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남성입니다. 나이는 20대 중반이고 얼마전 다니던 기업도 때려치우고 백수생활중입니다. 지금은 제 옆에 없지만 너무 사랑하는 제 아내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혹 이 글을 그녀가 본다면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녀를 처음본건 제가 고 2 겨울이었습니다. 어렸을적 너무 불안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조금 바보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이많은 저희 아버지랑 결혼해 바보처럼 살다 결국 이혼당하고 떠돌다가 추운 겨울 객사하셨던 분입니다. 모든걸 이겨내기 너무 힘들어서 학창시절 많이 방황했습니다. 새어머니도 싫었고 당연한듯 환경에 다시 적응해서 살아가는 친형도 싫었고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기를 2년, 말썽을 피우며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학교 재학중 ,,, 저의 반에 한 여자애가 전학왔습니다. 서울에서 온 여자애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뽀얗고 동글동글 하니 귀여워서 남자애들이 벌떼처럼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작은 여자아이가 지금 제 부인되는 사람입니다. 죽은 우리엄마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너무 닮은 그 여자아이에게 저는 한 눈에 반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여자를 꼬시리라, 내 부인으로 만들자!' ;;; 무식하고 별 볼일없는 저였지만 겉멋이 들어서 철없는 기지배들이 그땐 꽤 따랐던것같습니다. 정말 계속 쫓아다닌 끝에 그녀와 사귀게되었습니다. 그녀도 집안에 문제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부모님 두 분다 안계시고 삼촌네 집 밑에서 크다가 얼마전에 독립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더 지켜주고 싶고 너무 사랑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그녀에게 추근덕되었고 그녀는 써클에서 나오지 않으면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해 써클에서 개되듯 맞고 빠져나왔습니다. 그 당시에는,,정말 죽고싶었지만 저를 살린 건 역시 그녀입니다. 저를 사람만들었어요. 괴롭힘에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결국 자퇴를 하고,, 그녀에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녀랑 검정고시 학원도 같이 다니고 매일 밥도 같이 먹고, 선영이 우리 선영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정말 생각하면 그 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네요,., 그러길 1년, 아내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나는 책임지겠다고 너무 고맙다고 결혼하자고 말했지만 그녀는 망설였습니다. 저는 정말 싫어하던 증오하던 아버지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자존심 상했지만 사랑하는 우리 마누라를 위해선 기술도 없고 능력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으니깐요. 아내는 배가 불러오고 그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해가 생겼습니다. 정말 아닌데, 정말정말로 아닌데 고등학교 때 몸을 뒤 섞으며 돈을 벌던 어떤 신발년이 돈을 목적으로 수작을 걸었습니다. 아주 모르던 기지배였는데, 알고보니 술집에서 일하다가 돈이 궁했나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알던 남자들에게 이런식으로 연락해서 돈 뜯는 모양이었습니다 제 아내에게 니 남편 애를 가졌다고,, 배부른 제 아내 관리해줘야 하는 시기였는데,,, 제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줬습니다. 상황은 극도로 향했고 결국 아내는 저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정말 나 다 걸고 아니라고 울면서 아니라고 발광을 해도 듣질 않았습니다. 정말 죽고싶어서 칼가져다가 안믿으면 죽겠다고 한 적도 많지만 피를 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누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를 다녀왔는데 집안은 다 헤집어져 있고 만삭이 된 아내는 사라졌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를 갔나 된장찌개만 끓여놓고 어디를 갔나 아니라고 아니라고 마음을 다 잡아도 옷장에 이미 아끼던 옷들은 없었습니다. 차를 몰고 이동네 저동네 다 돌아다니고 아내 친지들과 친구들에게도 다 연락을 돌려도 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러고 일주일, 한 달 실종신고를 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미니홈피에 하루에 한 개씩 일기도 썼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모진년 정말 모진년 회사도 못나가고 저는 거의 폐인으로 일년을 지냈습니다. 어떻게 일 년 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을 수 있나 그래도 내가 자기 남편인데,, 예정된 출산일날 한강에 가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너무 불안해서, 애기 낳을 때 내가 있어줘야하는데 너무 불안해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1년 후,,, 저는 회사에서 일만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녘을 라면으로 떼우고 언젠가 이렇게 있다보면 만나겠지 반드시 돌아오겠지 그렇게 그녀가 떠난지 3년하고도 2 개월,, 어느날 동창 놈한테 연락이왔습니다. "야, 너 임마, 그렇게 사랑한다고 할 땐 언제고 니 마누라 식당일 시키냐?" 