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제발, 울 나라 드라마 작가들이나, 애니메이션 작가들, 또는 만화작가분들이,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전국시대 이야기만 과장되고, 멋진 그림으로 그리거나 쓰지 말고, 이런 분들, 정말 그 어떤 외국의 위인들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우리나라 조상들 일대기를 썼으면 좋겠어요 ㅠㅠ
솔직히 삼국지 뻥튀기 심하고, 전국시대 장수들 그 당시 일본인 키면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요 ㅠㅠ
엉엉엉엉 나중에 자식낳고 키울때는 삼국지나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보다 훨씬 재밌고 유명한 울나라 장군들 이야기 티비로 보여주고, 책으로 읽어주며, 애들이 그 위인들을 어릴때부터 멋지다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컸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있네요...ㅠㅠ
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예전에 한번 올렸는데 그땐 조회수가....ㅠㅠ
공부하다가 쉬면서 그냥 잊혀지기는 아까운 분이라는 생각에 다시 올려봤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요^^
저도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되신분!
사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의 유명한 장수들은 많이 알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용맹하거나 훌륭한 장군들은 잘 모르거나, 능력을 낮게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우리나라 정말 훌륭하고 용맹하고 늠름한 위인들 많거든요 ㅠㅠ
삼국지에 나오는 B급,C급 장수들도 이름과 열전(사실 삼국지연의는 소설로써 능력치나 군사력 뻥튀기 대박이잖아요), 또는 일본의 전국시대 장수들은 게임이나 기타 미디어를 통해 많이들 아는데...
정작 우리나라 장군들은 잘 모르니...ㅠㅠ 어린시절 심심하면 뒷산에 올라 호랑이 귀 잡고 질질 끌고다니며 호랑이 보기를 동네 강아지보듯 했던 힘으로 따지면 동양에서 누구도 이길수 없는 김덕령이나, 일본에 가서 도술로 혼쭐을 내준 사명대사 등 알고보면 엄청 많은데..ㅠㅠ
이렇게 톡커님들이 관심도 가져주시고 하니..나중에 시간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장군들에 대해서 시리즈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ㅋㅋ
아 보잘것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홈피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한번 열고 갑니다....ㅋ
여러분 임란때 유명한 장군으로 누구누구가 생각나나요?
대부분 민족의 영웅이자 한민족 수군사상 최고의 장군인 지덕체를 겸비한 이순신 장군님!!!을 뽑고,
그 외에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이나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 또는 홍의 장군 곽재우 등을 떠올릴 텐데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으로 승진! 우방어사 조경의 휘화에서 종군하여 돌격장으로 거창에서 일본군 선봉대 500여명 격파!!
조경과 양사준이 경상우도 지역의 관군을 이끌고 추풍역에서 방어전을 펴치다가 복병의 기습을 받고 대패하여 조경이 적군에게 사로잡히자 정기룡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칼을 휘두르며 적병들을 무수히 참살하고 적의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 이때의 활약은 조조군에 단신으로 돌격하여 유선을 지켜낸 조운을 연상케 했다함!
이후 곤양수성장이 되어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고, 유병별장을 거쳐 상주판관으로 임명되어 상주성 탈환!
이후 상주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오름!!
1597년 정유래잘ㄴ이 일어나자 토왜대장이 되어 고령에서 일본군과 전투.
8월 7일 둔적교전에서 왜장 다히라가 이끄는 일본군 1천여명의 병력을 거의 전멸시킴!!!
16일 용담천대첩에서는 현재의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 용담천변에서 왜군을 유인하여 대승을 거둠!!
이때 용담천 주둔하던 왜장 시마즈의 군사는 2만명정도였지만 조선군은 고작 4천여명이었는데 살아서 돌아간 왜군은 겨우 500여명!!!
이 전투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어 왜장 가또오가 이끄는 부대는 상주로 남하 후 울산으로 철수, 모리와 구로다가 이끄는 일본군도 후퇴함!!
