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눈팅만 하다가 지난 10년의 기억들 홀가분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글이 좀 길어질 것 같네요. ^^;; 저는 올해로 32살입니다. 네, 제목에 써놓은 것 처럼 딱 10년 전 내일이 결혼했던 날이네요. 학교 선배였습니다. 학회에서 만난 복학생 선배였는데, 리더십있게 학회를 끌어가는 그 모습에 홀딱 반했었어요. 제가 워낙 좋아했었고, 그 선배도 저를 후배로 귀여워해주다 보니 6개월 정도 후에는 사귀게 되었어요. 저희 집 형편이 넉넉치 않아 고시원에서도 살았었고, 옥탑방에서도 살고 정말 힘들게 살았었어요. 근데 서울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편하게 사는 그 선배의 환경이 좋았고, 그 집 부엌에서 요리해서 같이 맛있게 먹고 알콩달콩.. 정말 그 땐 너무너무 행복했었어요. 제가 워낙 힘들게 살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외로워하니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둘 다 학생이었고,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함께 있고 싶었어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부모님 물론 처음에 너무 어리다며 반대하셨지만, 그래도 서울에 혼자 있는 외동딸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니 결국엔 승낙해주셨어요. 부산에 있는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에도, 정말 이쁘다, 이쁘다 하시며 며느리로 받아주셨고요. 하지만, 그 사람과 시댁이 어떤 사람들이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정말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쿨한 시댁이라며 자랑하셨었지만 알콜중독이었던 시아버지, 아들밖에 모르는 시어머니, 알고보니 이혼했었던 아주버님.. 그래도 그 사람이 잘 해주었었다면, 시댁이야 큰 문제는 없었어요. 어차피 먼 지방에 계셨으니까요. 크게 힘들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죠. 결혼하고, 1개월 후에 대학을 졸업 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4학년 1학기 때 인턴을 했었던 회사에서 정직원 채용 의사를 물어보셔서 바로 취업을 했어요.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바로 취업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취업을 하지 않았어요. 마음에 드는 회사에 갈때까지 그냥 쉬겠다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다니는 회사를 무시하기까지 했습니다. 간간이 알바를 하긴 했는데 그 알바비는 친구들과 놀고, 게임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신입이라 그 당시 연봉으로 1500만원 정도 겨우 받는 걸로, 저와 그 사람 둘이 생활을 했습니다. 쪼개고 살면서도 그냥 그 땐 그래도 참고 행복하게 지냈죠. 그러다 일이 터졌죠. 이혼하고 다시 공부하겠다며 재입시를 준비하던 아주버님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을 한거예요. 그 때부터 저보다 6살이 많았던 아주버님까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주버님이 함께 사시는데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았습니다. 시댁도, 그 사람도요. 결국 제가 버는 그 적은 돈으로 덩치 큰 남자 둘을 먹여살린거죠. 시댁에서는 요새 형편이 어렵다며 미안해하긴 하셨으나.. 아들이 일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은 아무 일이나 막 할 인물이 아니다.. 그러니, 너가 뒷바라지를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니 아주버님도 힘든 공부 다시 시작했으니, 엄한 데 신경쓰게 하지 말고 뒷바라지 잘 해라. 