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권위파괴

하이라이트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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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와 권위파괴

 

정확하게 뭐라고 했는지 다시 곱씹어보자.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위트를 심의하라. 심의하면 할수록 감동과 훈훈함만 느낄 것이고. 촌철살인(寸鐵殺人)에 감탄만 나올 것이다.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

 

외계어 수준의 알듯 모를 듯한 어느 판사의 이 트위트 글은 분석이 필요하다. 짐작컨대 ‘겁먹다’는 뜻의 속어 ‘쫄다’를 동음이의어인 분식집 쫄면에 비유한 것으로 보이고, 대통령을 지칭하는 각하를 가카로,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뜻인 속어 ‘엿먹다’앞에 영어 빅(big)을 붙여 크게 곤욕을 치를 것이란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농담인 듯 진담 같고, 진담인 듯 농담인 것 같다. 아무튼 이 트위트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내용을 심의하겠다는 정책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겁 안먹고 쓴다면 큰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비아냥으로 읽힌다. 글쓴 이의 신분을 생각한다면 품위는 물론, 내용마저 치기스럽다. 판사가 대통령을 비꼰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에 비해 일선 경찰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대통령의 격려에 대해 “검찰 공화국을 검찰 제국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염치로 일선 경찰관에게 격려 문자를 보냈느냐. 제복을 입은 시민이자 유권자의 한사람으로서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답신을 보낸 어느 경찰 간부의 SNS는 차라리 진지하다. 한명은 법복을 벗었고 한명은 인사조치를 당했으니 가히 현대판 문자옥(文字獄)인 셈이다. 이제 대통령을 이죽거리지 않으면 오히려 왕따가 되는 세상이다.

 

이런 현상이 비단 대통령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욕하는 것도 모자라 주먹으로 때리는 패륜은 다반사며, 지하철 막말녀는 아예 관심조차 끌지도 못하는 ‘불감증의 시대’가 돼가고 있다. 기성세대의 모든 권위는 하나씩 하나씩 부정되며 무너지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 권력뿐 아니라 제4 , 제5의 권력이라는 언론,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위는 실종되고 파괴된다.

 

이런 탈권위, 권위추락의 이면에는 SNS의 속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공(公)과 사(私)의 경계가 없다. 공이 사가 되고 사가 공이 된다. 농담이 진담이 되고 진담이 농담이다. 진지함보다는 놀이다. 자연히 권위는 사라진다. 너와 내가 똑같은 ‘SNS 평등’이 이뤄지고 ‘우리’대신 ‘나’가 존재한다. 나만 있다보니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가 되고, 이상한 민주(民主)세상이 되고 있다. 경륜과 연륜은 패기와 젊음에 눌려 더이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런 세태를 한탄하며 혀를 끌끌 찼다가는 반푼 취급받기 일쑤고 수구에 보수 꼴통이 되기 십상이다.

 

권위를 대체하는 것은 욕설에 가까운 감정 배설이다. 좀 과장하자면 가치 파괴가 미덕이 되고 부정(否定)이 존경받는 세상이다. 얼마나 통쾌하랴. 억압하고 숨통을 조이던 기성 권위들을 가차없이 비아냥거리고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 SNS는 신앙이다. SNS세상에선 스스로의 모자람을 되돌아 볼 필요도 없다. 나의 불행은 전부 남의 탓이고, 내가 받는 불이익은 전부 남의 탓이거나, 정부 잘못이고, 대통령을 잘못 뽑은 탓이다.

 

가치부정, 권위붕괴가 지속되면 그 사회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혼돈의 시대, 카오스적 상황을 추스를 새로운 사회질서, 새로운 모럴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SNS 시대는 이제 한국사회를 지탱하던 유교적 DNA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킬 새로운 모럴, 과연 누가 깃발을 들 것인가.

 

최영범/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