1598년에는 명나라 군대의 총병직을 대행, 경상도 방면에 있던 왜군의 잔적을 소탕, 용양위부호군에 봉해지다 이듬해 다시 경상우병사가 됨.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60여차례에 걸친 왜군과의 전투에서 한번의 패전도 없이 모두 승리했으며 조금도 부상을 입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타고 다니던 용마(龍馬)의 힘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천대 위에 있는 바위인데 왼쪽 네모진 것이 용마의 말구유통이고 오른쪽 동그란것이 정기룡장군의 세수통이랍니다.
1794년에 편찬된 홍량호(洪良浩)의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수록된「정기룡전」에 나타난 그의 용마에 관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기룡은 담력과 용력이 뛰어나고 두 눈이 횃불처럼 빛났다. 그가 적지에 뛰어들어 적을 무찌를 적에는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 같았으며, 왜적이 총들을 한쪽으로 모아 일제히 쏘아도 그를 명중시키지를 못했다.
그는 전투를 벌이다 가 목이 마르면 왜적의 배를 가르고 그 간을 씹었다. 용기가 북받쳐 오를 적에 는 그가 탄 신마(神馬)가 여섯 길이나 되는 참호를 능히 뛰어 넘고, 가파른 절 벽이나 위험한 언덕길도 매나 소리개처럼 날아올랐다.”
“정기룡은 일찍이 기병 8명과 함께 거창 객사에 머물러 있었다.
밤중에 왜적이 대량으로 들이닥쳐 정기룡 일행을 포위하였다.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나 정기룡만은 가만히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 다. 날이 밝은 뒤에 기병들을 이끌고서 말을 몰아 담장을 뛰어 넘어 적의 포위를 돌파하였다.”
장군님의 칼!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정기룡(鄭起龍, 1562~1622) 장군 설화.
정성박, 류종목이 1980년 8월 30일에 진주 상봉동동(上鳳東洞) 비봉루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 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박무세(당시 73세)이다.
[내용] 정기룡이 과거 보러 갔을 때, 임금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임금의 꿈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임금이 신하를 불러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정가(鄭哥)라는 사람이 막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로 인해 이름을 정기룡으로 고쳤다.
정기룡 장군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에 버금갈 만큼 큰 무공을 세운 거룩한 장군이었다. 정기룡 장군이 출세한 데는 지리학, 즉 풍수의 영향이 컸다. 어느 중이 상좌를 데리고 마을을 지나면서 “(명당자리를) 보았느냐?”라고 물었다. 보리밭에서 밭을 매고 있던 노인이 중을 잡고 명당자리를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그 명당자리에 정기룡 장군의 할아버지가 묻혔다.
『동야휘집(東野彙集)』에 실린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기룡은 곤양 사람으로 자는 경운이고 초명이 무수로 무과에 급제했다. 어려서부터 탁월하여 전쟁놀이를 할 적에도 아이들이 다 두려워하였다. 일찍이 집안이 가난하여 생활하기 어려워 편모를 모시고 진주로 가서 소금장수로 생활하다가 병영의 노안에 예속되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다가 소리를 질렀는데, 병사가 듣고서 이상히 여겨 이유를 묻자, 정기룡은 장부로 태어나 큰 뜻을 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소리가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병사가 정기룡의 인물됨을 짐작하고 속량시켜 주었다.
그 때 진주 이방의 혼사일로 정기룡이 전주 이방 권모의 집으로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전주 이방은 집안이 무척 부유하였으나 아들은 없고 시집갈 나이의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선견지명과 지인지감이 있어 자기의 일생이 좌우되는 배필은 스스로 선택하겠다고 하며 부모가 선택해주는 혼처를 거부하였다.
