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131 °52′/ 북위 37 °14′에 위치한 명백한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섬입니다.
거리는 울릉도 동남쪽으로부터 89km/ 일본 은기도(隱岐島: 오키시마)로부터 160km.
그리고 우리의 땅 독도는,
울릉도에서는 독도의 조망이 가능하나 일본 오키시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336호(1982. 11 문화재관리청 지정)
독도의 면적과 모양
독도는 동도와 서도라는 2개의 주된 섬과 주변 33개의 작은 바위와 암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186,121m2입니다.
▶ 동도(독도경비대 근무지) : 해발 99.4m / 면적 약 6만 5천 평방미터
▶ 서도 : 해발 174m / 면적 약 9만 5천 평방미터
▶ 동도와 서도의 거리 : 110~160m / 수심 3~10m
재미도 감동도 없으신 것 압니다.
그래도 만약, 조금의 관심이라도 계시다면 계속 봐주세요.
독도가 우리 땅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드리고자 합니다.
독도(獨島)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와 열전)
우산국은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2섬으로 구성된 고대 해상 소왕국이었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요람 군정편』(1808년), 그 밖에 각종 고문헌과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까지 독도의 이름이‘우산도’였던 사실도 독도(우산도)가‘우산국’의 영토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하게 우리 땅인 독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울릉도와 함께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조의 영토라는 사실은 일본 등에는 물론이고 서양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기 1737년에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J.B. B. D'Anville)이 그린『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에도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동해안에 매우 근접하게 그려져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지도처럼 우산도(독도)가 울릉도보다 안쪽에 그려져 있는 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더 강조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서 처음 기록했다고 지적한 1667년의 일본 관찬 고문헌『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도 울릉도(당시 일본 호칭 竹島)와 독도(당시일본 호칭 松島)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한계(限界)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편찬한『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는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조선은 황색으로, 일본은 녹색으로 표시했는데,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조선 색깔인 황색으로 정확하게 칠했을 뿐 아니라 그 옆에「조선의 것」(朝鮮ノ持ニ)이라 써서 울릉도와 독도(우산도)가 조선 영토임을 명료하게 표시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17세기 말 일본 정부(막부)는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했고 이를 문서로 남겼습니다.
일본이 1592~98년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도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하였습니다.
이에 주민피살을 막기 위해 조선 조정이 울릉도를 비워두는 공도(空島)정책을 강행했습니다.
이 틈에 일본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 조정 몰래 일본 어부 2가문에게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와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내주었는데 이것은 외국에 건너갈 수 있는 허가장이었습니다.
이에 울릉도에 건너온 일본 어부들과 안용복(安龍福) 등 조선 어부들 사이에 1693년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마도 도주가 중심이 되어 울릉도(및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려는 외교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수년간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조선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일본도 굴복하여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 관백(關白, 집정관)은 울릉도(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송도도해면허』를 취소하였습니다.
동래 출신 어부 안용복도 이 때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제가 아는 근거 중 마지막으로,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한 사실과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수립되자, 일본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1869년 12월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파견하여 14가지 항목에 대한 내탐 조사를 명령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부속(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 조사하라는 명령항목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과 외무대신은 울릉도와 독도가‘조선부속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내탐보고서가 1870년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이고, 이는 일본 외무성이 1930년대에 편찬한『일본외교문서』제3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일본도 공지 공인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래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ㅡㅡ.
논리성이 떨어지나?
아, 그리고 이건 퍼온건데, 읽어주세요.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북한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 근거> (연합뉴스)정일용기자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국제법과 역사사료, 문헌들을 근거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밝혔다. 이 논평은 최근 일본 외무성이 `2000년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독도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일본측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일축했다.
다음은 이 논평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의 법률적 역사적 근거이다.
△일본은 독도를 우리보다 1천년 뒤에 발견 =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사료들과 문헌들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기원 500년 이전 시기에 독도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이 곳을 어업거점으로 이용해 왔다. 반면에 일본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조선 동해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년 이후에 독도를 발견했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1천400년 늦게 귀속조치 = 법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우리나라는 기원 512년 신라 지증왕 때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시키는 `국가적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로서 이 섬을 제멋대로 시마네현에 소속시키는 `지방적 조치'를 취했다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400년이나 늦게 독도를 저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관계 = 일본은 조선의 본토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독도 포함)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 청구권을 박탈한다고 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講和)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를 위해 연합국이 일본과맺은 평화조약으로 1951년 9월 8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되고 52년 4월 8일 발효됐다.
