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 저희 아빠 덕분인데요, 저희 아빠는 부산 진구쪽에서 5형제중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아빠께서 국민학교 4학년때즘 1년을 차이로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의지할 친척이라고는 아빠의 할머니밖에 안계셔서 5형제가 할머니와 살았다고 하십니다.
너무 가난하셔서 할머니에게 도시락 싸달라는 말도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우시고
공부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도둑강의도 많이 들으셨데요.
남자가 많다보니 하나쯤은 없어도 되서 다른 큰아버지들 그냥 군대 가실떄 우리 아빠는 특공대 가셨어요.
아빠는 의사가 되고 싶으셨는데 성적 차이로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에 합격하셔서 서울로 오시고 소개로 엄마를 만나서 7년을 연애하시고 졸업하시고 다국적 기업에 들어가셔 일하셨습니다.
약 27살때즘 결혼하시고 2년후에 저를 가지셨고요, 2년뒤에 제 여동생이 태어나고 3년뒤에는 막내 동생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아들이 태어나고 애가 셋이라서 월급쟁이로는 안될 것같아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아빠는 대표이사셔서 진짜 열심히 일하셨어요. 주말구분은 없는건 물론이고 잘 쉬지도 못하셨어요.
접대하신다고 술도 많이 드시고 고기도 많이 먹고 하다가 골프도 시작하셨죠. 그리고 3년후에 사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서 연세대학교 MBA에서 장(長)도 맡으셨어요. 졸업하시고 나서도 아빠는 끊임없이 일하셨어요. 엄마와 제가 쉬라고 해도 아빠는 무시하고 열심히 일하셨어요. 출장도 많이 다니시고 거의
집에 안들어오시고 아빠는 사업하고 나서 항상 12시이상에 들어오셨어요.
골프를 하면서도 아빠는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뭐든지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한 아빠꼐서 지난해 말부터 좀 편찮으셨어요. 덜덜 떨면서 춥다고 하시는데 몸은 열이 나고 등등 안걸리는 감기도 걸리시고 그러셨거든요. 그래도 꿋꿋이 우리 놀러가는거 다 데리고 가고 해주셨어요. 아빠가 과로라서 힘든거니깐 물좋은 시골가서 좀 쉬면 괜찮아질꺼라면서 지난해 말부터 삼촌네 별장과 회사를 왔다갔다 하셨거든요.
근데... 제가 좀 땡깡을 부렸어요. 엄마는 금요일에 서울와서 애들 보고 주말에 동생들을 데리고
아빠 뵈러가셨거든요. 근데 제가 고3이라 격주로 뵈러가는데 그때 학업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빠랑 통화할때 "집에 들어가도 춥고, 반겨주는 사람 없는데... 엄마 아빠도 없는데 "
하면서 징징거렸거든요. 금방 나을줄 알았으니깐요.
그래서 "아빠, 나 대학 들어가면 영어 공부해서 유학도 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울꺼예요."
"아빠, 수능보고 대학 입시 붙으면 우리 여행가요~" 하면서 항상 그랬거든요.
******************************
근데
어제 밤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아빠가 좀 심각한 병에 걸리셨다."
...........췌장암 말기시래요.. 못 고친데요. 짧으면 한 달, 길어야 6개월이래요.
아빠가.. 작년 6월에 황달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 말기이고 6개월밖에 못사신다고 하셨데요.
그때부터 치료받으면 그래도 호전될수 있다 하셨는데, 아빠는 자신이 죽고 남은 우리때문에
우리 살아갈 자산이라던가..전부 정리 해준다면서 치료 안 받으셨데요.
그리고 그 정신력으로 아직까지 살아계신거구요. 근데... 어제 이야기 듣고 많이 울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하고 아빠가 이렇게 일찍 떠난다는 생각 한번 안해보았기 때문에 꿈인줄 알았어요.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와요. 점심쯤에 아빠 뵈러 계시는 아산병원에 갔는데..
갔는데.... 아빠가.. 머리털도 많이 빠지시고 목과 팔 다리는 얇은데... 배에.. 복수만 ..차서..
그러고는 아빠가 남동생을 안아주고 저를 안아주시는데..... 저도, 아빠도 서로 못 놓아요.
못 놓아...떨리는 손으로 머리랑 등을 쓰다듬는데.....하..아빠가..울면서..
한번도 아빠가 우는걸 못 봤었는데... 한번도 그렇게 나약한 아빠를 본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웃으면서 "현서야, 우리 수능끝나고 유럽으로 여행가자."하는데..
웃으면서.. 눈에는 눈물을 그렇게 흘리시면서 애써 웃는데..
안 울려고 했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저도 애써 웃으면서 "아빠 우리 유럽말고 따뜻한 동남아가요"
해도 진짜 눈물이... 그렇게 울었는데 이글 쓰면서 눈물이 나네요.
