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을 읽고 오신분이나 그렇지 않으신 분이나 보시는데는 별 상관이 없을 겁니다.군대에서 지낼때의 추억을 적어보았습니다.쓰다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울적하기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떠오르네요.앞으로 사회생활만 남았네요.군 전역 후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되겠네요.슬픈 모태 솔로 27 남자 사람의 이야기전편처럼 반말로 갑니다.------------------------------------------과가 과다 보니 여자사람은 1명인가 2명 정도면 용한거였지.난 1년을 평범하게 다니다가 군대를 가게 됐어. 어디서 특기병 지원이라는 걸 들어서 통신병을 지원하게 됐지. 1732 중계/반송 이게 뭔가 싶긴 한데 지원자가 적어서 빨리 갈 수 있겠네 싶어 생각없이 그냥 지원했어.지원자가 적으니 당연히 붙었지. 붙고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망치로 쇠말뚝을 박는다네? 워메...결국 3월 27일 이라는 애매한 날 군 입대를 하게 되었어.어머니는 마지막에 눈물을 보이셨고 아버지는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셨지. 논산... 처음에는 실감도 잘 안나고 자고 일어나면 왠지 집에 있을거 같기도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지.부모님과 헤어질 때는 안 울었지만 입고 온 옷을 상자에 넣으면서 편지를 쓰는데 그제서야 눈물이 나더라.더 효도할 것을...신병교육대에서 며칠 있다가 훈련소에 입대했어.한 달...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지. 시간 아주 잘 가더라.난 특기병이라 일반병들이 버스타고 갈 때 난 전철타고 특기병교육을 받으러 갔지.대기하는 곳에서 1일 대기하고 다시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통신학교였어.거기서 군에서 사용하는 무전 장비에 대한 교육을 몇 주간 듣고 드디어 자대를 배치 받았지.자대배치는 ARS 전화같이 어느 번호에 전화해서 군번인지 민번인지를 입력하면 기계음의 아가씨가 어느 부대라고 알려주는 방식이었어.한동안 병사들은 전화기 앞에 줄을 섰지 자기가 가는 곳이 전방이냐 후방이냐의 갈림길이었으니까.속칭 메이커 부대라고 불리는 유명하고 빡신 부대에 걸린 동기놈들은 얼굴을 감싸쥐고 울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난 전방 쪽인 강원도 양양으로 떨어졌어. 알동기(훈련소부터 같이 온 동기) 하나 없이 떨렁 2명이서 그곳으로 보내졌어. 8군단 통신 2중대.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었지.생활관에 들어가보니 병장님들 엄청 많더만.대부분이 병장이고 나머지 조금 상병.내 3개월 위의 고참 한 명.이 정도였어.12월 군번인 그 일병이 날 담당했지.이름도 기억나. 잊을 수 없지.손성환.생긴건 오크였고 성격은 다른 후임들이 싫어하는 고참이었지만 난 그녀석이랑 엄청 오래 지냈거든.진상부릴 때도 있지만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해.혹시라도 이글을 보게 되면 댓글이라도 달아줘. 술이나 한잔 먹자. 내가 살게.난 부대에 전입해서 1달 정도 있다가 파견이라는 것을 나가게 되었어.내 보직은 통신병인데 흔히들 아는 FM 무전기를 메고 다니는 보직이 아니라 차에다 커다란 마스트를 올려놓고 이동한 뒤에 땅에 말뚝을 박아서 안테나를 세워 멀리 떨어진 곳과 무선망을 개통하는 일을 했지.파견이란 그렇게 개통된 오지에 있는 무선망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병사 혹은 소대가 나가서 주둔하는 것을 말해.내가 처음으로 파견을 나간 곳은 하조대라는 곳이었어.해수욕장으로 유명하지만 내 기억엔 파견과 유격장의 기억만이 남은 곳이지.우리 중대의 파견지는 총 4곳, 하조대, 강연, 대포, 문암 이렇게 있었어.이중 강연과 문암은 소대 단위로 파견을 나가고 대포와 하조대는 병사 3명만 가는 곳이라 보통 이등병은 보내지 않는다는데 난 어쩌다 가게 되었지. 아마 사람이 모자랐을거야. 병장들만 넘쳐났으니까.상병 한명, 12월 손 일병 한명, 그리고 나.이렇게 셋이서 그 하조대 파견지에 가게 되었지.산꼭대기에 있는 부대 안에 있는 파견지라 식사는 그 부대와 같이 했어.하지만 담당하는 간부가 없으니 우리는 좀 자유롭긴 했어. 아마 중대에 있는 것보단 훨씬 편했을거야.각각의 파견지는 3개월씩 지내는데 보통은 많이 가면 3곳, 기본은 2곳을 다녀오면 전역한다고 하더라고. 난 4곳 다 다녀왔어. 중대 최초로... 왠지 낮은 확률에 강한거 같더라고 난.게다가 하조대는 내가 간 뒤로는 다른 중대에 넘겨져서 더는 갈 수도 없는 곳이 되었지.정말 낮은 확률에 강하네.그렇게 3개월간 지내고 중대로 돌아와보니 이미 내 밑으로 후임 2명이 더 들어와있네!?근데 그 두 명 다 형이야.당시 내 나이가 21쯤이었는데 그 둘은 27, 23이었지.게다가 27인 그 형은 몸이... 우와~ 진짜 근육맨이었어. 일단 부피가 달랐거든.머리도 좋아서 좋은 학교 다니고 계셨지.스타크래프트 실력은 한때 PC방 간판깨기 하고 다녔다고 하니 보통은 아니었겠지. 보진 못했지만.나랑 입대일이 며칠 차이도 안났어. 내가 3월 27일이고 그 형이 4월 초였으니까.그래서 내가 그 형에게 ‘말 놓으셔도 되요.’(소심한 남자입니다.) 라고 하니까, 안 놓겠대. ‘편하게 반말해주십시오.’ 이러더라.아무튼 스펙도 좋고 일도 잘해서 인기만점인 형이었지. 근데 그 엄청난 몸에 비해 힘쓰는 일을 잘 안하려하기에 내가 관상용 근육이라고 부르긴 했지만.그 형은 나 전역하고 금세 전역했는데 전역하고 싸이월드를 보니까 ‘이제 말 놓아도 되겠네’ 이러면서 나중에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남겨놨더라고.즐겁게 연락했지만 없는 번호랍니다.형, 내가 뭐 잘못한거 있나요. ㅠ.