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비밀번호 4자리

폭지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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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51분

문자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맑고 경쾌한 한 소절의 띠로롱띠로리링.

- 너의 흔적들은 행당역 37번 보관함에 들어있어. 비밀번호는 3698이야.

어쩌면 이리도 비밀번호까지 그녀다울까? 그는 생각한다. 그녀는 언젠가 말했었다.

“비밀번호를 1111이나 3333처럼 같은 숫자 네 자리로 해 놓는 사람들은 너무 일차원적인 것 같아. 같은 숫자 4개를 반복해서 누르다 보면 자연스레 하나가 덜 쳐지거나 더 쳐질 수 있어. 그렇다고 1234를 하자니 사람의 신체는 운동기능상 가로로 가는 것보다 세로로 가는 쪽이 훨씬 자연스럽게 설계되어 있거든. 중력에 의해서도 그렇고.”

그는 이런 그녀를 사랑했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이기적으로 보일 때조차 그녀는 항상 타인을 배려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체로 독특한 존재였다. 고작 3개월을 만났지만 독특하지 않음이 그녀 자신에게는 가장 독특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일 것이라는 명제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2580을 설정하지 않은 건 일렬로 선, 그 단조로움 때문일 것이다.

 

오후 2시 52분

그의 시나리오에 빠진 것은 무엇일까? 모든 창작하는 직업인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와 시나리오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인생처럼 그의 영화 역시 뭔가 하나 빠진 듯한 허술함이 그를 막막하고 답답하게 했다. 아니, 어디 빠진 게 하나 뿐이던가? 채워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지 않은가? 돈과 명예, 연애와 사랑, 가족과 직장, 어느 하나 내가 가져본 일이 있었던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그는 한없는 슬픔에 차 올랐다. 끝없는 자괴감이 그를 당장이라도 저 푸른 강물에 빠지게 할 성 싶었다. 그는 부와 명예를 획득하고 싶진 않았지만 배고픔 없을 만큼의 돈은 있었으면 했고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까진 바라지도 않았으나 가슴의 허기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연인 정도는 곁에 둘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돈을 가져야 했다. 벌어야 했다가 맞는 표현일까? 혹은 훔쳐야 한다? 로또의 행운 같은 것도 일찌감치 접었다. 어렸을 적, 50원짜리 뽑기를 할 때조차 ‘꽝! 다음 기회에’라는 문구 외엔 구경한 적이 없지 않았던가? 그 흔한 음료 뚜껑의 박카스 한 병도 걸려본 적 없는 그가 아니던가? 

순간 어디선가 떠내려 오다 강가 풀섶에 여차저차 걸린 듯한 박카스 병을 닮은 어느 비타민 음료의 주황색 뚜껑이 보였다. 그의 걸음으로 세 걸음쯤 앞일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성큼 걸어가 냉큼 집어 들었다. 이런! 그에게도 행운이 찾아 오다니! 심지어 직접 사서 돌려 딴 것도 아닌데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세상에 고마웠다. 그는 티셔츠 자락을 당겨와 조심스레 그 뚜껑을 닦아 낸다. 이미 그에게 뭔가를 주웠다는 아주 약간은 부끄러울 수 있는 사실에 대한 인식 따윈 사라진지 오래다. 대충 젖은 흙과 먼지를 털어낸 뚜껑을 오른쪽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오후 2시 56분

편의점을 제외한 수퍼에선 맘껏 바꿀 수 있다니 칼칼한 목이나 축이자 싶어 엉덩이를 들었다.  

“신발.”

