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北후보’ 검증은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작은거인201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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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北후보’ 검증은 철저히 해야 합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여론조작 파문으로 시작된 진보당 당권파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제기됐다. 처음에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이후에는 1999년 사건화했던 민족민주혁명당 관련자들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진보당 고위 당직자 가운데 우위영 대변인을 제외하고 대표나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이 모두 ‘경기동부’ 지역에서 활동한 전력이 없고, 비례대표 2번 이석기 후보와 이번 총선에서 민주·진보 양당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은 이의엽 진보당 정책위의장이 민혁당 사건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사건 당시 이석기 후보에 대해 민혁당 산하의 도당(道黨)격인 경기남부위원장, 이의엽씨는 시당(市黨)격인 부산지역위원장으로 판시했다. 그리고 민혁당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노선)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자·농민의 지하 전위당으로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민혁당은 1980년대 중반 생겨난 민족해방(NL) 주사파에 이념적 뿌리를 두고 있는데, 1989년에 서울대 법대 출신의 김영환, 하영옥 등이 주도해 만든 반제청년동맹이 모태다.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이 항일운동시기에 만들었다는 조직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총책이었던 김영환은 1991년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김일성과 면담 후 돌아와 1992년 민혁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김영환은 북한을 직접 체험한 후 북한 체제가 학문 연구의 자유가 전혀 없고, 관료주의가 극심하며, 사회 전체가 경직돼 활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사상을 전환하게 된다. 그 결과 북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하다 종국에는 북한의 ‘김정일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북한 민주화운동을 제창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1997년 민혁당을 스스로 해체했다.

 

하지만 중앙위원이었던 하영옥은 이 결정에 따르지 않고 김영환 등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자신의 산하에 있던 경기남부위원회와 영남위원회를 수습해 지하당 활동을 지속했다. 또한 독자적으로 북한의 남파간첩과 연결돼 ‘광명성’이라는 대호(이름 대신 쓰이는 암호)명을 부여받는 등 재건(再建) 민혁당의 총책으로 인정받게 된다. 1998년 말 하영옥과의 연결망을 복구하고 북으로 귀환하던 남파간첩이 탄 반잠수정이 해군에 의해 여수 앞바다에서 격침되면서 나온 유류품을 추적한 수사 당국에 의해 이들의 활동이 포착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1990대 초반에는 민혁당 외에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면서 북한과 연계된 중부지역당, 구국전위 등의 지하당 결성이 이뤄졌다. 2006년의 일심회, 최근의 왕재산 사건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1980년대도 아니고 대규모 아사(餓死)와 최악의 인권유린, 3대 세습 등 더 이상 북한을 추종한다는 것이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가운데도, 한국 사회에서 종북의 흐름은 지속돼 이제는 정치의 영역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는 민혁당 외에 중부지역당 관련자, 1979년에 발생했던 남민전 관련자도 후보로 등록했다.

 

사람의 사상은 고정돼 있는 것도 아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풍화작용을 겪기도 한다. 이들도 과거와 생각이 달라졌을 수 있다. 게다가 사면 복권된 사람들은 공직선거 진출에 법적 장애도 없고, 법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갖든 자유다. 그러나 대표적 공직인 국회의원에 도전하려면 과거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한 활동’에 대해 현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색깔론’도 아니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다. 유권자는 이를 알 정당한 권리가 있다.

 

한기홍/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