그러면서.. 아빠가 왜 근래에 많이 웃어주고 (평소엔 잘 안웃어주셨거든요)
왜 그때는 그랬는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딴 말이지만 아빠가 절 학원에서 집으로 차 태워서 데려다 주시면서 그런말을 하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누군지 아냐고.
그래서 남겨진 사람? 하니깐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 "그런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람"이라는거예요.
그때는 아빠 너무 멋있다고 했는데...... 아빠는... 진짜로 그게 두려웠던거예요.
아빠는 숨도 조금 힘들어하시고 말도 많이 어눌해지셨어요. 자가통증제어기도 달고 다니시더라구요.
그래서, 아빠가..자꾸 봐주시면서... 웃으면서. 그렇게 울면서
아직도 아빠의 그 얼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아빠한테 애써 "아빠, 빨리 낫고 우리 스쿠버다이빙 30m까지 내려가요! 아빠가 부탁하면 심야도 할래요"
하는데. 아빠가... "그래... 그래야지.."하면서.. 아빠가...
죄송해요, 말이 길어지네요. 아무튼 아빠 뵈고 아빠가 유언아닌 유언을 하셨어요.
자기는 살건데, 혹여 재수없게 죽게 될지도 모르니깐 하면서.
그러고 엄마는 남고 저희 세남매가 택시타고 돌아왔거든요. 각각 학원과 도서관으로 갔는데
진짜 학원 수업들으면서 자꾸 눈물이 나고. 심지어는 쉬는시간에 무슨 일있냐는 선생님 말씀에
목놓아 울면서 다른 선생님 붙잡고 얘기하는데...진짜 서럽게 울었어요.
수업듣다가도 눈물이 나고, 끝나고 돌아오는데 오늘이 유난히 추웠거든요.
아빠가 데리러 오시던 생각이 나서 거리에서 누가 보던 말던 펑펑 울었어요.
저 집에 아빠랑 치킨먹으러 갔는데, 저 거리를 아빠와 달렸는데, 저기 원래는 아빠랑 자주 가던 식당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아빠의 병이 너무 억울해요. 우리아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달리고
힘들게 다 일궈두었는데... 어렸을때 못받은 사랑 지금 다 받는데...하늘이 원망스러워요.
뭣보다 가장 인생에서 좋을때 이래서 더 원망스러워요.
아빠는 자기가 자초한거라 누굴 탓할수 없다면서...
그래도 전 희망이란걸 잃지 않아요! 아빠 손 발은 정말 따뜻했어요. 그건 혈액순환이 잘되는 거니깐
좋은 징조일꺼예요. 스티븐 잡스도 8년을 버텼는데 왜 우리 아빠라고 못하냐고.
저는 왠만해서 포기가 빠르지만, 그래도 생존율이 한자리 숫자여도 저에게는 너무 밝은 미래예요.
그만큼 이렇게 절실하게 매달려본적이 없어요.
차라리 다 꿈이였으면 좋겠어요. 밤에 외삼촌과 작은 이모꼐서 오셔서 마음 단단하게 먹고
아빠는 나을테니 너네가 잘하면 된다라고 하시니깐 꼭 그럴꺼예요.
아직 저는 아빠에게 누구 앞에서 자랑할만큼 자랑스러운 딸이 된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우리딸은 공부도 잘해 했으면 하는게 제 꿈인데. 여태...제가 아빠께 "아빠, 내가 꼭 아빠 동문이 될테니깐 아빠가 밟았던 그 자리에서 같이 입학사진 찍자고." 말해던걸 꼭 이루고 싶어요.
횡설수설에 이야기가 엄청 길었네요. 하지만 그만큼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분이예요.
지금 이순간에도 저보다 더 안 좋은 처지의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우리 아빠는 정말 살리고 싶어요.
우리아빠 나이 50도 안되셔서 이렇게 쉽게 보낼순 없어요. 긍정의 힘으로 가망이 없던 사람도 살려냈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택시기사 아저씨에게도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릴 정도니깐.
저희 아빠 성함은 이자 성자 춘자 이십니다. 아직도 쓰면 저에게 너무나도 든든하고 멋진 이름이예요.
읽어주시고 저희 아빠, 기도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터치기능만 있는 폰의 프리존에서 판을 알고 처음으로 인터넷에 글쓰네요.
그래서 카테고리를 잘 모르겠지만, 우선 문제되면 바꿀께요.
지금은 진정됐긴 했는데 아무래도 감정이 북받쳐오르면 글이 길어질것 같아요.
그래도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결론은 * 밑에 해놓을께요.
저는 서울에 거주중인 1남 2녀 중 장녀인 고3 여학생입니다.