하루는 친척집에 일이 있어 부모가 출타한 사이에 정기룡이 심부름을 왔는데, 문틈으로 내다보니 비록 의복은 남루하나 대장부의 기상이 있어, 권모의 딸이 자신의 배필감을 만난 것을 기뻐하면서 안채로 인도하여 대접하였다. 조금 후에 부모가 돌아와 외간 남자를 내당으로 들인 딸의 행위를 질책하자, 딸이 자기의 배필로 선택한 자라고 소개하며 중매를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권모의 부부가 딸을 질책하고 딸의 요구대로 정기룡을 만나보니 기상이 남달라 정기룡에게 청혼하였다. 권모가 서면으로 모친에게 알리고 혼인하자고
하는 것을, 정기룡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며 직접 가서 모친에게 알리고 하겠다고 하자 권모가 칭찬하며 자기의 말을 타고 다녀오라고 하였다. 이에 정기룡이 자신은 걷는 데 익숙해 있다고 하며 걸어가겠다고 하자 권모가 말의 내력을 설명해 주며 말을 타고 가게 하였다. 그 말은 어느 상인이 끌고 다니던 말이었는데, 딸이 보고서 부친에게 훗날 소용될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사달라고 졸라서 권모가 사놓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워낙 사나워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서 멀리서 먹이만 주며 기른 것이었다. 정기룡이 이 말을 듣고서 가까이 가자 말이 갑자기 온순해졌으므로 모두들 정기룡이 말의 임자라고 하면서 정기룡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정기룡이 그 말을 타고 진주를 다녀와 혼인한 다음에 권모가 정기룡의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편모를 모시고 와서 처가에서 같이 살자고 하였으나, 권모의 딸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재산을 나누어 주면 진주로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이에 권모가 재산을 진주로 보내 주자, 정기룡의 부인이 철물(鐵物)을 많이 사서 모으며 훗날 소용될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얼마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기룡의 부인은 그 동안 사 모은 쇠로 병장기를 만들어 말과 함께 정기룡에게 주며 거병하게 하였다.
정기룡이 전장으로 나가면서 노모를 근심하자 부인은 이미 노모를 모시고 피난할 곳을 마련해 두었다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정기룡은 전장으로 나가서 여러 차례에 걸쳐 승리하여 벼슬이 높아져 병사에 이르렀다.”무슨 사연이 있기에 선조는 뒤늦게야 정기룡을 이순신·원균·권율과 같은 반열인 선무 1등 공신으로 추품했을까.
장군의 묘
우리나라 역사 인물에 천착하는 작가 박상하씨가 두 권으로 펴낸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일송북)는 비록 소설 형식을 띠고 있긴 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갓 서른한 살의 초급장교가 경상도 일대 육지에서 60전 60승이라는 불패의 전력으로 바다의 이순신과 더불어 조선을 구한 정기룡 장군의 전기나 다름없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어야 한다. 기필코 '술이부작(述而不作·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다)'이어야 한다. 옳은 이야기다. 장편소설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를 쓰면서도 가장 애쓴 부분이 그 대목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작품의 단초가 되었던 '매헌실기(梅軒實記)'를 위시해 역사적으로 철저한 고증을 얻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정기룡에 대해 80여 군데나 거론한 '조선왕조실록'은 종이가 닳도록 뒤졌다. 그런 다음 역사 현장을 수십차례 답사하며 정기룡의 일대기를 하나하나 복기했다.
책은 크게 세 대목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1권은 영웅의 기상을 점칠 수 있는 그가 태어나 25세에 과거 무과에 급제하고, 활쏘기에 출중하다 하여 선조로부터 '정기룡(鄭起龍)'이라는 이름을 제명 받는 청년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권에선 그 후, 임진왜란을 맞아 힘겨운 7년 전쟁을 치러내는 시절, 60전 60승이라는 빛나는 전적을 올렸으나 전쟁이 끝나고 정치적 배제에 따라 일등 공신에서 제외된 사연이 가슴 아프게 서술됐다. 마지막엔 이순신 장군의 뒤를 이어 수군통제사로 임명돼 61세에 경남 통영에서 운명할 때까지를 시종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관통한다.
저자는 "정기룡 장군이 초기에 전쟁 공신에서 배제된 것은, 이미 사망한 이순신과 원균, 환갑이 넘은 권율에게만 선무 1등 공신에 추품한 것만 봐도 안다"며 "37살의 젊은 살아있는 전쟁 영웅이 선조는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하며 여운을 남겼다.
