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손보다 더 싫은 건

유식한것들이더나빠2012.02.19
조회1,182

유식한 손.
2008.5.2. 이 날 도심에선 촛불집회가 있었다.
이 날 나는 교도관같은 보호자에 의해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이 됐다.
너무 놀라고 겁먹은 내게
교도관같은 보호자는
의사가 데리고 가라고 해야지 꺼내 줄 수 있지,
자신들은 의사말만 따라야 한다며 의사에게 잘 보이라고 했다.

 

자신은.. 나를 도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소개한 의사는
내가 무엇이 문제인 지 말해주지 않았다.
놀라고 겁먹고, 의사말에 잘 따르라는 교도관같은 보호자 때문에
의사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의사에게 이쁘게 보일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 곳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정신병 종류에는 무엇이 있고, 치료약들은 무엇이 있고 등의 내용이었다.
정신병 종류에 대한 교육에서
만성피로 증세도 우울증에 포함된다고 했고
만성피로 증세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주는데,
내가 평상시 겪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사로부터 뭐가 문제인 지 진단에 대한 얘기가 없어 물었다.
Q 제가 뭐가 문제인가요.
A 당신은 당신이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Q 제가 우울증 인가요.
A 우울증만 있다고 생각하나요.
3개월 넘게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 긴 기간 동안, 의사는 내게 어떤 진단을 내렸고, 어떤 문제가 있다고
얘기해 준 적이 없었다.

 

전문적 지식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니,
의사인 내가
정신병자라면 정신병자이지 어떻게 자신 스스로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것을
남에게 확인시킬 수 있겠어.

 

전문지식을 손에 쥐었다고, 그 지식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상대로
악용한 것으로 밖에 판단되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무식해서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 약을 먹어야하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렸다.
.. 고통이라,,
무엇보다도 그 곳에서 먹어야 했던 약으로 인한
상상하기 힘든 신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그대로 그 의사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정신병원에서 꺼내 준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병원까지 외래진료 다니기 멀다며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삼성병원으로 가게 됐고, 삼성병원에서 의사는
입원해야 한다며 기간은 두 주 정도로 생각한다고 했다.
삼성병원 아니면 경기도 이천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의 협박성 말에
기간이 짧은 삼성병원을 택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진입원을 시켰다.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외국에선 중요선거를 치르던 11월. 다시 감금됐다.
다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12월.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정신병원에서 꺼내 주었지만,
약으로 인해, 나는 일어나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힘없이 쓰러져 잠이 들었고,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이 몇 시간도
되질 못했다.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이 약을 먹으라고 강요하질 않아서
약을 끊을 수 있었고, 조금씩 회복되어 갈 수 있었다.

 

5개월정도 지나..
2009.5.21. 아침
교도관같은 보호자는 새벽에 깨어있는 나를 확인하더니,
"너 도저히 안되겠다"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침.
강제입원시키는 아저씨들에게 끌려 건국대학교 병원에 가게 됐다.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와서 몇 마디 물어본 후,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깨어나보니,
건국대학교 정신과병원 안. 2009.5.22. 저녁
2009.5.22. 부엉이 바위

 

대학병원에는 담당의사가 둘이 있다.
하나는 교수라는 사람과 하나는 인턴인가 하는 담당의사.
그래서 건국대학교 정신병원에서 나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교수 유재학, 담당 남지원 이었다.

 

2009.5.22.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깨어났다.
그래서 2009.5.23 이후 담당의사인 남지원을 만날 수 있었다.
남지원은
" 어머니는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아버지는
본인이 조카를 때렸다고 하는데 때렸습니까? "
강제입원시킨 사유가 납득이 되지 않아, 건국대학교 정신병원에서
나는 얌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교수 유재학은
왕진올 때마다 내 기분이 좋지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나는 강제입원 사유가 정당치 않은데, 약을 먹지 않으면 퇴원시켜줄 수
없다는 의사들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교수 유재학은
" 강제입원도 맞고 보호자 주장도 분명한 건 아니지만, 약은 먹어야 합니다."
했다.
어이가없어 몇 일을 기다려 유재학 왕진시간에
내가
" 남지원이 나에게 분명히 ‘보호자 말이 횡설수설’ 이라고 했다" 라고 주장하자,
교수 유재학은
" 어머니 말씀 다 이해했습니다." 라고 짧게 말을 끊어 버리고 다른 환자에게로
가버렸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 전화번호상으로 위치가 정신병원으로 먼저 확인이 돼서,
흥분해서 횡설수설하지 않게 무슨 말을 해야하는 지 신중해야 했다.
장난전화로 오인되기 쉽고,
바쁜 경찰에게 너무 긴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이 나의 강경한 태도에 퇴원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다시 얼굴을 바꾸고
" 내가 입고 온 옷 너한테 벗어줄 테니, 내가 너의 환자복 입을께.
니가 내 옷 입고 나가라" 며
병실 안에서 다른 환자들이 보는 데서 소란을 피웠다.
이 일로 경찰에 신고해 부당함을 호소해서 경찰들이 직접 오기도 했다.
경찰들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자,
건국대학교 정신병원 의사들은 전화사용을 금지시켰다.
정신병원이라는 곳이 행동제한을 많이 하는 곳이라, 전화도 공중전화를
써야하는 곳이다.

