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네이버 카페) 안녕하세요? 김센치입니다. (__) 오늘의 음식이야기는 조금 독특합니다. 모든분들이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불교 = 스님 = 고기, 술x 다라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며 살아오셨고 또 간혹 스님들이 고깃집에서 목격되는 경험담도 아마 다들 한번씩은 들어보셨을텐데요! 그럼 과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때부터 모든 스님들은 술과 고기를 금식하며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뭐 저도 저희 가족도 불교신자는 아니구요^-^;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 한번 뒤져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있더라구요! 그럼 포스팅 시작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미술검색)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돼지고기 튀김을 잘 못 드시고 소화불량으로 돌아가셨다는 설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먹기 위해 짐승을 일부러 죽여서는 안되지만, 자연사한 짐승의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제자들에게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스님들이 음식을 시주받으면 그 안에 고기가 섞여있어도 그냥 드셨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지금 동아시아의 불교가 고기, 술을 금하게 된 계기가 오게 되는건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alala5546?Redirect=Log&logNo=20130278837) 바로 중국의 남북조 시대! 당시 중국은 양쯔강을 사이에두고 북방 유목민들이 세운 북위, 아래는 한족들이 동진과 송, 제, 양나라를 세웠었는데 그 중에서도 양나라가 가장 화려한 문화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양나라를 세운 양무제는 47년 동안 장기 집권을 했는데 나라를 잘 이끌어 번영으로 이끈 성군으로 불렸다고합니다. 그런 양무제가 바로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고하는데요! 남북조시대에 물론 어느 나라든 불교가 성행했지만 양무제는 유독 심해서 제위기간동안 사찰을 수도에만 5백개, 나라 전체로는 2천8백개나 지었다고 합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양무제는 네 번이나 제위를 버리고 동태사라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겠다고 하는 통에 신하들이 거액을 절에 바치고 간신히 수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양무제는 독실한 불교신자 답게 국정 운영을 하는데 있어 '자비'를 제일의 가치이자 근본 철학으로 삼았으나 공사를 구분못하고 큰 죄를 지어도 나라에 돈을 바치면 사면해주고, 심지어 동생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해도 용서를 했다니.. 벌써부터 나라가 흔들리는 느낌이 퐉퐉 오지 않습니까? (이미지 출처 = 인터넷뉴스) 양무제는 종묘에 올리는 제사에서도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고기와 사람의 정신을 잃게 하는 술을 금지시키고 채소와 과일, 과자와 차를 썼다고하는데요, 단주육문(고기와 술을 끊으라는글)을 법령으로 공표해 자신도 안먹거니와 승려들에게도 일절 술과 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법령이 계기가 되어 승려들의 채식과 금주는 일종의 관습법처럼 굳어져 양나라에서 진나라를 거쳐 수나라로 통일되면서 중국 전역과 우리나라, 일본까지 퍼져 오늘날 동아시아의 승려들이 채식을 하게 된 것은 양무제가 내린 법령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양무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548년 양나라에 투항했던 오랑캐 장수 후경이라는 자가 고작 천여 명으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양무제는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오랑캐놈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신경도 안썼지만 이상하게 반란이 수습되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반란군에 가담하는 백성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1년도 안되서 그 수가 10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자비'를 모토로 삼은 양무제에게 백성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 것일까요? 장기 집권을하면서 양무제 자신도 타성에 젖고 관대함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들의 혈육인 황족들이 백성들을 수탈하거나 학살해도 엄한 처벌을하지 않고 쌔봐야 유배정도만 보냈다고 합니다. 양무제는 자신의 관대함에 감동을 받고 마음을 고쳐 먹으리라 기대했으나, 오히려 황족들은 양무제를 만만하게 보고 백성들을 더욱더 착취했으니 당연히 백성들이 정부에 돌릴 수 밖에요.. 수도가 넘어가기 직전에도 구원군으로 반란군보다 세배나 많은 30만을 이끌던 소릉왕 소륜조차도 아버지가 반란군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 빈자리는 당연히 자신이 황제가 되겠지?하며 위기를 수수방관했다고하니.. 말 다했죠 뭐.. 양무제는 최후에 "자업자득이군, 무슨 할 말이 있으랴"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후경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수도가 넘어간 뒤 모든 사찰들이 불타고 사찰을 지키던 승려는 물론이고 당시 수도인 '건강'의 인구 80%가 잔혹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또 탄생한 음식이 있는데 그건 또 나중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발우공양블로그) 양무제의 법령으로인해 현재까지 동아시아의 승려들은 채식을 위주로하고 있지만! 스님들이라고 맨날 그냥 생으로 풀만 드실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고기와 가급적 비슷한 맛을 내도록하는 주로 콩과 밀가루, 버섯과 두부, 연근 등의 재료를 이용한 정진精進요리법! 요즘같이 웰빙을 추구하는 시대에 많이 각광받고 있죠? 콩고기라던가 버섯탕수육 이런 것도 하나의 정진요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승려들이 채식만하는건 아니구요! 티벳 같은 곳은 육식도 어느정도 허용한다고 하네요^-^; (이미지 출처 = 발우공양블로그) 천년도 넘은시기.. 불교에 너무나도 심취한 한 황제의 법령으로인해 현세까지 이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네요 +_+ 저도 개인적으로는 한 중국집에서 삼선짜장을 시켜드시던 스님 두분이 기억나긴합니다 -_-;; 오늘은 목요일! 내일은 바로 금요일! 또다시 주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일주일중 피로가 절정에 도달하는 목요일이지만 주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이상 김센치였습니다. (__) 62
음식 이야기 : 스님들은 언제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을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카페)
안녕하세요?
