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해법 못 내면 市場이 폭력 쓴다

신비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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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해법 못 내면 市場이 폭력 쓴다

 

年 복지예산 1조엔씩 느는 日, '이대로 가면 이탈리아 된다'

소비세율 두 배 인상 고민 중… 오늘 일본은 10년 후 한국 모습

'稅부담 없는 복지 공약' 속으면 '市場의 폭력' 대가 치르게 된다

 

"저나 자민당 입장이 뭐 중요하겠어요. 요즘 일본 정치는 하시모토씨(氏) 말 한마디에 왔다 갔다 하지요."

 

통역을 통해 전달됐는데도 마치무라 노부타카 자민당 중의원 말 속에서 냉소(冷笑)가 느껴졌다. 문부성·외무성 장관을 지낸 68세의 10선 의원은 경력이 일천한 '42세 애송이'가 돌풍을 일으키는 일본의 정치 현실이 영 마뜩치 않은 듯했다.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17%, 야당인 자민당 지지율이 15%인 가운데 일본 차기 지도자감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사람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다. 일본 유력 신문사 논설위원은 "하시모토 시장이 제3세력 깃발을 들고 총선에 나서면 30~40석은 충분히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시모토 현상'의 원인을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폐색감(閉塞感)"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사회가 어디에도 활로가 보이지 않고 꽉 막혀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일본 정계·경제계·언론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그들이 전하는 '2012년 일본' 속엔 한국의 과거·현재·미래의 모습이 뒤섞여 있었다. 정치 쪽은 한국이 가 본 길을 일본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는 10년 전 이미 '노풍(盧風)'을 경험했고, '안철수 바람'이라는 속편까지 상영 중이다. 일본 기성세대는 하시모토 현상을 낯설어하며 파시즘에 빗대 '하시즘'이라고 부른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경제 구조와 그에 따른 복지 부담 증가는 일본이 우리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인 듯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2년 후인 1947년생(生)부터를 '베이비 붐 세대'로 꼽는다. 우리는 6·25전쟁 휴전 2년 후인 1955년생부터가 거기 해당한다. 일본 베이비붐 세대가 60세를 맞아 대거 은퇴하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었고, 우리는 3년 후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출산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 두 나라는 주부가 아이를 낳으면 육아를 위해 직장을 포기하는 풍토인데, 경제상황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또 두 나라는 아직 혼외(婚外) 자녀나 남자의 육아 휴직을 곱게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사회다. 젊은이들은 모두 대기업에 가고 싶어하는데, 대기업 취업문은 좁아지고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는 고용시장의 모습도 두 나라가 판박이다.

 

경제가 활력을 잃은 가운데 인구구조가 노령화되면 복지 부담이 사회를 짓누르게 마련이다. 일본은 매년 복지 예산이 1조엔씩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00%를 넘어섰다. 부채가 GDP의 120%에 약간 못 미치는 이탈리아가 국가 파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 부채 규모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선 현행 5%인 소비세율을 10%로 올리는 문제가 국가적 현안이다. 간접세인 소비세는 물건을 사는 사람의 빈부(貧富)를 따지지 않고 부과되는 세금이라 역진(逆進)적 성격이 강하다. 왜 한국 정치권에서 인기 품목인 부유세나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이 거론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재정전문가인 도이 다케로 게이오대 교수는 "부자들에게 세금 더 물려봤자 1년 추가 세수가 수백억원 정도인데 그 정도론 어림도 없다"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다가 외국으로 가 버리면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부자에게 세금 물려 복지재원을 마련하자'는 정치적 선동은 일본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이 교수는 "지금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려면 5%인 소비세율을 장기적으로 20% 선까지 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복지제도가 잘 갖춰졌다는 유럽 나라들은 모두 소비세가 20% 이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도이 교수는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세금의 세율을 높이지 않으면서 복지 혜택을 늘리는 방법은 없다. 그런 약속을 하는 정치인은 사기꾼"이라고 했다. 시라이시 다카시 정책연구원대학원 원장은 "일본이 만일 소비세 인상 문제를 제대로 처리 못하면 이탈리아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가 답을 내놓지 못하면 시장이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것이 너무 두렵다"고 했다.

 

한국 정치권은 올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에 이어 대선을 치르게 된다. 오늘 일본의 고민은 5년 후, 10년 후 한국의 고민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그때 한국 정치는 과연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남부 유럽 국가들이 지난해 겪은 시장의 폭력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김창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