ㅠ대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알아보니 다른 사람도 연락이 안된다더라고.이승준 형, 잘 지내. 언젠가 한 말대로 국회위원 나가면 한 표 보낼게.자꾸 이야기가 딴길로 빠지네.이등병 시절에 그렇게 3개월 다른 곳에 다녀오니 병장들은 대부분 전역해있고 점점 후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라.소위 말하는 풀린 군번이지.문제는 같은 소대의 다른 분대에 있는 상병 한명이 날 엄청 싫어하더라고.이유는 잘 모르겠어.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이 있겠지.그 사람도 대부분의 소대원이 싫어했지만 일처리는 확실한 사람이었거든. 괜히 누굴 싫어하고 그런 사람은 아닌거 같으니 뭔가 이유는 있겠지.그래도 난 잘 모르겠어.아무튼 그 사람은 병장되어 나갈 때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 통신병의 일과는 간단해.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근무를 나가.산위에 있는 무선망 근무와 산 아래에 있는 유선망 근무가 있어.유선망을 실력이 좀 받혀주고 어느정도 배워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선망을 늘 하던 일이지.그냥 가서 놀다가 정해진 시간에 무선이 살아있는지 테스트 하면 돼.돌발상황으로 안테나가 쓰러지거나 무선망이 끊기는 일이 있는데 침착하게 대처하면 어렵지 않아.하조대에 있을 때는 태풍이 강해서 안테나가 바람에 넘어가기도 했지만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지.오전근무, 오후근무, 야간근무가 있는데 오전, 오후는 말 그대로 오전, 오후에 통신소에 앉아있지.주로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게 일과였지.야간근무는 밤샘 근무야.통신소에서 밤을 새고 아침에 내려와 오후까지 근무취침을 취하는 거지.그리고 밤에 잠을 잘 때는 불침번은 다른 중대가 대신 서주고 우리는 산꼭대기와 산 아래에 있는 초소로 경계근무를 나갔지.A초소가 산 위, B초소가 산 아래라고 칭한다면, A초소로 우리 중대가 경계를 나가고 B초소로 다른 중대가 경계를 나가게 되지.그리고 약 1시간 30분가량 경계를 서는데 A초소 근무자는 천천히 철조망을 따라 걸으며 B초소로 향하고 B초소 근무자는 반대방향으로 걸어서 A초소로 이동하는 식이었어.그렇게 초소가 바뀌고 나면 근무시간은 끝나게 되지. 인솔자를 따라서 복귀하고 컵라면을 먹고 다시 잠을 잤어.그렇게 중대에서 3개월을 지내고 또다시 파견을 나갔지. 문암이라는 곳에 소대로 파견을 나가서 3개월을 지냈어.하조대도 그랬지만 파견지에는 대체로 PX가 없어서 가끔씩 들리는 황금마차로 불리는 이동식 PX에서 먹을걸 사재기 해놓곤 했지.특히 라면 같은 것은 부루마블 게임의 칩으로 걸고 서로 따거나 잃기도 했어. 정말 재밌었지.문암에서 철조망 밖을 바라보면 바로 바다가 보였는데 밤에는 오징어잡이 배들로 밤바다가 환하게 빛나고는 했지.문암에서 지낼 때 가장 기억나는 것 몇 가지. 첫째로는 주특기 시험을 봤어.당시 나는 일병이었는데 주특기 실력 즉, 무선장비의 제원이나 세부 사항 등에 대한 지식이 많이 모자랐어.사실 몰라도 대충 운용하는데 문제는 없는데다 딱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거든. 핑계지만.문암으로 파견을 나가기 전에 내가 몇 가지 문제를 일으켜서(시간을 잘못 알아서 경계 늦게 투입, 통신 근무지에서 자다 걸림) 부소대장이 날 곱게 보지 않고 있었지.더불어 나 외에도 다른 병사들이 대부분 자기 주특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격분한 부소대장은 우리 소대 에이스에게 주특기 문제를 제작하라고 지시했어.그 에이스 녀석도 12월 군번이었는데 전역한 지금도 자주 만나. 며칠 전에도 둘이서 어벤져스 보고왔어. 남자끼리... ㅠㅠ아무튼 그녀석은 문제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우리소대에서 그녀석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전부 시험을 봐야했지.다행히도 공부를 하라고 며칠 간 시간을 줬어. 그리고 나한테는 특별히 시험 못보면 진급누락이라고 협박도 해주셨지. 쓰읍...며칠간 죽자고 노력했지. 출제범위도 알 수 없는 시험이라 닥치는대로 외웠어.결국 시험은 1등했지. 다행이야.부소대장도 그 후로는 크게 터치 안하더라고.1등이라고 해도 간신히 시험문제 반타작 이상정도였지만 말이지. 두 번째는 왕따 사건이지.군대에도 왕따는 존재하더라고.내가 당한건 아니고 나랑 하조대를 같이 갔던 12월 군번 손 일병, 아니 상병이었나? 기억이 애매하네.그녀석이 후임들에게 인기가 많이 없었지. 불쌍하게도.그녀석, 선임들이나 간부들에게는 싹싹하고 일도 열심히 했는데 후임들에게는 평판이 안 좋았어.그 불만이 그 파견지에서 처음 터졌지.손 일병이 생활관에 들어가면 다른 후임들 전부 밖으로 나가더라.너무 노골적이라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어.게다가 후임뿐만이 아니라 선임들도 녀석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어.그래서 그녀석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나는 애매했어.손 일병이 분명 짜증나는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하조대에서 3명이서 3개월 동안 같이 지내다보니 정이 들어서 그런지 불쌍해보이더라고.덕분에 내가 그녀석이랑 많이 있어줬지. 랄까 녀석이 나에게 들러붙었어.나 말고는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그런데 어느 날 선임들이 모여서 나를 부르는거야.가봤더니 나한테 이렇게 묻더라.‘손 일병이 너 괴롭히냐?’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솔직히 당시에는 녀석 때문에 좀 피곤했지.그래도 최소한 녀석이 날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거든. 