일송북출판사는 내년 1월 중으로 서울과 대구·상주·부산 등지에서 '정기룡 장군'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그에 대한 학술적 조명을 계획하고 있다.
휴 여기까지 정기룡 장군님 이야기구요,
전에 모았던거 그대로 가져와서 내용이 좀 뒤죽박죽 일수도....ㅋㅋ
음 제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요즘 보면은 일본의 우습꽝스런 모습이나, 옜날 일본인 사진들 비교하면서 일본은 엄청 작았다고 그래서 왜놈이라 불렸다고 낄낄거리는데
물론 저도 낄낄거립니다만, 작은데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고, 세계를 상대로 전쟁까지 했던 나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작은 모습을 가지고, 과거의 그 모습을 가지고 낄낄 거릴때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 겉모습도 커지고 속은 더욱 음흉해진 그들을 경계하고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을 길러서 다시는 그들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들도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추가?)스압)) 왜군의 간을 씹어먹던 육지의 이순신!! 정기룡장군!!!
또 추가요...ㅋ 많이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발, 울 나라 드라마 작가들이나, 애니메이션 작가들, 또는 만화작가분들이,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전국시대 이야기만 과장되고, 멋진 그림으로 그리거나 쓰지 말고, 이런 분들, 정말 그 어떤 외국의 위인들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우리나라 조상들 일대기를 썼으면 좋겠어요 ㅠㅠ
솔직히 삼국지 뻥튀기 심하고, 전국시대 장수들 그 당시 일본인 키면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요 ㅠㅠ
엉엉엉엉 나중에 자식낳고 키울때는 삼국지나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보다 훨씬 재밌고 유명한 울나라 장군들 이야기 티비로 보여주고, 책으로 읽어주며, 애들이 그 위인들을 어릴때부터 멋지다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컸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있네요...ㅠㅠ
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예전에 한번 올렸는데 그땐 조회수가....ㅠㅠ
공부하다가 쉬면서 그냥 잊혀지기는 아까운 분이라는 생각에 다시 올려봤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요^^
저도 우연히 검색하다 알게되신분!
사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의 유명한 장수들은 많이 알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용맹하거나 훌륭한 장군들은 잘 모르거나, 능력을 낮게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우리나라 정말 훌륭하고 용맹하고 늠름한 위인들 많거든요 ㅠㅠ
삼국지에 나오는 B급,C급 장수들도 이름과 열전(사실 삼국지연의는 소설로써 능력치나 군사력 뻥튀기 대박이잖아요), 또는 일본의 전국시대 장수들은 게임이나 기타 미디어를 통해 많이들 아는데...
정작 우리나라 장군들은 잘 모르니...ㅠㅠ 어린시절 심심하면 뒷산에 올라 호랑이 귀 잡고 질질 끌고다니며 호랑이 보기를 동네 강아지보듯 했던 힘으로 따지면 동양에서 누구도 이길수 없는 김덕령이나, 일본에 가서 도술로 혼쭐을 내준 사명대사 등 알고보면 엄청 많은데..ㅠㅠ
이렇게 톡커님들이 관심도 가져주시고 하니..나중에 시간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장군들에 대해서 시리즈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ㅋㅋ
아 보잘것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홈피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한번 열고 갑니다....ㅋ
여러분 임란때 유명한 장군으로 누구누구가 생각나나요?
대부분 민족의 영웅이자 한민족 수군사상 최고의 장군인 지덕체를 겸비한 이순신 장군님!!!을 뽑고,
그 외에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이나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 또는 홍의 장군 곽재우 등을 떠올릴 텐데요
우리에게 잊혀진 여러 인물들 중 정기룡 장군에 대해서 아시는 분 있나요??
60전 60승 무패의 신화!!! 왜군의 간을 질겅질겅 씹어먹던 남아!!!
이분이 유명하지 않다는게 더 신기한 일이죠
이분 관련 드라마나 영화한편 나오면 대박일꺼 같은데 말이죠...쩝.
