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방송 나꼼수(나는 꼼수다) 사람들은 “쫄지 마”라고 외친다. 비속어 냄새가 덜한 일상언어 용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떨지 마’도 있고, ‘얼지 마’도 있다. 그런데도 ‘쫄지 마’다. 왜 ‘쫄지 마’일까. ‘B급’을 자처하는 도발적 언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잡놈이야’라는 시위인 것이다.
그들이 자부하는 무학(無學)의 통찰은 특유의 말·글솜씨보다 외려 이 대목에서 돋보인다. 나꼼수는 그런 언사로 ‘B급 방송’ 혹은 ‘B급 언론’을 자처함으로써 저급하게 놀 자격을 태생적으로 확보했다. 책임? 수준? B급에 뭔 그런 것을 따지겠나.
나꼼수를 이끄는 김어준씨는 얼마 전 “앞으로도 유치한 성적 농담으로 시시덕거리면서 계속 방송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비키니 논란’으로 불거진 비판을 묵살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B급답다. 그런데, 이렇게 구김살 없어도 되는 건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B급은 비주류를 상징하는 기호다. 할리우드 자본이 집중 투하된 A급 영화가 B급과 교차 상영되던 1950년대 미국 극장가에서도 그랬다. 관객은 B급에는 무관심했다. 시간 땜질용에 불과했으니까. B급은 대체로 허접스러웠다. 제작비는 적고 제작시간은 빠듯했으니 그럴밖에. 하지만 장점도 없지 않았다. 당대 흥행 문법과 품격에 구속된 A급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웠던 것이다.
나꼼수는 이 맥락에서 봐도 명실상부한 B급이다. 제작 구조나 제작 마인드를 보라. 그 무엇보다 저비용 구조를 통해 대자본과 무관하게 자기네 세상을 만들어 가치전복적 메시지를 연거푸 던진 성취는 눈부신 감마저 없지 않다. 그만한 B급, 여간해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성취가 너무 대단해서 어느덧 B급의 경계선을 넘어선 탓이다.
B급은 그 정의상 있으나마나 한 존재여야 한다. 나꼼수가 그런가. 천만에! 그랬다면 여성회원 60만명이 모인 ‘삼국카페’가 절교를 선언했을 까닭이 없다. 나꼼수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문화·정치권력인 것이다.
코끼리처럼 몸집이 불었는데도 토끼나 입을 B급 옷에 집착하는 존재를 뭐라 칭해야 할까. 정당한 비판과 조언을 수용하기는커녕 웃자고 한 얘기인데 왜 죽자고 덤벼드느냐고 되레 쏘아대는 권력을 어찌 봐야 할까.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나꼼수는 자성의 눈으로 제 몸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키니 영상에만 눈독을 들일 게 아니라….
나꼼수에만 자성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어찌 해서 본의 아니게 A급 감투를 쓰게 됐는지, 기성사회가 전신 거울로 제 몰골을 봐야 한다.
여야가 쏟아내는 복지공약을 뒷감당하려면 5년간 340조원이 든다고 한다. 재정당국의 어제 분석이 그렇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포퓰리즘 경쟁을 접을 기색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방은 또 뭔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사인이 나오기 전까지 야당의 반FTA 소동을 지켜만 봤던 여당 모습도 기가 막히고, 민주당의 무책임한 말 뒤집기도 어이가 없다. A급이 저럴 수는 없다.
정치권만이 아니다. 골목상권을 박살낸다는 재계, 폴리페서가 우글거리는 학계, 국민 신뢰와는 담 쌓고 사는 법조계 등은 또 어떤가. 심지어 체육계에서마저 국가대표 출신이 승부조작 스캔들에 연루된다. 도무지 A급다운 A급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A급이 없는 세상에선 B급이 왕이다. 호랑이 없는 골에서 토끼가 왕 노릇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꼼수가 팔자에 없는 감투를 쓰게 된 이유다. 김씨는 ‘닥치고 정치’ 서문에 “다음 페이지부터 펼쳐질 내용, 어수선하다. 근본도 없다. 막 간다”고 썼다. 이어 “근본 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시라”고 했다. 김씨가 말한 ‘근본 있는 자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A급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가 여기에 있다.
