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 함께해요] 안 개 -9 & 10(마지막)-

백기사2012.03.15
조회2,278

두편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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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낯선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넌 죽었어! 내 눈으로 봤다구!!"


박형사의 말에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죽은 지 어떻게 알았죠?"


그제서야 박형사는 눈치를 챘는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신발!! 핸드폰만 니 거였군."


박형사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럼 죽은 놈은 누구지?"


"내 조직원이요."


"니가 죽인거야?"


"아뇨. 누구도 죽이지 않았어요. 그냥 그 놈이 죽은 겁니다."


"무슨 말이야?"


"나연이와 그 놈한테 얼마동안 시달리면서 난 정말로 죽을 것 같았소.

며칠 동안 집을 비워두었죠. 그런데 동생처럼 아끼는 놈이 하나 있는데 그 놈이 집을 이사를 해야 하는데

날짜가 안 맞아 들어 갈 집의 이삿짐이 안 빠진거요. 그래서 내 집에 3일 정도만 머물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거요.

처음엔 귀신 나타난다고 경고도 했소. 그런데 그 걸 누가 믿겠소?

그 녀석이 그 집엘 들어가서 3일 째 되는 날 투신한거요.

우리들 폰은 모두 사용 용도가 다른 대포폰이요.

내가 가지고 있는 폰만 5개요.

형사님한테 전화할 때 쓴 건 집에 놓고 나왔소."


"그럼 내가 사건 조사하러 빠에 들락거렸을 때 마두가 누군지 너의 조직원들이 알았을텐데?"


"형사님은 지금 마두라는 이름이 우리 세계에서 쓰이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는거요?

조직에서 사용되는 내 이름은 '백사'요.

'백사'라는 이름으로 형사님한테 전화한 것 들키면 난 바로 한강이나 서해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거요.

안 그래도 당신한테 장부를 넘기기로 한 날, 난 장부를 손에 쥐기 위해 빠로 들어갔는데

그날 따라 보안이 철저한거요.

여러가지 방법으로 창고 장부를 얻어내려고 했는데 실패했소.

밤마다 귀신놀이를 하고 빠에 드나드는 내 모습이 어떠했겠소?

꼭 그 장부 때문이 아니어도 나의 행동과 몰골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소.

아니나 다를까 주변의 조직원들이 조금씩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겁니다.

곧 그들의 엄청난 정보력이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도망을 칠까, 아니면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아니면 발뺌을 할까 여러가지 방법을 구상하던 와중에

마침 그 동생 놈이 죽은거요.

그리고 경찰들은 그 핸드폰의 통화내역을 보고 그 동생놈을 마두라고 여긴거요.

마두란 실존 인물도 아니니 우리 조직원들은 그 동생놈이 이름까지 바꿔가며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여긴 겁니다."


"염병할...완전히 삽질했군.."


박형사는 자신의 머리를 치며 자책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지금 그 장부가 있나?"


박형사의 물음에 백사라는 남자는 갑자기 박형사에게 휴대폰을 던져 주었다.


"회장이라고 불리는 두목의 개인 사무실 금고에 있소.

오늘 밤 그들이 약물, 시체, 장부....모든 증거를 옮길 예정이오.

오늘 밤이 지나면 영원히 그들을 잡을 수 없소.

지금 경찰 병력을 출동시키시오."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박형사는 조용히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시도했다.


"나 박형사야...내 걱정 안해도 돼...무사해..

지금 그 스탠드바로 형기대, 타격대 모조리 쏟아부어!!

업소 안쪽에 창고까지 모조리 압수수색해!!

영장은 나중에 발부받아!!

내가 책임질테니까 지금 출동해!!"


통화를 마친 박형사는 백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가는 건가?"


"그 놈이 있는 곳...."


"뭐?"


박형사는 나를 한 번 뒤돌아보더니 표정을 살폈다.


"잠깐 그 전에 먼저 뒤에 있는 강형사부터 병원으로 옮겨줘."


"좋소이다. 그 정도야 뭐...."


