을 밀고 나가다가 자신의 명(命)을 재촉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최근 나온 두 가지 발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을 향해 두 차례 같은 메시지를 발신했다. "북한이 미국을 비롯, 전 세계와 더 나은 관계를 원한다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또 진보 성향의 북한 전문가들은 요즘 각종 세미나에서 "김정은이 선군(先軍)이 아니라 선경(先經·경제 우선)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남북한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희망버스'의 문이 열렸는데도 북한이 올라타지 않으면 버스는 그냥 떠나버릴 수 있다. 그다음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아직 1년이나 남은 시간이 갖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는 알아야 한다.
김정은 기다리는 '희망버스’
김정은 기다리는 '희망버스’
2008년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굳어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오바마 캠프의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정책팀장이 지지자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바마 후보가 부시 대통령,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다른 점은 북한에 대한 고위급 직접외교를 포함한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특파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발언이었다. 그는 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오바마 후보가 국가 안보를 위해 중요한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북한에 대해) 대통령 자신이 직접 개입된 외교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새로 들어설 오바마 정부는 미북(美北) 정상회담도 고려할 정도로 대화 자세가 돼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런 발언이 나올 정도로 오바마 캠프의 대북정책은 대화에 역점을 뒀다.
그러나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북한의 도발적인 자세였다. 김정일은 오바마 정부의 유화적인 손짓을 거부한 채 대결하는 자세로 나왔다. 2009년 4월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5월의 핵실험으로 대화론자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버렸다. 그때 북한의 행동이 오죽 답답했으면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여한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이 김정일의 실명(實名)을 거론하며 비판했겠는가.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3~4년 전 미국과 북한 간에 벌어진 상황을 연상시킨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온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 '엄격한 사과'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탈북(脫北)을 부추길 생각이 없다"고 공개발언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유연한 대북정책'엔 남북한 공존을 위해 대화를 최우선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휴전선 너머로 보이는 29살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움직임엔 적개심만 담겨 있다. 전임자와는 판이한 정책을 펴는 류 장관에 대해서도 '철면피' '대결 광신자' '얼간이'라고 조롱한다. 중국 쿤밍(昆明)시에서 열린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북한 팀이 한국 팀과의 경기를 거부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무조건 배척하면서 정권이 바뀌기만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김정은은 지난 2008년 말 새로운 기회가 온 줄도 모르고 강경정책을 밀고 나가다가 자신의 명(命)을 재촉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최근 나온 두 가지 발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을 향해 두 차례 같은 메시지를 발신했다. "북한이 미국을 비롯, 전 세계와 더 나은 관계를 원한다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또 진보 성향의 북한 전문가들은 요즘 각종 세미나에서 "김정은이 선군(先軍)이 아니라 선경(先經·경제 우선)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남북한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희망버스'의 문이 열렸는데도 북한이 올라타지 않으면 버스는 그냥 떠나버릴 수 있다. 그다음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아직 1년이나 남은 시간이 갖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는 알아야 한다.
이하원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