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와 한국전쟁 이야기 : 한국전 전,후 컬러사진과 비극이 만든 음식 이야기

김cm2012.04.21
조회488

 

 

안녕하세요?

 

김센치입니다. (__)

 

 이번 음식이야기는 바로 부대찌개!

 

"에이~ 뭐야 나도 아는거잖아?"라고하신다면 할 말 없지만 ㅠㅅㅠ

 

부대찌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인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의 원인을

 

쉽게 설명해드리는 포스팅을 써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게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 아시나요?

 

아마 다른 국경일들은 간혹 까먹으셔도 광복절들은 대부분 기억하실거에요!

 

그 이유인즉, 뭐 교과서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도 있지만

 

 

 

 

 요 녀석의 공도 있죠 -_-; 여담이지만 IMF때 등장한 815콜라는 애국심을 마케팅으로

 

점유율을 꽤나 늘려나가다가 애국심만으로는 호소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으로 맛이 없어서 ㅠㅅㅠ

 

이 콜라를 만들었던 범양식품은 2005년 부도나고 맙니다.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 나가사키 원폭 투하 전, 후   

 

 

  아무튼 이야기가 좀 샛는데 공식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45년 8월 15일이죠!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짬뽕을

 

투하는 아니구요 -_-; ㅈㅅ..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적인 항복을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8월 15일에 우리나라에 주둔하던 일본군들이 본국으로 다 철수하면서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말로 독립해서 자주 국가가 되지 못하고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소련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꼴랑 1주일 참전하고 영토를 점령할 권한을 얻게 되었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 눈독을 들여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북으로 진입합니다.

 

 미국은 소련이 뜻하지 않게 한반도를 점령하는 듯한 액션을 취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급하게 한반도의 남쪽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위키미디어에서 공개된 사진을보면(저기서 중국통치는 대만의전신인 국민당을 뜻함) 

 

원래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인 일본 본토를 분할 점령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소련은 소련대로 동아시아에 영역을 확장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미국은 미국대로 한반도가 고스란히 넘어가서 일본 본토 쬐마만큼 점령해봐야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음은 물론 동아시아 전체를 공산권에 넘겨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소련의 행동에 예의주시하고 있었구요!

 

 소련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꼴랑 1주일 참전하고 영토를 점령할 권한을 얻게 되었고 애초에 계획한대로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북으로 진입합니다.

 

 

 

 미국은 소련이 생각보다 빨리 한반도를 점령하는 액션을 취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급하게 한반도의 남쪽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렇게해서 38도선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다시 반토막이 나게 되고 신탁통치를 받게 되는데요..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뜻하지않게 나라를 또 빼앗기는 꼴이 되었죠?

 

 또 다른 설로는 일본이 소련측에 로비를해 한반도 분단을 부추겼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후 남한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북쪽에서는 남 쪽에서 정부를 수립하자 예정대로 김일성을 중심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정부를 내세웁니다.

 

1948년 12월 북한에서 소련군이 철수하자 1949년 미군도 남한에서 철수하게 되는데

 

북한은 비밀리에 소련으로부터 대량으로 전쟁물자들을 지원받게 되었고,

 

1949년에는 일부러 남한의 전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산발적인 교전들을 일으키다가

 

1950년 6.25일 새벽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강행하게 됩니다.

 

 

 

 

교과서에서는 속수무책으로 3일만에 서울을 점령당하고 낙동강까지 쭉쭉 밀려 내려갔다고

 

배우셨을텐데 사실은 3일이라도 지체시켰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공산화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따지고보면 38선은 서울에서 100km도 채 안될정도로 가까이 있는데다가 6.25일은 일요일이라서 군인들은

 

대부분 휴가를 나가있는 상태에다가 개전 초기에는 작정하고 내려오는줄도 모르고 그냥 산발적인 교전이겠거니..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 비해 남한이 아주 열악했던 이유는 또 하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승만 대통령은 줄 곧 북진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미국에서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길까 싶어 남한이 군사력을 증강시키지 못하도록 억제해논 뒤

 

남한에서 철수하게 되는 아주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우리 국군은 남진하는 북한의 탱크에 육탄돌격과 지형을 이용한 필사적인 저항을 한 덕에

 

3일이나 시간이 끌 수 있었고, 북한군측에서도 예정보다 작전이 길어져 적잖이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서울에는 남한의 모든 기관과 정부관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포위하고 정부관료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됐으면 상황종료가 될 수도 있던차에 3일간의 지연작전은 계획을 실패로 만들었고,

 

북한은 적잖이 당황해 또 다시 3일을 서울에서 허비하게 되는데..

