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귀거래사 (新歸去來辭) 19 자유만세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아내가 한 사나흘 서울로 갔다. 드디어 나 혼자다. 얼마만의 자유인가, 거치장거림 없는 홀가분한 나 홀로의 독립, 그 지겨운 잔소리에서의 해방, 후세인이 잡힌 것만큼이나 아내가 서울 간다는 사실이 내게는 크나큰 빅뉴스다. 아내가 서울 가는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당 수돗가에 차를 주차시킨 뒤 때 빼고 광 내 주었다. 평소에 안하던 짓거리이지만 귀찮아하고 슬슬 꽁무니 빼기만 했던 세차가 신명이 났었다. 마마 행차하시는 데 품위 유지 결함이 없도록 마차 정비 잘 하여 대령 하였나이다~~~ 아내의 구두도 챙겨줬다. 마마 서울은 눈바람 세차고 영하의 기온으로 추운 북국이오니 목 긴 부츠를 신고 행차 하시옵소서~~~ 목도리도 챙기시옵소서! 세계적으로 살인독감이 돈다 하옵니다아~~~ 빨리 출발하기를 재촉하는 내 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지만, 아내가 없는 사나흘의 금쪽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나? 내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다. 드디어 아내가 대문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 맴돌던 단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래, ‘경장’ 경장이야! 얼마 전 TV 퀴즈에서 ‘삼장’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퀴즈 도전자가 고심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나를 힐끗 돌아본다. 도전자의 입에서 ‘법화경’하는 답이 나왔다. 그건 아닌데.... 아내가 나를 보는 것은 답이 뭐꼬? 하는 물음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머리 속에 맴돌던 답이 아내가 대문을 나서자 찰나적으로 떠 오른 것이다. 삼장법사란, 세 가지 불법에 통달한 사람이란 뜻의 최고의 존칭어이다. ‘경장, 율장, 논장’ 이 해답이 아내가 길 떠나자 떠 오른 것이다. 문둥이 여편네~ 내가 그만큼 아내에게 가위 눌려 있었나 보다. 아내의 지시사항 * 보일러 가동 시 절대 연속과 타임 버튼 혼동하지 말 것 * 가스밸브 항상 쓰고 나면 off 시킬 것 * 테라스 전등과 바깥 화장실 전등은 취침 전에 꼭 소등할 것 * 친구와 후배들 불러들이지 말 것 (내가 생각해도 난장판이다.) * 허가량 이외의 음주를 하다 즉발 시.... 그 다음 말은 이 자리에서 못 밝힘 * 자기 전에 꼭 씻을 것이며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울 것 * TV는 꼭 끄고 잘 것 * 문단속, 전자랜지 사용금지, 속옷, 약 챙기기, 반찬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뭐 그 이외에도 끝이 없다. 어이구 저 지겨운 잔소리.... 그리고 떠났다. 서울로~~ 천두웅사안~~ 바악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니임아~~ 어찌 내 입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겠는가! 나의 맹세 우히히~~ 아내의 지시사항은 철저히 무시하고, 무시하고, 또 무시하자. 일초의 허실과 손실 없는 완벽한 놀이 표를 짜자! 일단 친구들한테 비둘기 날린다. 집에 아무도 없다. 놀자~~~ 이 넓은 우주에 이 긴 세월에 찰라로 만나 영원히 함께 하는 인간관계. 우정, 친구, 벗. 한 손에 책을 한 손엔 맥주를 들고 ‘둘 다 필요한 양식입니다아~~ 한울님~~ * 잠은 내가자고 싶은 곳 아무데서나 잔다. 응접실, 침실 가리지 않는다. * 사나흘 세수는 하지말자, 면도도 하지말자, 양치? 음, 그것은 구강위생상 지키자. * 배고플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만들어 먹고..... * 음주, 음~ 작은 막걸리 세통이 허락 양이다. 당장 큰 병 세통으로 바꾼다. * 깔끔 떨지 말고, 주책도 부리고, 밤샘도 신나게 하자. * 좌우지간 시간개념 없이 사는 것이다. 