등등; 정말 힘들었습니다. 업무 특성상 외부 업체들을 많이 만나야하는데 제가 돈을 버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구두 한 켤레도 없고, 정장 한 벌이 없는 제가 정말 너무 속상했습니다. 도시락 싸서 다니고, 야근이 많은 일이었는데 지하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야하는데도 그 돈 아낀다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집에 오고.. 그렇게 살았었네요. 취업을 좀 하라고, 아니면 알바라도 해서 관리비 내는 거라도 좀 보태라고 잘 달래보아도 폭언만 쏟아졌습니다. 어쩌다 아주버님이 보아도 욕하는 동생 말리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방에 있더라고요. 그렇게 1년을 정말 아끼고 아끼며 살다 보너스가 나온 걸 금액을 좀 속이고, 큰 맘 먹고 백화점에서 정말 기본 검은색 하이힐을 하나 샀습니다. 손 벌벌 떨며 할인해서 10만원 짜리로요. 1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아끼며 살았으니, 저에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동안 신던 구두가 너무 엉망이 되어 외부 업체들을 만나러 가면 늘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그걸 신발장 구석에 숨겨놓고 몰래 신고 나갔었거든요. 뭐 밤새 게임하고 오후 2~3시에나 일어나는 사람이고, 퇴근하고 오면 친구들이랑 논다고 집에도 없던 사람이랑 몰래몰래 잘 신고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걸 들키게 된거죠. 그 사람 그걸 보고 미친듯이 화를 내더라고요. 미친 거 아니냐, 10만원 짜리 구두를 사다니 너가 정말 돌았구나, 정신상태가 썩었다 등등 그래서 같이 화를 미친듯이 냈습니다. 그러는 너는 나한테 티셔츠 쪼가리 하나 사줘봤냐, 아니면 내가 이렇게 뼈빠지게 일할 때 너가 언제 지하철역까지 마중이라도 나와서 힘든 걸 덜어준 적이라도 있냐 등등 난리를 같이 쳤네요. 또, 그 당시에 그 사람이 잠깐 아는 선배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회식이네 뭐네하며 맨날 여자애들이랑 술 마시고.. 여자애 하나랑 다정하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도 주머니에서 나오고.. 그 사람한테 전화했는데, 그 여자애가 대신 받아서 "오빠 운전중이라서요~" 이러기도 하고 -.- 그러면서 점점 부부관계도 하지도 않고.. 좀 느낌이 안 좋더라고요. 그렇게 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나서 2주쯤 지났을 때.. 차를 바꾸겠다고 하더군요... 선배네에서 일하는데 지금 차가 낡아서 위험하다면서요.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지하철에 버스에 발이 퉁퉁 붓게 야근하며 일할 때, 차 몰고 회사로 한 번 데리러 오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 여자애는 잘만 태우고 다니면서.. 차 유지비 들어가니 제발 팔고 나중에 돈모아 새 차 사자고 할 때도 차 없으면 불편하다고 일단 지금 차로 2년 동안 몰겠다던 사람이 갑자기 차를 바꾸겠다고 난리를 피우더라고요. 그래, 그럼 시댁에 가서 여쭤보자. 너가 제정신인지.. 그 주말에 시댁에 내려가 펑펑 울며 힘들다 했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가만히 있던 아주버님까지 저에게 다 뭐라 하더라고요. 꼴랑 그 돈 벌어오면서 유세떤다고요. 아주버님이 특히 난리를 피우더라고요, 같이 살면서 돈 벌어오고, 밥 차려주는 걸로 유세 좀 그만 떨라고요. ㅋ 제가 요리하는 거를 좋아하기도 했고 남자들 둘 다 살림에는 영 잼병이라.. 야근이 많아 같이 먹지는 못해도, 냉장고 비어서 밥 못 먹었다 소리 듣는게 싫어서 3일 마다 반찬들 해서 냉장고 꽉꽉 채워놓고 국, 찌개 꼭 끓여놓고 했었어요. 주말엔 3끼 밥 제가 다 차렸고요. 대신 주말에 밥 차려드리면 아주버님이 설겆이라도 가끔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했고, 감사하다며 용돈 얼마라도 드리고 했었는데요. 