 

 

 후 일의 평가로는 이 3일동안 서울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남진을 했다면 수원보다 더 아래까지

 

점령했을 것이고 UN의 지원도 받지 못한채 전쟁이 끝났을 것이라고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3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3일이나 지연시켰기 때문에

 

각 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나마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여 재반격 할 수 있었던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UN군의 지원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쭉쭉 밀려 내려가 낙동강까지 밀려내려갔지만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는 병사의 모습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함께 쭉 북진해 서울을 탈환하고,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아마 태극기휘날리며 다들 보셨을거에요! 통일을 눈앞에두고 좋아했지만 갑자기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쳐들어와

 

다시 후퇴하는장면.. 하지만 여기서도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중공군은 주구장창 무식하게 인해전술로 와~~하면서

 

달려드는 바보들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나라 자체가 크기 때문에 동원된 군인의 수는 굉장히 많았지만

 

미군의 정찰기를 피해 낮에는 산에 숨어있고, 밤에만 잽싸게 이동하여 적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허를 찌르는 전술이라던가, 야간에는 이 곳, 저 곳에서 쳐들어오는척 피리나 꽹과리를 쳐서

 

상대편을 한숨도 안재운 뒤에 공격을하는 등 한국전에 참전하기 바로전 중국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전력도 있고 전투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굉장히 지능적이고 노련하게 싸우는데다가

 

숫자까지 많으니 사실 북한군보다 중공군 때문에 UN군은 애를 많이 먹게 됩니다.

 

 아무튼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숨어있던 중공군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연합군은 당황하게 되었고

 

다시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게되었는데 이 것을 1.4후퇴라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네이버역사연구소카페)    ↑ 좌 - 맥아더 장군, 우 -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장군은 이에 격분하여 중국본토에 핵폭탄을 사용하자고 주장하지만

 

안그래도 사이가 안좋았던 트루먼 대통령에의해 UN군 최고사령관직에서 해임되게 됩니다.

 

이 때 미국으로 돌아와 의회에서 연설해서 유명해진 말이 바로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뿐이다"라는

 

연설문을 남기고 2차세계대전의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는데 반해 트루먼 대통령의 인기는 크게 하락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아침안개님의 블로그)

 

 

  하지만 중공군의 그런 전술이 처음에는 UN군에 많은 스트레스를 줬으나 중공군내부에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워낙 숨어서 이동하다보니 보급도 원활하지 않고 날씨도 추운데 환자가 속출해도

 

어디 후방으로 이송해서 치료할 수도 없기 때문에 피해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서울을 몇 번씩 탈환했다 뺏겼다하면서 피해만 누적된채 시간이 흐르자 연합군과 중공군 모두

 

슬슬 이제 전쟁을 끝내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1951년 7월부터 정전협상을 시작하는데..

 

말이 정전협상이지 서로가 한치의 양보없이 자신들이 승자라고 더 유리한 협상안을 우기는 바람에

 

 2년가량 지속되었고 전투의 양상은 처음처럼 깊숙히 영토를 점령하는게 아닌

 

전선교착 상태가 진행되게 됩니다. (중공군도 처음과는달리 고지전인만큼 이 때부터 인해전술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미군의 화력도 워낙에 막강했을뿐더러 중공군의 전술을 파악한 덕분에 전쟁 초기처럼 크게 밀리고 그런일은 없게됩니다.)

 

 

* 전쟁 초기 -> 영화 태극기휘날리며 + 포화속으로

 

   

 

 

* 전쟁 중후반기 -> 영화 고지전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장면. ⓒ미국국립문서보관소 

 

 

 정전협상이 진행되는동안에도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1953년 7월 17일 정전협상이 조인됩니다.

 

하지만 이 정전협상 조인에는 연합군, 북한군, 중공군만이 참여하여 서명했으며

 

우리측에서는 이승만대통령이 워낙 북진통일을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우리측 대표는 참가하지 못한채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 북 통틀어 약 150만명이 사망하였고 360만명의 부상자를 낸채

 

전쟁은 멈추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전쟁 전 서울이 인구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대구였으나 전쟁으로인해

 

지금까지 부산이 두번째로 많은 인구수로 올라서게 되었고,

 

 우리 영토가 완전히 피폐해진반면 사실 이렇게 된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있는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이용해 고도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구로향토문화대전) 

 

 

 주변 강대국들로인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고,

 

여느 나라들이 그렇듯 또 그 폐허에서는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음식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전쟁직후 아무리 황폐해진 땅이라도 사람은 위장을 달고 있고,

 

또 살아가기위해 무엇이든 먹을게 필요했습니다.