단지 귀찮게 들러붙었을 뿐이지. 등에 매달리거나 하는 식으로.내가 몇 번 부정하니까 선임들이 괜찮다고 말해보라고 채근하더라.이미 맘속에선 원하는 대답이 있는 모양이었어.그래서 난 말했지.조금 귀찮고 짜증이 난다고.선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날 손 일병이 날 조용히 밖으로 부르더라.철책 밖으로 바다를 보면서 귀찮게 해서 미안했다고 진지하게 말하더라.자기는 내가 이해해 줄거라고 생각했대. 왜냐면 내가 그녀석이랑 가장 오래 지내기도 했고 대충 잘 놀아줬으니까.그 사건 후로는 그녀석이 나한테 들러붙는 일은 줄었어. 뭐랄까... 좀 사무적으로 대하게 되었다고 할까?물론 오래가진 않았지. 그녀석하고 큰 마찰없이 지내줄 수 있는건 솔직히 나 정도였거든.난 성격이 둥글둥글하니까 왠만한건 다 이해하고 넘어가고 대부분 다 친하게 지냈거든. 나쁘게 말하면 대충대충이란거야.그렇게 문암의 파견생활은 끝났어. 다시 중대로 돌아와서 3개월간 생활을 했지.통신근무중 유선과 무선근무가 있다고 말했었지?유선은 산 아래에 있어서 가까운 대신 무선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근무였어.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쓰는 전화기를 연결해주는 전화국 같은 일을 했지.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곳에 근무투입이 되었어.솔직히 무선근무가 더 편하고 좋은데 어쩌겠어. 군인이니까 까라면 까는거지.그래서 난 첫 근무로 문암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한 그 에이스 녀석이랑 같이 근무를 들어갔어.그 녀석 에이스라서 똑똑하걸랑.그때쯤에는 이미 녀석이랑 말을 놓고 지내는 친한 사이라 난 그놈에게 근무를 맡겨놓고 쉬어도 되겠지 싶었어.하지만 이게 웬걸?난 부사수 신분으로 그 녀석에게 하루 교육을 받고 바로 사수로 투입이 되었어.사수와 부사수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을게. 아는 사람은 다 알테니까.급조된 지식으로 간당간당하게 근무를 했지.그곳에는 노트북이 있었는데 인트라넷과 연결이 되어 있었어. 좋은 점은 그거 하나야.주변 장비에서 전자파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머리 아프다고 도망친 후임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정도로 근무 여건은 안 좋았지만 노트북으로 인트라넷에 올라온 소설을 읽거나 플레쉬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어.그렇게 3개월이 지났지.우리 소대는 강연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어. 강연은 커다란 부대 안에 있는 파견지였어.PX도 있고 여러 가지 시설도 훨씬 많은 곳이라 파견지 중에는 제일 좋은 곳으로 꼽혔지.거기서 난 병장을 달고 분대장이 되었지.내 분대원은 그 근육맨 형과 복싱 좀 하다왔다는 녀석 등이 있어서 거칠어 보였지만 대충 내 눈엔 화목해보였어.강연의 통신 근무지에는 무선 장비와 유선 장비가 동시에 설치되어있어서 그 두 개를 모두 다룰줄 알아야 하더군.중대에 있을 때 날 급하게 가르친 이유가 이거였어.강연에서의 생활은 편했지.그래도 몇 가지 사건이 있긴 했어. 첫째로 9월 이등병 녀석이 있었어.그 녀석... 나랑 같이 통신근무를 들어가서 나한테 유선장비 교육을 받았지.간단한 건데 잘 이해가 안 되는지 여러 번 알려줬어. 그러자 슬슬 재미있다면서 좋아하던 그런 녀석인데...문제는 훈련 중에 일어났어.우리 무선 통신병을 3인 1조로 커다란 안테나를 세워서 무선을 개통하지.연병장에서 그 훈련 중이었어.매우 더운 날에 방탄 쓰고 안테나 마스트를 세웠지.내 지시에 따라서 마스트를 세우고 나는 서있는 마스트를 붙잡고 고정하고 있으면 다른 두명이 빠르게 말뚝을 박는 작업을 했어.쇠말뚝에 지선을 걸어서 마스트를 서있을 수 있도록 고정하는 작업이지.근데 소대장이 자꾸 빨리빨리하라고 다그쳤어.안테나 빨리 치기 대회가 있었거든. 우린 그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그 9월 이등병 녀석이 열심히 쇠말뚝을 쇠망치로 내려치고 있다가 갑자기 ‘아~!’ 하고 소리친거야.나랑 소대장을 포함한 몇 명이 달려가서 확인하니까... 오른쪽 검지손가락 마지막 마디 윗부분이 완전히 뭉개져있더라. 빨리하기 위해 해머를 너무 바짝 잡고 말뚝을 치다가 해머의 목과 말뚝의 머리 사이에 손가락이 낀거야.그래서 손가락이 완전히 뭉개져 버렸어.녀석은 당시에는 너무 순간적인일이라 고통을 못 느꼈나봐.군의관한테 가서 식염수로 소독을 하니까 그제야 얼굴을 찌푸리더라.그렇게 그 녀석은 병원으로 떠났어.어느 날 밤에 그 녀석의 부모님이 우리 소대로 오셨더라.난 90도로 인사하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감사하고 죄송하게도 날 책망하진 않으셨어. 오히려 과일까지 사오셨더라고.정말 너무 죄송했어.빨리하라고 외친 건 소대장이지만 나도 같은 마음이었거든. 기본중의 기본인 안전을 생각 못했어.그렇게 그 끔찍한 사건은 끝났어. 두 번째로는 왕따 리턴즈~!아놔 그 손 일병, 아니 손 병장이 되었지.손 병장도 분대장을 달았는데 당최 분대원이 단합이 안돼.한창 손 병장과 소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을 시즌이었지.소대장님이 강연에 있는 군인전용 고깃집에 회식을 가자고 했어.언제나 고기가 고픈 군인은 당연히 콜을 외쳤지만 녀석은 쿨하게 노를 외쳤어. 혼자. 우리끼리 먹고 오라는거야.뭐, 나야 분대장이고 내 분대원은 모두 가기로 했으니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손 병장 분대원들이 난감해졌지.분대장이 따라가야 하는데 너네끼리 다녀와, 나는 괜찮으니까. 하고 있으니 짜증나지.결국 소대장도 짜증이 나서 그 녀석만 빼고 모두 고기를 먹으러 갔어.술마신 소대장이 짜증내면서 대체 그 녀석 정체가 뭔지 나에게 묻더군.왜 나한테 물어? 얼굴 보면 알잖아요. 그 녀석 오크란 말야.그렇게 우리 소대 회식은 손 병장 뒷담화가 꽃을 피웠지.