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내관들이 임금 곁으로 다가갔다. 내관은 임금 양쪽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흔들리는 임금의 어깨에 손대지 못했다. 최명길이 말했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
-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
역사의 치욕을 망각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36년의 압제를 자청한 우둔한 민족사!
잊지말자!
그래서...
너무 너무 영광스럽게 부끄러운
'살아남은 자'의 후손은
부산시에서 만든 전쟁평화 투어를 나섰다.
부산지역 국제회의 유치를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부산관광컨벤션뷰로는 부산관광 상품 17개를 만들었다.
이 관광 상품은 부산·경남·전남 등 자치단체가 ‘남해안관광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2009년부터 개발해 왔다.
로드 스토리(8개 상품), 전쟁·평화 투어(5개), 에치 투어(4개) 등
3개 코스 17개 상품으로 구성됐다는 뉴스를 보고
전쟁평화 투어 중 '로스트 벙크(Lost Bunker)' 코스를 보기 위해 가덕도로 향했다.
내가 아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이 뿌리 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다양한 효능의 꿈을 걸겠다.
해안선 산길을 따라 1km지점의 외양포마을에 소재. 진해시 용원선착장에서 대항선착장까지 대항방향 도선(운항시간 1시간 간격)으로 50분.
외양포방향으로 도보로 40분.
하나님은 한 번도 쉽게 '이것이다, 여기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 하고 보여주신 적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나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쉽게 얻은 것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얻은 기쁨은 빨리 사라지고, 힘겹게 얻은 것은 끝끝내 남아 훌륭한 스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일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나는 점점 더 강하게 이끌렸다. 사랑이 없는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나는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도 특정한 시기에 이런 사랑의 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변화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역사의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 우물 안에 갇혀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하면 새 길을 낼 수 없고,
새 길을 내지 못하면 치욕스런 역사의 옛길을 다시 밟게 된다.
산길을 걸어 대항마을로 와서
주변 곳곳을 둘러보아도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긴 어둠속을 한참을 헤매였다...
탄약고 겸 해안 방어를 위해 만든 동굴...
암벽을 수십 미터 길이로,
열 십(十)자 형태로 파 놓았다.
노역했을 당시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이
저열한 분노와 함께 전해졌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 이정하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중에서 -
질곡과 암흑의 36년처럼
어두운 동굴을 기어나오는 일행들...
나라가 망하면
가장 비참해지는 사람들은?
살을 에이듯이 추운 날이다. 옷 없는 병졸들이 움추리고 앉아 떨고 있다. 군량은 바닥났다. 군량은 오지 않았다. (<난중일기> 1594년 1월20일자)
그 무렵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땅위의 지옥을 이루었다.
부자(父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夫婦)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내버렸다(<징비록>).
굶어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 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않아 죽었다(<난중잡록>).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난중잡록>).
- 김훈의《소설 이순신-칼의 노래》중에서 -
나는 평생 주기적으로 '혁명'을 꿈꾸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내게 혁명이란,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험적으로, 혹은 환경이나 습관의 축적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느끼는 일상 속의 나를 통째로 뒤집어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지 않고선 세계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 박범신의《비우니 향기롭다》중에서 -
나라 잃은 민족사,
역사의 아픔은
파도처럼 반복될 지도 모른다.
준비된 방파제를 걸으며...도전과 응전의 한국사를 생각한다.
치욕의 길, 고난의 길, 영광의 길, 번영의 길...
우리 민족의 길은 어느 쪽이 더 길까?
길이 무엇을 바꾸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길은 사력을 다한 싸움의 이야기다. 이윤을 위한, 전쟁 승리를 위한,
발견과 모험을 위한, 생존과 성장을 위한, 혹은 단순히 거주를 위한 분투의 역사를 담고 있다.
- 테드 코노버의《로드》중에서-
절벽을 보며...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더라면'은 소용없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천만 번을 외어도 역사는 그 소리를 듣지 않는다. 문제는 주어진 데 있다. 이미 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이 역사에서 그 속에 숨어 있는 명령을 읽어내어 그대로 하려고 애쓰는 데 있다.
-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중에서 -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먼저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이야기를 통해서 기죽은 아이에게는 용기를 불어넣고, 슬픔에 빠진 아이에게는 꿈을 심어 줄 수 있다. 이래서 이야기는 약도 되고 매도 된다.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가 약이라면 잘못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는 매가 된다. 그저 한바탕 웃고 즐기는 이야기는 군것질거리쯤 되겠지.