 

 게중에서 미군들은 특히 전쟁중에도 괴기부터 초콜렛, 껌 등등까지 배급받았을 정도로

 

보급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군부대에서나온 음식물 쓰레기중에는 먹다남은 햄이라던지

 

고기라던지 이런 것들도 있었고,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들도 자신들이 먹는 음식들을

 

쟁여놨다가 밖으로나와 시장에 내다 팔기도하면서 스팸같은 햄이 우리나라에 등장하게 됩니다.

 

 서양음식이라 이상하게 봤던 사람들도 일단 맛을 한번보고나니 오호라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온 가족이 먹을만큼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안된게 바로 국처럼 끓이는 것이었습니다!

 

국처럼 끓이게되니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는 있게 됐지만..

 

한가지 걸림돌이 있죠.. 바로 느끼함과 오묘한 맛이었습니다.

 

그 느끼함과 오묘한 맛을 잡기 위해 김치 등을 첨가하게되었고,

 

지금 부대찌개의 전신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미군부대에서 빼돌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자체적으로 햄을

 

생산하게 되었는데 초기에 나온게 바로 분홍소세지입니다!

 

분홍소세지는 그냥 계란부쳐서 먹으면 맛있지만 밀가루가 워낙에 많이 섞여 있는 바람에

 

찌개로 끓이게되면 흐물흐물 풀어지게 되있는데요.. 나중에 미군부대에서 빼돌리는게 아닌

 

정식으로 스팸 등 각종 햄들이 수입되게 되면서 본격적인 부대찌개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부대찌개로 유명한 곳하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바로 의정부죠!  의정부역 부근에 있는 의정부제일시장은 예전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내다 팔게되면서 크게 번성한 시장입니다. 의정부에는 특히나 미군부대가 많이 주둔하던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대부분 이전)

 

 

 

지금까지도 의정부 제일시장은 전국에서 손에 꼽을정도로 크고 활성화된 전통시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도 많다보니 의정부에서는 자연스레 부대찌개라는 것도 발전하게 됩니다.

 

의정부 중앙로 끝에서 길건너면 의정부부대찌개 거리가 형성되어있어 부대찌개 축제도 열리는 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탄 부대찌개도 유명하고 저는 잘 몰랐는데 파주도 유명하더라구요!

 

그런데 재밌는건 다 경기도권인데도 지역마다 부대찌개 스타일도 다릅니다 +_+

 

 

 

 먼저 의정부식을 소개하자면 가장 보편되어있는 스타일이에요!

 

각종 햄들과 김치, 두부 등이 들어가고 당면이나 라면 등의 사리가 처음부터 들어가있습니다.

 

* 유명한집으로는 오뎅식당, 보영식당 등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박네집 부대찌개 블로그

 

 

 송탄식 부대찌개는 채소가 적게 들어가고 햄 위주로 들어가는데다가

 

노오란 슬라이스 치즈가 한 장 올라갑니다!

 

그리고 개운한 국물 맛을 위해 당면이나 라면사리는

 

부대찌개를 먹는 중반쯤에 넣어서 먹는다고 하네요^-^

 

* 유명한집으로는 최네집, 김네집 등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노장군 부대찌개)

 

 

 파주식 부대찌개는 쑥갓이나 미나리 파 등 채소가 많이 들어가고

 

고기를 오뎅처럼만든게 들어간다고 합니다. (소고기민찌 아님!)

 

베이키드빈스도 들어가지 않구요ㅋ

 

* 유명한집으로는 삼거리부대찌개 등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 꽤 길어서 보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

 

저도 이 포스팅 작성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_-;

 

요렇게 다 쓰고보니 뿌듯하지만 씁쓸한 기분도 남는게 사실입니다.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이렇게 됐으면서 우리는 다같이 단결해도 시원찮을판에

 

좌빨이네, 수구꼴통이네하면서 서로가 시간이 지날수록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보면 답답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몇 년전에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종군기자가 찍은

 

컬러 사진들을 끝으로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요거 보시면 기분이 되게 색다르면서 짠한 기분 느껴지실거에요^-^;

 

 

* 1949년 전쟁나기전 사진입니다.

 

 

 

 

 

 

저 끝에 보이는건 남대문인가?

 

 

 

간판에 새찜은 뭘까요?

 

 

왜 마이클잭슨이 생각나지 -_-;

 

 

 

 

 

 

 

 

 

여긴 보신각있는 종각역 사거리 같습니다!

 

 

 

종로에 소가 다닌다 +_+

 

 

 

조선총독부 건물 (현 광화문자리 약간 뒷편)

 

 

 

청계천인가?

 

 

 

지금이나 과거나 어린이들은 사진찍는게 즐겁나봅니다ㅋ (하..할머니라고 해야되나? -_-;)

 

 

 

여기보시면 아래에 또 있죠? ㅋ

 

 

 

이 분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계실까요?

 

우리나라 격동의 세월을 다 겪으셨을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카우보이가 -_-;

 

 

 

경찰입니다.

