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김형석2012.03.15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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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약졸의 백미! 봉은사에서 추사를 찾다

 

 

봉은사에 가면 판전(板殿)이라는

딱 두 자 현판 글씨를 보고 오너라.

서툴고 졸렬하다.

지독히 못생긴 저 글씨에

내 심장 그만 멎는다.

붓 천 자루가 닳아 몽당붓이 되고

벼루 열 개가 닳아 구멍이 뚫렸다.

이만한 수고도 없이

추사 솜씨 얻었겠나!

 

추사/장석주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추사의 마지막 유작과 조우하는데

몇년이 걸렸는가?

 

서울 출장 올 때마다...

봉은사에 들리어 '한번 보아야지' 했었는데

직접 친견하는데 십여 년이 흘렸네 ㅎㅎ

 

지금이야 강남의 한복판이지만

예전에는 뚝섬까지 나가서 배를 타고 건너서 들어와야 했던

삼성동 천년 고찰(古刹 봉은사...

절 이름에 '봉'이나 '국'이 들어가면 왕실과 나라와 관련이 있는 사찰이다.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봉은사 [奉恩寺]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에 속한다. 이 절의 기원은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견성사(見性寺)이다. 그뒤 1498년(연산군 4)에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라고 절이름을 바꾸었다. 1551년(명종 6)에 문정왕후(文貞王后)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보우선사(普雨禪師)를 이 절의 주지로 삼았다. 이때 양주(楊州)의 회암사(檜巖寺)를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으로 삼는 동시에 봉은사는 선종수찰(禪宗首刹)로, 봉선사(奉先寺)는 교종갑찰(敎宗甲刹)로 하는 승과(僧科)를 부활하여 불교재흥정책을 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병화를 입어 소실된 것을 1637년(인조 15)에 경림(敬林)과 벽암(碧巖)이 중건했다. 1665년(현종 6)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92년(숙종 18)에 왕실의 시주로 중건했으며, 1747년(영조 23)에 다시 왕실의 시주로 상헌(尙軒)과 영옥(穎玉)이 중수했다. 1789년(정조 13)에는 선욱(善旭)과 포념(抱念)이, 1825년(순조 25)에는 경성(鏡星)과 한영(漢映)이 중수했다.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실화(失火)로 주요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주지 도평(道平)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판전(板殿)·명부전·법왕루(法王樓)·심검당(尋劍堂)·북극전(北極殿)·만세루·천왕문(天王門)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지정사년명(至正四年銘:1344)이 있는 고려청동누은향로(高麗靑銅縷銀香爐:일명 烏桐香爐, 보물 제321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가 있고, 판전에는 철종 때 영기대사(永奇大師)가 조각한 〈화엄경소〉를 비롯한 〈금강경〉·〈한산시〉·〈유마경〉 등 많은 목판본이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1392년에 주조한 동종이 있다.[사전 자료]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대웅전에 들린 후...

보살님들에게 물어물어 경내의 판전을 찾았다.

다들 잘 모른다고 했다???

 

절에 오는 목적(?)이 다들 다르니 ㅎㅎ

 

 

봉은사 개조심 / 임희구

 

봉은사 다들 아시죠

신라 때 연회 스님이 견성사란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는 봉은사

흔히들 이런 절을 천년고찰이라고 부릅니다

연회스님은 신라의 고승으로

늘 법화경을 읽고 보현관행을 수행하였는데

정원의 연꽃이 피어 항상 시들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렇게 유서 깊은 절이

삼성동 73번지 큰길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뭇 중생들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이지요

그 봉은사 경비실 담벼락에

개 만지다 물리면 책임지지 않습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고승의 화두 같기도 하고

선방 스님의 선문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

쓸데없이 개를 만지려다 물린 사람과

책임지지 않겠다는 절간의 경비들이

고만고만하게 모여서

한바탕 재밌는 일이 벌어질 만도 한데

일이 커지면

도량 넓은 스님들이 발뺌이야 하겠습니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개한테 물리면 아프니까

봉은사에서 책임져준다고 해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소주 한 병이 공짜], 문학의전당,  2011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대교약졸의 백미! 봉은사 추사 김정희의 판전

 

71세, 병중에 쓴 판전(板殿)

이 글씨를 쓰고 추사는 3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한

유홍준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문장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최고의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책에서 본 판전이란 추사의 글은 충격적이었다.

추사체라는 독보적인 경치에 이른

서예의 대가 김정희의 글씨라고 믿기지않고

내가 발로 쓴 것 같은 촌스러움(아, 이 경망스러운 표현?)