배가 고픈데 아내가 전기밥솥에 해 놓고 간 밥은 철저히 외면하고,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더라? 갑자기 부안에서 한달 여 상식했던 백합죽이 생각났다. 모주 한 잔과 하얀 백합죽, 나는 부안에서 백합죽으로만 살았다. 늘 상 죽을 즐겨하지만 아내가 죽을 싫어하기에 내가 원해도 피하기만 했다. 읍내시장으로 나가니 백합이 없다. 백합을 사려면 포항 죽도 어시장으로 가야한다. 포항 까지 가기는 그렇고, 꿩 아니면 닭이라 눈에 보이는 것이 소라다. 소라를 잘 손질하여 기억을 더듬어가며 참기름에 볶는다. 고소한 냄새가 벌써 콧속에 스며든다. 쌀을 두 홉 정도 씻어서 냄비에 끓인다. 불을 낮게 잡아 은근히 끓인다는 것은 죽을 쑤는 데는 기초다. 그 정도는 안다. 바둑 채널을 돌려 오랜만에 보고 싶은 프로를 마음 놓고 본다. 아! 얼마나 행복한가. 바둑에 빠져 있는 데 냄비 뚜껑이 기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놀라 가스렌지를 보니 아뿔싸, 죽이 넘쳐 렌지가 엉망이다. 얼른 다른 냄비에 절반쯤 옮겨 놓았지만 가스 테이블은 죽 천지다. 그런데 잠시 끓이다 보니 또 넘친다. 또 절반 쯤 옮기고 나니 또 넘쳐 난다. 벌써 냄비란 냄비는 다 동원했으나 도대체 죽이란 놈은 한없이 넘쳐난다. 넘쳐난 죽은 가스 테이블 뿐 아니라 싱크대 전부가 죽 천지로 변했다. 태풍의 뒤끝처럼 난장판이다. 어휴~~~ 무슨 놈의 쌀이 이리도 넘쳐나도록 불어나나..... 어쨌거나 죽을 한 사발 퍼 들고 식탁이 아닌 내 책상에 올려놓고 간장을 종지에 부었다. 어머니는 죽을 쑤면 꼭 간장 한 종지를 죽과 함께 내어왔기에 죽에 어울리는 반찬은 간장이라는 등식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죽을 한 술 뜨고 간장을 찍어 입에 넣으니 에구~~ 이건 간장 맛이 아니다. 간장병을 다시 보니 멸치 액젓이다. 죽을 다 먹기도 전에 친구 한 넘이 닥쳤다. 손에는 싱싱한 병어 대 여섯 마리가 들려있다. 안주, 그래 맛있는 안주지, 병어회! 요즘 어판장에서 경매 가격이 한 상자에 십육 만원 나간다는 고급 어종이다. 죽사발은 던져 버리고 병어회부터 장만하여 소주잔을 드는데 후배가 또 들이 닥친다. 대낮부터 술추렴 판이 벌어졌다. 우히히~~ 구속 없는 이 호사스러운 행복감을 나는 만끽한다. 홍도야아~~ 울지마아라~~ 오빠아가 이이있다~~ 먼저 술에 골아 떨어 진 친구는 카페트 위에 벌렁 누워 코를 골면서 잔다. 해거름 슬슬 다가오며 후배는 밤에 다시 오마하며 가고 나도 친구넘 옆에 모서리로 누웠다. 갈증이 나서 일어나니 벌써 한 밤중이다. 방안은 돗떼기 시장이다. 물 한 사발 마시는데 부산에 사는 친구가 벼락처럼 닥쳤다. 세 넘이 어울려 또 마신다. 전축 볼륨을 한껏 올린 후 노래자랑 판이 벌어졌다. 파리넬리의 탐미적인 미성까지 나온다. 우히히~~ 어울리지도 않는 지성, 교양, 체면, 품위는 저리가라 필요 없다. 그런 것은 체질에 맞지도 않고 본성대로 논다. 이 순간, 이 시대의 가장 큰 덕목은 노래라고 목이 터져라 불러재낀다. 유쾌한 자유다. 구속 없는 자유여! 너 얼마만인가! 아침에 일어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숫제 쓰레기장을 방불한 방안꼬락서니를 보니, 아 이 우찌 사람 사는 집인가? 어김없는 돼지우리다. 죽으로 도배된 가스렌지와 테이블, 씽크대에 쌓인 그릇들, 방바닥에 어질러진 술병과 안주 접시들, 나뒹구는 음악 CD에다 쏟아진 재떨이의 담배꽁초들, 여기 저기 던져진 옷에 묻은 초고추장의 흔적들 완벽하게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그 기에다 살펴보니 카페트는 여러 곳이 더렵혀져 있고.... 갑자기 아내의 불꽃 심지 돋은 새파란 눈이 오버랩 된다. 애고, 나는 죽었다. 아내가 귀가하기 전에 완벽하게 증거를 지우고 제자리 정리정돈, 모든 물건은 원상태로 환원시켜야 한다. 갑자기 아내가 무서워진다. 그릇들부터 세척하자. 그런데 개수대에서 이 많은 빈 그릇들을 씻으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놈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어떨까? 한방에 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유리그릇, 질그릇, 자기그릇, 알미늄 냄비에다 법랑냄비, 코팅냄비, 접시에 대접에, 시커먼 부엌칼, 수저까지 세탁기에서 돌린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 세 넘이 마당 수돗가로 옮겨 물비누 반통을 붓고 잔디에 뿌리는 살수기로 마구잡이로 뿌렸다. 