미국은 지난 47년 7월부터 대일강화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했으나 회의방식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실현되지 못하다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다시 추진돼 체결됐다.
△지도 상의 표기 = 영토의 법적 소속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도 표기를 봐도 독도는 우리나라 것이다. 16세기 말 이후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에서 발간한 모든 조선지도들에는 독도가 명백히 조선의 섬으로 표기돼 있다. 일본의 조선 강점 이전 시기에 나온 일본지도들에도 독도는 일본의 섬으로 표기돼 있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뒤(식민지로 만든 뒤) 독도를 강도적으로 저들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발간된 일부 지도들에도 섬이 조선의 것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됐다.
쓰다 보니 조금 길어진 것 같은데,
제발 좀 일본은 논리성을 기르고 덤벼줬음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발언이라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각하, 제발 일본에 기지 마세요.
각하가 기시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기는 느낌인거 아세요?
그리고 여러분. 얼마 전 이슈가 된 블락비 사건, 그거 정치적으로 터진 mb사건 막으려고 터뜨린 건 아세요? 그거 잘린 동영상이고 우린 거기에 속은 겁니다.
☆★☆★한국인이라면 봐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제 막 17살이 된 완전 평범한 여학생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쓸 내용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섬-독도’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지금부터 제가 쓸 내용을 충고나 훈계가 아닌 비판을 하실 분은
살포시 뒤로 가기 눌러주세요.
사실 제가 이렇게 써봤자 뜨지도 못하고 묻힐지도 모르고,
한분도 보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분이라도 봐주시고 느끼신다면
비겁하지만 '내가 뭘 했다.’ 라는 느낌 갖겠습니다.
독도.
동경 131 °52′/ 북위 37 °14′에 위치한 명백한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섬입니다.
거리는 울릉도 동남쪽으로부터 89km/ 일본 은기도(隱岐島: 오키시마)로부터 160km.
그리고 우리의 땅 독도는,
울릉도에서는 독도의 조망이 가능하나 일본 오키시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336호(1982. 11 문화재관리청 지정)
독도의 면적과 모양
독도는 동도와 서도라는 2개의 주된 섬과 주변 33개의 작은 바위와 암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186,121m2입니다.
▶ 동도(독도경비대 근무지) : 해발 99.4m / 면적 약 6만 5천 평방미터
▶ 서도 : 해발 174m / 면적 약 9만 5천 평방미터
▶ 동도와 서도의 거리 : 110~160m / 수심 3~10m
재미도 감동도 없으신 것 압니다.
그래도 만약, 조금의 관심이라도 계시다면 계속 봐주세요.
독도가 우리 땅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드리고자 합니다.
독도(獨島)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와 열전)
우산국은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2섬으로 구성된 고대 해상 소왕국이었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요람 군정편』(1808년), 그 밖에 각종 고문헌과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까지 독도의 이름이‘우산도’였던 사실도 독도(우산도)가‘우산국’의 영토였음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하게 우리 땅인 독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울릉도와 함께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조의 영토라는 사실은 일본 등에는 물론이고 서양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기 1737년에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J.B. B. D'Anville)이 그린『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에도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동해안에 매우 근접하게 그려져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지도처럼 우산도(독도)가 울릉도보다 안쪽에 그려져 있는 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더 강조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서 처음 기록했다고 지적한 1667년의 일본 관찬 고문헌『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도 울릉도(당시 일본 호칭 竹島)와 독도(당시일본 호칭 松島)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한계(限界)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편찬한『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는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조선은 황색으로, 일본은 녹색으로 표시했는데, 동해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조선 색깔인 황색으로 정확하게 칠했을 뿐 아니라 그 옆에「조선의 것」(朝鮮ノ持ニ)이라 써서 울릉도와 독도(우산도)가 조선 영토임을 명료하게 표시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17세기 말 일본 정부(막부)는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했고 이를 문서로 남겼습니다.
