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사가 질문하길 6.25전쟁에 아프가니스탄이 참전한 사실을 알고 있냐고 대뜸 물어봐서 조철호 회장은 un에 속해있는 한 나라인건 알고있다 라고 답했었고,
그 다음 질문에 머리를 해머로 맞은듯이 머리가 띵 해지더란다.
그 질문은
“그 참전 용사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있는 줄 아십니까?“
였고 이 질문에 답을 못하는 회장을 보고 목사가 말을 이었다.
“죽어가고있습니다.“
라고 말을해서
조철호 회장은 그 자연속에 사는사람들은 생명이 길지않은데 아직도 살아있음에 의아함을 느끼며 나이로 따지면 70후반 80초반일테니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더란다.
그때 목사가 다시한번 질문한 내용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현재는 죽어가고 있는 용사들을위해 한국정부는 아무것도 하지않은걸 알고 계십니까?“
라는 내용이였다.
이 부분이 조철호 회장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부분이고, 강의를 듣는 나도 분노를 느꼈고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정부가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인가. 소중한 것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에디오피아에서 한국에 오기까지는 배로 꼬박 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 사이에 병으로 죽은 병사도 한 명이 발생했고, 그 배에 타있던 지휘관은 에디오피아 가장높은 직위를 호위하는 호위대였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돕기위해 추위를 경험해보지 못하는 나라에서 전쟁당시 한겨울이였던 우리나라에 6000명의 전사들이 오게 되었고 (그때의 에디오피아병들은 아무리 엇을껴입어도 불을 쬐고있어도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결험했다고 한다.), 강원도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1백21명이 사망하고 5백36명이 부상을 당했다. 포로는 단 한명도 생기지 않을정도로 용맹한 전사들이였다.
참전용사들은 귀국한 후 참전용사들만을 위한 지역이 마련되었고 보장되었다. 하지만 후에 쿠데타가 일어난 후 에디오피아는 공산주의국가로 변하였고 그들도 잊혀지게되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전쟁이후로 아무런 말 한마디조차 건내지않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던 조철호 회장은 그 즉시 간부회의를 소집하여 에디오피아에 기자단을 파견했더란다.
몇개월 후 돌아온 기자는 복귀신고를 할 때 울면서 했더란다.
그 이유는 에디오피아에 도착을 했는데 전쟁에 참여한 이제는 노병이 되버린 100여명 남짓의 참전용사들이 오와열을 맞춰서 가슴엔 훈장이 달린 상처가 그대로 간직되어진 낡은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불렀더란다. 아주 정성스럽게 진심이 마음에 닿도록 애국가를 불렀더란다.
‘우리의 영원한 동맹국 한국‘
복귀신고를 받고 조철호회장은 에디오피아에 가보기위해 공항에 절차를 밟는데 컴퓨터시스템이없어 ‘볼펜 한자루‘로 두사람이 종이에 손수 써서 4시간이걸려 승인을 받았더란다.
에디오피아에 다녀온 후 충북지역에 사랑의 점심 나누기를 처음시행시키고, 1억이라는 돈을 에디오피아에 투자하여 에디오피아에 교육에 힘을 불어넣어줬고 현재도 시행중이다.
그 후에 취재를 하다보니 죽은 100여명남짓의 참전용사들의 묘가 알고 싶어져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지만 모두 대답을 회피했더란다. 수소문 끝에 그 관들은 한 정교회 건물 지하실 창고에 있었다. 놀랍게도 6.25 참전 전사자의 관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나라의 명을 받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사한 군인들인데 , 이들에게는 영면할 한 평의 땅조차 허 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동안 이들 참전용사들 이 얼마나 힘겨운 생활을 영위했을지 짐작 케 해주었더란다.
그 교회에는 대사관도있었는데 어찌 그럴수가있는건지 도저히 상상이 안되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어쩌면 정부대신 정의를 실현하고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이 되어버린 충북지역의사람들 그리고 동양일보 측에 박수를보낸다.
저는 이 강의를 듣기전까지 에디오피아라는 나라에는 커피수출국 이라는 인상밖에없었습니다.
허나 예전과 상반되게 한국은 에디오피아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잘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자세한 내용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한 사건들이 많다는 것은 저도 알고있습니다.
허나, 알리고싶었습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수도 없고 아직도 한국에 충성심을 보여주는 참전용사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또한 여러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후에 대면조차 하지않은 우리나라 정부를 보고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저렇게 붙여 놓았습니다. 내용이 이상한 부분은 더 알아본후 자세하게 수정을 해놓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국가도아니며, 우리는 국민도아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나라도 아니며 국민도 아니다.“
현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이 수 해전 한 목사가 찾아왔더란다.
