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마침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날이 구정날이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던 슬로바키아 영화 제작팀은 하루 전날 한국에 먼저 도착하였다. 이미 2008년부터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지내온 터라 서로를 잘 이해한 처지였다. 한국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였던 사람들이었다. 마렉, 두산, 마틴 이 세사람이 팀이 되어 아프리카에서부터 서로 합류하곤 하였다. 서로 상대국에 대하여 자연스레 이해도를 넓혀 왔다. 기본적인 한국어, 정치, 문화,음악, 음식등에 대하여 서서히 설명하여왔다. 거부감을 줄이기 위하여 서두름이 없이 서서히 알려주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여 비록 나보다 저들이 먼저 한국땅에 내려서 나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스럽게 이들 영화팀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였고 다음날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982년 대학 진학이후 내내 터를 내렸던 노량진과 상도동 근처로 이들을 안내하여 숙소를 찾았다. 이들 슬로바키아 영화 제작팀에게는 난생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된것이었다. 오랜동안 함께 지내오던 터여서인지 낮설고 문화설은 한국의 환경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는듯 보였다.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언어, 음식, 지형등의 다름으로 어색함을 표출할만도 한데 감정 표현을 좀처럼 하지않으며 적응하여 나갔다. 서울에서의 생활, 충청도를 거쳐서 전라남도까지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하여 스케줄을 맞추어 나갔다. 특히, 남과 북이 60년 넘게 대치하고 있는 판문점 근처 국경지역이 저들에게 주었을 감동은 작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였다. 다큐멘타리 'One man, One bicycle, One dream' 이 다큐멘타리에서 빠질수 없는 장면이라 할 수 있는 DMZ 였다. 마침 임진각과 판문점 사이에서 영화 촬영 첫날은 폭설이 내린 후였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라고 할 수 있었다. 때로는 한밤에서부터 새벽까지 로케에 들어가야 했다.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대여차를 이용하여 장소를 이동하였다. 슬로바키아는 내륙에 둘러쳐진 국가이다. 강과 냇물은 있어도 바다가 없는 국가이다. 그래서인지 바다에서 난 생선류나 조개류를 베이스로 한 한국 음식에는 아주 어색하여했다. 주로 아침에는 커피와 샌드위치로 하였으며 점심에는 롯데리아나 파리바케트를 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저녁에는 주로 한국음식으로 하면서 한국음식에 친숙하여져갔다. 된장찌개나 두부찌개도 저들이 좋아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슬라브의 자손답게 주로 소고기를 선호하였다. 돼지고기도 먹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들 세명이 식성과 기호가 서로 달랐다. 한명은 건강식 위주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다른 한명은 무엇이든 잘먹고 술과 담배를 곧잘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인 카메라 맨은 위 두명의 성격을 모두 반반씩 닮은둣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이들 모두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이었다. 아침 일찍형인 나로서는 약간 불편한 면도 있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선배와 지인들이 돌아가면서 초대하여 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을 선사하여 주었다. 넘칠듯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주류로 이들 이방인의 마음을 위로하여주었다. 아마도 이들 슬로바키아인들의 마음에는 쉽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약간 아쉬웠던 점은 이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머물렀던 모텔과 인근 상가에서 영어로 이들을 맞이하여주는 한국인이 아주 드물었다는 것이다. 내가 없을때면 이들끼리 스스로 식당과 마켓을 들르고 커피나 음료도 마셔야했다. 손짓과 몸짓이 거의 60퍼센트 섞인 의사소통이었다. 표정이 밝은 이들 슬로바키아인들과 대조적으로 이들을 대하였던 많은 한국인들의 표정이 무표정에 가까왔었다. 식당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아도 주변의 한국인들은 저내들끼리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처음 대하는 외국인이나 한국인들일지라고 밝은 눈빛정도 건네 주는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데.... 친절한 표정만이라도 아니면 약간의 손짓만이라도.... 한국인들의 이토록 높은 장벽에 외국인들은 얼마나 많은 고독감을 느꼈을까? 개인간의 사회간의 국가간의 오픈성내지 개방성은 타 문화에 대한 수용력이라 할 수 있다. 첫인상은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법이다. 한국인들에게 친구로 다가가려 하였던 저들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이들은 한국을 떠나간지 오래이다. 각자 자기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겪었던 체험담과 느낌들을 풀어놓고 있을 것이다. 모쪼록 짧고도 짧지않았던 한국방문동안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슬로바키아 영화제작자들과 20여일
마침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날이 구정날이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던 슬로바키아 영화 제작팀은 하루 전날 한국에 먼저 도착하였다.