그릇을 빨리 말려 제자리에 시침 때고 원상복귀 시켜야 한다. 대충 씻은 그릇들을 행주로 물기를 가볍게 제거한 후 작은 그릇들부터 전자랜지에 차곡차곡 겹쌓아 넣었다. 아내와 둘만 단촐 하게 사는지라 평소에 필요함을 느끼지 못했던 식기 건조기가 왜 이다지도 아쉬운지..... 땡! 소리를 듣고 그릇들을 꺼집어내는 데 앗 떠거라 유리그릇, 질그릇, 와장창..... 카페트에 묻은 초고추장은 아무리 닦아 내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담뱃불에 펑크 난 흔적은 도저히 원상회복 불가능..... 애라 모르겠다~ 정치하는 넘들 처럼 접시는 내가 깼다, 하지만 유리컵은 일면 안식도 없다. 장땡~ 모르쇠로 잡아떼자. 쌓인 술병과 쓰레기로 꼬투리 잡힐지 모르니 마당 한구석에서 소각하고 파묻고, 좌우지간 염병을 떨었다. 우쉬! 친구넘들은 내일 아니라는 듯,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 음흉하게 웃으며 변죽을 올리드니 비겁하게 휭 하니 꽁무니 빼고.... 나홀로 아수라장 같은 집안을 대충 챙겼지만..... 귀가한 아내의 여우같은 눈을 속일 방법은 없었다. 그날..... 나는 요강 들고 꿇어 앉아 행주 입에 물고 콧 물 훌쩍이며 아내에게 바친 노래 백 번 불렀다. 시말서 쓰고, 한 달 용돈 지급 불가 판정 받고, 각방 생활 열흘의 금고 처분을 받았다. 금고 열흘 동안 와신상담, 아내에 대한 복수 계획을 철저히 세울 것이다. 2003, 12, 17 푸 른 바 다 ♬사랑의 테마 ; 박 인수 & 이 수용
자유 만세
신 귀거래사 (新歸去來辭)
19
자유만세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아내가 한 사나흘 서울로 갔다.
드디어 나 혼자다.
얼마만의 자유인가, 거치장거림 없는 홀가분한 나 홀로의 독립, 그 지겨운 잔소리에서의 해방, 후세인이 잡힌 것만큼이나 아내가 서울 간다는 사실이 내게는 크나큰 빅뉴스다.
아내가 서울 가는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당 수돗가에 차를 주차시킨 뒤 때 빼고 광 내 주었다.
평소에 안하던 짓거리이지만 귀찮아하고 슬슬 꽁무니 빼기만 했던 세차가 신명이 났었다.
마마 행차하시는 데 품위 유지 결함이 없도록 마차 정비 잘 하여 대령 하였나이다~~~
아내의 구두도 챙겨줬다.
마마 서울은 눈바람 세차고 영하의 기온으로 추운 북국이오니 목 긴 부츠를 신고 행차 하시옵소서~~~
목도리도 챙기시옵소서! 세계적으로 살인독감이 돈다 하옵니다아~~~
빨리 출발하기를 재촉하는 내 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지만, 아내가 없는 사나흘의 금쪽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나?
내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다.
드디어 아내가 대문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 맴돌던 단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래, ‘경장’ 경장이야!
얼마 전 TV 퀴즈에서 ‘삼장’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퀴즈 도전자가 고심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나를 힐끗 돌아본다.
도전자의 입에서 ‘법화경’하는 답이 나왔다.
그건 아닌데....
아내가 나를 보는 것은 답이 뭐꼬? 하는 물음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머리 속에 맴돌던 답이 아내가 대문을 나서자 찰나적으로 떠 오른 것이다.
삼장법사란, 세 가지 불법에 통달한 사람이란 뜻의 최고의 존칭어이다.
‘경장, 율장, 논장’ 이 해답이 아내가 길 떠나자 떠 오른 것이다.
문둥이 여편네~
내가 그만큼 아내에게 가위 눌려 있었나 보다.
아내의 지시사항
* 보일러 가동 시 절대 연속과 타임 버튼 혼동하지 말 것
* 가스밸브 항상 쓰고 나면 off 시킬 것
* 테라스 전등과 바깥 화장실 전등은 취침 전에 꼭 소등할 것
* 친구와 후배들 불러들이지 말 것 (내가 생각해도 난장판이다.)