밑에는 정기룡장군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좀 마~~~~아~~~니 길지만 그래도 끝까지 한자한자 읽어주셨으면 하네요^^;;
일단 정기룡 장군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요.
정기룡(鄭起龍, 1562년~1622년)은 조선 시대의 장군이다. 자는 매헌이다.
그는 1586년 무과제 급제한 뒤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개명함.
1590년에는 경상우병사 신립의 휘하에서 복무하다 다음해 훈련원봉사가 됨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으로 승진! 우방어사 조경의 휘화에서 종군하여 돌격장으로 거창에서 일본군 선봉대 500여명 격파!!
조경과 양사준이 경상우도 지역의 관군을 이끌고 추풍역에서 방어전을 펴치다가 복병의 기습을 받고 대패하여 조경이 적군에게 사로잡히자 정기룡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칼을 휘두르며 적병들을 무수히 참살하고 적의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 이때의 활약은 조조군에 단신으로 돌격하여 유선을 지켜낸 조운을 연상케 했다함!
이후 곤양수성장이 되어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고, 유병별장을 거쳐 상주판관으로 임명되어 상주성 탈환!
이후 상주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오름!!
1597년 정유래잘ㄴ이 일어나자 토왜대장이 되어 고령에서 일본군과 전투.
8월 7일 둔적교전에서 왜장 다히라가 이끄는 일본군 1천여명의 병력을 거의 전멸시킴!!!
16일 용담천대첩에서는 현재의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 용담천변에서 왜군을 유인하여 대승을 거둠!!
이때 용담천 주둔하던 왜장 시마즈의 군사는 2만명정도였지만 조선군은 고작 4천여명이었는데 살아서 돌아간 왜군은 겨우 500여명!!!
이 전투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어 왜장 가또오가 이끄는 부대는 상주로 남하 후 울산으로 철수, 모리와 구로다가 이끄는 일본군도 후퇴함!!
1598년에는 명나라 군대의 총병직을 대행, 경상도 방면에 있던 왜군의 잔적을 소탕, 용양위부호군에 봉해지다 이듬해 다시 경상우병사가 됨.
1601년 경상도방어사, 이듬해 김해부사, 밀양부사를 거쳐 중도방어사에 오름.
뒤이어 용양위부호군 겸 오위도총부총관, 경상좌병사 겸 울산부사에 임명.
1610년 상호군으로 승진, 1617년 경상우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복무하다 통여의 진중에서 별세. ㅠ.ㅠ
경북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에 그의 묘가 있으며 경북 기념물 제13호.
또한 현재 금남면 중평리 상촌 마을에 사당인 경충사가 있고 중평리 당산골 진양 정씨 사당 아래쪽 100m지점이 정기룡 장군의 생가가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밭이 되어 있고 생가 뒤쪽에 있던 대밭이 약간 남아 있음.
지금부터는 설화와 전설!! 또는 야사!!!
상주 경천대 용소에 바로 정기룡장군의 용마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http://kid.knowledge.kr/kid/TraditionalCulture/tc03_02_01_v01.jsp?tbId=1&num=14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60여차례에 걸친 왜군과의 전투에서 한번의 패전도 없이 모두 승리했으며 조금도 부상을 입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타고 다니던 용마(龍馬)의 힘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천대 위에 있는 바위인데 왼쪽 네모진 것이 용마의 말구유통이고 오른쪽 동그란것이 정기룡장군의 세수통이랍니다.
1794년에 편찬된 홍량호(洪良浩)의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수록된「정기룡전」에
나타난 그의 용마에 관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기룡은 담력과 용력이 뛰어나고 두 눈이 횃불처럼 빛났다. 그가 적지에
뛰어들어 적을 무찌를 적에는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 같았으며, 왜적이 총들을
한쪽으로 모아 일제히 쏘아도 그를 명중시키지를 못했다.