가까운 병원에 들린 우리는 응급실로 강형사를 옮기고 백사의 차량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장부에는 뭐가 있지?"


박형사의 질문에 백사는 잠시 쓴 웃음을 지었다.


"몇 년전에 우리 클럽에 김나연이란 갓 스물 넘은 미모의 어린 친구가 들어왔소.

그냥 빠에서 얼굴로 승부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술도 따라주며 손님을 접대하던 여자였소.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보다 말도 잘하고, 옷도 잘 차려입더이다.

1년 정도 지나자 그녀의 요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소.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놨지.

그녀와 말 한마디를 나누기 위해 밤새 부산에서 달려오는 손님도 있었고, 사업체 출장근무를 포기하고

날이 새도록 그녀와 얘기하는 손님도 있었소. 심지어 일본에서 오는 손님도 있었소.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수 백만원의 술값은 문제가 아니었소.

우리 조직은 엄청난 그녀의 힘을 느끼자 손님들을 회원제로 바꾸었소.

최고급 손님들만 받은거요. 그것도 그녀를 만나는 시간을 정해서....

그런데 거기서부터가 잘못이었소."


백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 다음에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큰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라는 친구가 우리에게 요구를 하나 하는거요.

그녀와 잠자리를 주선하면 좋은 거래를 하나 하겠다고 합디다.

그의 말은 조직 입장에서는 실로 군침이 도는 것이었소."


박형사가 잠시 그의 말에 끼어들었다.


"병원 마약이었군."


"그렇소. 병원으로 유입되는 마약 진통제들을 유통시켜 주겠다는 것이오.

그것도 공짜로 말이오.

우리는 흔쾌히 승락했소.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거요. 나연이가 그 원장과 잠자리를 거부한거죠.

우리 조직은 포기할 수 없었소.

상품가치가 떨어질까봐 나연이에게 손만 대지 않았지 온갖 협박을 다 동원했소.

심지어 가족들까지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소.

그래도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소.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갑자기 결근을 한거요.

도망을 친거죠. 우리 조직의 정보력은 이미 경찰 내부까지 닿아 있어서 찾는 건 시간문제였소.

이틀만에 나연이가 잡혀왔소.

그런데 잡아오는 와중에 나연이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나연이의 아버지가 조직원들의 손에 당했소.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죽게 된겁니다."


"신발 놈들...깡패새끼들은 사회의 암덩어리라니까....다 싸그리 총살시켜버려야 해."


박형사의 분노섞인 탄식이 쏟아졌다.


"후후....그 세계 생리가 원래 그런거요.

하여튼 나연이는 반실성 상태로 돌아왔죠.

일을 시켜야 하는데 도대체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 때 그 원장놈이 약을 하나 추천해 줍디다.

펜타닐(fentanyl)....

모르핀보다 100배나 센 진통제라고 하는데 효과는 끝내줍디다.

나연이가 손님들을 접대하기 시작한거요.

원장놈이 나연이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소문이 나돌자 발정난 개들처럼 사방에서 고위층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기 시작했소.

우리 조직은 바보가 아니오."


"혹시 모를 내일을 위해 장부에 그들을 기록해 두었겠군."


"그렇소 사육하듯이 길러지는 나연이가 언제 한 방에 훅 갈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힘있는 자들을 옭아맬 족쇄를 만든거요.

그들이 우리를 배신할 수 없도록 말이오.

특히 그 원장놈의 경우는 나연이과 함께 밤을 보낼 때 우리가 비디오까지 촬영해 두었소.

그 장부에 기록된 명부를 보면 당신도 깜짝 놀랄거요."


"경찰 고위층도 있나?"


"내가 그나마 경찰에게 일말의 믿음을 갖는 것은 당신네 소속은 거기에 없었다는거요."


나는 순간 궁금한 점이 하나 떠올랐다.


"그런데 창고의 여자 시체는 뭐예요?"


"간호사?"


"그래요. 간호사...."


"원장하고 내연의 관계에 있던 여자야. 원장이 나연이에게 맛들려 있는데 그 여자가 눈에 들어오겠냐?