우선, 저는 풍족한 환경에서 태어나 잘 자랐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엄마와 아빠께서 심하게 싸운적 없으시고, 이사도 중학교때 한번가고 빚이라던가
불륜이라던가 친척관의 관계같이 불편함 하나 없었습니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할수 있어요.
이게 전부 저희 아빠 덕분인데요, 저희 아빠는 부산 진구쪽에서 5형제중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아빠께서 국민학교 4학년때즘 1년을 차이로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의지할 친척이라고는 아빠의 할머니밖에 안계셔서 5형제가 할머니와 살았다고 하십니다.
너무 가난하셔서 할머니에게 도시락 싸달라는 말도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우시고
공부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도둑강의도 많이 들으셨데요.
남자가 많다보니 하나쯤은 없어도 되서 다른 큰아버지들 그냥 군대 가실떄 우리 아빠는 특공대 가셨어요.
아빠는 의사가 되고 싶으셨는데 성적 차이로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에 합격하셔서 서울로 오시고 소개로 엄마를 만나서 7년을 연애하시고 졸업하시고 다국적 기업에 들어가셔 일하셨습니다.
약 27살때즘 결혼하시고 2년후에 저를 가지셨고요, 2년뒤에 제 여동생이 태어나고 3년뒤에는 막내 동생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아들이 태어나고 애가 셋이라서 월급쟁이로는 안될 것같아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아빠는 대표이사셔서 진짜 열심히 일하셨어요. 주말구분은 없는건 물론이고 잘 쉬지도 못하셨어요.
접대하신다고 술도 많이 드시고 고기도 많이 먹고 하다가 골프도 시작하셨죠. 그리고 3년후에 사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서 연세대학교 MBA에서 장(長)도 맡으셨어요. 졸업하시고 나서도 아빠는 끊임없이 일하셨어요. 엄마와 제가 쉬라고 해도 아빠는 무시하고 열심히 일하셨어요. 출장도 많이 다니시고 거의
집에 안들어오시고 아빠는 사업하고 나서 항상 12시이상에 들어오셨어요.
골프를 하면서도 아빠는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뭐든지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한 아빠꼐서 지난해 말부터 좀 편찮으셨어요. 덜덜 떨면서 춥다고 하시는데 몸은 열이 나고 등등 안걸리는 감기도 걸리시고 그러셨거든요. 그래도 꿋꿋이 우리 놀러가는거 다 데리고 가고 해주셨어요. 아빠가 과로라서 힘든거니깐 물좋은 시골가서 좀 쉬면 괜찮아질꺼라면서 지난해 말부터 삼촌네 별장과 회사를 왔다갔다 하셨거든요.
근데... 제가 좀 땡깡을 부렸어요. 엄마는 금요일에 서울와서 애들 보고 주말에 동생들을 데리고
아빠 뵈러가셨거든요. 근데 제가 고3이라 격주로 뵈러가는데 그때 학업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빠랑 통화할때 "집에 들어가도 춥고, 반겨주는 사람 없는데... 엄마 아빠도 없는데 "
하면서 징징거렸거든요. 금방 나을줄 알았으니깐요.
그래서 "아빠, 나 대학 들어가면 영어 공부해서 유학도 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울꺼예요."
"아빠, 수능보고 대학 입시 붙으면 우리 여행가요~" 하면서 항상 그랬거든요.
******************************
근데
어제 밤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아빠가 좀 심각한 병에 걸리셨다."
...........췌장암 말기시래요.. 못 고친데요. 짧으면 한 달, 길어야 6개월이래요.
아빠가.. 작년 6월에 황달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 말기이고 6개월밖에 못사신다고 하셨데요.
그때부터 치료받으면 그래도 호전될수 있다 하셨는데, 아빠는 자신이 죽고 남은 우리때문에
우리 살아갈 자산이라던가..전부 정리 해준다면서 치료 안 받으셨데요.
그리고 그 정신력으로 아직까지 살아계신거구요. 근데... 어제 이야기 듣고 많이 울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하고 아빠가 이렇게 일찍 떠난다는 생각 한번 안해보았기 때문에 꿈인줄 알았어요.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와요. 점심쯤에 아빠 뵈러 계시는 아산병원에 갔는데..
갔는데.... 아빠가.. 머리털도 많이 빠지시고 목과 팔 다리는 얇은데... 배에.. 복수만 ..차서..
그러고는 아빠가 남동생을 안아주고 저를 안아주시는데..... 저도, 아빠도 서로 못 놓아요.
못 놓아...떨리는 손으로 머리랑 등을 쓰다듬는데.....하..아빠가..울면서..
한번도 아빠가 우는걸 못 봤었는데... 한번도 그렇게 나약한 아빠를 본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웃으면서 "현서야, 우리 수능끝나고 유럽으로 여행가자."하는데..
