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위원 '盧정권은 부산 정권인데…' 부산에 섭섭해했던 文고문 盧 전 대통령 6번 좌절했던 부산 선거에 7번째 도전장 2012년 대한민국 대선은 10년 전 대선의 續篇 되는가
김창균 논설위원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얼마 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총선지원을 요청했다. "PK(부산·경남)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문 고문은 부산에서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도 "이 지역에서 서울대 조국·안철수 교수 같은 분이 (총선에)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PK 출신인 안 원장, 조 교수 같은 사람들이 야당 공천으로 출마해 힘을 보태달라는 얘기였다.
10년 전 이맘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얘기를 다시 듣는 느낌이다. '부산의 정치 지형'은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표현이다. 필자는 당시 노무현 캠프 담당 기자였는데 노 후보는 "부산 표밭을 갈아엎고 싶다"는 희망을 자주 얘기하곤 했다.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민주당의 총선 후보들이 부산에서 당선되거나, 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산에서 표를 많이 받는 시대를 열고 싶다는 뜻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그 자체로 한국 정치의 변혁을 뜻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12월 19일, 대선 투표함이 열리고 부산과 광주에서 동시에 '이겼다'라는 만세 소리가 터져 나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면 그런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말했던 '신(新)민주 연합론' 역시 부산의 정치 지형을 바꾸기 위한 이론적 토대였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PK세력과 김대중 대통령의 호남세력이 다시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로 성장한 자신이 그 가교 역할을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말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자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영남에서 전패(全敗)하면 후보직에 대한 재신임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부산의 시장 선거 결과에 승부를 걸겠다는 도박이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켜 주지 않으면 부산 출신으로 어렵게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내가 후보직을 잃게 된다"고 협박성 호소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해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44% 포인트 차로 크게 졌다.
부산이 없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탄생할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원동력은 그가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끊임없이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 덕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도 그가 부산·경남에서 호남 텃밭 정당 후보로선 상대적으로 많은 득표를 했던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 부산에서 "이겼다"는 합창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또 부산시민 투표만으로 당선이 가려지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연전연패(連戰連敗)를 거듭했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은 YS의 3당 합당에 합류를 거부한 뒤 1992년 총선과 2000년 총선, 1995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모두 졌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혹은 대통령으로서 치른 2002년과 2006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큰 표차로 졌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선 '탄핵(彈劾) 순풍'을 타고 치른 2004년 총선에서조차 부산의 18군데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은 단 한 곳을 건졌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 선거에 여섯 차례 승부를 걸어 모두 실패했다. '지역정서 뛰어넘기'를 자신의 정치적 상표로 삼아온 노 전 대통령으로선 좌절감을 느낄 만도 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재인 고문은 부산 시민들에게 대신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2005년 5월 문 고문은 부산지역 언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부산출신인데 왜 부산 시민들은 현 정권을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여 주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만 부산을 엄청 짝사랑한다"고도 했다.
문 고문은 "부산의 정치지형을 바꾸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훈(遺訓)에 따라 이번 4월 총선 때 부산에 출마한다. 노 전 대통령이 6번 쓰러진 곳에서, 문 고문이 대신 7번째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문 고문이 부산에서 자신을 포함해 민주당 후보를 몇 명이나 당선시키느냐에 따라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경쟁력도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질문이 '2012년 대한민국 대선은 10년 전 대선의 속편(續篇)으로 치러지는 것이냐'이다.
노무현의 6전, 문재인의 7기
노무현의 6전, 문재인의 7기
김창균 논설위원
'盧정권은 부산 정권인데…' 부산에 섭섭해했던 文고문
盧 전 대통령 6번 좌절했던 부산 선거에 7번째 도전장
2012년 대한민국 대선은 10년 전 대선의 續篇 되는가
김창균 논설위원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얼마 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총선지원을 요청했다. "PK(부산·경남)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문 고문은 부산에서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도 "이 지역에서 서울대 조국·안철수 교수 같은 분이 (총선에)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PK 출신인 안 원장, 조 교수 같은 사람들이 야당 공천으로 출마해 힘을 보태달라는 얘기였다.
10년 전 이맘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얘기를 다시 듣는 느낌이다. '부산의 정치 지형'은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표현이다. 필자는 당시 노무현 캠프 담당 기자였는데 노 후보는 "부산 표밭을 갈아엎고 싶다"는 희망을 자주 얘기하곤 했다.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민주당의 총선 후보들이 부산에서 당선되거나, 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산에서 표를 많이 받는 시대를 열고 싶다는 뜻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그 자체로 한국 정치의 변혁을 뜻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12월 19일, 대선 투표함이 열리고 부산과 광주에서 동시에 '이겼다'라는 만세 소리가 터져 나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면 그런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말했던 '신(新)민주 연합론' 역시 부산의 정치 지형을 바꾸기 위한 이론적 토대였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PK세력과 김대중 대통령의 호남세력이 다시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로 성장한 자신이 그 가교 역할을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말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자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영남에서 전패(全敗)하면 후보직에 대한 재신임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부산의 시장 선거 결과에 승부를 걸겠다는 도박이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켜 주지 않으면 부산 출신으로 어렵게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내가 후보직을 잃게 된다"고 협박성 호소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해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44% 포인트 차로 크게 졌다.
부산이 없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탄생할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원동력은 그가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끊임없이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 덕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도 그가 부산·경남에서 호남 텃밭 정당 후보로선 상대적으로 많은 득표를 했던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 부산에서 "이겼다"는 합창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또 부산시민 투표만으로 당선이 가려지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연전연패(連戰連敗)를 거듭했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은 YS의 3당 합당에 합류를 거부한 뒤 1992년 총선과 2000년 총선, 1995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해 모두 졌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혹은 대통령으로서 치른 2002년과 2006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큰 표차로 졌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선 '탄핵(彈劾) 순풍'을 타고 치른 2004년 총선에서조차 부산의 18군데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은 단 한 곳을 건졌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 선거에 여섯 차례 승부를 걸어 모두 실패했다. '지역정서 뛰어넘기'를 자신의 정치적 상표로 삼아온 노 전 대통령으로선 좌절감을 느낄 만도 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재인 고문은 부산 시민들에게 대신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2005년 5월 문 고문은 부산지역 언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부산출신인데 왜 부산 시민들은 현 정권을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여 주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만 부산을 엄청 짝사랑한다"고도 했다.
문 고문은 "부산의 정치지형을 바꾸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훈(遺訓)에 따라 이번 4월 총선 때 부산에 출마한다. 노 전 대통령이 6번 쓰러진 곳에서, 문 고문이 대신 7번째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문 고문이 부산에서 자신을 포함해 민주당 후보를 몇 명이나 당선시키느냐에 따라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경쟁력도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질문이 '2012년 대한민국 대선은 10년 전 대선의 속편(續篇)으로 치러지는 것이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