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6-18)... 'When you fast, do not look somber as the hypocrites do, for they disfigure their faces to show men they are fasting.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But when you fast, put oil on your head and wash your face, so that it will not be obvious to men that you are fasting, but onl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and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예수는 제자들의 경건한 금식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엄격한 절제 행위는 제자들의 삶의 한 부분이다. 이와 같은 행위의 유일한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명령된 길과 일을 더 자발적으로, 더 기쁘게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섬김을 거부하는 이기적이고 태만한 의지는 훈련을 받게 되며, 육체는 굴복과 형벌 아래 놓이게 된다. 절제 행위를 통해 세상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금욕(abstinence)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시민적 의(justitia civilis)가 "허락하는 한" 육체의 모든 욕망을 허용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배부른 육체는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금욕적 봉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리스도인은 훈련과 금식과 기도(눅 2:37, 4:2, 막 9:29, 고전 7:5)를 통해 더 잘 섬기려고 자신의 육체를 공격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금욕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완전한 공론(an empty theory)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은 무자비하며,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한다. 만약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육체와 벌이는 마음의 끝없는 온갖 투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기도를 게을리 하게 되고 성서의 말씀이 귀찮아지고 수면과 음식과 성욕에 빠져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점점 사라져가는 자가 어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Dietrich Bonhoeffer Nachfolge 나를 따르라/본회퍼 지음/손규태.이신건 옮김
수면과 음식과 성욕...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6-18)...
'When you fast, do not look somber as the hypocrites do, for they disfigure
their faces to show men they are fasting.
I tell you the truth,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But when you fast, put oil on your head and wash your face, so that it will not
be obvious to men that you are fasting, but only to your Father, who is unseen;
and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예수는 제자들의 경건한 금식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엄격한 절제 행위는
제자들의 삶의 한 부분이다. 이와 같은 행위의 유일한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명령된 길과 일을 더 자발적으로, 더 기쁘게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섬김을 거부하는 이기적이고 태만한 의지는 훈련을 받게 되며, 육체는 굴복과 형벌 아래
놓이게 된다. 절제 행위를 통해 세상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금욕(abstinence)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시민적 의(justitia civilis)가 "허락하는 한"
육체의 모든 욕망을 허용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배부른 육체는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금욕적 봉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리스도인은 훈련과 금식과 기도(눅 2:37, 4:2, 막 9:29, 고전 7:5)를 통해 더 잘 섬기려고
자신의 육체를 공격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금욕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완전한
공론(an empty theory)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은 무자비하며,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한다. 만약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육체와
벌이는 마음의 끝없는 온갖 투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기도를 게을리 하게 되고 성서의 말씀이 귀찮아지고 수면과 음식과 성욕에 빠져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점점 사라져가는 자가 어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Dietrich Bonhoeffer Nachfolge 나를 따르라/본회퍼 지음/손규태.이신건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