밥 차려주고서 남자 설겆이하는거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싸가지 없는 년이고, 꼴랑 월 백만원 벌면서 돈 버는 유세를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며 시부모님 앞에서 아주.. 절 죽일 년을 만들더라고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펑펑 우는데 자기네 식구들에게 사과하라고.. 난리를 쳐서.. 제가 그 때 너무 어리고 무섭고 그래서.. 무릎꿇고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었네요.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서 끙끙 앓아누웠는데, 신경쓰지도 않고 친구들이랑 당구치러 나가더라고요. 서러움에 엉엉 울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며칠 입을 옷만 챙겨입고 집 나와서 그 길로 헤어지자 말했습니다. 1년 연애하고, 1년 반 살고 헤어지자 말했는데, 1년 반이 더 걸려서야 제대로 헤어졌었어요. 그놈의 시댁에서 소송을 걸었었거든요. ㅋ 전 그냥 너무 벗어나고 싶어서 맞소송은 안 했었어요. 더 오래걸린다고 해서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결혼했던 게 학생 때였고, 장학금 등 문제가 있어 혼인신고를 안 했었는데요. 사실혼 부당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어서 가정 법원을 왔다갔다 1년 반을 했었네요. 혼인신고 안했어도 사실혼으로 소송 걸리면 민사가 아니라 가정 법원을 가야하는 거 하나 배웠네요. ㅋ 아, 그리고 사랑과 전쟁처럼 따스하게 말해주는 조정위원들도 없다는 것도요. ㅎ 1년 반쯤 지났을 때, 별안간 소송을 취하하더라고요. 그 알바 때 만났던 여자애랑 사귀고 있었나봐요. 그 여자애가 소송 질질 끄는 거 싫어해서 미련있는 거 아니냐 난리치고, 본인도 자꾸 법원 왔다갔다해야 하니 귀찮았나봐요. 그렇게 22살 봄에 결혼해서 25살 봄에야 다 끝이 났었네요. 정말 너무 힘들어해서 부모님도 많이 우셨었고, 친척분들도 속상해하시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165에 55키로 정도로 좀 통통한 편이었는데 45키로까지 빠져서 옷들이 다 안 맞았었어요. 그래도, 티 안내고 정말 죽을만큼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서 연봉이랑 직급도 쭉쭉 오르고 그랬었어요. 저도 몰랐었는데, 제가 좀 독하더라고요. ^^;; 근데 정말 그 사람이 제 앞을 막았던건지, 그 사람이 사라지니까 일이 잘 풀리더라고요. 그렇게 소송이 끝나고 나서 제법 큰 회사에 취업이 되었었어요. 연봉도 확 오르고요. 처음 6개월은 너무 좋아서 눈 딱 감고 적금도 안 부었었어요. 옷도 사고, 구두도 사고, 친구들 만나 맛있는 것도 막 다 먹고 그냥 일단 펑펑 썼었어요. ㅋ 그 때 친구들이랑 쇼핑하고 집에 와서 구두를 벗었는데.. 문득 무더기로 있는 쇼핑백을 보니 너무너무 행복해져서 펑펑 울었었네요. ^^;; 그렇게 6개월 행복하게 돈 펑펑 써보고, 그 이후부터는 알뜰하게 모았습니다. ^^ 그렇게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대기업에도 이직해서 일했었고요. 지금은 대기업을 나와서 직원 5명 정도 되는 조그만 사업체 하나 운영하고 있네요. 억대 연봉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버는 편이라 부족한 건 못 느끼고 살고 있어요. 명품백 하나, 비싼 브랜드 옷 하나 없지만, 그래도 멋쟁이란 소리 들으며(하하;;) 서울에 조그만 오피스텔 하나 사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듬직하고 착한 남친도 만나서 올 겨울쯤엔 결혼도 할 생각이예요. ^^ 이제는 정말 행복해진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는 3월 1일은 그냥 삼일절로만 생각하려고요. 10년의 기억을 이제는 정말 남친을 위해서라도 다 털어버리고 싶어서 쓸데없이 긴 글을 남겼네요. 남자들한테 퍼주고, 힘들어하시는 분들 힘내세요. 여러분은 소~중 하답니다!!! 정말 똥차가니 벤츠 오더라고요! 19
내일은 10년 전 결혼기념일입니다.