세 번째로는 내 분대원의 고민상담이야.내가 당직을 서는 날이었어.소대장이 소주팩을 사왔더라고.안주는 취사장에서 가져온 제육볶음이랑 컵라면 등으로 밤중에 신나게 파티를 즐겼지.난 일단은 당직이라 적당히 마시고 상황실로 가서 컴퓨터를 만지다가 잠들었어(...)다음날 힘겹게 일어나서 완전 술에 쩔은 소대장을 깨우고 일과를 시작했지.일단 당직은 밤을 새우기 때문에 근무가 끝나면 근무취침을 하지.물론 난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는게 되지만 대부분이 그래.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자려고 하는데 내 소대원 중 복싱을 좀 하다온 그 거친 친구가 날 부르더라.조용히 상담하고 싶은게 있다고.난 술 때문에 피곤했지만 분대장의 직무를 피할 순 없었지.녀석과 난 동갑이고 계급을 떠나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었어. 더욱 더 상담에 응해줘야지.녀석은 날 데리고 으슥한 곳으로 가서 상담을 시작했어.내용인 즉, 어제 밤에 술을 마시고 먼저 자겠다고 자리에 누웠데.그런데 잠이 안와서 그냥 눈만 감고 있는데 술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욕을 하기 시작하더라는거야.녀석이 권투를 해서 몸이 좀 좋아. 그리고 거친 형들이랑 지내서 그런지 툭툭 치는걸 좋아해.그게 후임들에게는 짜증이 된 모양이었어.녀석은 장난으로 한건데 후임들은 그게 싫었던거지.술 마시던 사람들 중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 솔직히 한명쯤은 자기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었데.그게 쇼크였다고 하더라.나는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녀석에 험담을 듣지 못하고 하지도 않았지.물론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설령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욕하지 않았을거야.각설하고.그래서 녀석은 우리 소대원에게 너무 미안하니 다른 소대로 옮겨달라고 하더라.그건 중대사안이야.녀석과 나는 동갑이야. 설령 계급은 다르지만 그런 심각한 문제에 누가 잘난체하며 설교할 그런 상황이 아니지.난 소대장님에게 보고를 드렸지.나를 제외한 다른 분대장 몇 명도 와서 설득을 시작했지.결국 소대를 옮기지는 않기로 했어. 그 녀석은 후임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후임들도 술자리에서 욕한걸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덕분에 그 씩씩한 녀석이 한동안 시무룩했지만 천성이 어디가겠어? 금방 씩씩해졌어.그렇게 또 3개월이 지나고 나는 남은 3개월을 중대에서 있다가 전역하면 되었지.그런데... 내가 도착한곳은 대포 파견지였어.소대끼리의 복잡한 관계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원래 우리가 대포 파견지에 가야할 때 다른 소대가 대신 가주었었대.그걸 갚기 위해 내가 간거지. 후임 두명이랑.그래서 말년을 거기서 보냈어.다행인건 중대에 있는 큰 훈련들을 난 싹다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는 거고, 안 좋은건 대포 파견지에 주둔한 부대의 중대장이 싸이코였다는 거야.툭하면 우리 통신소에 와서 깽판을 피거나 없는 죄로 사람을 의심하지 않나.아주 피곤했어.그래도 좋은 점은 대포 파견지는 새벽에 몰래 족발/보쌈을 시켜 먹을 수가 있었어.전화로 주문하면 새벽에 몰래 문 앞으로 오토바이가 와.경계서는 녀석들은 알면서도 봐주는 건지 아무튼 그 오토바이에 접선해서 돈을 주고 물건을 받아왔지.다 먹고 나면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서 철조망 밖으로 던졌어.그렇게 몇 차례 시켜먹었는데 꼬리가 길면 밟히더라.걸렸어. 새벽 2시에 근무 마치고 오던 간부가 오토바이가 내려가는 모습을 본거야.다행인건 그 간부가 싸이코 중대장은 아니었다는 거지.내가 족발 보쌈을 바닥에 깔고 있을 때 간부가 처들어왔지.그리고 술을 찾더군.왠 술? 우린 술은 안 시켜먹었거든.그 간부는 한참 우리가 숨켰으리라 생각한 술을 찾다가 술이 나오지 않자 나에게 묻더군.몇 번째냐고.난 말했지. 처음이라고.간부가 몇 번 더 물었지만 어쩌겠어. 난 처음이다. 죄송하다. 하고 빌었지.한번 봐준다네 예이~!그 간부는 정말로 입이 무거웠고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아줬어.정말 고마웠지.내가 대포에 있을 무렵 손가락이 박살났던 그 이병이 왔어.손가락 수술을 마치고 휴가를 나간 대포의 원래 근무자 대신 며칠간 땜빵으로 지냈지.손가락은 상당히 짧아졌어. 정말 미안했지.그래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줘서 고마웠어. 전역이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동시에 혹한기 훈련도 가까워졌어. 이건 피할 수 없었지.혹한기 훈련은 괜찮아. 할만해.하지만 그 훈련 끝에 시작하는 40Km 야간 행군은 정말이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어.훈련 전날 중대에 복귀해보니 동기 3명은 각각의 방법으로 행군을 피했더군.간부에게 입발림, 2년 동안 아프다고 훈련 째온 놈. 휴가 나갔다가 오른발에 깁스를 하고 들어온 놈.분명히 안 다친건데 어쩌겠어. 지가 아프다는데...그래서 나만 행군이 확정되어 있었지.그런데 혹한기 훈련을 받던 도중 나는 급성 장염에 걸려 실려갔고 나는 배가 아픈 와중에도 승리의 V를 후임들에게 그리며 후송되었지.당연히 행군 면제. 만세!마지막 훈련도 마치고 무사히 전역하게 되었어.마침 시기상 군복무 기간 감소가 진행되고 있던 중이라 난 5일이 깎여서 3월 21일에 전역을 하게 되었어. 12
한 남자의 인생 -군 시절-
앞의 글을 읽고 오신분이나 그렇지 않으신 분이나 보시는데는 별 상관이 없을 겁니다.
군대에서 지낼때의 추억을 적어보았습니다.
