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독재자의 최후

방으이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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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사공부는 가끔씩 이런 스릴을 맛보면서 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혹여 하실까 올립니다만...

난 야자하면서 책으로 공부하겠소! 그게 적성에 맞소! 하시는 분은 안보셔도됨.

게다가 이 이야기는 별로 역사에 안나와요. 이거안본다고 9등급맞고 그러진아니함.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어: Nicolae Ceauşescu,1918년 1월 26일 ~ 1989년 12월 25일)는 루마니아의 독재자로, 1965년부터 1989년 총살되기 며칠 전까지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의 국가 원수(1974년부터는 대통령)을 지냈으며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도주를 시도하다가 총살되었다.

 

 

인민에 대한 철저하고 교묘한 감시로 인해 혁명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차우셰스쿠는 티미쇼아라 사태가 외부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며 12월 21일 부쿠레슈티의 대학 광장(현 혁명 광장)에서 그를 지지하는 대회를 계획했다. 그러나 이른바 차우셰스쿠 지지 대회에 모인 군중들이 강력한 독재 정치에 억눌려있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차우셰스쿠에게 야유와 욕설을 보내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었으며, 차우셰스쿠 내외는 결국 중앙위원회 건물로 대피하였다. 광장에서는 군중들이 군경과 충돌, 수백 명이 체포되었다.

 

루마니아 민주화 시위는 루마니아 전역으로 번졌다. 극도의 혼란 속에 시위 이튿날인 12월 22일 정부군이 루마니아 인민들의 민주화시위에 가담하여 구국전선을 결성하였다. 구국전선은 방송국과 수도의 대부분을 장악했으며 차우셰스쿠 친위대인 보안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경찰과 세쿠리타테, 보안군은 시위대에 굴복, 중앙위원회 건물의 보호를 포기했다. 빅토르 스탄쿨레스쿠 당시 국방장관은 차우셰스쿠를 도와주지 말고, 부대에 복귀할 것을 군대에 명령하였다. 하지만 빅토르 스탄쿨레스쿠 국방장관은 군인들의 민주화 시위 가담을 묵인했기 때문에, 군인들이 시위대에 대거 참여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으며 시위대에 가담한 군인 중에는 대령급 이상의 고급장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건물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부쿠레슈티를 탈출하여 성난 군중을 일단 피했는데, 당시 이들 부부는 북한으로 도피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가 타고 있던 헬기의 조종사였던 바실리 마루탄 중령은 차우셰스쿠와 연루되기 싫었기 때문에 대공사격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헬기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헬기에서 내리고, 바실리 마루탄 중령은 원대 복귀했다. 헬기로 도망할 수 없게 된 차우셰스쿠는 차우셰스쿠를 태워주었던 운전사가 엔진이 타버렸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두 번째로 차우셰스쿠를 태워준 운전사는 차우셰스쿠 부부를 농업박물관으로 보냈다. 농업박물관 근처에 살고 있던 농부가 차우셰스쿠가 기거하던 방을 밖에서 걸어잠근 다음, 경찰에 밀고하여 차우셰스쿠 부부는 12월 23일 경찰에 붙잡혔으며 군대에 넘겨졌다.

 

그들은 12월 25일 구국전선의 군사 법정에서 사실상의 인민재판을 통해 반역과 살인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차우셰스쿠의 변호사마저 검사로 돌변하여, "당신 편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지만, 당신이 이 나라에 해 놓은 짓을 보시오. 편을 들어준다고 해결될 문제요?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오.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아무리 당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해도, 당신이 이 나라 루마니아를 멸망으로 몰고간 것을 부인할 수가 없소. 내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담당했지만, 당신같은 최악의 경우는 처음이요. 나도 당신을 포기했소."라고 차우셰스쿠에게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국민들을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고 우겨, 재판장에게도 미움을 크게 샀다.

 

 

 

그리하여 같은 날 17시 30분 트르고비슈테(Târgovişte)에서 총살되었는데, 독재자에 대한 총살형 집행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수십명의 사병들이 서로 자기가 총살형 집행을 하겠다고 나서자 무차별적 발포를 막기 위해 차우셰스쿠의 사형을 집행할 군인을 3명만 선발하기로 했다. 대위 1명, 상사 1명, 하사 1명이 차우셰스쿠 부부를 총살할 사형집행관으로 선발되었다. 그리하여 차우셰스쿠 부부는 무려 160여 발 총탄 세례를 받고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차우셰스쿠 부부의 시신은 함께 묻히는 것도 허락되지 않아서 50m쯤 떨어진 각자의 무덤에 매장되었다.

 

 

 

....네. 그렇습니다. 차우셰스쿠랑 비슷한게 요즘 한참 유명했던 카다피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 부부의 총살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어 (시차때문에 북미쪽은 아침방송...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아침먹으며 보는...음) 쇼크를 한번 더 줬죠.

 

 제가 입수한 영상은 2시간짜리로 총 재판이 그대로 있었습니다만. 7분으로 압축할 만한 내용이기 때문에 압축했습니다.

 

일단은 체포된 직후 재판에 들어간 모습부터 나옵니다. 변호사인지 검사인지... 누군가 발언한 후에 서서히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부부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그 이후 재판에서 총살형을 명령받고 묶여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비명을 지릅니다.

 

 

+주의 : 모자이크는 제가 기술이 딸려서 하지 못합니다. 임산부 노약자 등등... 아시죠?

보지 마세요.

 

 

 

 

 



 

PS: 저는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독일어 다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번역입니다(...)

 

뜻은 얼추 맞으니 아잉하게 봐주세여...

 

 + PS: 사실 차우셰스쿠 반대쪽의 군인들의 대화를 얼추 알아듣긴 했습니다만. 이 재판이 참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거든요... 아직도 루마니아 국민들은 '차우셰스쿠도 싫지만 무턱대고 총살시킨 이 재판도 싫다'

라고 할 정도입니다. 네, 그래서 일부러 넣지 않은 자막이 있습니다.

 

 

 

여튼. 독재자의 말로는 결국 이렇게 루트가 정해져 있나 봅니다...

....음 이게 결론인가?

 

이 판은 마무리가 힘들군요

 

그냥 짤리지나 않았으면 좋겠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