맨날 눈팅만 하다가
지난 10년의 기억들 홀가분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글이 좀 길어질 것 같네요. ^^;;
저는 올해로 32살입니다.
네, 제목에 써놓은 것 처럼 딱 10년 전 내일이 결혼했던 날이네요.
학교 선배였습니다.
학회에서 만난 복학생 선배였는데, 리더십있게 학회를 끌어가는 그 모습에 홀딱 반했었어요.
제가 워낙 좋아했었고, 그 선배도 저를 후배로 귀여워해주다 보니 6개월 정도 후에는 사귀게 되었어요.
저희 집 형편이 넉넉치 않아 고시원에서도 살았었고, 옥탑방에서도 살고 정말 힘들게 살았었어요.
근데 서울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편하게 사는 그 선배의 환경이 좋았고,
그 집 부엌에서 요리해서 같이 맛있게 먹고 알콩달콩.. 정말 그 땐 너무너무 행복했었어요.
제가 워낙 힘들게 살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외로워하니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둘 다 학생이었고,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함께 있고 싶었어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부모님 물론 처음에 너무 어리다며 반대하셨지만,
그래도 서울에 혼자 있는 외동딸 책임지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니 결국엔 승낙해주셨어요.
부산에 있는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에도, 정말 이쁘다, 이쁘다 하시며 며느리로 받아주셨고요.
하지만, 그 사람과 시댁이 어떤 사람들이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정말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쿨한 시댁이라며 자랑하셨었지만
알콜중독이었던 시아버지, 아들밖에 모르는 시어머니, 알고보니 이혼했었던 아주버님..
그래도 그 사람이 잘 해주었었다면, 시댁이야 큰 문제는 없었어요.
어차피 먼 지방에 계셨으니까요. 크게 힘들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죠.
결혼하고, 1개월 후에 대학을 졸업 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4학년 1학기 때 인턴을 했었던 회사에서 정직원 채용 의사를 물어보셔서 바로 취업을 했어요.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바로 취업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취업을 하지 않았어요.
마음에 드는 회사에 갈때까지 그냥 쉬겠다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다니는 회사를 무시하기까지 했습니다.
간간이 알바를 하긴 했는데 그 알바비는 친구들과 놀고, 게임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신입이라 그 당시 연봉으로 1500만원 정도 겨우 받는 걸로, 저와 그 사람 둘이 생활을 했습니다.
쪼개고 살면서도 그냥 그 땐 그래도 참고 행복하게 지냈죠.
그러다 일이 터졌죠.
이혼하고 다시 공부하겠다며 재입시를 준비하던 아주버님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을 한거예요.
그 때부터 저보다 6살이 많았던 아주버님까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주버님이 함께 사시는데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았습니다. 시댁도, 그 사람도요.
결국 제가 버는 그 적은 돈으로 덩치 큰 남자 둘을 먹여살린거죠.
시댁에서는 요새 형편이 어렵다며 미안해하긴 하셨으나..
아들이 일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은 아무 일이나 막 할 인물이 아니다.. 그러니, 너가 뒷바라지를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니 아주버님도 힘든 공부 다시 시작했으니, 엄한 데 신경쓰게 하지 말고 뒷바라지 잘 해라. 등등;
정말 힘들었습니다.
업무 특성상 외부 업체들을 많이 만나야하는데 제가 돈을 버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구두 한 켤레도 없고, 정장 한 벌이 없는 제가 정말 너무 속상했습니다.
도시락 싸서 다니고, 야근이 많은 일이었는데 지하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야하는데도
그 돈 아낀다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집에 오고.. 그렇게 살았었네요.
취업을 좀 하라고, 아니면 알바라도 해서 관리비 내는 거라도 좀 보태라고 잘 달래보아도 폭언만 쏟아졌습니다.
어쩌다 아주버님이 보아도 욕하는 동생 말리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방에 있더라고요.