그는 전투를 벌이다
가 목이 마르면 왜적의 배를 가르고 그 간을 씹었다. 용기가 북받쳐 오를 적에
는 그가 탄 신마(神馬)가 여섯 길이나 되는 참호를 능히 뛰어 넘고, 가파른 절
벽이나 위험한 언덕길도 매나 소리개처럼 날아올랐다.”
“정기룡은 일찍이 기병 8명과 함께 거창 객사에 머물러 있었다.
밤중에 왜적이 대량으로 들이닥쳐 정기룡 일행을 포위하였다.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나 정기룡만은 가만히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
다. 날이 밝은 뒤에 기병들을 이끌고서 말을 몰아 담장을 뛰어 넘어 적의 포위를 돌파하였다.”
장군님의 칼!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정기룡(鄭起龍, 1562~1622) 장군 설화.
정성박, 류종목이 1980년 8월 30일에 진주 상봉동동(上鳳東洞) 비봉루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 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박무세(당시 73세)이다.
[내용]
정기룡이 과거 보러 갔을 때, 임금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임금의 꿈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임금이 신하를 불러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정가(鄭哥)라는 사람이 막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로 인해 이름을 정기룡으로 고쳤다.
정기룡 장군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에 버금갈 만큼 큰 무공을 세운 거룩한 장군이었다. 정기룡 장군이 출세한 데는 지리학, 즉 풍수의 영향이 컸다. 어느 중이 상좌를 데리고 마을을 지나면서 “(명당자리를) 보았느냐?”라고 물었다. 보리밭에서 밭을 매고 있던 노인이 중을 잡고 명당자리를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그 명당자리에 정기룡 장군의 할아버지가 묻혔다.
『동야휘집(東野彙集)』에 실린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기룡은 곤양 사람으로 자는 경운이고 초명이 무수로 무과에 급제했다. 어려서부터 탁월하여 전쟁놀이를 할 적에도 아이들이 다 두려워하였다. 일찍이 집안이 가난하여 생활하기 어려워 편모를 모시고 진주로 가서 소금장수로 생활하다가 병영의 노안에 예속되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다가 소리를 질렀는데, 병사가 듣고서 이상히 여겨 이유를 묻자, 정기룡은 장부로 태어나 큰 뜻을 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소리가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병사가 정기룡의 인물됨을 짐작하고 속량시켜 주었다.
그 때 진주 이방의 혼사일로 정기룡이 전주 이방 권모의 집으로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전주 이방은 집안이 무척 부유하였으나 아들은 없고 시집갈 나이의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선견지명과 지인지감이 있어 자기의 일생이 좌우되는 배필은 스스로 선택하겠다고 하며 부모가 선택해주는 혼처를 거부하였다.
하루는 친척집에 일이 있어 부모가 출타한 사이에 정기룡이 심부름을 왔는데, 문틈으로 내다보니 비록 의복은 남루하나 대장부의 기상이 있어, 권모의 딸이 자신의 배필감을 만난 것을 기뻐하면서 안채로 인도하여 대접하였다. 조금 후에 부모가 돌아와 외간 남자를 내당으로 들인 딸의 행위를 질책하자, 딸이 자기의
배필로 선택한 자라고 소개하며 중매를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권모의 부부가 딸을 질책하고 딸의 요구대로 정기룡을 만나보니 기상이 남달라 정기룡에게 청혼하였다. 권모가 서면으로 모친에게 알리고 혼인하자고
하는 것을, 정기룡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며 직접 가서 모친에게 알리고 하겠다고 하자 권모가 칭찬하며 자기의 말을 타고 다녀오라고 하였다. 이에 정기룡이 자신은 걷는 데 익숙해 있다고 하며 걸어가겠다고 하자 권모가 말의 내력을 설명해 주며 말을 타고 가게 하였다. 그 말은 어느 상인이 끌고 다니던 말이었는데, 딸이 보고서 부친에게 훗날 소용될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사달라고 졸라서 권모가 사놓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워낙 사나워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서 멀리서 먹이만 주며 기른 것이었다. 정기룡이 이 말을 듣고서 가까이 가자 말이 갑자기 온순해졌으므로 모두들 정기룡이 말의 임자라고 하면서 정기룡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정기룡이 그 말을 타고 진주를 다녀와 혼인한 다음에 권모가 정기룡의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편모를 모시고 와서 처가에서 같이 살자고 하였으나, 권모의 딸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재산을 나누어 주면 진주로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이에 권모가 재산을 진주로 보내 주자, 정기룡의 부인이 철물(鐵物)을 많이 사서 모으며 훗날 소용될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얼마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기룡의 부인은 그 동안 사 모은 쇠로 병장기를 만들어 말과 함께 정기룡에게 주며 거병하게 하였다.
