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서는 쉬어. 니 마누라가 할 꺼니까?

옳다꾸나2012.04.17
조회27,231

저는 결혼한지 3년차 된 주부입니다.

결혼하면서 시댁 가까이에 살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님은 정말 좋으신 분들이시고, 시어머니도 가까이 사는 저희에게

반찬같은 것도 자주 만들어주시고, 잘 챙겨주십니다.

초기에는 거의 매 주말마다 시댁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요즘에는 한-두달에 한 번으로 줄었네요.

타 지방에 있는 저희집에 가는 횟수도 한 달에 한 번에서 3-4달에 한 번으로 줄었군요.

저는 그보다 자주 갑니다만, 남편이랑 같이 가는 횟수는 줄었네요.

 

 

시댁에 가면 주로 어머님께서 저녁을 차려주시면 제가 설겆이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뭐 못된 며느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죠.

시어머니가 밥도 하고, 설겆이까지 하라는 거냐? 이렇게요. ㅋㅋㅋ

며느리가 시댁에서 설겆이하는 게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르거든요.

똑같이 밥먹고 나서 남편은 앉아서 TV보거나 컴퓨터하는데,

저는 하녀처럼 설겆이하고 있는 게 당연한가요.

반대로 저희 친정에 가면 남편은 설겆이 안 하잖아요.

제가 억울해서 엄마한테 시키라고 했는데, 우리 엄만 사위한테 안 시킨단 말이죠.

저도 집에서 귀하게 자란 딸이라 설겆이 같은 거 안하고 자랐는데,

결혼하고 처음 명절 맞았을 때는 남의 집에서 하루종일 뒤치닥거리 하고 있는게 기가 막혀서

명절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혼자 울기도 했어요.

명절에, 시댁 갔을 때, 남자들은 그냥 놀고,

여자들은 일하는 거, 전 억울하거든요.

일이 고되고 그런 게 아니라,

말하자면 남편과 비교했을 때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그 지점이 딱 싫어요.

그렇다고 제가 시댁가서 일 안 하는 것도 아니죠.

불만은 있지만, 어르신들은 그거 이해 못하실테니 그냥 제가 맞춰드리는 거죠.

 

 

어쨌든 제 가치관에서는 시댁에서 며느리가 설겆이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편도 이런 제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이해는 못하는 것 같지만...

초반에 몇 번 싸웠거든요. 남편은 명절이 일년에 두 번인데 그거 못참냐 이런 식입니다.

또, 남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이모들이랑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결혼해서 며느리가 있는데도

아들이 부엌에서 일하는 거 싫다고 하더라고.

근데 저희 남편은 오히려 총각 때는 집안일을 잘 거들었거든요.

저희 남편은 가정적이고 깔끔한 성격으로, 결혼 하고도 가사일도 저보다 잘합니다.

그런데, 어머님 생각한다고 자기 집에 가면 부엌일 안한답니다. ㅋㅋㅋㅋㅋ

 

 

지난 주말에도 시댁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맛있게 먹고 나서 상을 치우는데, 남편이 좀 거들었습니다.

거든다고 해봐야 아시겠지만 빈 그릇 설겆이통에 넣고, 반찬 뚜껑 닫고 이런 정도에요.

그런데 거기서 시어머니가 이러십니다.

"놔둬라. 엄마 집에서는 이런 거 안해도 돼. 너네 집에 가서 하고, 여기서는 쉬어."

와. 감동입니다. 어머님이 여기까지 말씀하셨으면 정말 감동했을 거에요.

저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랑 저한테 같이 하는 말씀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바로 덧붙이시는 말씀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는 엄마가 하고.... (조금 있다) 또 지은이(저)가 할꺼니까."

 

 

 

 

?????????????????????????????????????????????????????

 

하. 하. 하.

 

저 진짜 벙쪘거든요.

 

엄마집에서는 아들은 쉬고, 며느리는 일하는 사람이군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결혼 전에 제가 먼저 직장을 가지게 되어서,

학생인 남편과 데이트할 때 비용은 거의 다 제가 냈고, 용돈까지 줬습니다.

지금도 맞벌이 하는데 벌이는 서로 비슷합니다. (재산형성 기여도가 같다는 뜻임)

결혼하기 1년 전부터 남편이랑 같이 돈을 모아서 결혼 준비를 했습니다.

양쪽 집안에 똑같이 예단이나 기타 준비 조로 500만 원씩 드렸고요.

웨딩촬영, 예식장, 신혼여행, 신혼집 등등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저희가 모은 돈으로 해결하고

양가의 도움은 일체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말하자면, 여기 판에서 흔히 나오는 얘기처럼

결혼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아 시댁에 얽매여야하는 그런 상태도 아닙니다.

 

 

정말 시어머님이 저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는데...

(저희 시어머니 정말 좋으신 분이시거든요.)

그 자리에서는 그냥 듣고 넘겼는데, 곱씹어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네요.

내가 무슨 일하고, 애 낳아주러 결혼한 사람인가.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어머님 저 말씀 정말 서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