게다가 그 원장 놈이 병원 장부 조작하다가 그 여자한테 들킨거야.

그 여자는 그걸로 원장을 협박하면서 다시 만나주길 바랬고..

그 때 원장이 하고 싶었던 건 뭐였겠냐? 뻔하지 뭐....

결국 원장이 부탁해서 조직원들이 처리한거야..."


"신발새끼들...오늘 내로 니 들 모두 평생 콩밥이나 먹을 준비나 해라.."


박형사는 마치 총이라도 있으면 쏴죽일 기세로 그를 몰아 붙였다.


"너무 흥분하지 마쇼. 형사나리...나는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강아지들...."


어느새 차량은 큰 대로에 진입했다.

백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 상류층 모임을 '사일런트 엔젤'이라고 불렀소."


뒷좌석에 앉아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귀가 쫑긋 서는 기분이었다.


"사일런트 엔젤이 그거였군요. 그 말 한마디에 난 죽을 고비를 몇 번을 겪었고..."


"시간대를 정해 그녀를 만나니 나연이를 상대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서로 모르는거요.

물론 그들도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오. 오로지 나연이를 만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우리는 나연이의 상품가치를 길게 끌어야 했소.

그래서 약도 펜타닐에서 비교적 약한 염산페치딘으로 바꾸었소.

그런데 그게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거요.

나연이가 현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거요.

나연이를 감시하면서 보살핀 사람은 나였소."


그는 갑자기 지난 기억에 대한 아픔이 밀려오는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처음에 업소에 들어온 날부터 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소.

그녀가 출퇴근을 할 때는 매일 같이 차로 동행했소.

조직에서 시킨 일이었지만 나에게 일이 아니었소. 그냥 행복 그 자체였소.

그녀와 같이 있는 1초, 1초가 나에게 너무나도 즐겁고 짜릿한 시간이었소.

한 번은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차 안에서 작은 초콜렛 케익 상자를 하나 건넵디다.

살아오면서 온갖 험하고 거친 일을 모두 겪으면서, 오로지 독기와 증오, 투쟁만으로 얼룩진 나에게 나연이는 하나의 커다란 오아시스였소.

그 순간 나연이를 품고 싶었지만 그것은 곧 우리 서로에게 종말을 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소.

나는 우리 조직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오랜 시간이 흘러가도 난 나연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버릴 수가 없었소.

나연이가 그렇게 망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소?"


어느덧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 돌아온 나연이가 어느 날 저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합디다.

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소.

조금만 견뎌보자고 그녀를 위로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소.

그런데 얼마 후 난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된거요.

사일런트 엔젤 중에 시의원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놈 보좌관이란 녀석이 항상 따라다녔소.

아주 핸섬하고, 매너있고 굉장히 유식한 놈이었소. 게다가 참 착해 보였소.

이름이 박태수란 놈이었는데 그 놈도 나연이에게 푹 빠져 버린거요.

의원놈이 그녀와 술자리를 하는 동안 보통은 밖에서 기다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에 동석을 하는거요.

나연이가 의원놈을 설득해서 그런 거라오.

나는 육감적으로 알아챘소. 그녀도 그 보좌관 놈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나를 떠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소..."


백사는 잠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저 깊은 곳으로 사라졌던 독기와 증오, 분노가 그 놈을 보는 순간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소.

안개가 자욱하던 어느 날 밤 나는 ㅇㅇ대로로 그를 유인했소."


"죽였군."


박형사가 끼어들어 그가 할 말을 대신 해주었다.

백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음 말을 이었다.


"그 놈을 죽이고 나니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고, 이젠 자신감까지 붙었소.

모든 것을 터뜨리고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작정한거요.

그래서 당신한테 연락을 한거요."


"너를 죽이겠다고 나타난다는 놈이 박태수 그 놈이야?"


"그렇소"


백사는 힘없이 대답을 했다.


"박태수.....결국 그 사람이었군요...."


나는 진실에 맞닥뜨렸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떠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지 정할 수가 없었다.