 

고졸미, 대교약졸, 무위자연의 졸박미(拙樸美),

노인이 아이처럼 동양적 순환 사고 등 수많은 표현력에도

머리는 움직였는데 가슴은 움직여지지 않았던 경험^^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귀양, 유배, 위리안치...고독, 외로움에 학예일치! 예술이 위안? 은신처?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우했던 천재의 마지막 흔적...

봉은사 판전.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유배지에서 보내는 김정희의 편지/정일근
-이천 리 대해 밧게 잇난 마암

세한도를 그리는 밤 오늘따라 대정바다는 참으로 고요합니다 부인. 지난 달 초사흘 가복을 통해 보내주신 서책과 편지를 이 달 하순 늦게야 반가이 받아 읽으며, 이순 나이에도 천 리 뭍길과 천 리 물길 큰 바다를 건너온 그리운 묵향 내음에 그만 울컥 눈물이 솟아올라 한참이나 바다에 나가 망망한 제주바다 끝을 바라보며, 그 끝 너머 지붕과 흰 옷 입은 사람들과 낯익은 길들이 하마 뵐까 돋움 발을 하며 오래오래 서 있었습니다. 대저 그리움이란, 불시에 찾아와 대정마을 마른 풀 한 포기, 버려져 잠든 돌멩이 하나 남김없이 흔들어 깨워 윙윙윙 울리다가 바다로 달아나는 붙잡을 수도 없는 무형의 저 겨울바람만 같아, 문득문득 지난날들이 찾아로 때면 참으려 참으려 해도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들을 이제는 오랜 버릇인양 어찌할 수 없습니다. 부인 오늘 저녁도 더운 물에 찬밥을 말아 먹고 내 배소 앞 늙은 소나무에 기대러 서서 날 저물고 샌다한들 내 이름 부르며 찾아올 이 없는 위리안치, 이보다 이천 리 밖 더욱 쓰리고 아픈 마음으로 외로울 그대를 생각하였습니다. 일찍이 정치와 당을 멀리하고 시와 글씨에 열중하였더라면 뜬구름 같은 한세상 은은한 묵향과 힘찬 시문으로 경영하며, 이렇게 늙어 서로 쓸쓸하고 등 시린 이 나이에 작은 초가 한 칸으로도 넉넉할 것을, 마주 대는 한 뼘 등덜미로도 치운 겨우살이 또한 지극히 따뜻할 것을, 이 밤 늦도록 홀로 먹을 갈아 세한도를 그리며 언뜻언뜻 덮쳐오는 살아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죽음의 아득한 예감들을 애써 떨치며, 뒤돌아보노라면 내 배소 뒤 대밭 사이로 쏴쏴 몰려가는 겨울바람 소리보다 더욱 허허로운 지난 세월들을 하얀 여백으로 비워 봅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 사랑하며 살아갈 날들 또한 하얀 여백으로 묵묵히 남겨 둡니다.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저녁시간이 다가오니...

삼라만상을 잠 재우려는 법고, 목어, 범종을 치는 시간...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1
조선낫으로 내 그리움을 다스릴 수 있다면 유월의 잡풀목대궁 싹둑싹둑 잘라버리듯이 이 막막한 사랑의 갈증 모두 베어버리겠네 사람아 나는 아직도 첫눈에 가늠하지 못하는 바다의 里數(이수)처럼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속에 서 있나니 눈멀고 귀먹은 날에 사람아 먼 나의 사람아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2
바람이 부는 날의 저물 무렵에는 바람이 되어 그대에게로 가겠다 그대는 유배지에서 바라보는 그리운 내륙의 먼 불빛이거나 그 마을의 아궁이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장작불이다 다시 그 마을로 가기 위하여 나는 바람이고 싶다 그대에게로만 부는 더운 바람이고 싶다

-정일근/편지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의 곧고 시들지 않음을 잘 알게 된다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추사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글귀 中

 

 


대교약졸의 판전, 봉은사에서 추사 김정희를 찾다

 

 

오늘따라 문득,

추사의 세한도가 보고 싶다!

 

국립박물관에 가보아야 하겠다, 다음엔......

 

세한도(歲寒圖)

詩. 정희성

1. 송(松)-완당의 그림을 그리며
참솔가지 몇 개로 견디고 있다
완당(阮堂)이여
붓까지 얼었던가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추위가 이 속에도 있고
누구나 마른 소나무 한 그루로
이 겨울을 서 있어야 한다


2. 죽(竹)
참대 한 줄기
수식어도 사양했다
겨울이여 생각할수록
주어는 외롭고
아아, 외쳐 불러
느낌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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