이미 2008년부터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지내온 터라 서로를 잘 이해한 처지였다.
한국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였던 사람들이었다.
마렉, 두산, 마틴 이 세사람이 팀이 되어 아프리카에서부터 서로 합류하곤 하였다.
서로 상대국에 대하여 자연스레 이해도를 넓혀 왔다.
기본적인 한국어, 정치, 문화,음악, 음식등에 대하여 서서히 설명하여왔다.
거부감을 줄이기 위하여 서두름이 없이 서서히 알려주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여 비록 나보다 저들이 먼저 한국땅에 내려서 나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스럽게 이들 영화팀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였고 다음날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982년 대학 진학이후 내내 터를 내렸던 노량진과 상도동 근처로 이들을 안내하여 숙소를 찾았다.
이들 슬로바키아 영화 제작팀에게는 난생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된것이었다.
오랜동안 함께 지내오던 터여서인지 낮설고 문화설은 한국의 환경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는듯 보였다.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언어, 음식, 지형등의 다름으로 어색함을 표출할만도 한데 감정 표현을 좀처럼 하지않으며 적응하여 나갔다.
서울에서의 생활, 충청도를 거쳐서 전라남도까지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하여 스케줄을 맞추어 나갔다.
특히, 남과 북이 60년 넘게 대치하고 있는 판문점 근처 국경지역이 저들에게 주었을 감동은 작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였다.
다큐멘타리 'One man, One bicycle, One dream'
이 다큐멘타리에서 빠질수 없는 장면이라 할 수 있는 DMZ 였다.
마침 임진각과 판문점 사이에서 영화 촬영 첫날은 폭설이 내린 후였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라고 할 수 있었다.
때로는 한밤에서부터 새벽까지 로케에 들어가야 했다.
렌트카를 이용하거나 대여차를 이용하여 장소를 이동하였다.
슬로바키아는 내륙에 둘러쳐진 국가이다.
강과 냇물은 있어도 바다가 없는 국가이다.
그래서인지 바다에서 난 생선류나 조개류를 베이스로 한 한국 음식에는 아주 어색하여했다.
주로 아침에는 커피와 샌드위치로 하였으며 점심에는 롯데리아나 파리바케트를 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저녁에는 주로 한국음식으로 하면서 한국음식에 친숙하여져갔다.
된장찌개나 두부찌개도 저들이 좋아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슬라브의 자손답게 주로 소고기를 선호하였다.
돼지고기도 먹기는 하였으나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들 세명이 식성과 기호가 서로 달랐다.
한명은 건강식 위주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다른 한명은 무엇이든 잘먹고 술과 담배를 곧잘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인 카메라 맨은 위 두명의 성격을 모두 반반씩 닮은둣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이들 모두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이었다.
아침 일찍형인 나로서는 약간 불편한 면도 있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선배와 지인들이 돌아가면서 초대하여 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을 선사하여 주었다.
넘칠듯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주류로 이들 이방인의 마음을 위로하여주었다.
아마도 이들 슬로바키아인들의 마음에는 쉽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약간 아쉬웠던 점은 이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머물렀던 모텔과 인근 상가에서 영어로 이들을 맞이하여주는 한국인이 아주 드물었다는 것이다.
내가 없을때면 이들끼리 스스로 식당과 마켓을 들르고 커피나 음료도 마셔야했다.
손짓과 몸짓이 거의 60퍼센트 섞인 의사소통이었다.
표정이 밝은 이들 슬로바키아인들과 대조적으로 이들을 대하였던 많은 한국인들의 표정이 무표정에 가까왔었다.
식당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아도 주변의 한국인들은 저내들끼리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처음 대하는 외국인이나 한국인들일지라고 밝은 눈빛정도 건네 주는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데....
친절한 표정만이라도 아니면 약간의 손짓만이라도....
한국인들의 이토록 높은 장벽에 외국인들은 얼마나 많은 고독감을 느꼈을까?
개인간의 사회간의 국가간의 오픈성내지 개방성은 타 문화에 대한 수용력이라 할 수 있다.
첫인상은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법이다.
한국인들에게 친구로 다가가려 하였던 저들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이들은 한국을 떠나간지 오래이다.
각자 자기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겪었던 체험담과 느낌들을 풀어놓고 있을 것이다.
모쪼록 짧고도 짧지않았던 한국방문동안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