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어머니 상중에 담양부사 이경린, 장성현감 이귀등의 권유로 전답과 가택을 팔아 무기 마련하여 격문을 보내 의병 5000명 모집
세력 떨치자 선조로부터 형조좌랑의 직함과 충용장이라는 군호 받음
광해분조로부터 익호장군의 군호 받음, 선조로부터 다시 초승장군의 군호 받음.
1594년 선전관 임명.
권율의 휘화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여러차레 왜병 격파
10월 거제도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왜적을 크게 무찌름.
1595년 고성에 상륙하는 왜적을 기습 격퇴하는 등 수차례 왜적 무찌름.
1596년 도체찰사 윤근수의 노속을 장살하여 체포, 왕명으로 석방
다시 의병 모집, 충청도 이몽학 반란 토벌하려다가 이미 진압되자 회군중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신경행의 무고로 체포 및 구금
혹독한 곡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옥사.
1661년(현종 2) 신원되어 관작 복구.
1668년 병조참의 추증.
1678(숙종 4) 벽진서원에 제향.
1681년 병조판서에 가증.
영조 때 의열사에 형 덕홍, 아우 덕보와 병향. 1788년(정조 12) 좌찬성에 가증
1974년 광주 충장사를 복원하여 충훈을 추모.
흠, 이력에서 보듯이 임진왜란때 크나큰 전공은 없습니다.
그러나 설화나 민담에서 보면 아주 대단한 인물로써, 안타깝게 죽어갔다는걸 알수 있어요ㅠㅠ
망할 선조의 질투 때문에 몇명이 죽는지...ㅠㅠ
그리고 김덕령 장군이 활약을 못한건 능력이 부족해서기보다는 활약을 떨칠 기회가 없었던 거죠. 만약 살아계셨으면......병자호란때 노익장을 발휘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if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부터는 역사와 설화가 뒤섞인 내용입니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인지 그와 관련된 설화나 민담이 많아요
문헌설화는 연려실기술, 동야휘집, 풍암집화, 대동기문 등에 전하고, 구전설화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있다고 하네요.
지금부터 대략 나열해볼께요^^
귀여워서 퍼옴.ㅋ
장군의 영웅적 풍모는 우리나라 설화에서 많이 나오듯 명당터부터 시작됨
중국 지사가 보아 둔 명당을 부모님이 몰래 조상의 묘지로 썻다고 함
그러나, 쓰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함 ㅠㅠ
용력이 대단하여 손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거친 말을 길들이고, 백 근의 철퇴를 양 허리에 차고 다니심 ㄷㄷㄷ 우리는 고양이 제압하기도 힘든데, 호랑이를 고양이 잡듯이 잡으시는 늠름함ㅋ
왜장은 장군의 화상만 보고도 두려워서 군대를 철수시킴.
도술도 ㅎㄷㄷ 하심.
임진왜란 때 부친의 복상을 입어 어머니의 만류로 출전할 수 없었지만, 답답하여 싸움 구경을 나갔다가 왜장의 진중에 들어가 도술로써 도망가게 만듬.
모친상을 치르다 기병.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명성을 듣고5000여명이 따름.
3년 동안 장졸들과 함께 애를 썼지만 나라에서 전투를 금지시키거나 윤두수, 권율 등의 무리한 작전으로 가진 재주인 용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함.
장군은 체구가 작았으나 신용이 절륜하여 노하면 눈에서 불빛이 번뜩이심 ㄷㄷ
어두운 밤에도 몇리를 환히 내다봄.
몇길의 담장도 뛰어넘고 말을 달려 남의 대문을 자유로이 드나들었으며
높은 집의 꼭대기에 올랐다가 굴러 떨어져 다시 다락 속으로들어가기도 함
칼을 한번 휘두르면 나뭇가지가 비바람 불 듯 떨어짐.ㅋ
장군님 의복
죽림 속에서 사라운 호랑이를 대적하여 장군의 창이 범의 턱을 꿰뚫었으므(맨손으로도 잡는데 창쯤이야.ㅋ)로 다시 세자인 광해군이 익호장군으로 명함.
선조가 이어 초승장군으로 하여 '충용장'의 호를 하사.