쓰다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울적하기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떠오르네요.
앞으로 사회생활만 남았네요.
군 전역 후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슬픈 모태 솔로 27 남자 사람의 이야기
전편처럼 반말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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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가 과다 보니 여자사람은 1명인가 2명 정도면 용한거였지.
난 1년을 평범하게 다니다가 군대를 가게 됐어. 어디서 특기병 지원이라는 걸 들어서 통신병을 지원하게 됐지.
1732 중계/반송
이게 뭔가 싶긴 한데 지원자가 적어서 빨리 갈 수 있겠네 싶어 생각없이 그냥 지원했어.
지원자가 적으니 당연히 붙었지. 붙고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망치로 쇠말뚝을 박는다네? 워메...
결국 3월 27일 이라는 애매한 날 군 입대를 하게 되었어.
어머니는 마지막에 눈물을 보이셨고 아버지는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셨지.
논산...
처음에는 실감도 잘 안나고 자고 일어나면 왠지 집에 있을거 같기도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지.
부모님과 헤어질 때는 안 울었지만 입고 온 옷을 상자에 넣으면서 편지를 쓰는데 그제서야 눈물이 나더라.
더 효도할 것을...
신병교육대에서 며칠 있다가 훈련소에 입대했어.
한 달...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지. 시간 아주 잘 가더라.
난 특기병이라 일반병들이 버스타고 갈 때 난 전철타고 특기병교육을 받으러 갔지.
대기하는 곳에서 1일 대기하고 다시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통신학교였어.
거기서 군에서 사용하는 무전 장비에 대한 교육을 몇 주간 듣고 드디어 자대를 배치 받았지.
자대배치는 ARS 전화같이 어느 번호에 전화해서 군번인지 민번인지를 입력하면 기계음의 아가씨가 어느 부대라고 알려주는 방식이었어.
한동안 병사들은 전화기 앞에 줄을 섰지 자기가 가는 곳이 전방이냐 후방이냐의 갈림길이었으니까.
속칭 메이커 부대라고 불리는 유명하고 빡신 부대에 걸린 동기놈들은 얼굴을 감싸쥐고 울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
난 전방 쪽인 강원도 양양으로 떨어졌어. 알동기(훈련소부터 같이 온 동기) 하나 없이 떨렁 2명이서 그곳으로 보내졌어.
8군단 통신 2중대.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었지.
생활관에 들어가보니 병장님들 엄청 많더만.
대부분이 병장이고 나머지 조금 상병.
내 3개월 위의 고참 한 명.
이 정도였어.
12월 군번인 그 일병이 날 담당했지.
이름도 기억나. 잊을 수 없지.
손성환.
생긴건 오크였고 성격은 다른 후임들이 싫어하는 고참이었지만 난 그녀석이랑 엄청 오래 지냈거든.
진상부릴 때도 있지만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해.
혹시라도 이글을 보게 되면 댓글이라도 달아줘. 술이나 한잔 먹자. 내가 살게.
난 부대에 전입해서 1달 정도 있다가 파견이라는 것을 나가게 되었어.
내 보직은 통신병인데 흔히들 아는 FM 무전기를 메고 다니는 보직이 아니라 차에다 커다란 마스트를 올려놓고 이동한 뒤에 땅에 말뚝을 박아서 안테나를 세워 멀리 떨어진 곳과 무선망을 개통하는 일을 했지.
파견이란 그렇게 개통된 오지에 있는 무선망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병사 혹은 소대가 나가서 주둔하는 것을 말해.
내가 처음으로 파견을 나간 곳은 하조대라는 곳이었어.
해수욕장으로 유명하지만 내 기억엔 파견과 유격장의 기억만이 남은 곳이지.
우리 중대의 파견지는 총 4곳, 하조대, 강연, 대포, 문암 이렇게 있었어.
이중 강연과 문암은 소대 단위로 파견을 나가고 대포와 하조대는 병사 3명만 가는 곳이라 보통 이등병은 보내지 않는다는데 난 어쩌다 가게 되었지. 아마 사람이 모자랐을거야. 병장들만 넘쳐났으니까.
상병 한명, 12월 손 일병 한명,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그 하조대 파견지에 가게 되었지.
산꼭대기에 있는 부대 안에 있는 파견지라 식사는 그 부대와 같이 했어.
하지만 담당하는 간부가 없으니 우리는 좀 자유롭긴 했어. 아마 중대에 있는 것보단 훨씬 편했을거야.
각각의 파견지는 3개월씩 지내는데 보통은 많이 가면 3곳, 기본은 2곳을 다녀오면 전역한다고 하더라고.
난 4곳 다 다녀왔어. 중대 최초로... 왠지 낮은 확률에 강한거 같더라고 난.
게다가 하조대는 내가 간 뒤로는 다른 중대에 넘겨져서 더는 갈 수도 없는 곳이 되었지.
정말 낮은 확률에 강하네.
그렇게 3개월간 지내고 중대로 돌아와보니 이미 내 밑으로 후임 2명이 더 들어와있네!?
근데 그 두 명 다 형이야.
당시 내 나이가 21쯤이었는데 그 둘은 27, 23이었지.
게다가 27인 그 형은 몸이... 우와~ 진짜 근육맨이었어. 일단 부피가 달랐거든.
머리도 좋아서 좋은 학교 다니고 계셨지.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한때 PC방 간판깨기 하고 다녔다고 하니 보통은 아니었겠지. 보진 못했지만.
나랑 입대일이 며칠 차이도 안났어. 내가 3월 27일이고 그 형이 4월 초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 형에게 ‘말 놓으셔도 되요.’(소심한 남자입니다.) 라고 하니까, 안 놓겠대. ‘편하게 반말해주십시오.’ 이러더라.
아무튼 스펙도 좋고 일도 잘해서 인기만점인 형이었지. 근데 그 엄청난 몸에 비해 힘쓰는 일을 잘 안하려하기에 내가 관상용 근육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 형은 나 전역하고 금세 전역했는데 전역하고 싸이월드를 보니까 ‘이제 말 놓아도 되겠네’ 이러면서 나중에 연락하라고 전화번호 남겨놨더라고.
즐겁게 연락했지만 없는 번호랍니다.
형, 내가 뭐 잘못한거 있나요. ㅠ.ㅠ
대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알아보니 다른 사람도 연락이 안된다더라고.