제 부인을 전라도쪽 한 갈비집에서 봤다는 겁니다. 당장 달려갔습니다. 손님도 잘 없는 고속도로 옆 식당,,, 돌길로 한 어린 남자애가 걸어나오는 겁니다. 넘어질듯,, 저를 닮아있었습니다....정말 눈물이 나온다. 그때 생각하니까 한 어린 여자애가 뚝배기를 들고 나오는 겁니다. 죽자, 그래 죽자 와락 눈물이 쏟아져서 그녀를 붙잡고 울었어요 나쁜년이라고 니가 사람이냐고 그 고운 손이 식당일로 다 갈라져서 정말로 죽고싶었습니다. 생활은 식당 2층에서 전기장판을 떼고 아이랑 잔다고했습니다. 그런 식당이면 추근덕되는 할아버지 손님도 많을텐데 그 수모를 다 겪고 살았을 우리 마누라의 모습이 그려지니 정말 그 식당안에 식기를 다 때려서 부수고싶어습니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왜 나를 못믿냐고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차에 태우려고 하니 주저앉더군요 식당 아줌마들도 와서 말리고 어린 제 아들은 제가 아빠인줄도 모르고 엄마 때리는 줄 알고 울어대고요. 집에 안온대요. 집에 안온대요.... 모든건 오해인데,,, 그날 밤 식당 2층에서 그녀와 함께 잤습니다. 전기장판 켰는데도 춥더군요 그런 환경에서 혼자 애낳고 키우고 젖먹이고 했을 생각을 하니까 정말 눈물이나와서 정말 내가 나쁜놈인거 같아서 그자리에서 할복해서 죽고싶었습니다. 자꾸 아이를 뺏어가려는줄 알고 아이만 껴안고 돌고 나도 아빤데 하루도 널 잊은적이 없다고 사랑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서울로 못돌아갑니다. 절때 못돌아갑니다. 요즘 그 근처에서 모텔잡고 매일 그녀를 보러갑니다. 또 혹시 도망갈까봐,,,너무 무서워서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제가 남편이라고 말해놓았습니다. 식당아주머니들도 하나같이 민수엄마 왜 고생하냐고 남편따라가라고 안달하는데, 이 고집쎈 마누라가 안따라옵니다. 속이터져죽겠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매일 고기 굽는 모습, 고생하는 모습 보는데 정말 마음이 찢어집니다. 어떻게해야 할까요 어떻게해야 모든 오해가 풀릴까요 원래 여자들은 한 번 마음의 문을 닫으면 이런가요,, 목포 근처 모텔에서 글 쓰고 있습니다. 제발 제 마누라가 마음을 돌리고 우리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361
도망간 마누라를 찾았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남성입니다.
나이는 20대 중반이고 얼마전 다니던 기업도 때려치우고 백수생활중입니다.
지금은 제 옆에 없지만 너무 사랑하는 제 아내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혹 이 글을 그녀가 본다면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녀를 처음본건 제가 고 2 겨울이었습니다.
어렸을적 너무 불안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조금 바보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나이많은 저희 아버지랑 결혼해 바보처럼 살다 결국 이혼당하고 떠돌다가 추운 겨울 객사하셨던 분입니다.
모든걸 이겨내기 너무 힘들어서 학창시절 많이 방황했습니다.
새어머니도 싫었고 당연한듯 환경에 다시 적응해서 살아가는 친형도 싫었고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기를 2년, 말썽을 피우며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학교 재학중 ,,,
저의 반에 한 여자애가 전학왔습니다. 서울에서 온 여자애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뽀얗고 동글동글 하니 귀여워서 남자애들이 벌떼처럼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작은 여자아이가 지금 제 부인되는 사람입니다.
죽은 우리엄마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너무 닮은 그 여자아이에게 저는 한 눈에 반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여자를 꼬시리라, 내 부인으로 만들자!'
;;; 무식하고 별 볼일없는 저였지만 겉멋이 들어서 철없는 기지배들이 그땐 꽤 따랐던것같습니다.
정말 계속 쫓아다닌 끝에 그녀와 사귀게되었습니다.
그녀도 집안에 문제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부모님 두 분다 안계시고
삼촌네 집 밑에서 크다가 얼마전에 독립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더 지켜주고 싶고 너무 사랑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그녀에게 추근덕되었고 그녀는 써클에서 나오지 않으면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해 써클에서 개되듯 맞고 빠져나왔습니다.
그 당시에는,,정말 죽고싶었지만 저를 살린 건 역시 그녀입니다. 저를 사람만들었어요.
괴롭힘에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결국 자퇴를 하고,, 그녀에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녀랑 검정고시 학원도 같이 다니고 매일 밥도 같이 먹고,
선영이
우리 선영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정말 생각하면 그 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네요,.,
그러길 1년,
아내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나는 책임지겠다고
너무 고맙다고
결혼하자고 말했지만 그녀는 망설였습니다.
저는 정말 싫어하던 증오하던 아버지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자존심 상했지만 사랑하는 우리 마누라를 위해선 기술도 없고 능력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으니깐요.