이귀는 그를 추천하면서 요호를 잡아 쫓아다니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지혜는 제갈공명 같고 용력은 관운장과 같다고 함(엄친아 포스 ㄷㄷ 그래서 선조가 그렇게 질투해서 죽였나 봄 ㅠㅠ)
양 허리 밑에 백근이 넘는 철추를 달고 다녀 사람들이 신장이라 부름.
왜군이 이를 듣고 심히 두려워하여 석저장군이라 부름.
석저가 마을이름인줄 모르고 돌밑에서 태어난 줄로 알았다고 함(무식쟁이들)
나중에 가등청청(가토 기요마사)이 경주 침공때 김덕령이 온다는 말듣고 몰래 화공에게 초상화 그려오게 함. 그걸 보고 차진장군야 라고 놀라면서 군사 후퇴.ㄷㄷ
호랑이 두마리를 때려잡아 왜인 앞에서 자랑.ㅋ
비호같은 행동으로 잡혀올 때조차 선조가 두려워함.ㄷㄷ(그니까 왜 누명을 씌워서 ㅠㅠ)
당시 사람들은 장군을 신차를 하여 대단한 용력을 발휘한다고 믿음.
장군의 죽음에 대한 설화 ㅠㅠ
충장사
장군이 용력이 있으면서도 출전하지 않았다고 나라에서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 했으나 죽일수 없었음
장군이 자신을 죽이려면 만고충신 효자 김덕령 비를 써달라함.
그렇게 하자 자신의 다리 아래 비늘을 뜯고 그곳을 세 번 때리면 죽는다고 알려줌
장군이 숨을 거두자 한줄기 무지개가 뻗치며 안개가 하늘로 올라감으로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 임금을 후회하게 만듬
죽고 나서 비문의 글자 지우려 했는데 안지워지고 오히려 더욱 뚜렸해짐.
죽어가며 남긴 시 ㅠㅠ
춘산에 불이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모에 내 없은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조경남은 김덕령의 애석한 죽음에 "온나라 사람들에게 그를 기대어 안심하였고, 왜놈도 또한 겁내어 항상 스스로 경계를 엄히 하여 지키면서 감히 침범하지 못하더니, 국운이 불행하여 죄가 아닌데 죽었다. 하늘이 그에게 수년의 수명을 주었더라면 정유년의 적이 어찌 전라, 충청도에 출동할 수 있었으랴. 당시에 뜻이 있는 이는 개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함
임진왜란때 눈에 띄는 실적은 없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정말 대단했던 분임. ㅠㅠ ㅠㅠ 진심 아쉽고 아까운, 명장 중의 명장이 되실수 있었던 분. ㅠㅠ
2009년 5월의 호국인물로 지정!!
김덕령 장군은 어릴때부터 힘이 장사에 무예가 출중하고 기개가 담대, 주위의 칭송이 자자.
그러나 신분이 미천하여 벼슬길 오르지 못함 ㅠㅠ
임진왜란때 기병하여 많은 민심을 얻자 선조를 비롯한 중신들의 시기를 받음 ㅠㅠ
이몽학 난일 빌미로 수많은 의병장들 죽임 당함 ㅠㅠ김덕령 장군도 포함......
그래서 정유재란때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의병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됨......
이몽학의 난도, 임진왜란 후 민초들이 더욱 더 수탈당하게 되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터진거임......
진짜......윗대가리들이 문제임......
광주시내 충장로는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거임.
김덕령 장군.
참으로 안타깝고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꺽여서 추락한느낌......
차라리 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명에가서 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해 봅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수많은 명장들이 탄생했던 임진왜란......더불어 조선 최고의 무능력한 왕도 함께하던 시절이기에......수많은 영웅들이 꽃한번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떨어진듯합니다......
김덕령장군의 어떻게 보면 부풀려진 설화들을 봐도, 그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와 신뢰,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ㅋ
이 정도 무장이면 어느 무장이 이길수 있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용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퓨전사극도 좋지만......이런 실제 인물들 등장하는 재밌는 사극도 많이 만들었으면...컨텐츠도 많이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가득가득하네요 ㅋ
스압)장군2)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던 김덕령장군!!
여러분 안녕하세요^^
으...사실 담주가 셤인데....ㅠㅠ
밥먹고 졸려서 잠깐 남겨봐욨^^
자는것보단...낫겠죠?^^;;
저번에 정기룡장군님 올리고 반응 좋고,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김덕령장군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기엔 힘이나 담력으론 세계 그 누구와도 절대 밀리지 않는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저도 자세히는 모르던 분이에요.ㅋ
그럼 이제 시작할께요^^;;
일단 대략적인 프로필입니다.
