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재물...

Kye Chul Yi2012.03.13
조회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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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재물은 서로 대립한다. 왜냐하면 세상과 재물은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을 장악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없다면, 재물과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들의 생존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하나님에게 맞선다.

우리는 오직 한 분만을 우리의 마음으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며, 오직 한 분의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에 맞서는 것은 증오다.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오직 사랑이 아니면 오직 증오일 따름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셈이 된다. 중도는 없다. 하나님이 하나님다운 것은 바로 하나님이 오직

사랑을 받거나 오직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오직 양자택일만이 존재한다.

 

그대는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세상의 재물을 사랑한다. 만약 그대가 세상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셈이다. 만약 그대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미워하는 셈이다.

그대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지, 그대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분명히 그대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가 하는 일을 알지도

못할 것이다. 아니 그대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고, 바로 두 주인을 섬기기를 원한다.

 

그대는 하나님과 재물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그대가 하나님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그대는 언제나 진실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그대의 생각대로 그대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의 재물도 사랑한다면, 이런 사랑은 곧 하나님에

대한 미움이고, 우리의 눈은 그 이상 단순하지 않으며, 이런 마음은 그 이상 예수와 사귐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정은 달라질 수 없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 "너희'는 결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19-24).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Mt.6:19-24).

 

염려하지 마라! 재물은 인간의 마음에 안전과 평안을 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재물은 바로 염려의 원인이 된다. 재물에 매달리는 마음은 재물과 더불어

억누르는 근심의 짐도 함께 받게 된다. 염려가 재물을 만들지만, 재물은 다시 염려를 만든다.

우리는 재물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하려고 한다. 우리는 염려를 통해 염려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결과는 정반대로 드러난다. 우리를 재물에 얽어매고 옭아매는

사슬은 바로 염려 그 자체다.

 

재물의 오용은 내일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물을 사용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재물은 엄격한

의미에서 오직 오늘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바로 내일을 위한 보장이 오늘의 나를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내일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고, 오늘에 생존에 필요한 것을 온전히 받는 자만이 참으로

안전하다. 날마다 재물을 받음으로써 나는 내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내일에 대한 염려는

나를 끝없는 염려로 몰아간다.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예수가 가리키는 자들에게, 곧 가난한 자들과 비참한

자들에게, - 인간적으로 말하면- 오늘 염려하지 않으면 내일 굶주리게 될 자들에게 조롱거리일 수도 있다. 혹은 이 말씀은 사람들이 불쾌하여 배척해 버리는 고약한 율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랑하는 아들을 선사하신 하늘의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자유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유일한 말씀이다.

 

하늘 아버지가 어찌 자신의 아들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는가?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이 말씀은 삶의 지혜로, 율법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직 예수를 인식한 제자들만이

이 말씀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사랑의 약속을 받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는다.

 

제자들을 염려로부터 해방하는 것은 염려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아브람이 여호와(신약의 예수님)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우리가 전혀 염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이제 안다. 다음날, 다음 순간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다. 우리가 뭔가 염려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실제로 세상의 상황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은 세상을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염려하실 수 있다. 우리는 염려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무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자칭하는 것이다...

 

"지금 어떤 동물도 식량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마다 자기 일이 있고, 자기 일을 찾고,

자기 먹이를 얻는다. 새는 날고, 노래하고, 둥지를 만들며, 새끼를 낳는다. 이것은 새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새가 이런 일 때문에 먹이를 얻는 것은 아니다. 소는 밭을 갈고, 말은 짐을 운반하고 싸우며, 양은 털과 우유와 치즈를 제공한다. 이것은 이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이런 일 때문에 먹이를 얻는 것은 아니다. 땅은 풀을 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자라난다. 인간도 일해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을 먹여 살리시는 다른 분이 계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일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마치 인간이 일 때문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새는 심지 않으며, 거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약 새가 먹이를 찾아 날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가 먹이를 발견하는 것은 그가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새가 먹이를 발견하도록 누가 그에게 먹이를 놓아두었다는 말인가?

만약 하나님이 놓아두지 않으셨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온 세상은 죽도록 일하고 구해야 할 것이다."(루터)

 

새와 백합화도 창조주의 보살핌을 받을진대, 하물며 아버지가 매일 간구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먹이지 않으시겠으며, 매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모든 것은 그들에게 따라올 것이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우리를 위해 노동하는 것과 음식과 집을 위해 염려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일인 것처럼, 오직 그렇게 염려할 때에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처럼 이해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음식과 의복을 위한 염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염려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 5장과 6장이 말하는 의,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의다. 예수와의 사귐과 그의 계명에 대한 순종이 먼저 오고, 다른 모든 것은 그 다음에 따라온다.

 

...가난하고 비참한 자들에게는 예수의 이 말씀도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을 멸망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말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을 전적으로 기쁘게 하고 전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복음 자체다. 예수는 인간이 행해야 하지만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사하셨고 여전히 약속하시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선물로 주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이, 실제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모든 다른 것은 우리에게 따라올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가운데서 오직 예수의 의만을 바라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보호 아래 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사귐을 나누는 자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을 잘 먹이실 것이고 자녀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적절한 시간에 도와 주실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아신다.

 

예수를 오래 따라다닌 제자들은 "너희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더냐?"라는 주님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없었나이다!"

 

굶주림과 헐벗음 속에서도, 박해와 위험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확고한 사귐을 나눈 자들에게

어찌 부족한 것이 있겠는가?

 

본회퍼, 나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