아내는 배가 불러오고 그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해가 생겼습니다.
정말 아닌데, 정말정말로 아닌데
고등학교 때 몸을 뒤 섞으며 돈을 벌던 어떤 신발년이 돈을 목적으로 수작을 걸었습니다.
아주 모르던 기지배였는데, 알고보니 술집에서 일하다가 돈이 궁했나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알던 남자들에게 이런식으로 연락해서 돈 뜯는 모양이었습니다
제 아내에게 니 남편 애를 가졌다고,, 배부른 제 아내 관리해줘야 하는 시기였는데,,,
제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줬습니다.
상황은 극도로 향했고
결국 아내는 저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정말 나 다 걸고 아니라고 울면서 아니라고 발광을 해도 듣질 않았습니다.
정말 죽고싶어서 칼가져다가 안믿으면 죽겠다고 한 적도 많지만
피를 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누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를 다녀왔는데 집안은 다 헤집어져 있고 만삭이 된 아내는 사라졌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를 갔나
된장찌개만 끓여놓고 어디를 갔나
아니라고 아니라고 마음을 다 잡아도 옷장에 이미 아끼던 옷들은 없었습니다.
차를 몰고 이동네 저동네 다 돌아다니고
아내 친지들과 친구들에게도 다 연락을 돌려도 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러고 일주일,
한 달
실종신고를 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미니홈피에 하루에 한 개씩 일기도 썼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모진년 정말 모진년
회사도 못나가고 저는 거의 폐인으로 일년을 지냈습니다.
어떻게 일 년 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을 수 있나
그래도 내가 자기 남편인데,,
예정된 출산일날 한강에 가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너무 불안해서, 애기 낳을 때 내가 있어줘야하는데 너무 불안해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1년 후,,,
저는 회사에서 일만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녘을 라면으로 떼우고 언젠가 이렇게 있다보면 만나겠지
반드시 돌아오겠지
그렇게 그녀가 떠난지 3년하고도 2 개월,,
어느날 동창 놈한테 연락이왔습니다.
"야, 너 임마, 그렇게 사랑한다고 할 땐 언제고 니 마누라 식당일 시키냐?"
제 부인을 전라도쪽 한 갈비집에서 봤다는 겁니다.
당장 달려갔습니다.
손님도 잘 없는 고속도로 옆 식당,,,
돌길로 한 어린 남자애가 걸어나오는 겁니다. 넘어질듯,,
저를 닮아있었습니다....정말 눈물이 나온다. 그때 생각하니까
한 어린 여자애가 뚝배기를 들고 나오는 겁니다.
죽자, 그래 죽자
와락 눈물이 쏟아져서 그녀를 붙잡고 울었어요
나쁜년이라고
니가 사람이냐고
그 고운 손이 식당일로 다 갈라져서
정말로 죽고싶었습니다.
생활은 식당 2층에서 전기장판을 떼고 아이랑 잔다고했습니다.
그런 식당이면 추근덕되는 할아버지 손님도 많을텐데
그 수모를 다 겪고 살았을 우리 마누라의 모습이 그려지니 정말 그 식당안에 식기를 다 때려서 부수고싶어습니다. 억울해
너무 억울해
왜 나를 못믿냐고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차에 태우려고 하니 주저앉더군요
식당 아줌마들도 와서 말리고
어린 제 아들은 제가 아빠인줄도 모르고 엄마 때리는 줄 알고 울어대고요.
집에 안온대요.
집에 안온대요....
모든건 오해인데,,,
그날 밤 식당 2층에서 그녀와 함께 잤습니다.
전기장판 켰는데도 춥더군요
그런 환경에서 혼자 애낳고 키우고 젖먹이고 했을 생각을 하니까 정말 눈물이나와서
정말 내가 나쁜놈인거 같아서
그자리에서 할복해서 죽고싶었습니다.
자꾸 아이를 뺏어가려는줄 알고 아이만 껴안고 돌고
나도 아빤데
하루도 널 잊은적이 없다고
사랑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서울로 못돌아갑니다.
절때 못돌아갑니다.
요즘 그 근처에서 모텔잡고 매일 그녀를 보러갑니다.
또 혹시 도망갈까봐,,,너무 무서워서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제가 남편이라고 말해놓았습니다.
식당아주머니들도 하나같이 민수엄마 왜 고생하냐고 남편따라가라고 안달하는데, 이 고집쎈 마누라가 안따라옵니다.
속이터져죽겠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매일 고기 굽는 모습, 고생하는 모습 보는데 정말 마음이 찢어집니다.
어떻게해야 할까요
어떻게해야 모든 오해가 풀릴까요
원래 여자들은 한 번 마음의 문을 닫으면 이런가요,,
목포 근처 모텔에서 글 쓰고 있습니다.
제발 제 마누라가 마음을 돌리고
우리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