충장공 김덕령[忠將公 金德齡](1567 - 1596)
본관은 광산 자 경수 시호 충장 전라도 광주출신.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 고경명의 휘화로 들어가 활약
어머니를 봉양하라는 형의 권고에 따라 귀향
1593년 어머니 상중에 담양부사 이경린, 장성현감 이귀등의 권유로 전답과 가택을 팔아 무기 마련하여 격문을 보내 의병 5000명 모집
세력 떨치자 선조로부터 형조좌랑의 직함과 충용장이라는 군호 받음
광해분조로부터 익호장군의 군호 받음, 선조로부터 다시 초승장군의 군호 받음.
1594년 선전관 임명.
권율의 휘화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여러차레 왜병 격파
10월 거제도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왜적을 크게 무찌름.
1595년 고성에 상륙하는 왜적을 기습 격퇴하는 등 수차례 왜적 무찌름.
1596년 도체찰사 윤근수의 노속을 장살하여 체포, 왕명으로 석방
다시 의병 모집, 충청도 이몽학 반란 토벌하려다가 이미 진압되자 회군중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신경행의 무고로 체포 및 구금
혹독한 곡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옥사.
1661년(현종 2) 신원되어 관작 복구.
1668년 병조참의 추증.
1678(숙종 4) 벽진서원에 제향.
1681년 병조판서에 가증.
영조 때 의열사에 형 덕홍, 아우 덕보와 병향. 1788년(정조 12) 좌찬성에 가증
1974년 광주 충장사를 복원하여 충훈을 추모.
흠, 이력에서 보듯이 임진왜란때 크나큰 전공은 없습니다.
그러나 설화나 민담에서 보면 아주 대단한 인물로써, 안타깝게 죽어갔다는걸 알수 있어요ㅠㅠ
망할 선조의 질투 때문에 몇명이 죽는지...ㅠㅠ
그리고 김덕령 장군이 활약을 못한건 능력이 부족해서기보다는 활약을 떨칠 기회가 없었던 거죠. 만약 살아계셨으면......병자호란때 노익장을 발휘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if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부터는 역사와 설화가 뒤섞인 내용입니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인지 그와 관련된 설화나 민담이 많아요
문헌설화는 연려실기술, 동야휘집, 풍암집화, 대동기문 등에 전하고, 구전설화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있다고 하네요.
지금부터 대략 나열해볼께요^^
귀여워서 퍼옴.ㅋ
장군의 영웅적 풍모는 우리나라 설화에서 많이 나오듯 명당터부터 시작됨
중국 지사가 보아 둔 명당을 부모님이 몰래 조상의 묘지로 썻다고 함
그러나, 쓰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함 ㅠㅠ
용력이 대단하여 손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거친 말을 길들이고, 백 근의 철퇴를 양 허리에 차고 다니심 ㄷㄷㄷ 우리는 고양이 제압하기도 힘든데, 호랑이를 고양이 잡듯이 잡으시는 늠름함ㅋ
왜장은 장군의 화상만 보고도 두려워서 군대를 철수시킴.
도술도 ㅎㄷㄷ 하심.
임진왜란 때 부친의 복상을 입어 어머니의 만류로 출전할 수 없었지만, 답답하여 싸움 구경을 나갔다가 왜장의 진중에 들어가 도술로써 도망가게 만듬.
모친상을 치르다 기병.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명성을 듣고5000여명이 따름.
3년 동안 장졸들과 함께 애를 썼지만 나라에서 전투를 금지시키거나 윤두수, 권율 등의 무리한 작전으로 가진 재주인 용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함.
장군은 체구가 작았으나 신용이 절륜하여 노하면 눈에서 불빛이 번뜩이심 ㄷㄷ
어두운 밤에도 몇리를 환히 내다봄.
몇길의 담장도 뛰어넘고 말을 달려 남의 대문을 자유로이 드나들었으며
높은 집의 꼭대기에 올랐다가 굴러 떨어져 다시 다락 속으로들어가기도 함
칼을 한번 휘두르면 나뭇가지가 비바람 불 듯 떨어짐.ㅋ
장군님 의복
죽림 속에서 사라운 호랑이를 대적하여 장군의 창이 범의 턱을 꿰뚫었으므(맨손으로도 잡는데 창쯤이야.ㅋ)로 다시 세자인 광해군이 익호장군으로 명함.