누가 나꼼수에 감투 씌웠나
누가 나꼼수에 감투 씌웠나
몸집이 너무 불어난 B급의 딜레마
호랑이 없는 골에선 토끼가 왕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나는 꼼수다) 사람들은 “쫄지 마”라고 외친다. 비속어 냄새가 덜한 일상언어 용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떨지 마’도 있고, ‘얼지 마’도 있다. 그런데도 ‘쫄지 마’다. 왜 ‘쫄지 마’일까. ‘B급’을 자처하는 도발적 언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잡놈이야’라는 시위인 것이다.
그들이 자부하는 무학(無學)의 통찰은 특유의 말·글솜씨보다 외려 이 대목에서 돋보인다. 나꼼수는 그런 언사로 ‘B급 방송’ 혹은 ‘B급 언론’을 자처함으로써 저급하게 놀 자격을 태생적으로 확보했다. 책임? 수준? B급에 뭔 그런 것을 따지겠나.
나꼼수를 이끄는 김어준씨는 얼마 전 “앞으로도 유치한 성적 농담으로 시시덕거리면서 계속 방송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비키니 논란’으로 불거진 비판을 묵살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B급답다. 그런데, 이렇게 구김살 없어도 되는 건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B급은 비주류를 상징하는 기호다. 할리우드 자본이 집중 투하된 A급 영화가 B급과 교차 상영되던 1950년대 미국 극장가에서도 그랬다. 관객은 B급에는 무관심했다. 시간 땜질용에 불과했으니까. B급은 대체로 허접스러웠다. 제작비는 적고 제작시간은 빠듯했으니 그럴밖에. 하지만 장점도 없지 않았다. 당대 흥행 문법과 품격에 구속된 A급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웠던 것이다.
나꼼수는 이 맥락에서 봐도 명실상부한 B급이다. 제작 구조나 제작 마인드를 보라. 그 무엇보다 저비용 구조를 통해 대자본과 무관하게 자기네 세상을 만들어 가치전복적 메시지를 연거푸 던진 성취는 눈부신 감마저 없지 않다. 그만한 B급, 여간해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성취가 너무 대단해서 어느덧 B급의 경계선을 넘어선 탓이다.
B급은 그 정의상 있으나마나 한 존재여야 한다. 나꼼수가 그런가. 천만에! 그랬다면 여성회원 60만명이 모인 ‘삼국카페’가 절교를 선언했을 까닭이 없다. 나꼼수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문화·정치권력인 것이다.
코끼리처럼 몸집이 불었는데도 토끼나 입을 B급 옷에 집착하는 존재를 뭐라 칭해야 할까. 정당한 비판과 조언을 수용하기는커녕 웃자고 한 얘기인데 왜 죽자고 덤벼드느냐고 되레 쏘아대는 권력을 어찌 봐야 할까.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나꼼수는 자성의 눈으로 제 몸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키니 영상에만 눈독을 들일 게 아니라….
나꼼수에만 자성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어찌 해서 본의 아니게 A급 감투를 쓰게 됐는지, 기성사회가 전신 거울로 제 몰골을 봐야 한다.
여야가 쏟아내는 복지공약을 뒷감당하려면 5년간 340조원이 든다고 한다. 재정당국의 어제 분석이 그렇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포퓰리즘 경쟁을 접을 기색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방은 또 뭔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사인이 나오기 전까지 야당의 반FTA 소동을 지켜만 봤던 여당 모습도 기가 막히고, 민주당의 무책임한 말 뒤집기도 어이가 없다. A급이 저럴 수는 없다.
정치권만이 아니다. 골목상권을 박살낸다는 재계, 폴리페서가 우글거리는 학계, 국민 신뢰와는 담 쌓고 사는 법조계 등은 또 어떤가. 심지어 체육계에서마저 국가대표 출신이 승부조작 스캔들에 연루된다. 도무지 A급다운 A급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A급이 없는 세상에선 B급이 왕이다. 호랑이 없는 골에서 토끼가 왕 노릇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꼼수가 팔자에 없는 감투를 쓰게 된 이유다. 김씨는 ‘닥치고 정치’ 서문에 “다음 페이지부터 펼쳐질 내용, 어수선하다. 근본도 없다. 막 간다”고 썼다. 이어 “근본 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시라”고 했다. 김씨가 말한 ‘근본 있는 자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A급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