[부산여행] 과거의 아픔과 치욕을 더듬는 '전쟁평화 투어', 로스트 벙크
[부산여행] 과거의 아픔과 치욕을 더듬는 '전쟁평화 투어', 로스트 벙크
-잃어버린 치부, 외양포! 한반도 최초의 일본 군사기지를 찾아서!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내관들이 임금 곁으로 다가갔다.
내관은 임금 양쪽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흔들리는 임금의 어깨에 손대지 못했다.
최명길이 말했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
-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
역사의 치욕을 망각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36년의 압제를 자청한 우둔한 민족사!
잊지말자!
그래서...
너무 너무 영광스럽게 부끄러운
'살아남은 자'의 후손은
부산시에서 만든 전쟁평화 투어를 나섰다.
부산지역 국제회의 유치를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부산관광컨벤션뷰로는 부산관광 상품 17개를 만들었다.
이 관광 상품은 부산·경남·전남 등 자치단체가 ‘남해안관광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2009년부터 개발해 왔다.
로드 스토리(8개 상품), 전쟁·평화 투어(5개), 에치 투어(4개) 등
3개 코스 17개 상품으로 구성됐다는 뉴스를 보고
전쟁평화 투어 중 '로스트 벙크(Lost Bunker)' 코스를 보기 위해 가덕도로 향했다.
내가 아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이 뿌리 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다양한 효능의
꿈을 걸겠다.
- 박완서의《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중에서 -
걸으면서 이야기를 듣는 '로드 스토리 투어'에는
▶허황후 신행길 ▶해운대 기차소리길 ▶동래역사 속으로 ▶기장 등대길
▶기장 포구길 ▶영도 남항길 ▶영도 봉래산 둘레길 ▶영도 갈맷길의 8개가 있다.
허황후 신행길은
부산 진해시 용원의 유주암·망산도를 시작으로
흥국사, 김수로왕릉, 허황후릉을 잇는 코스이며 3~4시간 걸린다.
해운대 기차소리길은
해운대 동백섬~해운대 해수욕장~문탠로드~미포~청사포~송정포 코스로 3~4시간 거리다.
과거의 아픔을 상품화한 '전쟁·평화 투어'에는
▶로스트 벙크 ▶6·25 투어(한국전쟁) ▶7년 전쟁(임진왜란 동래읍성, 좌수영성 전투)
▶7년 전쟁(임진왜란 부산진성, 다대포성 전투) ▶근대건축물투어의 5개 코스로 구성됐다.
로스트 벙크는가덕도 외양포마을~막사 터~옛 우물터~포진지~가덕도 등대 코스로, 반나절이 걸린다.
가덕도에는 일본군 사령부 요새가 완벽하게 남아 있다.
도심 속 자연과 만나는 '에치 투어'는
▶강끝 투어 ▶공룡 투어 ▶바다환경체험 투어 ▶농촌체험 투어의 4개 코스다.
각 코스에 이야기꾼을 배치하는 ‘이야기 할배’ 시스템도 도입한다고 한다.
3 관광코스 투어 읽기- http://busancvb.org/event2012/120217.htm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시작되던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해줘야 맛이지 ㅎㅎ
배를 타고 외양포 가는 길...
부산,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보인다^^
가는 길: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대항선착장에서 가덕등대방향으로
해안선 산길을 따라 1km지점의 외양포마을에 소재.
진해시 용원선착장에서 대항선착장까지 대항방향 도선(운항시간 1시간 간격)으로 50분.
외양포방향으로 도보로 40분.
하나님은 한 번도 쉽게 '이것이다,
여기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 하고
보여주신 적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나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쉽게 얻은 것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얻은 기쁨은 빨리 사라지고,
힘겹게 얻은 것은 끝끝내 남아
훌륭한 스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 최호숙의《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중에서 -
외양포 마을에 내리자 일본식 가옥이 보인다...
가덕도 외양포 마을은 전체가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외양포 일본군사령부(外樣浦 日本軍 司令部 , Oeyangpo ilbongunsaryeongbu )
1905년 5월 27일 러일전쟁의 직전인 5월 7일 이곳에다
일본군의 군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여기에 살던 우리 조상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조선반도에 최초로 기지를 설치했던 곳이다.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일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나는 점점 더 강하게 이끌렸다.
사랑이 없는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나는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도 특정한 시기에
이런 사랑의 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변화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 데이비드 호킨스의《의식혁명》중에서 -
지금도 포대자리, 군막사, 자재창고, 대공관측소, 대공서취라이트 설치자리,
발전기설치자리등 엄청난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해안선에는 연합군을 저지하기위해 뿌려놓은 화약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으며
기지설치 연대를 증명하는 것으로 군사령부 발상지의 비가 남아 있다.