이승준 형, 잘 지내. 언젠가 한 말대로 국회위원 나가면 한 표 보낼게.
자꾸 이야기가 딴길로 빠지네.
이등병 시절에 그렇게 3개월 다른 곳에 다녀오니 병장들은 대부분 전역해있고 점점 후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소위 말하는 풀린 군번이지.
문제는 같은 소대의 다른 분대에 있는 상병 한명이 날 엄청 싫어하더라고.
이유는 잘 모르겠어.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이 있겠지.
그 사람도 대부분의 소대원이 싫어했지만 일처리는 확실한 사람이었거든. 괜히 누굴 싫어하고 그런 사람은 아닌거 같으니 뭔가 이유는 있겠지.
그래도 난 잘 모르겠어.
아무튼 그 사람은 병장되어 나갈 때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
통신병의 일과는 간단해.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근무를 나가.
산위에 있는 무선망 근무와 산 아래에 있는 유선망 근무가 있어.
유선망을 실력이 좀 받혀주고 어느정도 배워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선망을 늘 하던 일이지.
그냥 가서 놀다가 정해진 시간에 무선이 살아있는지 테스트 하면 돼.
돌발상황으로 안테나가 쓰러지거나 무선망이 끊기는 일이 있는데 침착하게 대처하면 어렵지 않아.
하조대에 있을 때는 태풍이 강해서 안테나가 바람에 넘어가기도 했지만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지.
오전근무, 오후근무, 야간근무가 있는데 오전, 오후는 말 그대로 오전, 오후에 통신소에 앉아있지.
주로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게 일과였지.
야간근무는 밤샘 근무야.
통신소에서 밤을 새고 아침에 내려와 오후까지 근무취침을 취하는 거지.
그리고 밤에 잠을 잘 때는 불침번은 다른 중대가 대신 서주고 우리는 산꼭대기와 산 아래에 있는 초소로 경계근무를 나갔지.
A초소가 산 위, B초소가 산 아래라고 칭한다면, A초소로 우리 중대가 경계를 나가고 B초소로 다른 중대가 경계를 나가게 되지.
그리고 약 1시간 30분가량 경계를 서는데 A초소 근무자는 천천히 철조망을 따라 걸으며 B초소로 향하고 B초소 근무자는 반대방향으로 걸어서 A초소로 이동하는 식이었어.
그렇게 초소가 바뀌고 나면 근무시간은 끝나게 되지. 인솔자를 따라서 복귀하고 컵라면을 먹고 다시 잠을 잤어.
그렇게 중대에서 3개월을 지내고 또다시 파견을 나갔지.
문암이라는 곳에 소대로 파견을 나가서 3개월을 지냈어.
하조대도 그랬지만 파견지에는 대체로 PX가 없어서 가끔씩 들리는 황금마차로 불리는 이동식 PX에서 먹을걸 사재기 해놓곤 했지.
특히 라면 같은 것은 부루마블 게임의 칩으로 걸고 서로 따거나 잃기도 했어. 정말 재밌었지.
문암에서 철조망 밖을 바라보면 바로 바다가 보였는데 밤에는 오징어잡이 배들로 밤바다가 환하게 빛나고는 했지.
문암에서 지낼 때 가장 기억나는 것 몇 가지.
첫째로는 주특기 시험을 봤어.
당시 나는 일병이었는데 주특기 실력 즉, 무선장비의 제원이나 세부 사항 등에 대한 지식이 많이 모자랐어.
사실 몰라도 대충 운용하는데 문제는 없는데다 딱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거든. 핑계지만.
문암으로 파견을 나가기 전에 내가 몇 가지 문제를 일으켜서(시간을 잘못 알아서 경계 늦게 투입, 통신 근무지에서 자다 걸림) 부소대장이 날 곱게 보지 않고 있었지.
더불어 나 외에도 다른 병사들이 대부분 자기 주특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격분한 부소대장은 우리 소대 에이스에게 주특기 문제를 제작하라고 지시했어.
그 에이스 녀석도 12월 군번이었는데 전역한 지금도 자주 만나. 며칠 전에도 둘이서 어벤져스 보고왔어. 남자끼리... ㅠㅠ
아무튼 그녀석은 문제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우리소대에서 그녀석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전부 시험을 봐야했지.
다행히도 공부를 하라고 며칠 간 시간을 줬어. 그리고 나한테는 특별히 시험 못보면 진급누락이라고 협박도 해주셨지. 쓰읍...
며칠간 죽자고 노력했지. 출제범위도 알 수 없는 시험이라 닥치는대로 외웠어.
결국 시험은 1등했지. 다행이야.
부소대장도 그 후로는 크게 터치 안하더라고.
1등이라고 해도 간신히 시험문제 반타작 이상정도였지만 말이지.
두 번째는 왕따 사건이지.
군대에도 왕따는 존재하더라고.
내가 당한건 아니고 나랑 하조대를 같이 갔던 12월 군번 손 일병, 아니 상병이었나? 기억이 애매하네.
그녀석이 후임들에게 인기가 많이 없었지. 불쌍하게도.
그녀석, 선임들이나 간부들에게는 싹싹하고 일도 열심히 했는데 후임들에게는 평판이 안 좋았어.
그 불만이 그 파견지에서 처음 터졌지.
손 일병이 생활관에 들어가면 다른 후임들 전부 밖으로 나가더라.
너무 노골적이라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어.
게다가 후임뿐만이 아니라 선임들도 녀석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어.
그래서 그녀석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
나는 애매했어.
손 일병이 분명 짜증나는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하조대에서 3명이서 3개월 동안 같이 지내다보니 정이 들어서 그런지 불쌍해보이더라고.
덕분에 내가 그녀석이랑 많이 있어줬지. 랄까 녀석이 나에게 들러붙었어.
나 말고는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
그런데 어느 날 선임들이 모여서 나를 부르는거야.
가봤더니 나한테 이렇게 묻더라.
‘손 일병이 너 괴롭히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
솔직히 당시에는 녀석 때문에 좀 피곤했지.
그래도 최소한 녀석이 날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거든. 단지 귀찮게 들러붙었을 뿐이지. 등에 매달리거나 하는 식으로.
내가 몇 번 부정하니까 선임들이 괜찮다고 말해보라고 채근하더라.
이미 맘속에선 원하는 대답이 있는 모양이었어.
그래서 난 말했지.