그 목사가 질문하길 6.25전쟁에 아프가니스탄이 참전한 사실을 알고 있냐고 대뜸 물어봐서 조철호 회장은 un에 속해있는 한 나라인건 알고있다 라고 답했었고,
그 다음 질문에 머리를 해머로 맞은듯이 머리가 띵 해지더란다.
그 질문은
“그 참전 용사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있는 줄 아십니까?“
였고 이 질문에 답을 못하는 회장을 보고 목사가 말을 이었다.
“죽어가고있습니다.“
라고 말을해서
조철호 회장은 그 자연속에 사는사람들은 생명이 길지않은데 아직도 살아있음에 의아함을 느끼며 나이로 따지면 70후반 80초반일테니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더란다.
그때 목사가 다시한번 질문한 내용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현재는 죽어가고 있는 용사들을위해 한국정부는 아무것도 하지않은걸 알고 계십니까?“
라는 내용이였다.
이 부분이 조철호 회장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부분이고, 강의를 듣는 나도 분노를 느꼈고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정부가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인가.
소중한 것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에디오피아에서 한국에 오기까지는 배로 꼬박 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 사이에 병으로 죽은 병사도 한 명이 발생했고,
그 배에 타있던 지휘관은 에디오피아 가장높은 직위를 호위하는 호위대였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돕기위해 추위를 경험해보지 못하는 나라에서 전쟁당시 한겨울이였던 우리나라에 6000명의 전사들이 오게 되었고
(그때의 에디오피아병들은 아무리 엇을껴입어도 불을 쬐고있어도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결험했다고 한다.), 강원도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1백21명이 사망하고 5백36명이 부상을 당했다. 포로는 단 한명도 생기지 않을정도로 용맹한 전사들이였다.
참전용사들은 귀국한 후 참전용사들만을 위한 지역이 마련되었고 보장되었다. 하지만 후에 쿠데타가 일어난 후 에디오피아는 공산주의국가로 변하였고 그들도 잊혀지게되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전쟁이후로 아무런 말 한마디조차 건내지않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던 조철호 회장은 그 즉시 간부회의를 소집하여 에디오피아에 기자단을 파견했더란다.
몇개월 후 돌아온 기자는 복귀신고를 할 때 울면서 했더란다.
그 이유는 에디오피아에 도착을 했는데 전쟁에 참여한 이제는 노병이 되버린 100여명 남짓의 참전용사들이 오와열을 맞춰서 가슴엔 훈장이 달린 상처가 그대로 간직되어진 낡은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불렀더란다. 아주 정성스럽게 진심이 마음에 닿도록 애국가를 불렀더란다.
‘우리의 영원한 동맹국 한국‘
복귀신고를 받고 조철호회장은 에디오피아에 가보기위해 공항에 절차를 밟는데 컴퓨터시스템이없어 ‘볼펜 한자루‘로 두사람이 종이에 손수 써서 4시간이걸려 승인을 받았더란다.
에디오피아에 다녀온 후 충북지역에 사랑의 점심 나누기를 처음시행시키고,
1억이라는 돈을 에디오피아에 투자하여 에디오피아에 교육에 힘을 불어넣어줬고 현재도 시행중이다.
그 후에 취재를 하다보니 죽은 100여명남짓의 참전용사들의 묘가 알고 싶어져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지만 모두 대답을 회피했더란다. 수소문 끝에 그 관들은 한 정교회 건물 지하실 창고에 있었다. 놀랍게도 6.25 참전 전사자의 관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나라의 명을 받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사한 군인들인데 , 이들에게는 영면할 한 평의 땅조차 허 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동안 이들 참전용사들 이 얼마나 힘겨운 생활을 영위했을지 짐작 케 해주었더란다.
그 교회에는 대사관도있었는데 어찌 그럴수가있는건지 도저히 상상이 안되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어쩌면 정부대신 정의를 실현하고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이 되어버린 충북지역의사람들 그리고 동양일보 측에 박수를보낸다.
저는 이 강의를 듣기전까지 에디오피아라는 나라에는 커피수출국 이라는 인상밖에없었습니다.
허나 예전과 상반되게 한국은 에디오피아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잘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자세한 내용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한 사건들이 많다는 것은 저도 알고있습니다.
허나, 알리고싶었습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수도 없고 아직도 한국에 충성심을 보여주는 참전용사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또한 여러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후에 대면조차 하지않은 우리나라 정부를 보고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저렇게 붙여 놓았습니다. 내용이 이상한 부분은 더 알아본후 자세하게 수정을 해놓겠습니다.
절반이상이 신발없이 맨발로 다니는 에디오피아라는 나라.
힘듦속에서 밝게 웃음짓는 그들을보며 우리도 힘을내고
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 그들에게도 사랑을주고싶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