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위해 네티즌이 할 수 있는 일.

글리2012.04.09
조회1,043

우리는 모두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 혹은 그 근거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외국어를 몰라서 일어나는 당혹스러운 상황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1. 한국인들 끼리도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에 독도에 한국지도 모양이

세겨져 있다는 둥 외부에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근거들을 공유하며 즐거워

하는 수준인 경우가 많았고

 

2. 유학생들도 일본 학생들이 외곡된 교과서에서 배운 자료들을 근거로

들어 따져 물을 때에 그저 화를 내는 수준에 그쳐 근거없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를 보았고.

 

3. 유투브 같이 국제적인 사이트 댓글들에서 외국인들과의 논쟁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한국 사이트 들에 질문들을 올리지만 결국 그 글에도

답변이 달리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유용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자료 몇가지를 수집해서 올리면 독도가 한국땅임을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는 말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1편과 2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1편에서는 우선 독도가 왜 한국 땅인지에 대한 한글 자료가 있으니 외우겠다는 부담 없이 편안히 읽으시며 이해 정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부담 가지면 끝까지 못 읽으시니까요.

 

 

 

1. 독도는 한국에서 육안으로 보일만큼 가까운 섬입니다.

 독도의 존재를 한국에서 먼저 인식했을 것이 당연합니다.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울릉도(독도로부터 87.4㎞)에서는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독도는 역사적으로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고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 (1454년)는 “우산(독도) ∙ 무릉(울릉도) …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울릉도 주변에는 많은 부속도서가 있지만 날씨가 맑은 날에만 육안으로 보이는 섬은 독도가 유일합니다.

 

 

 

 

 

2. 수 많은 문헌들이 독도가 한국땅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섬이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복속한 우산국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독도에 대한 통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도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다른 관찬문헌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동국문헌비고』「여지고」(1770년) 등은 “울릉(울릉도)과 우산(독도)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독도)은 일본이 말하는 송도(松島)”라고 기술함으로써, 우산도가 독도이며 우리나라 영토임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3. 17세기 교섭을 통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17세기 일본 돗토리번(鳥取藩)의 오야(大谷) 및 무라카와(村川) 양가는 조선 영토인 울릉도에서 불법 어로행위를 하다가 1693년 울릉도에서 안용복을 비롯한 조선인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양가는 일본 정부(에도 막부)에 조선인들의 울릉도 도해(渡海)를 금지해달라고 청원하였고, 막부가 쓰시마번(對馬藩)에 조선 정부와의 교섭을 지시함에 따라 양국간 교섭이 개시되는데, 이를 ‘울릉도쟁계’라 합니다.

 

에도 막부는 1695년 12월 25일 돗토리번에 대한 조회를 통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 모두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돗토리번 답변서」), 1696년 1월 28일 일본인들의 울릉도 방면 도해를 금지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로써 한·일 양국간 분쟁은 마무리되었고, 울릉도쟁계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4. 일본은 1905년 독도편입 시도 전까지는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 일간 ‘울릉도쟁계’를 통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이 확인된 이래, 근대 메이지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는 독도가 자국 영토가 아니라는 인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에 의한 일본의 독도 편입 시도 이전까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기록한 일본 정부의 문헌이 없고, 오히려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들이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명백히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877년 메이지 시대 일본의 최고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太政官)은 에도 막부와 조선 정부간 교섭(울릉도쟁계) 결과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소속이 아님이 확인되었다고 판단하고, “죽도(울릉도) 외 일도(一嶋: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을 내무성에 지시하였습니다. (『태정관지령』)

 

내무성이 태정관에 질의할 때 첨부하였던 지도인「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 기죽도는 울릉도의 옛 일본 명칭)」에 죽도(울릉도)와 함께 송도(독도)가 그려져 있는 점 등에서 위에서 언급된 ‘죽도 외 일도(一嶋)’의 일도(一嶋)가 독도임은 명백합니다.

 

 

 

 

5. 1900년 독도를 울릉도 관할구역으로 명시하고

 울릉도 군수가 독도를 관할해 오고 있습니다.

 

1900년 10월 27일 대한제국은 황제의 재가를 받아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승격한다는 내용의 「칙령 제41호」를 반포하였습니다. 동 칙령은 제2조에서 울도군의 관할구역을 “울릉전도 및 죽도, 석도(石島, 독도)”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1906년 3월 28일 울도(울릉도) 군수 심흥택은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관민 조사단으로부터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이를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본군(本郡) 소속 독도”라는 문구가 있어, 1900년 「칙령 제41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독도가 울도군 소속이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강원도 관찰사서리 춘천군수 이명래는 4월 29일 이를 당시 국가최고기관인 의정부에 「보고서 호외」로 보고하였고, 의정부는 5월 20일 「지령 제3호」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지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비추어 울도(울릉도) 군수가 1900년 반포된 「칙령 제41호」의 규정에 근거하여 독도를 계속 관할하면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7. 일본의 1905년 시네마현 고시는 한국 침탈 과정의 일환이었으며

 국제법적으로 불법행위이므로 무효입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이권을 두고 러시아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1904년 2월 일본은 대한제국에 ‘한∙일 의정서’의 체결을 강요하여 러∙ 일 전쟁의 수행을 위해 자국이 필요로 하는 한국 영토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일본의 독도 편입 시도도 동해에서의 러∙일간 해전을 앞둔 상황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를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 을 통해 한국 정부에 일본인 등 외국인 고문을 임명하도록 강요하는 등 1910년 한국을 강제병합하기 이전에도 이미 단계적인 침탈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독도는 이러한 일본의 한국 주권 침탈과정의 첫 번째 희생물이었습니다.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 시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확고히 확립된 우리 영토주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로서 국제법상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8. 2차 세계대전이 끝나 독도는 다시 우리 영토가 되었고

  한국은 확고한 영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1943년 12월 발표된 카이로 선언은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해 탈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고, 1945년 7월 발표된 포츠담 선언도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 및 1946년 6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1033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의 통치∙ 행정범위에서 제외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독도는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독립한 대한민국의 불가분의 영토가 되었고, 이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도 재확인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우리의 주권에 대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응해 나가며,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수호해 나갈 것입니다.

 

 

어린 분들을 위해 더 요약해 드리자면, "독도는 한국의 울릉도에 서서 맨눈으로 보아도 보일 만큼 한국에 가까운 땅입니다. 그렇기에 독도는 처음부터 한국 사람들이 우리 땅으로 알고 지내온 땅이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한국과 외국 그리고 일본의 수많은 지도와 글들 속에 독도가 한국 땅으로 기록되어 있구요. 일본에게 여러번 독도가 한국 땅임을 확인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그 전까지 자신들도 한국땅이라고 여기던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이란 전쟁이 끝나면서 우리가 일본에 빼앗긴 우리 땅을 모두 돌려 받아야 함에도 일본은 계속 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우기고 있다는 것이죠."

 

 

1편은 이렇게 끝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들 중 가장 읽기 적당한 길이로 요약이 되어 있는 자료를 옮겨 보았습니다.

출처는 외교통상부 독도 홈페이지 http://dokdo.mofa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