일본이 1592~98년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도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노략질하였습니다.
이에 주민피살을 막기 위해 조선 조정이 울릉도를 비워두는 공도(空島)정책을 강행했습니다.
이 틈에 일본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 조정 몰래 일본 어부 2가문에게 1618년 울릉도에 건너가는『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와 1656년 독도에 건너가는『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를내주었는데 이것은 외국에 건너갈 수 있는 허가장이었습니다.
이에 울릉도에 건너온 일본 어부들과 안용복(安龍福) 등 조선 어부들 사이에 1693년 큰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대마도 도주가 중심이 되어 울릉도(및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려는 외교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수년간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조선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일본도 굴복하여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 관백(關白, 집정관)은 울릉도(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으며, 『죽도도해면허』와『송도도해면허』를 취소하였습니다.
동래 출신 어부 안용복도 이 때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제가 아는 근거 중 마지막으로,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한 사실과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수립되자, 일본 새 정부의 태정관(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1869년 12월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파견하여 14가지 항목에 대한 내탐 조사를 명령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 부속(朝鮮附屬)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 조사하라는 명령항목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과 외무대신은 울릉도와 독도가‘조선부속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내탐보고서가 1870년의「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이고, 이는 일본 외무성이 1930년대에 편찬한『일본외교문서』제3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일본도 공지 공인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래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ㅡㅡ.
논리성이 떨어지나?
아, 그리고 이건 퍼온건데, 읽어주세요.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장한상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동국지도>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
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기인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대한지지>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북한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 근거> (연합뉴스)정일용기자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일 논평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국제법과 역사사료, 문헌들을 근거로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밝혔다. 이 논평은 최근 일본 외무성이 `2000년 외교청서'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독도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일본측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일축했다.
다음은 이 논평이 제시한 독도 영유권의 법률적 역사적 근거이다.
△일본은 독도를 우리보다 1천년 뒤에 발견 =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사료들과 문헌들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기원 500년 이전 시기에 독도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이 곳을 어업거점으로 이용해 왔다. 반면에 일본은 16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조선 동해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년 이후에 독도를 발견했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1천400년 늦게 귀속조치 = 법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우리나라는 기원 512년 신라 지증왕 때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시키는 `국가적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로서 이 섬을 제멋대로 시마네현에 소속시키는 `지방적 조치'를 취했다이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천400년이나 늦게 독도를 저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관계 = 일본은 조선의 본토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독도 포함)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 청구권을 박탈한다고 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講和)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를 위해 연합국이 일본과맺은 평화조약으로 1951년 9월 8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되고 52년 4월 8일 발효됐다.
미국은 지난 47년 7월부터 대일강화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했으나 회의방식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실현되지 못하다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다시 추진돼 체결됐다.
△지도 상의 표기 = 영토의 법적 소속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도 표기를 봐도 독도는 우리나라 것이다. 16세기 말 이후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에서 발간한 모든 조선지도들에는 독도가 명백히 조선의 섬으로 표기돼 있다. 일본의 조선 강점 이전 시기에 나온 일본지도들에도 독도는 일본의 섬으로 표기돼 있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뒤(식민지로 만든 뒤) 독도를 강도적으로 저들의 것으로 만들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발간된 일부 지도들에도 섬이 조선의 것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됐다.
쓰다 보니 조금 길어진 것 같은데,
제발 좀 일본은 논리성을 기르고 덤벼줬음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발언이라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각하, 제발 일본에 기지 마세요.
각하가 기시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기는 느낌인거 아세요?
그리고 여러분. 얼마 전 이슈가 된 블락비 사건, 그거 정치적으로 터진 mb사건 막으려고 터뜨린 건 아세요? 그거 잘린 동영상이고 우린 거기에 속은 겁니다.
까고 까이는 데서 재미 얻는 네이트 판에서 진지진지한 글 써서 기분 다운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근데 이제 우리 정말 독도 지켜야 되요.
일본이 설정한 오늘, 2월22일은 다케시마의 날이 아닌, 아동성폭력예방의 날입니다.
판 읽기만 하다가 처음 쓰면서 감히 진지진지열매 좀 드셔본 17여학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