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말씀들

에르하벤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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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장 34~39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장 51장~53절]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태복음 1장 29절]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태복음 10장 21절]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을 말하면서, 부모도 형제도 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 배를 상속받고 또 영생을 상속받기 위해서 모든 예수의 추종자들은 부모 형제도 재산도 모두 버려야 한다. 예수는 뻔뻔하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한 예는 또 있다. "부친의 죽음에 대하여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여 주소서"라고 제자가 간청하자,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누가복음 9장 59~60절]라고 예수는 대답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사이비교주가 신도들에게 집도, 가족도 버리고,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예수는 자기 스스로 분쟁을 일으키고 검을 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예수는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열두 제자를 사방에 보내면서 말한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장 5∼6절]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에서 등장하는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리켜, 타락한 사람 혹은 비 기독교인들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 교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타락한 사람 또는 비 기독교인들은 전도의 대상이지 회피대상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은유적인 표현이라면 이방인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충분한데 어째서 사마리아인까지 집어 넣었을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극도로 혐오 했다.

 

비슷한 또 다른 구절이 있다. 한 가나안-팔레스타인 여자가(그와 동일한 이야기가 마가복음에도 나와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 즉 오늘말로 하면 '시리아-페니키아 여인'이라고 등장한다)자기 딸에 씨인 마귀를 쫓아달라고 하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태복음 15장 24절]

 

고 예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의 발목을 붙잡고 애원을 한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한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5:26]

 

예수는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은 팔레스타인 여자에게 "개"라는 용어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여인이 계속해서 애원하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태복음15장 28절]

 

라고 대답하며 그 여자의 딸을 고쳐주기는 하지만, 이방인을 차별하며 개라는 용어도 서슴지 않는 예수의 행동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론 예수는 승천구라를 치기전에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한다.그런데 문제는 11 제자들은 땅 끝까지 선교 하러 나가는 대신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다고 한다. 남겨진 제자들은 "땅 끝까지 전 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전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이 행동 하는데,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 장을 보면 베드로는 처음으로 이방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거부감을 표시한다. 완강히 거절 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따리 환상을 통해서야 베드로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도행전 11 장에서는 사도들과 신도들이 베도로의 전도행각을 전해 듣고는 "왜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대접까지 받았느냐?" 며 베드로의 이방 선교를 비난 한다.

 

 

복음서들을 읽다 보면 예수가 남긴 말들은 상당부분 헬라철학에 기인한 듯하다. 문제는 복음서 안에서 예수와 예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예수는 자신이 한말도 실천하지 못하고 떠벌리고 다닌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뺨 맞은 예수의 반항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을 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마태복음 5장 39~40절]

 

예수는 이와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재미있는 점은 예수가 정말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을 때, 예수가 대답하는 말이 좀 공손치 못했던지 그의 옆에 있던 경비병 한 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

 

라고 말하며 그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예수는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요한복음 18장 22~23절]

 

라고 대답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는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 뺨마저 돌려대라고 가르쳤지만, 자신은 뺨을 맞자 즉시 항의했던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뛰어넘어서, 예수가 남긴 말이 서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장 15~17절]

 

위에서 남긴 예수의 가르침은

 "일곱 번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 찌니라"[마태복음 18장 22절] 라는 유명한 예수의 용서의 가르침과 바로 대치된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9장 40절] 라는 예수의 말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태복음 12장 30절] 말과 서로 상치되고 있다.

 

 

예수의 언행 중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독단과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마가복음 9장 42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3절]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5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7절]

문제는 이 구절들이 KJV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그외에도 개역한글판.NIV에는 없음으로 표시되어있다는 것이다.조작의 흔적이 역력하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세계 4대성인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예수의 언행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장 41~42절][마태복음 13장 5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장 30절]

 

예수는 사랑과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나는 인물 같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복음 11장 12~14절]

 

무화과가 열릴 철도 아닌데 예수는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내려 나무를 죽여 버렸다. 도대체 예수는 언행과 행동들은 배타와 독선으로 철철 넘쳐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는 그 시대에 심판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장1절]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장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복음 9장 27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2~33절]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6절]

 

예수는 공공연히 추종자들이 죽기 전, 그 세대에 심판의 날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마치 1992년 종말론을 내세우다 부도난 사이비 교주의 언행을 보는 것 같다.

 

아아,정말 방언이 터질만한 은사입니다.안그렇습니까?우리 신실한 성도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