잠시 몇 초간의 침묵이 차량 안을 맴돌았다.


"김나연은 어떻게 죽은거야?"


"자살했소...."


"뭐? 자살? 신발 거짓말 아냐?"


"거짓말 아니오. 정말 자살까지 할 줄은 몰랐소.

그 보좌관 놈이 안보이자 우리가 처리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스스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은거요.

그 만큼 그 놈을 사랑했으니까 그랬겠죠....."


"그래서 사체를 정화조에 버린거야?"


백사는 박형사의 물음에 대답을 거부한 채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나연이가 우리 업소에서 죽은 걸 엔젤들이나 경찰들이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장이었소.

우리는 나연이의 일가 친척에게 다가가 얼마의 돈을 쥐어주고 실종신고를 하라고 했소.

우리 입장에서는 나연이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되니까 경찰들에겐 큰 의심을 사지 않을거라 생각했소.

그 친척들이 우리의 행동을 의심할 만도 했는데, 돈 앞에는 꼼짝 못하는거요.

우리도 쓰레기였지만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소.

나연이와 떨어져 사는 아버지를 그 누구 하나 돌봐 주지도 않았으면서, 우리가 돈을 건네자 나연이의 실종을 자기 일처럼 슬퍼하는거요.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거요.."


"뭐가?"


백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멍하니 전방을 주시했다.

자신이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걸까?


"아저씨...정신차려요!!"


나는 그의 정신을 깨우려 소리쳤다.

그제서야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분명히 산속 깊은 곳에 묻었소.

그런데 나연이가 정화조에서 발견된거요.

우리가 나연이를 묻은 산과 정화조는 가까이 있지만 이건 누군가가 옮기진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오."


밤 10시가 훨씬 넘었음에도 대로에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이 넘쳐났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

익숙한 이 길.....


"이봐요. 아저씨....지금 여기는?"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이해할 수 없는 미소를 보냈다.


"항상 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는거야...."


이에 박형사가 그의 말을 제지했다.


"야! 너 무슨 말 하는거야?"


그는 아무 대꾸없이 파손된 가드레일 옆에 차량을 급정지시켰다.

내가 사고를 낸 지점이었다.

그는 차에서 천천히 내려 그 정화조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둘러 따라 내린 우리는 무표정한 그의 옆모습을 살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입을 열었다.


"임무라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을 아시오? 이젠 맘 편히 떠날 수 있겠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박형사는 게속 물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거야?"


그제서야 그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무서운 눈빛으로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화조가 너무 얕다고 생각해 본 적 없소?"


순식간이었다.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대로로 뛰어들었고, 고막을 찢는 듯한 타이어의 스크래치음이 들렸다.

큰 트럭에 치어 공중으로 떠오르는 그가 보였다.

10미터 이상을 날아간 그의 몸이 힘을 잃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나동그라졌다.

트럭에 뒤이어 여러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섰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박형사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갔다.

서서히 사람들 틈 사이로 그가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고의 처참함이 아니었다.

처참함으로 따진다면 핏물로 머리를 감은 듯한 나와 박형사의 얼굴이 더 구역질을 유발할 것이다.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 하나는 엿가락처럼 휘어 머리까지 닿아있는 지금의 그의 자세도 아니었다.

정작 우리의 눈을 의심케 만든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악스런 그의 모습이었다.


수개월을 굶은 사람처럼 볼은 함몰되어 있었고, 몸의 수분을 쫘악 빨아낸 듯 몸은 말라 있었다.

짙은 다크써클로 둘러싸인 눈알은 그 크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는냥 얇은 가죽이 된 눈꺼풀로 간신히 덮여 있었으며,.

조금 전까지 혈기왕성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저승사자 같은 청백색의 얼굴빛은 그가 조금 전에 죽은 사람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묘한 미소를 띠며, 죽어있는 그의 모습 앞에서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박형사는 숨소리같은 속삭임으로 넋두리를 했다.


"신발...이젠 형사질도 못해 먹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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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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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사는 백사가 준 휴대폰으로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했다.