조금 귀찮고 짜증이 난다고.
선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날 손 일병이 날 조용히 밖으로 부르더라.
철책 밖으로 바다를 보면서 귀찮게 해서 미안했다고 진지하게 말하더라.
자기는 내가 이해해 줄거라고 생각했대. 왜냐면 내가 그녀석이랑 가장 오래 지내기도 했고 대충 잘 놀아줬으니까.
그 사건 후로는 그녀석이 나한테 들러붙는 일은 줄었어. 뭐랄까... 좀 사무적으로 대하게 되었다고 할까?
물론 오래가진 않았지. 그녀석하고 큰 마찰없이 지내줄 수 있는건 솔직히 나 정도였거든.
난 성격이 둥글둥글하니까 왠만한건 다 이해하고 넘어가고 대부분 다 친하게 지냈거든. 나쁘게 말하면 대충대충이란거야.
그렇게 문암의 파견생활은 끝났어.
다시 중대로 돌아와서 3개월간 생활을 했지.
통신근무중 유선과 무선근무가 있다고 말했었지?
유선은 산 아래에 있어서 가까운 대신 무선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근무였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쓰는 전화기를 연결해주는 전화국 같은 일을 했지.
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곳에 근무투입이 되었어.
솔직히 무선근무가 더 편하고 좋은데 어쩌겠어. 군인이니까 까라면 까는거지.
그래서 난 첫 근무로 문암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한 그 에이스 녀석이랑 같이 근무를 들어갔어.
그 녀석 에이스라서 똑똑하걸랑.
그때쯤에는 이미 녀석이랑 말을 놓고 지내는 친한 사이라 난 그놈에게 근무를 맡겨놓고 쉬어도 되겠지 싶었어.
하지만 이게 웬걸?
난 부사수 신분으로 그 녀석에게 하루 교육을 받고 바로 사수로 투입이 되었어.
사수와 부사수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을게. 아는 사람은 다 알테니까.
급조된 지식으로 간당간당하게 근무를 했지.
그곳에는 노트북이 있었는데 인트라넷과 연결이 되어 있었어. 좋은 점은 그거 하나야.
주변 장비에서 전자파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머리 아프다고 도망친 후임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정도로 근무 여건은 안 좋았지만 노트북으로 인트라넷에 올라온 소설을 읽거나 플레쉬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어.
그렇게 3개월이 지났지.
우리 소대는 강연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어.
강연은 커다란 부대 안에 있는 파견지였어.
PX도 있고 여러 가지 시설도 훨씬 많은 곳이라 파견지 중에는 제일 좋은 곳으로 꼽혔지.
거기서 난 병장을 달고 분대장이 되었지.
내 분대원은 그 근육맨 형과 복싱 좀 하다왔다는 녀석 등이 있어서 거칠어 보였지만 대충 내 눈엔 화목해보였어.
강연의 통신 근무지에는 무선 장비와 유선 장비가 동시에 설치되어있어서 그 두 개를 모두 다룰줄 알아야 하더군.
중대에 있을 때 날 급하게 가르친 이유가 이거였어.
강연에서의 생활은 편했지.
그래도 몇 가지 사건이 있긴 했어.
첫째로 9월 이등병 녀석이 있었어.
그 녀석... 나랑 같이 통신근무를 들어가서 나한테 유선장비 교육을 받았지.
간단한 건데 잘 이해가 안 되는지 여러 번 알려줬어. 그러자 슬슬 재미있다면서 좋아하던 그런 녀석인데...
문제는 훈련 중에 일어났어.
우리 무선 통신병을 3인 1조로 커다란 안테나를 세워서 무선을 개통하지.
연병장에서 그 훈련 중이었어.
매우 더운 날에 방탄 쓰고 안테나 마스트를 세웠지.
내 지시에 따라서 마스트를 세우고 나는 서있는 마스트를 붙잡고 고정하고 있으면 다른 두명이 빠르게 말뚝을 박는 작업을 했어.
쇠말뚝에 지선을 걸어서 마스트를 서있을 수 있도록 고정하는 작업이지.
근데 소대장이 자꾸 빨리빨리하라고 다그쳤어.
안테나 빨리 치기 대회가 있었거든. 우린 그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9월 이등병 녀석이 열심히 쇠말뚝을 쇠망치로 내려치고 있다가 갑자기 ‘아~!’ 하고 소리친거야.
나랑 소대장을 포함한 몇 명이 달려가서 확인하니까...
오른쪽 검지손가락 마지막 마디 윗부분이 완전히 뭉개져있더라.
빨리하기 위해 해머를 너무 바짝 잡고 말뚝을 치다가 해머의 목과 말뚝의 머리 사이에 손가락이 낀거야.
그래서 손가락이 완전히 뭉개져 버렸어.
녀석은 당시에는 너무 순간적인일이라 고통을 못 느꼈나봐.
군의관한테 가서 식염수로 소독을 하니까 그제야 얼굴을 찌푸리더라.
그렇게 그 녀석은 병원으로 떠났어.
어느 날 밤에 그 녀석의 부모님이 우리 소대로 오셨더라.
난 90도로 인사하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
감사하고 죄송하게도 날 책망하진 않으셨어. 오히려 과일까지 사오셨더라고.
정말 너무 죄송했어.
빨리하라고 외친 건 소대장이지만 나도 같은 마음이었거든. 기본중의 기본인 안전을 생각 못했어.
그렇게 그 끔찍한 사건은 끝났어.
두 번째로는 왕따 리턴즈~!
아놔 그 손 일병, 아니 손 병장이 되었지.
손 병장도 분대장을 달았는데 당최 분대원이 단합이 안돼.
한창 손 병장과 소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을 시즌이었지.
소대장님이 강연에 있는 군인전용 고깃집에 회식을 가자고 했어.
언제나 고기가 고픈 군인은 당연히 콜을 외쳤지만 녀석은 쿨하게 노를 외쳤어.
혼자.
우리끼리 먹고 오라는거야.
뭐, 나야 분대장이고 내 분대원은 모두 가기로 했으니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손 병장 분대원들이 난감해졌지.
분대장이 따라가야 하는데 너네끼리 다녀와, 나는 괜찮으니까. 하고 있으니 짜증나지.
결국 소대장도 짜증이 나서 그 녀석만 빼고 모두 고기를 먹으러 갔어.