선조가 이어 초승장군으로 하여 '충용장'의 호를 하사.
이귀는 그를 추천하면서 요호를 잡아 쫓아다니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지혜는 제갈공명 같고 용력은 관운장과 같다고 함(엄친아 포스 ㄷㄷ 그래서 선조가 그렇게 질투해서 죽였나 봄 ㅠㅠ)
양 허리 밑에 백근이 넘는 철추를 달고 다녀 사람들이 신장이라 부름.
왜군이 이를 듣고 심히 두려워하여 석저장군이라 부름.
석저가 마을이름인줄 모르고 돌밑에서 태어난 줄로 알았다고 함(무식쟁이들)
나중에 가등청청(가토 기요마사)이 경주 침공때 김덕령이 온다는 말듣고 몰래 화공에게 초상화 그려오게 함. 그걸 보고 차진장군야 라고 놀라면서 군사 후퇴.ㄷㄷ
호랑이 두마리를 때려잡아 왜인 앞에서 자랑.ㅋ
비호같은 행동으로 잡혀올 때조차 선조가 두려워함.ㄷㄷ(그니까 왜 누명을 씌워서 ㅠㅠ)
당시 사람들은 장군을 신차를 하여 대단한 용력을 발휘한다고 믿음.
장군의 죽음에 대한 설화 ㅠㅠ
충장사
장군이 용력이 있으면서도 출전하지 않았다고 나라에서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 했으나 죽일수 없었음
장군이 자신을 죽이려면 만고충신 효자 김덕령 비를 써달라함.
그렇게 하자 자신의 다리 아래 비늘을 뜯고 그곳을 세 번 때리면 죽는다고 알려줌
장군이 숨을 거두자 한줄기 무지개가 뻗치며 안개가 하늘로 올라감으로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 임금을 후회하게 만듬
죽고 나서 비문의 글자 지우려 했는데 안지워지고 오히려 더욱 뚜렸해짐.
죽어가며 남긴 시 ㅠㅠ
춘산에 불이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모에 내 없은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조경남은 김덕령의 애석한 죽음에 "온나라 사람들에게 그를 기대어 안심하였고, 왜놈도 또한 겁내어 항상 스스로 경계를 엄히 하여 지키면서 감히 침범하지 못하더니, 국운이 불행하여 죄가 아닌데 죽었다. 하늘이 그에게 수년의 수명을 주었더라면 정유년의 적이 어찌 전라, 충청도에 출동할 수 있었으랴. 당시에 뜻이 있는 이는 개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함
임진왜란때 눈에 띄는 실적은 없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정말 대단했던 분임. ㅠㅠ ㅠㅠ 진심 아쉽고 아까운, 명장 중의 명장이 되실수 있었던 분. ㅠㅠ
2009년 5월의 호국인물로 지정!!
김덕령 장군은 어릴때부터 힘이 장사에 무예가 출중하고 기개가 담대, 주위의 칭송이 자자.
그러나 신분이 미천하여 벼슬길 오르지 못함 ㅠㅠ
임진왜란때 기병하여 많은 민심을 얻자 선조를 비롯한 중신들의 시기를 받음 ㅠㅠ
이몽학 난일 빌미로 수많은 의병장들 죽임 당함 ㅠㅠ김덕령 장군도 포함......
그래서 정유재란때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의병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됨......
이몽학의 난도, 임진왜란 후 민초들이 더욱 더 수탈당하게 되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터진거임......
진짜......윗대가리들이 문제임......
광주시내 충장로는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거임.
김덕령 장군.
참으로 안타깝고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꺽여서 추락한느낌......
차라리 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명에가서 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해 봅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수많은 명장들이 탄생했던 임진왜란......더불어 조선 최고의 무능력한 왕도 함께하던 시절이기에......수많은 영웅들이 꽃한번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떨어진듯합니다......
김덕령장군의 어떻게 보면 부풀려진 설화들을 봐도, 그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와 신뢰,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ㅋ
이 정도 무장이면 어느 무장이 이길수 있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용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퓨전사극도 좋지만......이런 실제 인물들 등장하는 재밌는 사극도 많이 만들었으면...컨텐츠도 많이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가득가득하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