30분 안에 두 번째 신발을 외치기란 욕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하필이면 누군가 뱉어놓은 껌이 아직 채 굳어 버리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버린 불운이란 무언가? 역시 행운은 그냥 오지 않는 걸까? 세상은 항상 그렇다. 사람들은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을 하면서 동시에 전화위복, 고진감래 따위의 상극적인 말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곤 서로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열심히 싸운다. 하지만 겉으로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가지 옛말들은 전부 맞는 말이다. 원래 불행이란 동시에 온다. 그리고 그 모든 불행이 끝날 때쯤,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고 이 한 목숨 기꺼이 던져 버리고 싶을 때쯤, 사소하지만 기쁜 소식이 어디선가 파랑새처럼 날아 온다. 이것이 바로 신, 절대 존재가 인간이란 미약한 생물체를 길들이는 방식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세상은 양극의 원리로 돌아간다.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논리가 있다면 바로 양극 원리 외엔 없다. 어느 하나의 힘이 커지면 그에 반대되는 세력이 반드시 생겨난다. 양극단에서 각각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팽팽한 싸움과 조율의 의지에 의해 사건이 발발한다. 큰 하나의 선이 있으면 반드시 악의 세력이 생겨나고 반대 극에 자리잡은 선의 세력만큼 커지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이 커지면 그 행복이 금새 달아날 듯한, 사랑의 대상이 떠날 듯한 예기 불안도 커지고, 사랑의상에게 화가 나면 화를 식히려는 반대의 마음이 생겨나 그 두 가지 양극의 마음이 치열하게 싸운다. 자기 안에 우주가 있다. 이 세상엔 사람 인구수만큼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타인의 세계를 인정해 주지 못 하면서 어찌 자신의 세계가 받아 들여지길 원하는가? 그는 돌이켜 본다. 나는 얼마만큼 그녀의 세계를 수용했던가, 혹은 인정했던가? 잘 모르겠다. 그는 그의 세계조차 존재하는지 어쩐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다. 만약 그의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지금 그의 마음은 그녀를 사랑했던 과거의 공간과 그 공간을 잃어버린 현재의 반대 공간이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중이다. 이 싸움이 더없이 치열해서 그는 모든 것을 공(空)으로 돌리고만 싶다. 허나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죽음인들 공이 될까? 제발 벌써 십수 번을 침과 강물을 묻혀 문질러대는 이 껌딱지나 공이 되었으면 싶었다.

 

오후 2시 58분

껌을 떼어 내느라 신발거리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물티슈를 내민다. 발톱에 곱게 발린 진녹색의 엄지 발톱이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난다. 굽이 낮은 샌들 안에 곱게 놓인 작은 발이 주는 느낌은 그러했다. 그다지 큰 키는 아니었으나 왠지 커 보일 듯한 그 여자는 분명 얼굴이 작을 것이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는 데는 약 0.337초가 걸렸으리라 본다. 생물학적으로 일단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져 있는 인간과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데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있을까? 그는 생각한다. 물론 그가 그 작은 발의 여자와 사랑에 빠질지 어떨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일 테지만.

 “혹시 신감독님?”
 “저, 누..누구…”
 “저 지난 번에 추감독님이랑 영화 같이하실 때 영화음악 담당했던 승민이예요.”
 “아, 아..안녕하세요?”
 “그나저나 이것부터 좀 받아주실래요? 껌 붙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제가 떼어드리긴 좀 곤란하네요. 푸훗.”

그는 직업적 특성상 사람의 얼굴을 보는 데 남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냥 예뻐서는 다소 부족하고 일단 카메라 안에 제대로 잡힐 수 있어야 한다. 연극적 얼굴과 영화적 얼굴은 또 다르다. 탤런트와는 좀 더 다르고 모델과는 별개다. 영화배우로 선택되려면 이목구비가 뚜렷한 큼직큼직하게 화려한 얼굴보다는 화장, 조명, 표정에 따라 다양하게 변신이 가능한 매력을 지녀야 한다. 그의 개인적인 선호나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물론 캐스팅 디렉터나 감독들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포인트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가 가장 크게 사는 매력은 바로 그 점이다. 그래서 그에게 각인되는 얼굴은 대체로 무난하고 이목구비가 흐릿한 편이다. 그는 그의 영화를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배우를 원했다. 승민이란 여자가 바로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에게 별다른 각인을 남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너무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게다가 확실히 황인종임을 증명하듯 뽀얗지도 검지도 않은 어중간한 피부색은 그저 그랬다. 얼굴은 작았지만 역시나 얼굴처럼 작고 좁은 어깨 덕택에 왕방울만치 큰 눈이 그녀 전체의 면적에서 차지하는 모든 부분에 비해 먼저 각인되고야 마는 그냥 귀여운 여자애 같은 느낌이었다. 진녹색의 패티큐어와 굵게 웨이브진 갈색 머리칼은 자라다만 여자애가 굳이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부조화스러워 보였다. 그냥 생머리의 단발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침투할 때쯤 열심히 문질러댄 탓에 바지 뒤춤의 껌딱지가 대충 떨어져 나갔다. 어쨌거나 승민의 물티슈 덕분에 누군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을 때 이 말라붙은 너저분한 자욱이 덜 마른 껌이었을 거라고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얼룩만이 남았다.

