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번 버스에서 취객으로부터 구해주신 시민여러분 감사합니다!!

배우될거야2012.03.15
조회129

 

 

 

판은 항상 보기만 했지, 써보기는 처음이네요 :D

음슴체가 편하지만 제 마음이 장난으로 보일까봐 안 쓸게요~

길어도 읽어주세요!

 

 

 

 

 

다름이 아니고 오늘 겪은 일을 한 번 써볼까 해서 키보드를 잡았어요

일단 제 소개를 하자면.. 연극영화과를 준비하다가 이번에 쓰디쓴 결과를 받은 19살 재수생(빠른 생일)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들어요 엉엉엉엉엉엉

그래서 일단 급한게 돈이니까 집(중계동)에선 조금 거리가 있지만 돈 많이 벌 수 있는 알바가 있는 청량리로 취직했어요

 

 

문제의 1224번 버스는 청량리에서 중계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라 퇴근할 때 애용하는 버스입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길에 1224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있길래 엄청 허겁지겁 뛰어서 탄 버스라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힘드니까 빨리 앉고 싶다! 자리주삼~~'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빈자리를 찾는데 빈자리의 옆자리에 앉으신 아저씨가 굉장히 술에 만취하셨더라구요

껄끄럽지만 앉았습니다

'난 한 40분 타고 가야 하는데 그 아저씬 금방 내릴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mp3를 듣고 있는데 간주가 들릴때쯤 아저씨의 중얼거리시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뭐지?하고 이어폰 한 쪽을 빼고 아저씨를 쳐다봤습니다

아저씨는 뭐라 중얼 중얼 거리시다가 제가 쳐다보는 게 느껴지셨는지 저에게 말을 거시더라구요

연극영화과 지망생들은 아시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저희의 끝나지 않을 숙제이죠

더군다나 술취한 사람이니까 더 좋은 경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 듣고 있는데 역시 술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구요 XD

 

알아듣는 척 하면서 계속 대화를 하는데 처음에 자기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한테 실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론 실례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어렵지만 모든 걸 이해할거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되게 좋으신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저 말 이후에 알아듣겠는 말이 없어서 계속 알아듣는 척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처음엔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까 아가씨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보인다' 하시더라구요

상처.....ㅋ...............................ㅠㅠ

고등학교 갓 졸업했다 하고 재수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마자 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시다가 '너가 정 원하면 술 사줄게 우동도 사주고 원하는 거 다 사줄게' 이러시더라구요

전 전혀 술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됐다고 저 술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화제를 돌리시더라구요

'재수하는 거 우리 딸한테 말해서 우리 딸이랑 상의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자'

...제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 모르겠어요 뭐라고 하시는지;; 하니까 갑자기 제 핸드폰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기분이 이상해져서 저는 청소년 요금제라 지금 요금을 다 써서 없어요 ㅎㅎ;; 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왜 그러고 사냐고 그러지 말라고 좀 인생 쉽게 살라고 하시더라구요

되게 가슴에 와닿는 얘기다 싶었는데 자신의 핸드폰으로 딸에게 전화를 거시더라구요

'술 마시고 버스타고 집가는데 어떤 아가씨를 만났다 그 아가씨가 재수를 한다 너랑 통화시켜주겠다' 하시고 바꿔주시대요

엄청 당황해서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하니까 딸분께서 '아버지가 술 마시셔서 죄송해요... 아버지 바꿔주세요'해서 '네...'하고 도로 드리니까 짧게 통화하다 끊으시더라구요

 

계속 가고 있는데 어디까지 가냐길래 당연히 저희 동네까진 안 오실 줄 알고 '네 ^^ 저 중계동 xx아파트에서 내려요'하니까 자기는 한 정거장 전인 '노원경찰서 xx여고'에서 내리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더니 다시 술먹자 하시더라구요 자기 딸 부를테니까 셋이 먹자고...

싫다 싫다 하는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난 술이 좋고 여자가 좋으니까 가야 한다' 하시대요

...점점 무서워지더라구요

하계역부터 딸한테 계속 전화해서 'xx아파트로 나와라, 여기 있는 아가씨랑 셋이서 술먹자' 하셨어요

 

그 다음부터 계속 심기 불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수하는 거 창피한 거 아니다 누가 뭐라 하냐 공부해라 공부 해야 한다

...전혀 안 창피하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공부도 할만큼 하는데... 운이 안 따라줘서 입시 결과 좋지 않은건데... 표정관리가 슬슬 안되더라구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나 재수한다고 시끄럽게 하시니까... 재수하는 게 창피하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 속상한데...

하지만 퇴근길 사람 많은 1224 버스 안에서 사고 치기 싫었고, 혹시나 나중에 큰 배우됐을 때 '버스 막말녀' 하면서 이미지 안 좋아질까봐 참았습니다

그리고 일단 따님분께서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죄송하다'하시는 말씀때문에 나도 아빠가 있으니 우리 아빠 이런 일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발상의 전환으로 내릴 쯤 됐을 때 아저씨가 먼저 일어나시면 아저씨 내리시고 앗싸리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아저씨가 먼저 일어나시더라구요

그래서 '오예 하늘은 내 편이다'하며 계속 앉아있었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내리자 안 내려? 빨리 내려 여기야 내려야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가세요 안녕히가세요 내리세요'하는데 아저씨 닫히는 문에 걸쳐스셔서 계속 안 내리시더라구요

시민분들은 처음에 상황파악 하시다가 아저씨한테 '내리세요, 지금 도대체 몇사람의 시간을 뺏고 있는 거예요? 예? 술 취했으면 들어가세요, 내리시라구요 민폐부리시지 마시고, 안내리실거에요? 안 내리실 거면 타세요' 하면서 욕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아저씨 화나서 저 말고 그 시민분들께 욕을 막 하더라구요

한 1~2분간 싸웠을까요

전 점점 무서워져서 패닉이 와 더이상 가시란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시민분들은 저한테 욕하시지 않으시더라구요

엄청 죄송한 마음 뿐인데 그래도 너무 고마웠어요

안 내리실 거면 타세요 하실 때는 솔직히 조금 무서웠는데 기사분께서 내리셔서 '아저씨 내리세요'하니까 그제서야 저한테 '너 그렇게 살지마 ㅆㅂ ㅈ같아'하면서 욕하시고 가시더라구요

 

버스가 출발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는 것 뿐...

엄청 서럽게 우는데 옆에서 어떤 언니가 안고 토닥여주면서 '너무 놀랐구나... 원래 어디서 내리니? 같이 가자 내려줄게 데려다줄게' 하시더라구요

어떤 아주머니랑 같이 데려다주시는데 너무 감사하고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두 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

아까 경황이 없어서 감사하다고 말도 못드렸는데 너무 감사드려요 정말 진심으로...

덕분에 앞으로 이런 상황을 보게 된다면 저의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짱

 

PS  따님분 죄송해요...

남의 아버지 이런 꼴 보이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처신 잘해야 했는데 진짜 죄송합니다...

혹시나 이 글 보신다면 정말 고개숙여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