술마신 소대장이 짜증내면서 대체 그 녀석 정체가 뭔지 나에게 묻더군.
왜 나한테 물어? 얼굴 보면 알잖아요. 그 녀석 오크란 말야.
그렇게 우리 소대 회식은 손 병장 뒷담화가 꽃을 피웠지.
세 번째로는 내 분대원의 고민상담이야.
내가 당직을 서는 날이었어.
소대장이 소주팩을 사왔더라고.
안주는 취사장에서 가져온 제육볶음이랑 컵라면 등으로 밤중에 신나게 파티를 즐겼지.
난 일단은 당직이라 적당히 마시고 상황실로 가서 컴퓨터를 만지다가 잠들었어(...)
다음날 힘겹게 일어나서 완전 술에 쩔은 소대장을 깨우고 일과를 시작했지.
일단 당직은 밤을 새우기 때문에 근무가 끝나면 근무취침을 하지.
물론 난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는게 되지만 대부분이 그래.
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자려고 하는데 내 소대원 중 복싱을 좀 하다온 그 거친 친구가 날 부르더라.
조용히 상담하고 싶은게 있다고.
난 술 때문에 피곤했지만 분대장의 직무를 피할 순 없었지.
녀석과 난 동갑이고 계급을 떠나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었어. 더욱 더 상담에 응해줘야지.
녀석은 날 데리고 으슥한 곳으로 가서 상담을 시작했어.
내용인 즉, 어제 밤에 술을 마시고 먼저 자겠다고 자리에 누웠데.
그런데 잠이 안와서 그냥 눈만 감고 있는데 술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욕을 하기 시작하더라는거야.
녀석이 권투를 해서 몸이 좀 좋아. 그리고 거친 형들이랑 지내서 그런지 툭툭 치는걸 좋아해.
그게 후임들에게는 짜증이 된 모양이었어.
녀석은 장난으로 한건데 후임들은 그게 싫었던거지.
술 마시던 사람들 중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 솔직히 한명쯤은 자기편을 들어줄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었데.
그게 쇼크였다고 하더라.
나는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녀석에 험담을 듣지 못하고 하지도 않았지.
물론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설령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욕하지 않았을거야.
각설하고.
그래서 녀석은 우리 소대원에게 너무 미안하니 다른 소대로 옮겨달라고 하더라.
그건 중대사안이야.
녀석과 나는 동갑이야. 설령 계급은 다르지만 그런 심각한 문제에 누가 잘난체하며 설교할 그런 상황이 아니지.
난 소대장님에게 보고를 드렸지.
나를 제외한 다른 분대장 몇 명도 와서 설득을 시작했지.
결국 소대를 옮기지는 않기로 했어. 그 녀석은 후임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후임들도 술자리에서 욕한걸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
덕분에 그 씩씩한 녀석이 한동안 시무룩했지만 천성이 어디가겠어? 금방 씩씩해졌어.
그렇게 또 3개월이 지나고 나는 남은 3개월을 중대에서 있다가 전역하면 되었지.
그런데...
내가 도착한곳은 대포 파견지였어.
소대끼리의 복잡한 관계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원래 우리가 대포 파견지에 가야할 때 다른 소대가 대신 가주었었대.
그걸 갚기 위해 내가 간거지. 후임 두명이랑.
그래서 말년을 거기서 보냈어.
다행인건 중대에 있는 큰 훈련들을 난 싹다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는 거고, 안 좋은건 대포 파견지에 주둔한 부대의 중대장이 싸이코였다는 거야.
툭하면 우리 통신소에 와서 깽판을 피거나 없는 죄로 사람을 의심하지 않나.
아주 피곤했어.
그래도 좋은 점은 대포 파견지는 새벽에 몰래 족발/보쌈을 시켜 먹을 수가 있었어.
전화로 주문하면 새벽에 몰래 문 앞으로 오토바이가 와.
경계서는 녀석들은 알면서도 봐주는 건지 아무튼 그 오토바이에 접선해서 돈을 주고 물건을 받아왔지.
다 먹고 나면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서 철조망 밖으로 던졌어.
그렇게 몇 차례 시켜먹었는데 꼬리가 길면 밟히더라.
걸렸어. 새벽 2시에 근무 마치고 오던 간부가 오토바이가 내려가는 모습을 본거야.
다행인건 그 간부가 싸이코 중대장은 아니었다는 거지.
내가 족발 보쌈을 바닥에 깔고 있을 때 간부가 처들어왔지.
그리고 술을 찾더군.
왠 술? 우린 술은 안 시켜먹었거든.
그 간부는 한참 우리가 숨켰으리라 생각한 술을 찾다가 술이 나오지 않자 나에게 묻더군.
몇 번째냐고.
난 말했지. 처음이라고.
간부가 몇 번 더 물었지만 어쩌겠어. 난 처음이다. 죄송하다. 하고 빌었지.
한번 봐준다네 예이~!
그 간부는 정말로 입이 무거웠고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아줬어.
정말 고마웠지.
내가 대포에 있을 무렵 손가락이 박살났던 그 이병이 왔어.
손가락 수술을 마치고 휴가를 나간 대포의 원래 근무자 대신 며칠간 땜빵으로 지냈지.
손가락은 상당히 짧아졌어. 정말 미안했지.
그래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줘서 고마웠어.
전역이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동시에 혹한기 훈련도 가까워졌어. 이건 피할 수 없었지.
혹한기 훈련은 괜찮아. 할만해.
하지만 그 훈련 끝에 시작하는 40Km 야간 행군은 정말이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어.
훈련 전날 중대에 복귀해보니 동기 3명은 각각의 방법으로 행군을 피했더군.
간부에게 입발림, 2년 동안 아프다고 훈련 째온 놈. 휴가 나갔다가 오른발에 깁스를 하고 들어온 놈.
분명히 안 다친건데 어쩌겠어. 지가 아프다는데...
그래서 나만 행군이 확정되어 있었지.
그런데 혹한기 훈련을 받던 도중 나는 급성 장염에 걸려 실려갔고 나는 배가 아픈 와중에도 승리의 V를 후임들에게 그리며 후송되었지.
당연히 행군 면제. 만세!
마지막 훈련도 마치고 무사히 전역하게 되었어.
마침 시기상 군복무 기간 감소가 진행되고 있던 중이라 난 5일이 깎여서 3월 21일에 전역을 하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