김센치입니다. (__)
오늘의 음식이야기는 조금 독특합니다.
모든분들이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불교 = 스님 = 고기, 술x 다라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며
살아오셨고 또 간혹 스님들이 고깃집에서 목격되는 경험담도 아마 다들 한번씩은
들어보셨을텐데요! 그럼 과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때부터 모든 스님들은
술과 고기를 금식하며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뭐 저도 저희 가족도 불교신자는 아니구요^-^;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 한번 뒤져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있더라구요!
그럼 포스팅 시작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미술검색)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돼지고기 튀김을 잘 못 드시고 소화불량으로 돌아가셨다는
설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먹기 위해 짐승을 일부러 죽여서는 안되지만,
자연사한 짐승의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제자들에게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스님들이 음식을 시주받으면 그 안에 고기가 섞여있어도
그냥 드셨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지금 동아시아의 불교가 고기, 술을 금하게 된 계기가 오게 되는건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alala5546?Redirect=Log&logNo=20130278837)
바로 중국의 남북조 시대!
당시 중국은 양쯔강을 사이에두고 북방 유목민들이 세운 북위,
아래는 한족들이 동진과 송, 제, 양나라를 세웠었는데 그 중에서도
양나라가 가장 화려한 문화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양나라를 세운 양무제는 47년 동안 장기 집권을 했는데
나라를 잘 이끌어 번영으로 이끈 성군으로 불렸다고합니다.
그런 양무제가 바로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고하는데요!
남북조시대에 물론 어느 나라든 불교가 성행했지만 양무제는 유독 심해서
제위기간동안 사찰을 수도에만 5백개, 나라 전체로는 2천8백개나 지었다고 합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양무제는 네 번이나 제위를 버리고 동태사라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겠다고 하는 통에 신하들이 거액을 절에 바치고 간신히 수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양무제는 독실한 불교신자 답게 국정 운영을 하는데 있어
'자비'를 제일의 가치이자 근본 철학으로 삼았으나
공사를 구분못하고 큰 죄를 지어도 나라에 돈을 바치면 사면해주고,
심지어 동생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해도 용서를 했다니..
벌써부터 나라가 흔들리는 느낌이 퐉퐉 오지 않습니까?
(이미지 출처 = 인터넷뉴스)
양무제는 종묘에 올리는 제사에서도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고기와
사람의 정신을 잃게 하는 술을 금지시키고 채소와 과일, 과자와 차를 썼다고하는데요,
단주육문(고기와 술을 끊으라는글)을 법령으로 공표해 자신도 안먹거니와
승려들에게도 일절 술과 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법령이 계기가 되어 승려들의 채식과 금주는 일종의 관습법처럼 굳어져
양나라에서 진나라를 거쳐 수나라로 통일되면서 중국 전역과 우리나라, 일본까지
퍼져 오늘날 동아시아의 승려들이 채식을 하게 된 것은 양무제가 내린 법령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양무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548년 양나라에 투항했던 오랑캐 장수 후경이라는 자가 고작 천여 명으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양무제는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오랑캐놈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신경도 안썼지만 이상하게 반란이 수습되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반란군에
가담하는 백성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1년도 안되서 그 수가 10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자비'를 모토로 삼은 양무제에게 백성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 것일까요?
장기 집권을하면서 양무제 자신도 타성에 젖고 관대함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들의 혈육인
황족들이 백성들을 수탈하거나 학살해도 엄한 처벌을하지 않고 쌔봐야 유배정도만
보냈다고 합니다. 양무제는 자신의 관대함에 감동을 받고 마음을 고쳐 먹으리라
기대했으나, 오히려 황족들은 양무제를 만만하게 보고 백성들을 더욱더 착취했으니
당연히 백성들이 정부에 돌릴 수 밖에요..
수도가 넘어가기 직전에도 구원군으로 반란군보다 세배나 많은 30만을 이끌던
소릉왕 소륜조차도 아버지가 반란군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 빈자리는 당연히 자신이 황제가 되겠지?하며 위기를 수수방관했다고하니.. 말 다했죠 뭐..
양무제는 최후에 "자업자득이군, 무슨 할 말이 있으랴"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후경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수도가 넘어간 뒤 모든 사찰들이 불타고
사찰을 지키던 승려는 물론이고 당시 수도인 '건강'의 인구 80%가 잔혹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또 탄생한 음식이 있는데 그건 또 나중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발우공양블로그)
양무제의 법령으로인해 현재까지 동아시아의 승려들은 채식을 위주로하고 있지만!
스님들이라고 맨날 그냥 생으로 풀만 드실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고기와 가급적 비슷한 맛을 내도록하는
주로 콩과 밀가루, 버섯과 두부, 연근 등의 재료를 이용한 정진精進요리법!
요즘같이 웰빙을 추구하는 시대에 많이 각광받고 있죠?
콩고기라던가 버섯탕수육 이런 것도 하나의 정진요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승려들이 채식만하는건 아니구요!
티벳 같은 곳은 육식도 어느정도 허용한다고 하네요^-^;
(이미지 출처 = 발우공양블로그)
천년도 넘은시기.. 불교에 너무나도 심취한 한 황제의 법령으로인해
현세까지 이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네요 +_+
저도 개인적으로는 한 중국집에서 삼선짜장을 시켜드시던 스님 두분이
기억나긴합니다 -_-;;
오늘은 목요일! 내일은 바로 금요일! 또다시 주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일주일중 피로가 절정에 도달하는 목요일이지만 주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이상 김센치였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