 

당시 무기가 제대로 없어서 일본군이 패전하면서 남기고간 무기들을

 

경찰들이 썼습니다.

 

 

 

인천인 것 같구요

 

 

 

인천이라고 써있으니 인천이겠죠?ㅋ

 

근데 저거 "태평양에서 가장 빌어 먹을 인천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맞나요 ㅋ

 

 

 

서울역입니다! 지금하고 완전 다르죠?

 

 

 

종로같죠?

 

 

  사진찍어준다는 말에 할아버지도 쑥쓰러우신가봅니다.

 

 

 

 

*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 NBC방송 종군기자였던

 

존 리치John Rich씨가 촬영한 것을 공개한 사진입니다.

 

 

 

 

 

인민군 포로들입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한국전쟁을 치르는동안 북한군, 중공군 포로들을 수용했던

 

곳입니다. 공산측에서는 포로를 잡으면 대부분 처형하거나 강제노역에 동원해

 

밥도 제대로 안먹였던반면에 자유진영에서는 포로들이 국군보다 더 잘 먹고

 

지낼정도로 대우를 제대로 해줬습니다. (공산측 포로 17만명, UN측 포로는 만 7천명 가량)

 

 하지만 이 철조망안에서도 서로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끼리 서로를 몰래 죽이는 등

 

수용소 내에서도 전쟁이 치뤄진다 할정도로 대립이 심했는데,

 

나중에는 고도로 훈련된 북한군이 일부러 포로로 잡힌 뒤 윗선의 지령대로 수용소 내에서

 

미군 도드 준장을 인질로잡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포로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UN군이나 공산측이나 '포로들의 자유 의사대로 해줘야된다'와

 

'무조건 본국으로 송환해야 된다'로 팽팽히 맞섰었는데 침략자(UN)들을 격파해

 

남한을 해방시켜야된다는 모토로 침략을 감행한 공산측에서 송환을 거부하고

 

남한에 남는 사람이 있게 되면 자신들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유 의사에 따라 포로 교환이 시작되자 628명을 제외한 북한 출신 반공포로

 

4만 8000명이 귀환을 거절하고 남한에 남게 됩니다.

 

 

인민군 포로

 

 

 

 

 

복장 보니까 영국군 같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원군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편하게 방안에서 글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한가지를 알려드리자면 2차세계대전 덕분에 오늘날 지프의 명성이 생기게 됐는데요!

 

지프의 차체가 저렇게 낮은 이유는

 

차체가 크면 적들에게 쉽게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차체를 최대한 낮춰 설계됐다고 합니다.

 

빠른 기동성과 험한 지형에서도 잘굴러가서 지금까지도 지프의 이미지가

 

오프로드에 강한 그런 느낌으로 쭉 가고있죠!

 

 

폭격으로 파괴된 수원 장안문입니다.

 

몇 십년 후에 이 곳에는 보영만두라는 유명한 만두가게가 생기게 됩니다ㅋ

 

 

 

정말 순수한 미소에 절로 웃음이 납니다.

 

 

 

저 끝에 보이는데는 서울역입니다.

 

여기는 한 남영동? 갈현동?이겠죠?

 

지금이야 KTX들이 슝슝 다니지만 사진에서는 열차들이 폭격으로 멈춰서있네요..

 

무엇보다 고층건물이 없는 서울의 모습이 너무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한국군은 사실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채 총쏘는법만 배우고 족족 전장으로 투입됐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가는 곳마다 패배를 맛보았고 결국 미군의 휘하로 예편되어 지휘받게 됩니다.

 

중공군도 미군쪽보다는 우리 국군이 지키는 곳만 공략하여 방어선을 무너트렸다고하네요.. 

 

 그래서 한국전쟁중에 논산훈련소 등 여러 훈련소들이 생겨 그 다음부터는 훈련을 제대로 받고

 

투입되었는데 그 때부터 전투력이 아주 크게 향상되어 잘 싸웠다고하네요!

 

 

어린 소녀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꽃을 전달하는 사진입니다.

 

 

흐뭇한 사진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너무 옛날분들이라 이런식으로 말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ㅠㅅㅠ

 

아무래도 이 미국 사진 기사가 허쉬초콜렛을 아이에게 쥐어주고 사진을 찰칵 찍은 것 같죠? ^-^

 

머리도, 표정도, 볼 살도 영락없이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엽죠?!

 

 

 

 

 앞으로의 미래에는 이런 음식이 생기지 않아도 좋으니

 

또 다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이상 김센치였습니다. (__)

 

 

 

* 참고자료 - 한국전쟁 위키백과

 

                  사진 http://blog.naver.com/siberianmink?Redirect=Log&logNo=120106297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