그렇게 1년을 정말 아끼고 아끼며 살다 보너스가 나온 걸 금액을 좀 속이고,
큰 맘 먹고 백화점에서 정말 기본 검은색 하이힐을 하나 샀습니다.
손 벌벌 떨며 할인해서 10만원 짜리로요.
1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아끼며 살았으니, 저에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동안 신던 구두가 너무 엉망이 되어 외부 업체들을 만나러 가면 늘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그걸 신발장 구석에 숨겨놓고 몰래 신고 나갔었거든요.
뭐 밤새 게임하고 오후 2~3시에나 일어나는 사람이고, 퇴근하고 오면 친구들이랑 논다고 집에도 없던 사람이랑 몰래몰래 잘 신고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걸 들키게 된거죠. 그 사람 그걸 보고 미친듯이 화를 내더라고요.
미친 거 아니냐, 10만원 짜리 구두를 사다니 너가 정말 돌았구나, 정신상태가 썩었다 등등
그래서 같이 화를 미친듯이 냈습니다.
그러는 너는 나한테 티셔츠 쪼가리 하나 사줘봤냐, 아니면 내가 이렇게 뼈빠지게 일할 때 너가 언제 지하철역까지 마중이라도 나와서 힘든 걸 덜어준 적이라도 있냐 등등 난리를 같이 쳤네요.
또, 그 당시에 그 사람이 잠깐 아는 선배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회식이네 뭐네하며 맨날 여자애들이랑 술 마시고.. 여자애 하나랑 다정하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도 주머니에서 나오고..
그 사람한테 전화했는데, 그 여자애가 대신 받아서 "오빠 운전중이라서요~" 이러기도 하고 -.-
그러면서 점점 부부관계도 하지도 않고.. 좀 느낌이 안 좋더라고요.
그렇게 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나서 2주쯤 지났을 때.. 차를 바꾸겠다고 하더군요...
선배네에서 일하는데 지금 차가 낡아서 위험하다면서요.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지하철에 버스에 발이 퉁퉁 붓게 야근하며 일할 때, 차 몰고 회사로 한 번 데리러 오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 여자애는 잘만 태우고 다니면서..
차 유지비 들어가니 제발 팔고 나중에 돈모아 새 차 사자고 할 때도 차 없으면 불편하다고 일단 지금 차로 2년 동안 몰겠다던 사람이 갑자기 차를 바꾸겠다고 난리를 피우더라고요.
그래, 그럼 시댁에 가서 여쭤보자. 너가 제정신인지..
그 주말에 시댁에 내려가 펑펑 울며 힘들다 했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가만히 있던 아주버님까지 저에게 다 뭐라 하더라고요.
꼴랑 그 돈 벌어오면서 유세떤다고요.
아주버님이 특히 난리를 피우더라고요, 같이 살면서 돈 벌어오고, 밥 차려주는 걸로 유세 좀 그만 떨라고요. ㅋ
제가 요리하는 거를 좋아하기도 했고 남자들 둘 다 살림에는 영 잼병이라..
야근이 많아 같이 먹지는 못해도, 냉장고 비어서 밥 못 먹었다 소리 듣는게 싫어서 3일 마다 반찬들 해서 냉장고 꽉꽉 채워놓고 국, 찌개 꼭 끓여놓고 했었어요.
주말엔 3끼 밥 제가 다 차렸고요. 대신 주말에 밥 차려드리면 아주버님이 설겆이라도 가끔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했고, 감사하다며 용돈 얼마라도 드리고 했었는데요.
밥 차려주고서 남자 설겆이하는거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싸가지 없는 년이고, 꼴랑 월 백만원 벌면서 돈 버는 유세를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며 시부모님 앞에서 아주.. 절 죽일 년을 만들더라고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펑펑 우는데 자기네 식구들에게 사과하라고.. 난리를 쳐서..