군신으로 추앙받는 일본 제독 도고 헤이하찌로가
러시아 박틱함대를 무찌른
거제도 앞 동백섬 지심도에도
일제강점기 때 설치한 포진지, 탄약고 등이 있는데...
튼튼하게 지어져 아직도 그 잔재가 무사한 것을 보니 비분강개!
그림/엄윤영. 꿈으로의 산책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 지심도[글, 사진 참고]- http://blog.joinsmsn.com/good4452/10112960
부산여행 시, 거가대교가 연결되었으니
동백이 툭툭~~ 떨어지는 4월 전후 '동백섬 지심도' 여행도 함께 해 보세요^^
적극 강추!
외양포, 지심도의 포진지, 탄약고, 동굴 진지 등
조선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지은 것이라 생각하니
나라 뺏긴 민족의 설움과 아픔이
백년을 넘어서 가슴과 눈으로 전해져 왔다.
러일전쟁 승전 후,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데
진지 벽의 두께가 1m 정도로 상대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게 되어 있고,
진지 위에는 대나무 숲을 조성하여
항공기로도 진지를 식별하기 어렵도록 위장을 했다.
폐허처럼 방치된 적막한 쓸쓸함이
대잎소리를 스치며
울음소리를 낮게 토해냈다.
사령부를 보고 내러 오는 길...
정지된 시간 속으로의 여행풍경은
당시의 가옥들도 있고,
마을 우물도 일제시대에 만든 그대로 이다.
역사의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
우물 안에 갇혀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하면
새 길을 낼 수 없고,
새 길을 내지 못하면
치욕스런 역사의 옛길을 다시 밟게 된다.
산길을 걸어 대항마을로 와서
주변 곳곳을 둘러보아도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긴 어둠속을 한참을 헤매였다...
탄약고 겸 해안 방어를 위해 만든 동굴...
암벽을 수십 미터 길이로,
열 십(十)자 형태로 파 놓았다.
노역했을 당시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이
저열한 분노와 함께 전해졌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 이정하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중에서 -
질곡과 암흑의 36년처럼
어두운 동굴을 기어나오는 일행들...
나라가 망하면
가장 비참해지는 사람들은?
살을 에이듯이 추운 날이다.
옷 없는 병졸들이 움추리고 앉아 떨고 있다.
군량은 바닥났다. 군량은 오지 않았다.
(<난중일기> 1594년 1월20일자)
그 무렵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땅위의 지옥을 이루었다.
부자(父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夫婦)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내버렸다(<징비록>).
굶어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 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않아 죽었다(<난중잡록>).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난중잡록>).
- 김훈의《소설 이순신-칼의 노래》중에서 -
나는 평생 주기적으로 '혁명'을 꿈꾸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내게 혁명이란,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험적으로, 혹은 환경이나 습관의 축적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느끼는 일상 속의 나를
통째로 뒤집어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지 않고선
세계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 박범신의《비우니 향기롭다》중에서 -
나라 잃은 민족사,
역사의 아픔은
파도처럼 반복될 지도 모른다.
준비된 방파제를 걸으며...도전과 응전의 한국사를 생각한다.
치욕의 길, 고난의 길, 영광의 길, 번영의 길...
우리 민족의 길은 어느 쪽이 더 길까?
길이
무엇을 바꾸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길은 사력을 다한 싸움의 이야기다.
이윤을 위한, 전쟁 승리를 위한,
발견과 모험을 위한, 생존과 성장을 위한,
혹은 단순히 거주를 위한
분투의 역사를 담고 있다.
- 테드 코노버의《로드》중에서-
절벽을 보며...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더라면'은 소용없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천만 번을 외어도
역사는 그 소리를 듣지 않는다.
문제는 주어진 데 있다.
이미 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이 역사에서
그 속에 숨어 있는 명령을 읽어내어
그대로 하려고 애쓰는 데 있다.
-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중에서 -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먼저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이야기를 통해서 기죽은 아이에게는 용기를 불어넣고,
슬픔에 빠진 아이에게는 꿈을 심어 줄 수 있다.
이래서 이야기는 약도 되고 매도 된다.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가 약이라면
잘못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는 매가 된다.
그저 한바탕 웃고 즐기는 이야기는
군것질거리쯤 되겠지.
- 서정오의《옛이야기 들려주기》중에서 -
바쁜 도시의 고단한 삶이지만...주말에,
가족들에게
치욕의 현장을 보여주는 역사기행을 추천합니다!
알아야 보입니데이~
미래의 대한민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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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관광컨벤션뷰로- http://www.busancv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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