 

유재학과 남지원은
내가 무엇이 문제라는 것을 역시 설명해 주는 것보다,
" 환자면서 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퇴원하면 약을 먹지 않을 사람이다"
라는 이유로 퇴원시켜 줄 수 없다고 했다.
갇혀있는 힘듦보다 약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 커서,
나는 남지원에게 울면서 '퇴원해도 약 먹겠다' 고 약속해 주었다.

 

계속 '약을 안 먹으려 해서, 퇴원이 안된다'고 하던
교수 유재학과 남지원은 그래도
정확한 이유를 대지 않고, 퇴원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알려줬다.
대학병원이라 3개월이상 입원해 있을 수 없다고.

 

2009.5.21. 강제입원이 되고 3개월이 가까워 오던 2009.8.12.
간호사가 와서 혈액체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슨 주사인데 맞아도 되고 안 맞아도 되는데, 맞아야 한다고 했다.
하도 말이 이상해서
' 그런 주사 안 맞겠다' 라고 하자,
맞아야 한다며 말을 바꿔 실랑이가 붙었다. 그러자
남지원이 와서 " 주사 꼭 맞아야 된다" 며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주사를 맞고, 깨어나자..
나는 은평정신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은평정신병원 안에서.

 

은평정신병원 의사는
담당해야 할 환자가 많아 바쁘다며, " 좀 봅시다" 했다.
병원에 지내면서 상태를 봐야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이 후, 의사와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의 태도를 보면.
담당의사는 건국대학교 정신병원 처방으로는 치료가 안 된다며
강한 약을 쓴다고 했고,
나는 2008년 강제입원 시 겪었던 상상하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다시 겪었다.

 

은평정신병원에서는 공중전화 사용도 제한시간이 있었다.
정신병원에 처음 갇히게 되면, 의사가 허락하지 않는 한
전화사용은 불가능하다. 어느 병원이든 다 똑같았다.
의사의 허락이 있는 날까지 기다리고, 전화사용 시간 때까지
기다리고... 그렇게 다시 경찰에 하소연을 하니,
상담받던 경찰은 보호자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 니가 너무 나오고 싶어해서 꺼내준다" 며
꺼내주었다. 은평정신병원에서.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그 이 후로는
" 너 약 안 먹으면, 은평병원에서 데리고 오라고 했어.
건국대학교에서도 그랬어." 하며 약을 강요했다.
삼성병원 퇴원 후 약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교수라는 직책까지 달고 있다는 유재학과 남지원이
의사면서도
퇴원시기가 가까온 사람을
마취제를 놓아
타 병원으로 버리듯이 이송시킨 일은
양심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 퇴원해도 약 먹겠다'고 남지원에게 직접 대면해서 말을 전달했는데,
보호자만이 의사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한 짓은
의사의 양심을 떳떳이 뭉개버린 작태로 밖에
판단되어지지 읺는다.

 

은평정신병원을 나와서는
정신병원에 끌려 다니지 않기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약으로 인해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고,
결국
2010. 11월.
두 주 넘는 기간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기운딸려 잠들었다가, 깨어나 정신을 차리려 조금
먹게되면 토해 버리고,
세수도 이도 닦지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한 채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2010년..
시체같은 몸 상태에서 제일 윗 부분에 항상 같이 있었던
super junior. super junior의  sorry sorry는 내 노래 같았다.

 

2011. 4월경.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이 일방적으로 강제입원시켰듯이,
나도 일방적으로 교도관같은 보호자의 의견없이 정신병원 약을 끊었다.
그런데,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약을 끊은 것을 내세워
" 너 약 안 먹으면, 은평병원에서 데리고 오라고 했어.
건국대학교에서도 그랬어" 라며 협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은 입과 주먹으로 대신했다.

 

사소한 것을 핑계로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을 해서..
한 번은
Q 내가 너 불알에서 나온 씨로 난 자식 맞냐
A 내 새끼니깐, 내맘대로 팰 수 있다.

 

나도 아는 게 적어 무식하지만,
교도관같은 보호자들이 유식한 정신병원 의사들에게
얼마나 무식으로 일관했고,
유식한 정신병원 의사들은 자신의 전문지식을 어렵지않게
이용했을 지..
상상된다. 어렵지않게.

 

나도 이건희가 부럽다. 백수라서
변호사 지식을 구하러 다닐려면.. 차비도 없다.
1시간 내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걸어서 다녀야 한다. 백수라서.
한 끼 입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교도관같은 보호자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2008, 2009, 2010..
3년을 걸쳐
정신병원에 끌려 다니고, 시체가 되어가는 몸 상태라서
알바라도 다닐 꿈도 못꿨다.
시체가 되어 가는 몸으로 움직이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2년동안은 분명히 정신병원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이
미리 무서웠다.
나도 이건희가 부럽다. 변호사 지식 구하는 데
차비걱정부터 하지 않아도 돼서.

 

그래도 내 손은 super junior가 잡아 주었다.
" 내 새끼라 내 맘대로 팰 수 있다" 는 교도관같은 보호자 손은
주먹.
교도관같은 보호자보다 더
내가 정신병원에서 헤매며 있기를
바랬었고 바라고 있고 앞으로도 고대하는
이들이 누군 지를 조금씩..

 

이건희같이 돈이 한 없이 많은 사람들의 얘기만 상준하는 사람들,
유재학 남지원같은 사람들,
내가 정신병원에서 헤매기를 소망하는 사람들,
한 순간도 지우기 어려운 이름들.. 교도관같은 보호자들,
...
이런 사람들이 나같은 사람을 무서워하는 세상을 기다린다.
나같은 사람.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
나같은 사람을 무서워하는 날.
그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