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김형석201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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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삼별초 항쟁지 강화도를 지나

보문사 가는 길...진달래꽃이 한창이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 中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진달래 연분홍으로 산하에 꽃 피는 봄...

 

언제부터인가?

고교시절 좋아했던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80년대를 최류탄 내음과 함께 보낸 대학시절 이후,

소월의 '진달래꽃' 대신

'껍데기는 가라'던

민족시인 신동엽의 '진달래 산천'이 읊조려 진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보문사 일주문 앞, 벗꽃도 지천이다...

 

진달래와 사꾸라?

 

누가 더,

이 봄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꽃인가?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일주문은 문 밖의 사바세계와

문 안의 부처님의 세계를 나누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일심(一心)의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성불하라는 큰 뜻이...^^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1박 2일 일정으로...인천 강화군 석모도 한 농원에서 워크숍을 가진 후,

대한불교 조계종 기도성취도량 보문사를 찾았다.

 

천년 사찰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절로...

여수 향일암, 양양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이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보문사(普門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낙가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한국의 3대 해상관음기도장 가운데 하나이다. 635년(선덕여왕 4)에 창건했다고 하며, 이 마을에 살던 한 어부가 그물을 쳤다가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건져올렸는데 꿈에 나타난 스님이 일러준 대로 현재의 석실(石室)에 봉안했다는 전설이 있다. 1812년(순조 12)에 홍봉장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민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법당·관음전·나한전·대방·종각·석실 등이 있다. 특히 이 절의 역사를 대표하는 순례지인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의 입구에는 3개의 홍예문이 있고, 동굴 내에는 반원형의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撑柱)를 설치했는데 그 사이에 있는 21개의 감실(龕室)에는 석불을 안치했다.[사전 자료]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범종각이 흡사...

성벽처럼 견고하다.

 

이 곳의 범종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고 육영수 여사가 화주하여 모셔진 것으로 유명하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석굴 형태의 나한전 입구...

신비한 전설이 전한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보문사를 창건한지 14년 만인 649년(신라 진덕왕 3년),

만선의 꿈에 부풀어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올려보니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특이한 형상의 돌덩이가 22개나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덩이들은 사람 모습과 꼭 닮아 있었는데...

현몽으로 계시를 받고 이 곳 동굴에 안치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스물 두 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석굴 법당에 모신 나한전 조성 일화는 유명하며

기도의 영험을 많이 보여 신통굴로 불리기도 한단다.

 

석실의 구조를 보면 내부는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을 조성하였다.

석굴 안은 30평 정도이며,

상단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송자관음보살

그리고 이후에 따로 조성한 관세음보살, 18나한이 모셔져 있단다.


석굴사원의 예는 경주 석굴암,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 강원도 속초의 개조암 등

우리나라에는 몇 되지 않는 귀중한 예...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우상이 지배하는 세상을 떠나 명상과 사색이 필요한 사내,

입으로 지은 업을 맑게 하는 진언처럼 또 시를 외운다...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숙여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아직과 이미 사이/박노해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향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노거수를 보니

오래된 역사가 보인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나한전과 극락보전에서 기도한 후,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 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을 향했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마애불로 오르는 길이 힘들어질 즈음

용왕단에 도착하게 된다.

서해 바다의 탁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용왕단에서는

각자의 소중한 발원을 담아 소원지를 써서

유리병 속에 100일간 보관을 한다.
100일이 지난 후 용왕단에 보관된 소원지를 꺼내

스님들께서 축원을 하고 소전을 한다고 한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용왕단에서,

안개 속의 서해안 개뻘을 조망하는 정동영 국회의원...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서 색이 바래어 있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생각에 잠긴 정동영 전 의장...

 

시대정신과 야망의 계절을 생각하는 것일까?

'서민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해 실천한다'는

맹자의 불인지심(不忍之心)을 다짐하는 것일까?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마애불(磨崖佛)은 자연의 암벽, 구릉, 동굴 벽 따위에 새긴 불상으로

인도에서 발생하여 한국, 중국, 일본 등에 전해졌으며,

그 수법은 양각(陽刻), 음각(陰刻), 선각(線刻) 따위로 다양하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한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썹바위 아래의 바위면에 새겨 모셨는데,

눈썹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는 형태이다.

관음좌상의 모습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들고 연화대좌 위에 좌정.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마애관세음보살은 중요한 대, 소사가 있는 보살들이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지금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의 서원(誓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관세음보살!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마애불에서 바라본 바다풍경...

 

'모든 곳을 살피는 분', '세상의 주인' 등을 뜻하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석가모니불의 입적 이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세상을 지켜주며,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불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은 1%의 탐욕과 99%의 소외로

부처님의 자비로 공동체 복원이 절실한 시대상황!

 

아니면,

한국의 노스트라다무스... 남사고의 격암유록에 나오는 글처럼

'절 밑에서 풍악이 울리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 말세가 온다'는데?

 

예언처럼...전국 유명 사찰 근처에서 먹고 마시는 관광객으로 넘쳐나니

ㅎㅎ 미륵불, 정도령이 출현할 시기???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보문사 주지 덕관스님과 함께...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산사에서 차와 함께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속세를 잊는 시간...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주지스님께 보문사 창건, 관음신앙 등 설명을 듣고 있는데...

보문사를 찾은 보살들이 정동영 의장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너는 꽃이다."

 

보문사에서 부처님 육성을 듣다.

사람 속에서 희망이 시작되고 ㅎㅎ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뿌리로부터 달아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뿌리로부터 달아나려는 정신의 행방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허공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뿌리 대신 뿔이라는 말은 어떤가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올리면

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뿌리로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오늘의 일용할 잎과 꽃이

천천히 시들고 마침내 입을 다무는 시간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사람

 

뿌리로부터 / 나희덕

 

석모도 보문사에 간 까닭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서

정동영이 참으로 귀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서민의 아픔을 아는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란 관세음보살처럼

남의 고통을 대신 서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새로운 금뺏지를 단 사람 중에

몇 명이나 '불인지심'을 실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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