정기룡이 전장으로 나가면서 노모를 근심하자 부인은 이미 노모를 모시고 피난할 곳을 마련해 두었다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정기룡은 전장으로 나가서 여러 차례에 걸쳐 승리하여 벼슬이 높아져 병사에 이르렀다.”무슨 사연이 있기에 선조는 뒤늦게야 정기룡을 이순신·원균·권율과 같은 반열인 선무 1등 공신으로 추품했을까.
장군의 묘
우리나라 역사 인물에 천착하는 작가 박상하씨가 두 권으로 펴낸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일송북)는 비록 소설 형식을 띠고 있긴 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갓 서른한 살의 초급장교가 경상도 일대 육지에서 60전 60승이라는 불패의 전력으로 바다의 이순신과 더불어 조선을 구한 정기룡 장군의 전기나 다름없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어야 한다. 기필코 '술이부작(述而不作·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다)'이어야 한다. 옳은 이야기다. 장편소설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를 쓰면서도 가장 애쓴 부분이 그 대목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작품의 단초가 되었던 '매헌실기(梅軒實記)'를 위시해 역사적으로 철저한 고증을 얻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정기룡에 대해 80여 군데나 거론한 '조선왕조실록'은 종이가 닳도록 뒤졌다. 그런 다음 역사 현장을 수십차례 답사하며 정기룡의 일대기를 하나하나 복기했다.
책은 크게 세 대목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1권은 영웅의 기상을 점칠 수 있는 그가 태어나 25세에 과거 무과에 급제하고, 활쏘기에 출중하다 하여 선조로부터 '정기룡(鄭起龍)'이라는 이름을 제명 받는 청년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권에선 그 후, 임진왜란을 맞아 힘겨운 7년 전쟁을 치러내는 시절, 60전 60승이라는 빛나는 전적을 올렸으나 전쟁이 끝나고 정치적 배제에 따라 일등 공신에서 제외된 사연이 가슴 아프게 서술됐다. 마지막엔 이순신 장군의 뒤를 이어 수군통제사로 임명돼 61세에 경남 통영에서 운명할 때까지를 시종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관통한다.
저자는 "정기룡 장군이 초기에 전쟁 공신에서 배제된 것은, 이미 사망한 이순신과 원균, 환갑이 넘은 권율에게만 선무 1등 공신에 추품한 것만 봐도 안다"며 "37살의 젊은 살아있는 전쟁 영웅이 선조는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하며 여운을 남겼다.
일송북출판사는 내년 1월 중으로 서울과 대구·상주·부산 등지에서 '정기룡 장군'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그에 대한 학술적 조명을 계획하고 있다.
휴 여기까지 정기룡 장군님 이야기구요,
전에 모았던거 그대로 가져와서 내용이 좀 뒤죽박죽 일수도....ㅋㅋ
음 제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요즘 보면은 일본의 우습꽝스런 모습이나, 옜날 일본인 사진들 비교하면서 일본은 엄청 작았다고 그래서 왜놈이라 불렸다고 낄낄거리는데
물론 저도 낄낄거립니다만, 작은데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고, 세계를 상대로 전쟁까지 했던 나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작은 모습을 가지고, 과거의 그 모습을 가지고 낄낄 거릴때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 겉모습도 커지고 속은 더욱 음흉해진 그들을 경계하고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힘을 길러서 다시는 그들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들도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순국선열 분들도 편안하게 잠드시겠지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