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판을 써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며칠 전에 기말고사가 끝나서 좀 시간전 여유가 있기에 글을 써봅니다;
저는 캐나다에 만 15세에 와서 지금은 만 21살.. 약 5년 반 있었어요. 집에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넉넉치 못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공부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상위권도 아니었어요. 그냥 일반계 고등학교 처음 들어가서(빠른 91입니다) 처음 모의고사때 반에서 9등이던가 했던것 같네요.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었기에 캐나다에서 교육비가 거의 최하위라는 곳으로 와서 다른 건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공부.. 공부.. 공부만 했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별 설움을 다 겪었지만 그래도 전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캐나다 고등학교가 한국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지만 처음에 영어를 못하니 밤을 새가면서 단어 찾아가면서 숙제를 해가곤 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니 애들은 벙어리 취급에 수업 시간에 다들 무언가 하는데 저만 못알아들어서 답답해서 거기서 뛰쳐나와 울었던 기억도 있고, (다시 들어갔지만;)
다운타운에서 구걸하는 원주민에게 돈이 없다고 했단 이유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얼굴에 침 뱉여 본 적도 있고,
홈스테이에서 너는 오렌지주스를 너무 많이 마시니 작은 컵으로 하루 한 잔만 마시라는 말도 들어봤고.. 전부 처음 온 지 1-2년 사이에 있던 일입니다.
그리고 2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여기 아이들과 옷 입는것, 하는 행동이 비슷해지고 나름 그 문화를 알기 시작하니 그래도 살만해 지기 시작했지만,
말했다시피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었고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을 즈음이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가족들, 친구들, 친척들 모두 저에게 반 년간 숨겼습니다. 졸업하고 나서야 어린 동생이 어렵게 어렵게 털어놓는데 가슴이 찢어질듯... 하나 밖에 없는 누나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을 동생이 너무 가여워서요.
그렇게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얼마나 끔찍했는지 한 문단 정도 썼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지웠습니다.
각설하고,
졸업을 하자 아버지는 한국행 티켓을 끊어주시는 대신 차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볼 준비도 안 되셨거니와,
어머니가 그토록 바랬던 건 딸인 저만큼은 공부를 많이 해서 당신이 당하고 산 설움을 겪지 않는 것이라는걸 마음에 두고 계셨던 듯 합니다.
원래 말과 속마음이 늘 다르신 분이라 모르겠지만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었어요.
그리고 또 공부 공부 공부.. 캐나다 대학 공부, 아주 어렵지는 않았지만 정말 쉽지도 않더군요..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시니 저라도 잘되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전 3학년을 마쳤고 올 여름 첫 인턴(co-op education 이라고 합니다.)을 나갑니다.
월급이 세전 2천7백 불을 웃돌더군요.. (세금으로 한 5백불은 띠이게 생겼지만요;) 고생한 게 드디어 보람이 있구나 싶었고 학교 다니는 내내 알바하며 모았던 돈으로 계절학기 수강료까지 낼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번 여름에 번 돈으로는 다음 가을 학기 학비를 낼 수 있기에 정말 뛸 뜻이 기뻣습니다.
정말 어머니가 보고싶어지면서..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을까.. 싶더군요.
그러면서 생각난 일화..
작년 여름, 3년만에 간신히 아버지 허락을 받아 어머니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한국 갔을때.. 아버지 지인이신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회계학과라고? 하긴 요즘 경리 회계도 많이 좋아졌지.." 뭐 이런식의 말이었어요.
저는 거기 애들이랑 놀아주느라 제대로 못 듣고 그냥 넘겼는데 집에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서럽더군요.
경리 분들이 하시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밤을 새가며 공부하고 낮에는 알바하며 아둥바둥 대학 다니고 장학금 타려고 기를 써가며 살았고,
아무리 영어가 많이 늘었어도 캐나다 학생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부족해서 그 부족한 갭을 채우려고 정말 피똥쌉니다.. (저 여잔데... 네, 거짓말 안하고 진짜 피똥싸게 되더군요)
제가 하는 회계공부는 CA(Chartered Accountant)를 하기 위한 공부이고 CA가 되기위에선
4년제 대학을 다니며 회계을 전공으로 하고 CASB(Chartered Accountant School of Business)에서 요구하는 추가 회계과목: Taxation, Auditing, Advanced Financial Accounting 등등을 들어야하며
대학 졸업하고도 공인된 회계 사무실에서 3년 일하면서 온라인으로 모듈 6개를 듣고 각 시험 6개를 하나하나 다 통과한 뒤에야 마지막에 UFE라는 3일간 보는 회계사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만큼 쉬운 길이 아니기에 늘 각오를 다지며 사는데.. 제가 여자라서 당연히 경리 회계라고 생각하신건가? 뭔가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안 그래도 고생하는거 아무도 몰라주고 유학생이니 집에 돈 많겠네 부럽다라는 말만 듣는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더군요. .
제가 과민반응을 하는건가요? 한국에선 여자가 회계공부를 하면 당연히 경리회계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저는 한국이 좋은 한국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캐나다에 오래 있었고 한국에는 방학때 들른게 다이니
아무래도 요새 한국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요. 그래서 톡커님들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경리분들을 비하하기 위한 글이 결코 아닙니다. * 맞춤법, 띄어쓰기 틀린 건 좋은 말로 지적해주세요.
캐나다에서 회계 공부하는 대학생.. 경리회계냐고 묻더군요.