* 허가량 이외의 음주를 하다 즉발 시.... 그 다음 말은 이 자리에서 못 밝힘
* 자기 전에 꼭 씻을 것이며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울 것
* TV는 꼭 끄고 잘 것
* 문단속, 전자랜지 사용금지, 속옷, 약 챙기기, 반찬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뭐 그 이외에도 끝이 없다.
어이구 저 지겨운 잔소리....
그리고 떠났다. 서울로~~
천두웅사안~~ 바악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니임아~~
어찌 내 입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겠는가!
나의 맹세
우히히~~
아내의 지시사항은 철저히 무시하고, 무시하고, 또 무시하자.
일초의 허실과 손실 없는 완벽한 놀이 표를 짜자!
일단 친구들한테 비둘기 날린다.
집에 아무도 없다.
놀자~~~
이 넓은 우주에 이 긴 세월에 찰라로 만나 영원히 함께 하는 인간관계. 우정, 친구, 벗.
한 손에 책을 한 손엔 맥주를 들고 ‘둘 다 필요한 양식입니다아~~ 한울님~~
* 잠은 내가자고 싶은 곳 아무데서나 잔다. 응접실, 침실 가리지 않는다.
* 사나흘 세수는 하지말자, 면도도 하지말자, 양치? 음, 그것은 구강위생상 지키자.
* 배고플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만들어 먹고.....
* 음주, 음~ 작은 막걸리 세통이 허락 양이다. 당장 큰 병 세통으로 바꾼다.
* 깔끔 떨지 말고, 주책도 부리고, 밤샘도 신나게 하자.
* 좌우지간 시간개념 없이 사는 것이다.
배가 고픈데 아내가 전기밥솥에 해 놓고 간 밥은 철저히 외면하고,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더라?
갑자기 부안에서 한달 여 상식했던 백합죽이 생각났다.
모주 한 잔과 하얀 백합죽, 나는 부안에서 백합죽으로만 살았다.
늘 상 죽을 즐겨하지만 아내가 죽을 싫어하기에 내가 원해도 피하기만 했다.
읍내시장으로 나가니 백합이 없다.
백합을 사려면 포항 죽도 어시장으로 가야한다.
포항 까지 가기는 그렇고, 꿩 아니면 닭이라 눈에 보이는 것이 소라다.
소라를 잘 손질하여 기억을 더듬어가며 참기름에 볶는다.
고소한 냄새가 벌써 콧속에 스며든다.
쌀을 두 홉 정도 씻어서 냄비에 끓인다.
불을 낮게 잡아 은근히 끓인다는 것은 죽을 쑤는 데는 기초다.
그 정도는 안다.
바둑 채널을 돌려 오랜만에 보고 싶은 프로를 마음 놓고 본다.
아! 얼마나 행복한가.
바둑에 빠져 있는 데 냄비 뚜껑이 기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놀라 가스렌지를 보니
아뿔싸, 죽이 넘쳐 렌지가 엉망이다.
얼른 다른 냄비에 절반쯤 옮겨 놓았지만 가스 테이블은 죽 천지다.
그런데 잠시 끓이다 보니 또 넘친다.
또 절반 쯤 옮기고 나니 또 넘쳐 난다.
벌써 냄비란 냄비는 다 동원했으나 도대체 죽이란 놈은 한없이 넘쳐난다.
넘쳐난 죽은 가스 테이블 뿐 아니라 싱크대 전부가 죽 천지로 변했다.
태풍의 뒤끝처럼 난장판이다.
어휴~~~
무슨 놈의 쌀이 이리도 넘쳐나도록 불어나나.....
어쨌거나 죽을 한 사발 퍼 들고 식탁이 아닌 내 책상에 올려놓고 간장을 종지에 부었다.
어머니는 죽을 쑤면 꼭 간장 한 종지를 죽과 함께 내어왔기에 죽에 어울리는 반찬은 간장이라는 등식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죽을 한 술 뜨고 간장을 찍어 입에 넣으니
에구~~
이건 간장 맛이 아니다.
간장병을 다시 보니 멸치 액젓이다.
죽을 다 먹기도 전에 친구 한 넘이 닥쳤다.
손에는 싱싱한 병어 대 여섯 마리가 들려있다.
안주, 그래 맛있는 안주지, 병어회!
요즘 어판장에서 경매 가격이 한 상자에 십육 만원 나간다는 고급 어종이다.
죽사발은 던져 버리고 병어회부터 장만하여 소주잔을 드는데 후배가 또 들이 닥친다.