얼마 후 사고현장에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도착하였다.

시신을 수습하는 그들의 표정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고 수습을 하러 나온 경찰들이 박형사를 알아보고 우리에게 얼굴과 손을 닦을 수건을 건넸다.

한참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가지 모진 일을 겪은게 아니구만...얼굴들이 많이 상했어."


자신을 법사라고 불러달라던 무당이었다.


"아니...형님! 여긴 어떻게 알고?"


"너, 몇 시간동안 실종되었다며?

니네 서에서 나한테까지 전화질이더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서에 들렀다가 여기 현장에 있다길래 와 봤어.."


무당은 박형사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어이쿠..이 젊은 친구는 아예 순사가 되셨나 보네."


나는 대답을 거부한 채 시선을 돌렸다.


"형님..혹시 조금 전의 사고 난 시체 봤어요?"


"그래..."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긴?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몸을 떠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붙들려 다닌거지.

한 맺힌 원혼이 그를 붙잡아두고 있었겠지...

이제 그 원한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군.

자신의 몸이 썩어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을거야."


"우와 완전히 좀비네요. 좀비...."


그제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그 때 멀리서 경광등을 밝히고 형사기동대 차량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포크레인 한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건 뭡니까? 형사님."


"아까 백사가 그랬잖아. 정화조가 너무 얕다고...

그래서 요청했어."


"그럼, 박태수란 사람이 김나연이를 발견한 자리 아래에 묻혀 있단 말입니까?"


"백사 말이 맞다면 그럴거야..."


현장에 도착한 포크레인은 정화조 주변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화조의 밑동이 드러나자 포크레인의 거대한 삽이 정화조를 힘껏 밀어 넘어뜨렸다.

엄청난 양의 토사와 함께 정화조를 채우고 있던 이물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살점은 거의 붙어있지 않고 앙상하게 남은 뼈들이 서로 분리된채 쏟아져 나왔다.

몇 개의 뼈들을 감싸고 있는 누더기같은 옷만이 그것이 사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세상에....."


무당이 갑자기 긴 탄식을 내뱉았다.


"왜요? 아저씨?"


"네가 자네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기운이 저 시체에서 쏟아져 나오는구만."


무당은 두 손을 합장한 채 염불같은 주문을 외우며 그의 명복을 기렸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뼈들이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단 말입니까?"


박형사는 옆의 경찰에게 담배 하나를 얻은 후 조용히 그것을 입에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연신 담배를 빨고 있는 박형사의 모습은 사건을 해결한 후의 형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사건에 직면하여 고민하는 형사의 모습이었다.


"무슨 고민거리 있으세요?"


나의 물음에 박형사는 긴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산 속에 묻었다는 김나연이 시체는 어떻게 된거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포크레인이 임무를 마치자 철수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포크레인이 물러난 그 자리에는 구급대원들이 채워졌다.

그 때 박형사가 굉음을 내며 떠나려는 포크레인을 잡아세웠다.

그리고 큰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구청에서 나왔죠?"


40대로 보이는 포크레인 기사는 박형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시동을 끄고 물었다.


"왜요?"


"아저씨 이 정화조 공사 한 적 있어요?"


"예전에 이거 만들 때 했었소."


"이 정화조 용도가 뭐예요?"


"예전에 주변에 길 건너편에 작은 상가가 있어서 폐수정화로 사용되었던건데, 지금은 폐쇄되어서 그냥 방치되어있는거요.

정화조와 연결된 하수로는 그냥 빗물 수로로 사용되고 있소."


"그 수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아요?"


"잘은 모르는데....아마..."


기사는 300미터 이상 떨어진 길 건너편 야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산의 토사유출을 막기 위해서 작은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거기서 모아진 물이 이 곳으로 유입될거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박형사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젠장....떠내려온거군....

큰 비 때문에 토사가 유출되면서 수로로 들어간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사가 말한 가까운 산이란 눈 앞에 보이는 그 곳 밖에 없었다.

지름이 1미터 정도 밖에 안돼 보이는 수로를 통해 무려 300미터 이상을 떠내려오다니......