제가 그 때 너무 어리고 무섭고 그래서.. 무릎꿇고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었네요.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서 끙끙 앓아누웠는데, 신경쓰지도 않고 친구들이랑 당구치러 나가더라고요.
서러움에 엉엉 울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며칠 입을 옷만 챙겨입고 집 나와서 그 길로 헤어지자 말했습니다.
1년 연애하고, 1년 반 살고 헤어지자 말했는데,
1년 반이 더 걸려서야 제대로 헤어졌었어요.
그놈의 시댁에서 소송을 걸었었거든요. ㅋ
전 그냥 너무 벗어나고 싶어서 맞소송은 안 했었어요. 더 오래걸린다고 해서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결혼했던 게 학생 때였고, 장학금 등 문제가 있어 혼인신고를 안 했었는데요.
사실혼 부당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어서 가정 법원을 왔다갔다 1년 반을 했었네요.
혼인신고 안했어도 사실혼으로 소송 걸리면 민사가 아니라 가정 법원을 가야하는 거 하나 배웠네요. ㅋ
아, 그리고 사랑과 전쟁처럼 따스하게 말해주는 조정위원들도 없다는 것도요. ㅎ
1년 반쯤 지났을 때, 별안간 소송을 취하하더라고요.
그 알바 때 만났던 여자애랑 사귀고 있었나봐요.
그 여자애가 소송 질질 끄는 거 싫어해서 미련있는 거 아니냐 난리치고, 본인도 자꾸 법원 왔다갔다해야 하니 귀찮았나봐요.
그렇게 22살 봄에 결혼해서 25살 봄에야 다 끝이 났었네요.
정말 너무 힘들어해서 부모님도 많이 우셨었고, 친척분들도 속상해하시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165에 55키로 정도로 좀 통통한 편이었는데 45키로까지 빠져서 옷들이 다 안 맞았었어요.
그래도, 티 안내고 정말 죽을만큼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서 연봉이랑 직급도 쭉쭉 오르고 그랬었어요.
저도 몰랐었는데, 제가 좀 독하더라고요. ^^;;
근데 정말 그 사람이 제 앞을 막았던건지, 그 사람이 사라지니까 일이 잘 풀리더라고요.
그렇게 소송이 끝나고 나서 제법 큰 회사에 취업이 되었었어요.
연봉도 확 오르고요.
처음 6개월은 너무 좋아서 눈 딱 감고 적금도 안 부었었어요.
옷도 사고, 구두도 사고, 친구들 만나 맛있는 것도 막 다 먹고 그냥 일단 펑펑 썼었어요. ㅋ
그 때 친구들이랑 쇼핑하고 집에 와서 구두를 벗었는데..
문득 무더기로 있는 쇼핑백을 보니 너무너무 행복해져서 펑펑 울었었네요. ^^;;
그렇게 6개월 행복하게 돈 펑펑 써보고, 그 이후부터는 알뜰하게 모았습니다. ^^
그렇게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대기업에도 이직해서 일했었고요.
지금은 대기업을 나와서 직원 5명 정도 되는 조그만 사업체 하나 운영하고 있네요.
억대 연봉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버는 편이라 부족한 건 못 느끼고 살고 있어요.
명품백 하나, 비싼 브랜드 옷 하나 없지만, 그래도 멋쟁이란 소리 들으며(하하;;)
서울에 조그만 오피스텔 하나 사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듬직하고 착한 남친도 만나서 올 겨울쯤엔 결혼도 할 생각이예요. ^^
이제는 정말 행복해진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는 3월 1일은 그냥 삼일절로만 생각하려고요.
10년의 기억을 이제는 정말 남친을 위해서라도 다 털어버리고 싶어서 쓸데없이 긴 글을 남겼네요.
남자들한테 퍼주고, 힘들어하시는 분들 힘내세요.
여러분은 소~중 하답니다!!!
정말 똥차가니 벤츠 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