대낮부터 술추렴 판이 벌어졌다.
우히히~~
구속 없는 이 호사스러운 행복감을 나는 만끽한다.
홍도야아~~ 울지마아라~~ 오빠아가 이이있다~~
먼저 술에 골아 떨어 진 친구는 카페트 위에 벌렁 누워 코를 골면서 잔다.
해거름 슬슬 다가오며 후배는 밤에 다시 오마하며 가고 나도 친구넘 옆에 모서리로 누웠다.
갈증이 나서 일어나니 벌써 한 밤중이다.
방안은 돗떼기 시장이다.
물 한 사발 마시는데 부산에 사는 친구가 벼락처럼 닥쳤다.
세 넘이 어울려 또 마신다.
전축 볼륨을 한껏 올린 후 노래자랑 판이 벌어졌다.
파리넬리의 탐미적인 미성까지 나온다.
우히히~~
어울리지도 않는 지성, 교양, 체면, 품위는 저리가라 필요 없다.
그런 것은 체질에 맞지도 않고 본성대로 논다.
이 순간, 이 시대의 가장 큰 덕목은 노래라고 목이 터져라 불러재낀다.
유쾌한 자유다.
구속 없는 자유여!
너 얼마만인가!
아침에 일어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숫제 쓰레기장을 방불한 방안꼬락서니를 보니, 아 이 우찌 사람 사는 집인가?
어김없는 돼지우리다.
죽으로 도배된 가스렌지와 테이블, 씽크대에 쌓인 그릇들, 방바닥에 어질러진 술병과 안주 접시들, 나뒹구는 음악 CD에다 쏟아진 재떨이의 담배꽁초들, 여기 저기 던져진 옷에 묻은 초고추장의 흔적들 완벽하게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그 기에다 살펴보니 카페트는 여러 곳이 더렵혀져 있고....
갑자기 아내의 불꽃 심지 돋은 새파란 눈이 오버랩 된다.
애고, 나는 죽었다.
아내가 귀가하기 전에 완벽하게 증거를 지우고 제자리 정리정돈, 모든 물건은 원상태로 환원시켜야 한다.
갑자기 아내가 무서워진다.
그릇들부터 세척하자.
그런데 개수대에서 이 많은 빈 그릇들을 씻으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놈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어떨까?
한방에 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유리그릇, 질그릇, 자기그릇, 알미늄 냄비에다 법랑냄비, 코팅냄비, 접시에 대접에, 시커먼 부엌칼, 수저까지 세탁기에서 돌린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
세 넘이 마당 수돗가로 옮겨 물비누 반통을 붓고 잔디에 뿌리는 살수기로 마구잡이로 뿌렸다.
그릇을 빨리 말려 제자리에 시침 때고 원상복귀 시켜야 한다.
대충 씻은 그릇들을 행주로 물기를 가볍게 제거한 후 작은 그릇들부터 전자랜지에 차곡차곡 겹쌓아 넣었다.
아내와 둘만 단촐 하게 사는지라 평소에 필요함을 느끼지 못했던 식기 건조기가 왜 이다지도 아쉬운지.....
땡! 소리를 듣고 그릇들을 꺼집어내는 데 앗 떠거라 유리그릇, 질그릇, 와장창.....
카페트에 묻은 초고추장은 아무리 닦아 내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담뱃불에 펑크 난 흔적은 도저히 원상회복 불가능.....
애라 모르겠다~
정치하는 넘들 처럼 접시는 내가 깼다, 하지만 유리컵은 일면 안식도 없다.
장땡~
모르쇠로 잡아떼자.
쌓인 술병과 쓰레기로 꼬투리 잡힐지 모르니 마당 한구석에서 소각하고 파묻고, 좌우지간 염병을 떨었다.
우쉬!
친구넘들은 내일 아니라는 듯,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 음흉하게 웃으며 변죽을 올리드니 비겁하게 휭 하니 꽁무니 빼고....
나홀로 아수라장 같은 집안을 대충 챙겼지만.....
귀가한 아내의 여우같은 눈을 속일 방법은 없었다.
그날.....
나는 요강 들고 꿇어 앉아 행주 입에 물고 콧 물 훌쩍이며 아내에게 바친 노래 백 번 불렀다.
시말서 쓰고, 한 달 용돈 지급 불가 판정 받고, 각방 생활 열흘의 금고 처분을 받았다.
금고 열흘 동안 와신상담, 아내에 대한 복수 계획을 철저히 세울 것이다.
2003, 12, 17
푸 른 바 다
♬사랑의 테마 ; 박 인수 & 이 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