김나연의 시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저 수로 속에서 보냈던 것일까?

게다가 그 수로는 윗부분이 살짝 노출된 채 인근 아파트에서 만든 작은 체육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밤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물에 불은 그 시체를 밑에 두고 여가를 즐겼다는 것 아닌가?

생각만 해도 스름이 끼쳤다.


"그런데 소름끼치는 저 시체는 뭐요?"


포크레인 기사가 박형사에게 물었다.


"수백미터 떨어져 잠들어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여기까지 불러낸 남자랍니다."


박형사의 엉뚱한 대답에 기사는 잠시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인가?

안도감과 함게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두통까지 밀려와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 때 시신 수습을 하고 있는 구급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넘어진 정화조 뒤쪽으로 깊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수로가 보였다.

왠지 모를 이유로 나는 그곳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내 발앞으로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

잠시 후 그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하얀 형상...

뱀처럼 꿈틀대며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스르르르륵....스르르르륵....."


허리까지 늘어진 검은 머리,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그 하얀 얼굴.....

팔다리를 모으고, 엎드린 자세로 머리만 처든 채 김나연이 헤엄쳐오고 있었다.

 


"아~~~~~~악!!!"

 

비명소리와 함게 나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성태야!! 정신 차려!!"


아버지였다.

꿈이었다.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나는 와락 아버지를 끌어 안았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에도 아버지는 내 몸을 밀어내지 않고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그리웠던 아버지의 말투가 이어졌다.


"개놈의 자식..."


나는 한동안 아버지를 꼭 끌어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 또한 내 어깨 너머에서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린 나는 아버지에게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경위를 물었다.


"이놈아..어제 밤 사건 현장에서 니가 갑자기 쓰러졌댄다.

너 도대체 뭔 일을 저질렀길래 사람 죽은 곳만 따라다니는거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얘기 하기에는 너무나도 길었고,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믿어줄리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깨어나셨네요. 김성태씨..."


"네.."


"퇴원하셔도 되구요. 그리고 아까 박정우 형사라는 분이 김성태씨 잠들어 계실 때 오셨다가 메모만 남기고 가셨어요."


나는 간호사가 내민 쪽지를 받아들어 펼쳐 보았다.


-퇴원하면 잠깐 경찰서에 들렀다 가라-


나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경찰서로 향했다.

몇 시간을 병원에서 잠들어 있었던건지 벌써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있었다.

이번 사건이 초대형 사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경찰서 주변은 몰려든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의경에게 신분을 밝혔다.


"박정우 형사님께 김성태가 왔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의경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나를 경찰서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만신창이가 된 서로 얼굴을 마주하자 우리는 잠시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인사를 나눴다.

박형사는 취조실 같은 밀폐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거기에는 무당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젊은 친구."


무당이 손을 들어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나는 수그러드는 말투로 화답했다.


"네.."


박형사는 노트북이 놓여진 취조실 탁자 앞에 앉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거 니꺼지? 증거품 속에 들어있던건데.."


내 휴대폰이었다.

그는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주면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바탕화면에 이쁜 여자 사진이나 깔아놓지, 니얼굴을 박아놨냐?"


"훗...제가 떨군 휴대폰 보고 반해서 찾아온 여자도 있어요."


"대단하군..."


"여기 들어있는 증거 동영상 봤어요?"


"이미 다 다운 받아놨어."


이리저리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던 박형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성태야....너 이것 좀 볼래?"


박형사가 무슨 동영상같은 것을 하나 재생시키더니 노트북 화면을 나에게 갖다 대었다.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CCTV에 잡힌 화면이야.

이번 사건 때문에 조사하다가 형사계에서 입수한 건데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이지만 여기에 니가 사고 난 장면이 찍혀있어."


나를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며 멀리 보이는 대로를 주시했다.


"새벽이라 차가 거의 없어. 그런데 지금 잘 봐봐."


박형사가 갑자기 화면을 정지시켰다.