며칠 전에 기말고사가 끝나서 좀 시간전 여유가 있기에 글을 써봅니다;
저는 캐나다에 만 15세에 와서 지금은 만 21살.. 약 5년 반 있었어요.
집에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넉넉치 못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공부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상위권도 아니었어요. 그냥 일반계 고등학교 처음 들어가서(빠른 91입니다)
처음 모의고사때 반에서 9등이던가 했던것 같네요.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었기에 캐나다에서 교육비가 거의 최하위라는 곳으로 와서
다른 건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공부.. 공부.. 공부만 했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별 설움을 다 겪었지만 그래도 전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캐나다 고등학교가 한국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지만 처음에 영어를 못하니
밤을 새가면서 단어 찾아가면서 숙제를 해가곤 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니 애들은 벙어리 취급에 수업 시간에 다들 무언가 하는데 저만 못알아들어서
답답해서 거기서 뛰쳐나와 울었던 기억도 있고, (다시 들어갔지만;)
다운타운에서 구걸하는 원주민에게 돈이 없다고 했단 이유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얼굴에 침 뱉여 본 적도 있고,
홈스테이에서 너는 오렌지주스를 너무 많이 마시니 작은 컵으로 하루 한 잔만 마시라는
말도 들어봤고.. 전부 처음 온 지 1-2년 사이에 있던 일입니다.
그리고 2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여기 아이들과 옷 입는것, 하는 행동이 비슷해지고
나름 그 문화를 알기 시작하니 그래도 살만해 지기 시작했지만,
말했다시피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었고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을 즈음이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가족들, 친구들, 친척들 모두 저에게 반 년간 숨겼습니다.
졸업하고 나서야 어린 동생이 어렵게 어렵게 털어놓는데 가슴이 찢어질듯...
하나 밖에 없는 누나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을 동생이 너무 가여워서요.
그렇게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얼마나 끔찍했는지 한 문단 정도 썼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지웠습니다.
각설하고,
졸업을 하자 아버지는 한국행 티켓을 끊어주시는 대신 차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볼 준비도 안 되셨거니와,
어머니가 그토록 바랬던 건 딸인 저만큼은 공부를 많이 해서 당신이 당하고 산 설움을 겪지
않는 것이라는걸 마음에 두고 계셨던 듯 합니다.
원래 말과 속마음이 늘 다르신 분이라 모르겠지만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었어요.
그리고 또 공부 공부 공부.. 캐나다 대학 공부, 아주 어렵지는 않았지만 정말 쉽지도 않더군요..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시니 저라도 잘되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전 3학년을 마쳤고 올 여름 첫 인턴(co-op education 이라고 합니다.)을 나갑니다.
월급이 세전 2천7백 불을 웃돌더군요.. (세금으로 한 5백불은 띠이게 생겼지만요;) 고생한 게 드디어
보람이 있구나 싶었고 학교 다니는 내내 알바하며 모았던 돈으로 계절학기 수강료까지 낼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번 여름에 번 돈으로는 다음 가을 학기 학비를 낼 수 있기에 정말 뛸 뜻이 기뻣습니다.
정말 어머니가 보고싶어지면서..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을까.. 싶더군요.
그러면서 생각난 일화..
작년 여름, 3년만에 간신히 아버지 허락을 받아 어머니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한국 갔을때..
아버지 지인이신 아주머니가 그러더군요. "회계학과라고? 하긴 요즘 경리 회계도 많이 좋아졌지.."
뭐 이런식의 말이었어요.
저는 거기 애들이랑 놀아주느라 제대로 못 듣고 그냥 넘겼는데 집에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서럽더군요.
경리 분들이 하시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밤을 새가며 공부하고
낮에는 알바하며 아둥바둥 대학 다니고 장학금 타려고 기를 써가며 살았고,
아무리 영어가 많이 늘었어도 캐나다 학생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부족해서 그 부족한 갭을 채우려고
정말 피똥쌉니다.. (저 여잔데... 네, 거짓말 안하고 진짜 피똥싸게 되더군요)
제가 하는 회계공부는 CA(Chartered Accountant)를 하기 위한 공부이고 CA가 되기위에선
4년제 대학을 다니며 회계을 전공으로 하고 CASB(Chartered Accountant School of Business)에서
요구하는 추가 회계과목: Taxation, Auditing, Advanced Financial Accounting 등등을 들어야하며
대학 졸업하고도 공인된 회계 사무실에서 3년 일하면서 온라인으로 모듈 6개를 듣고 각 시험 6개를
하나하나 다 통과한 뒤에야 마지막에 UFE라는 3일간 보는 회계사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만큼 쉬운 길이 아니기에 늘 각오를 다지며 사는데.. 제가 여자라서 당연히 경리 회계라고
생각하신건가? 뭔가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안 그래도 고생하는거 아무도 몰라주고
유학생이니 집에 돈 많겠네 부럽다라는 말만 듣는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더군요.
.
제가 과민반응을 하는건가요?
한국에선 여자가 회계공부를 하면 당연히 경리회계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저는 한국이 좋은 한국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캐나다에 오래 있었고 한국에는 방학때 들른게 다이니
아무래도 요새 한국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요. 그래서 톡커님들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경리분들을 비하하기 위한 글이 결코 아닙니다.
* 맞춤법, 띄어쓰기 틀린 건 좋은 말로 지적해주세요.
* 악플은 사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