 

오후 3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글쎄요, 여기가 어디죠?”
 “어디긴요. 여긴 그냥 한강이예요.”
 “아 네....네?”
 “한강이 한강이지 어디가나요? 한강이 남한강이 되고 섬진강이 되나요?”
 “……….”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되묻는 물티슈 아가씨 앞에 그는 할말을 잃고야 만다. 네비게이션이나 포털맵들이 찍어주는 좌표까진 아니어도 대충 어느 동, 어느 다리 아래인지 정도는 대답해 주었으면 싶었던 것이다. 오늘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들은 왜 이리도 쌩뚱한 것인가? 마치 갑자기 나타난 음료 뚜껑도 껌딱지도 다 같은 맥락에 있는 듯한 개연성없는 착각마저 든다. 사실 인생에 개연성 있는 일들이 과연 있었던가? 전부 우연들이 모여 생긴 이유 있어 보일 뿐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벌어지는 일들 아니던가? 이토록 법칙 없는 세상사 속, 기승전결의 구조를 짜맞추어야 하는 영화 작업은 그에게 어쩌면 유일한 통풍구였다. 관객들은 어설픈 스릴러를 바라지 않는다. 심지어 바람처럼 찾아와 티격태격 싸우다 부부가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로맨스나 뚱딴지 같은 사건으로 서로의 심정을 확인하고 눈물 흘리는 드라마에서조차 타당성을 찾는다. 

아무래도 승민은 상대를 할 말 없게 만드는 데는 타고난 재주가 있나 보다. 승민의 음악들도 그랬다. 베이스를 전공했다는 그녀는 일반적으로 피아노나 작곡을 전공하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과는 다른 곡들을 만들어서 가지고 왔는데, 덕분에 추감독은 항상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과연 이게 이 장면에 어울려? 엔딩씬에 이 곡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항상 일관되게 글쎄였다. 신기하게도 그냥 들었을 땐 뭔가 영 어색하고 조화롭지 않던 소리들이 화면에 녹아들면 물과 기름이 계면활성제에 의해 용해되듯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3시 9분, 포장마차

“전 가끔 여길 산책 나와요. 그리곤 여기서 떡볶이나 오뎅 같은 걸 사먹곤 하죠. 그럼 그날 오후는 희한하게 배가 고프지 않더라구요. 그리곤 작업이나 연습에 몰두할 수 있어 좋아요. 아마 여기 공기가 다른가 봐요”
 “네, 맛있네요.”
 “이모, 저 혹시 맥주 좀 사와서 먹으면 안 되요?”
 “뭘 또 묻고 그래. 하던대로 햐.”
 “아이 참, 오늘은 한 분이 더 계시잖아요.”

 승민은 정말 단골인가 보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따라오다 보니 어느 새 이곳에 앉아 있다. 얼떨결에 따라온 곳이지만 더 이상 넋을 놓고 있다간 아예 혼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얼른 정신을 차리기 위해 나온 말을 뱉는다. 

 “아, 맥주는 제가 사 오겠습니다.”
 “그러실래요? 저기 모퉁이 보이시죠? 돌자마자 편의점이 보일 거예요.”
 “저는 버드와이저요!”

저토록 여유롭게 거의 처음 보는 것과도 다름없는 남자에게 맥주 상표까지 서슴없이 말하며 맥주 배달을 시키는 능청스러움이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미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랑 주고받는 대화에서 거침없는 넉살을 목격해 놓고도 그는 여전히 어이가 없다. 고작 3천원 남짓 분식을 먹으며 5천원 가량의 맥주를 사들고 와 마시는 승민이란 여자의 정체는 무얼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