"이거 니차 아냐? 테두리에 네온등하고, 반사등 붙였잖아."


난 내눈을 의심해야 했다.

내가 사고 난 지점의 반대 차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박형사는 이어서 재생버튼을 눌렀다.

20여초가 지났을까?

반대편 차선에 다시 내 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희한한 광경에 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동영상이 끝나자 박형사는 노트북을 접었다.


"술이나 한 잔하러 갈래?"


"사건조사 하셔야 할 분이 뭔 술이요?"


"서에서도 오늘 쉬라고 했다. 다른 형사들이 조사할거야."


옆에 서 있던 무당이 거들었다.


"동동주에 파전 한번 땡길까? 박형사?"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선 그간의 사건을 안주삼아 우리는 신나게 술을 들이켰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술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왜 무당이 되었어요? 딸꾹"


건하게 취해서 혀꼬이는 나의 발음에 무당이 대답했다.


"법사라고 부르라니까 쟈식아!!"


"그러니까...법사님... 왜 무당이 되었냐구요? 꺽..."


"허허...그래도 무당이라네. 몹쓸 놈..

고등학교 때부터 이유없이 몸이 아파서 신내림 받은거야."


"에이..맞네..무당..."


"야 임마.... 난 무당처럼 굿하고, 작두타는 게 아니라 염불외는 법사라구."


"그럼 염불외는 무당이네....딸꾹.."


"허허허...내가 포기했다. 그나저나 니가 내 제자로 들어오면 뭔가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휴....아저씨..전 이젠 귀신이라면 치가 떨립니다. 말도 꺼내지 마세요."


"썩을 놈...."


무당 아저씨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동동주를 한 사발 들이켰다.


박형사는 술이 센 것 같았다.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바른 자세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성태, 너는 하는 일이 뭐냐? 그냥 노는 것 같던데..."


박형사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을 한 번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여자나 밝히고, 술이나 밝히고...몹쓸 짓도 많이 하고...그렇게 사는 놈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늙어 죽을 때까지?"


"저도 이젠 이 생활 청산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뵐 면목도 없구요..."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박형사는 조용히 술 한잔을 들이켰다.


"이봐...젊은 친구..남자가 살면서 조심해야 될 세 가지가 있어."


무당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뭐요?"


"혀끝, 손끝, 고추끝..."


"뭔 말이예요?"


"혀끝은 술조심하라는 소리고, 손끝은 도박조심하라는 소리고, 고추끝은 뭔지 알지?"


무당은 능글스런 웃음을 지으며 나의 답변을 기다렸다.

나는 빠딱한 자세로 반쯤 감긴 눈을 치켜들며 답했다.


"포경수술 조심하라구요?"


"에라이...썩을 놈."


무당은 능글스런 웃음을 지우고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켰다.

나의 대답에 박형사가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이 때 포장마차 안에 있던 TV에서 귀에 익은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첫 뉴스입니다.

ㅇㅇㅇ동 스탠드바와 관련된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회 상류층이 연루된 최악의 섹스스캔들 사건으로 전국이 시끄럽습니다.

대기업 임원, 병원장, 심지어 시의원까지 연루되어 있는 이번 스캔들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경찰과 검찰은 ㅇㅇ병원 원장 최모씨를 살인교사 혐의와 마약류 관리법 위반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기소할 방침입니다.

또한 스탠드바 대표이사와 운영에 가담한 조직원들에 대해서는 청부살인과 마약류 유통에 관한 혐의를 조사중입니다.

한편 서울시는 ㅇㅇ동 스탠드바의 사업자등록을 말소시키고, 대표이사인 이모씨를 탈세혐의로 경찰에 추가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오늘 오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합동 수사반을 구성하고....."

 

"우리가 뭔가 하긴 했네요."

"그래. 엄청난 일을 한거야."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박형사와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술자리를 끝내고 길거리로 나섰다.

취기가 한참 올라온 나는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비틀거렸다.

박형사는 내 손을 한번 굳게 쥐더니 작별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고, 다시는 경찰서에서 만나는 일 없길 바란다."