웃으면서.. 눈에는 눈물을 그렇게 흘리시면서 애써 웃는데..
안 울려고 했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저도 애써 웃으면서 "아빠 우리 유럽말고 따뜻한 동남아가요"
해도 진짜 눈물이... 그렇게 울었는데 이글 쓰면서 눈물이 나네요.
그러면서.. 아빠가 왜 근래에 많이 웃어주고 (평소엔 잘 안웃어주셨거든요)
왜 그때는 그랬는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딴 말이지만 아빠가 절 학원에서 집으로 차 태워서 데려다 주시면서 그런말을 하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누군지 아냐고.
그래서 남겨진 사람? 하니깐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 "그런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람"이라는거예요.
그때는 아빠 너무 멋있다고 했는데...... 아빠는... 진짜로 그게 두려웠던거예요.
아빠는 숨도 조금 힘들어하시고 말도 많이 어눌해지셨어요. 자가통증제어기도 달고 다니시더라구요.
그래서, 아빠가..자꾸 봐주시면서... 웃으면서. 그렇게 울면서
아직도 아빠의 그 얼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아빠한테 애써 "아빠, 빨리 낫고 우리 스쿠버다이빙 30m까지 내려가요! 아빠가 부탁하면 심야도 할래요"
하는데. 아빠가... "그래... 그래야지.."하면서.. 아빠가...
죄송해요, 말이 길어지네요. 아무튼 아빠 뵈고 아빠가 유언아닌 유언을 하셨어요.
자기는 살건데, 혹여 재수없게 죽게 될지도 모르니깐 하면서.
그러고 엄마는 남고 저희 세남매가 택시타고 돌아왔거든요. 각각 학원과 도서관으로 갔는데
진짜 학원 수업들으면서 자꾸 눈물이 나고. 심지어는 쉬는시간에 무슨 일있냐는 선생님 말씀에
목놓아 울면서 다른 선생님 붙잡고 얘기하는데...진짜 서럽게 울었어요.
수업듣다가도 눈물이 나고, 끝나고 돌아오는데 오늘이 유난히 추웠거든요.
아빠가 데리러 오시던 생각이 나서 거리에서 누가 보던 말던 펑펑 울었어요.
저 집에 아빠랑 치킨먹으러 갔는데, 저 거리를 아빠와 달렸는데, 저기 원래는 아빠랑 자주 가던 식당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아빠의 병이 너무 억울해요. 우리아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달리고
힘들게 다 일궈두었는데... 어렸을때 못받은 사랑 지금 다 받는데...하늘이 원망스러워요.
뭣보다 가장 인생에서 좋을때 이래서 더 원망스러워요.
아빠는 자기가 자초한거라 누굴 탓할수 없다면서...
그래도 전 희망이란걸 잃지 않아요! 아빠 손 발은 정말 따뜻했어요. 그건 혈액순환이 잘되는 거니깐
좋은 징조일꺼예요. 스티븐 잡스도 8년을 버텼는데 왜 우리 아빠라고 못하냐고.
저는 왠만해서 포기가 빠르지만, 그래도 생존율이 한자리 숫자여도 저에게는 너무 밝은 미래예요.
그만큼 이렇게 절실하게 매달려본적이 없어요.
차라리 다 꿈이였으면 좋겠어요. 밤에 외삼촌과 작은 이모꼐서 오셔서 마음 단단하게 먹고
아빠는 나을테니 너네가 잘하면 된다라고 하시니깐 꼭 그럴꺼예요.
아직 저는 아빠에게 누구 앞에서 자랑할만큼 자랑스러운 딸이 된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우리딸은 공부도 잘해 했으면 하는게 제 꿈인데. 여태...제가 아빠께 "아빠, 내가 꼭 아빠 동문이 될테니깐 아빠가 밟았던 그 자리에서 같이 입학사진 찍자고." 말해던걸 꼭 이루고 싶어요.
횡설수설에 이야기가 엄청 길었네요. 하지만 그만큼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분이예요.
지금 이순간에도 저보다 더 안 좋은 처지의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우리 아빠는 정말 살리고 싶어요.
우리아빠 나이 50도 안되셔서 이렇게 쉽게 보낼순 없어요. 긍정의 힘으로 가망이 없던 사람도 살려냈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택시기사 아저씨에게도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릴 정도니깐.
저희 아빠 성함은 이자 성자 춘자 이십니다. 아직도 쓰면 저에게 너무나도 든든하고 멋진 이름이예요.
많은 분들 보셔서 우리 아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빠 나으시라고 기도 해주세요!!!
그리고 아빠, 아빠는 네이트 판은 안 보시고 보실 겨를도 없지만,
아빠 정말 사랑해요. 아빠는 제 인생에서 가장 멋있고 존경하는 분이예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