"형사님도 잘 지내세요. 딸꾹.....딸내미 이쁘게 키우시구요...

그리고 나 같은 남자친구 만나지 않기를 바래요.."


"허허.....그래야지"


내 몸은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정신만은 멀쩡했다.


"이봐, 젊은 친구. 다시 한번 생각해 줄 수 없나? 나하고 일하는거..."


무당의 집요함은 여전했다.


"무당 아저씨....아니 법사니....이임!!! 나중에 귀신 나타나면 찾아갈테니 부적 하나 잘 써주세요.

그거 효과 있던데요. 딸꾹...."


"에라이...썩을 놈. 잘 가라 이 놈아!!"


나는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차를 기다렸다.

오늘은 이 몸으로 버스를 탔다가는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였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뒷좌석에 기댄 나는 몸을 최대한 눕혔다.


"어디로 모실까요?"


"ㅇㅇ동, 오피스텔이요...."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거다. 오늘은 아버지 집에서 자고 싶었다.


"아저씨....거기 말고, ㅇㅇ동 ㅇㅇ아파트로 가주세요."


"네. 안전하게 모십죠..."


지금 이 순간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아직도 내가 정신은 멀쩡하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너무 익숙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아저씨...나 알죠?"


룸미러를 통해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 하였으나 그가 보이지 않았다.


"고맙소. 젊은이....오늘 요금 뿐만 아니라 그 전에 빚진 27000원도 받지 않으리다."


나는 순간 가슴이 미어져 왔다.

택시 안에 안개같은 것이 자욱했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노트북에서 보았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 속에서 사고 후 나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그냥 내 발로 대로를 건너 수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내가 타고 갔던 이 택시는 가짜였던 것이다.

온 몸에 거부감이 몰려올만도 했지만 나는 이내 편안한 감정을 되찾았다.

그의 의미심장한 감사의 표시 때문이었다.

나는 최대한 편안한 감정을 유지하고, 너무나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나연이 아버지죠?"


"허허...알아차렸구랴...정말로 고맙네. 젊은이....자네 덕에 오늘이 나의 마지막 운행이 되겠구려..."


"아저씨....저 지금 걷고 있는거잖아요. 귀신차에 타서......안 그래요?"


"걱정 말게 젊은이. 자네가 다치지 않도록 잘 데려다 주겠네. 그냥 푹 쉬게"


지금 이 순간 나는 택시를 타고 있지만, 어쩌면 내가 위험하게 대로의 한 복판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나는 너무나도 편안하고, 그 때처럼 졸음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아저씨...딸내미 얘기나 해 줘요..."


"우리 나연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너무 이쁜 딸이었다오..

어려서 엄마가 사고로 죽고, 나와 같이 살았는데 정말 힘들었지만 예쁘게 잘 커주었다네...

어려서부터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깨도 주물러 주고, 재롱도 떨고, 심지어 밥도 차려주고...."


기사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연신 딸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편안하게 자세를 취한 나는 기사의 얘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박형사에게 하지 않은 한 가지 이야기 때문이었다.

동영상에는 사고 직후 나이트에서 꼬신 여자가 내리는 모습이 없었다.

그런데 그 여자 얼굴이 기억이 안난다.

그냥 나이트에서 꼬신 여자라는 기억 뿐......

내가 그 날 나이트에 가기라도 한 걸까?

원래 난 나이트에서 그렇게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지 않는데?

그리고 내가 왜 반대편 차선을 달리다가 돌아온 거지?


이 때 문자음이 울렸다.


-오빠, 고마워 ^^-


"후~~~"

긴 한숨이 쏟아졌다.

문자가 찍힌 액정화면을 수십 차례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따님 번호가 010-7649-xxxx번이예요?"


나의 물음에 딸 자랑에 여념이 없던 기사가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려 답했다.


"우리 딸이 문자도 참 애교스럽게 보낸다오...."


씨익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 섞인 너털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택시는 신나게 도심 한가운데를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끝-

 

 

 

더 좋은 작품 찾아서 다음에 뵈열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