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방탈 죄송합니다. 단 하나의 댓글을 받더라도 생각없이 다는 댓글에 상처받고 싶지않아, 가장 진지한 댓글들이 많이 달리는 이곳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방탈이라면 지긋지긋한 심정 알고 있습니다만.. 익명의 힘을 빌어 저는 올해 28살 먹은 여자입니다. 나이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여자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가부장 적인 할아버지와 나쁜 의도는 없지만 결론적으로 이간질이 되어버리는 할머니 아래에서.. 그다지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한참 사춘기에 이혼하신 아버지가 새어머니랍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장방으로 내쫓고 데려온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지요. 도벽에, 남에 물건 뒤지는 습관에, 잦은 가출.. 제가 아니라 새로 들어온 그여자. 그여자의 행동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그 여자분.. 새어머니가 아니더군요. 이혼도 안한 유부녀였습니다. 가출이 아니라 남편이 데리고 간거였더군요. 후에,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던 통장에서 2천만원인가 들고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 1년을 그런 여자와 가부장 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사춘기가 그때 찾아 오더군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해에 경찰까지 찾아오고 제 물건들이 하나씩 없어지면서.. 글 쓰는것을 좋아해 라디오에 올렸던 사연이 몇개인가 채택되어 제게 온 소포가 모두 그 아줌마 손으로 들어가는걸 보며, 더이상은 견딜 수 없더군요. 집을 나와 할아버지 밑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매캐한 공장 연기.. 쇳가루가 날리는 공장길을 10여분 들어가는 공장 지대 안쪽에 방두개와 바깥에 딸린 화장실을 개조해서 살고계신 할아버지 공장방에서 5년정도 살았습니다. 그와중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정에 굼주려 당시 사귄다고 생각했던 남자에게 데이트 강간을 당한일. 이혼하신 엄마의 막내 동생, 즉 이모가 되는 분께서 중국가신다고 하여, 내 미래를 위해 대학 3학년때 가출아닌 가출로 할아버지를 떠나 중국으로 떠났던일. 중국에서 돌변한 이모. 그집 애들 밥차려주고, 설겆이, 청소.. 식모노릇과 주말이면 이모가 중국에서 하시던 장사를 맡아서 해야했고.. 여튼.. 지옥같았던 한달.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할아버지께 돌아갈 수가 없으니(중국 간다는걸 비밀로 하고 있다가, 잘나신 오빠 덕분에 들켜서 쫓겨났었습니다.) 엄마가 계신 부산에서 1년간 자취하면서 일을 했었고, 그때 당시 사귀게된 언니들과 유흥에 빠져 돈을 버는대로 써버리고 1년동안 모은돈이 300만원. 웹디자이너였던 제 첫 월급은 77만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3달만에 그만두고, 그만두고.. 나이트에 클럽에. 처음 겪는 유흥문화는 일종의 컬쳐쇼크 였었습니다. 하지만 제 성격에는 맞는일이 아니더군요. 특별히 남자를 만나고 돌아다니는게 좋았다기보다, 언니들이랑 어울려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들이 신기했었죠. 그 후, 할아버지가 절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고(오빠 여자친구분을 통해서), 다시 할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해 있더군요. 오빠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갔던 할아버지에게, 오빠는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배신아닌 배신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나이때 남자들이 그렇듯,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있던 오빠는 동거를 시작했고, 할아버지의 관심이 저에게 돌아와져 있더군요. 중국 가기전에 할아버지가 아니셨습니다. 평생을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살것 같았던 제가 할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죠.(부모대신 거두어주신 할아버지를 미워..했다고 욕하지 말아주세요. 아버지의 외도도, 어머니의 이혼도.. 할아버지의 시집살이 때문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을 이혼시킨 장본인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의 손녀가 아닌, 할아버지의 아들을 망친x의 딸일 뿐이었습니다. 아주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던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지요.) 그것이 26살때까지의 일이었습니다. 26살 부터 27살 까지.. 저는 .. 뭐라고 해야할까요. 뭐든지 할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몇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일들을 겪어 왔지만, 어디가서 '애미없이 커서 저런다' 소리 듣기 싫어 기를 쓰고 더욱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도 이것저것 청산 하시고 2층짜리 양옥집을 하나 마련하셨습니다. 저는 거기 2층에 1년간 (26살~27살)까지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해야할지, 충실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어땠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리고 27살이 되던해. 저는 서울 행을 결심했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27살 5월. 기왕 태어난거, 한 나라의 수도에서 일은 해보고 죽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20살짜리 청년도 비웃을 꿈을가지고 상경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시집갈때 주려고 모아둔 돈이라며 큰돈을 지원해 주셨고, 그동안 제가 모은돈 얼마를 합하여 전세 대란이라는 이와중에 작고 허름하지만 어쨌든 전세를, 그것도 원룸 전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고 싶었습니다. 죽을만큼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세상일이 뜻대로 되질 않더군요. 가르치는 일이 성격에 맞아, 웹디자인을 접고 디자인 학원에 강사로 다니던 도중에, 학원의 재정상태가 여의치 않아 그만둬야 했고.. 결국 다시 디자인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회사를, 저녁에는 학원을, 주말에도 주말강의를... 그러나 중간에 학원의 사탕발림에 속아 한달에 50만원 조금 더되는 돈으로 생활해야됐었던 적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모은 돈은 얼마 되질 않더군요.. 그렇게 서울에 올라온지 11개월째. 1200만원을 조금 넘게 모았네요.(청약 60만원빼고..) 그런데 이제 몸에 탈이 나기 시작합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기 시작하네요. 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만난지는 이제8개월째 되어갑니다. 서울 올라와서 한참 멋모르고 세상에 취해있을때 만난 소중한 사람이지요. 제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성격을 현명하다고, 귀엽다고 여겨준 사람입니다. 무한긍정의 사나이.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납니다. ㅎㅎㅎ 동글동글 이 귀여운 남자는 제게, 부정적이지 않은 삶. 행복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는 현재야 말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사람입니다. 당장은 힘들지만 2년.. 제가 30살이 되던해에 결혼하자고 우리끼리 약속을 했지요. 그리고 매일매일 만나며 미래를 계획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싸우기도하고 다투기도 하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요즘 너무 지친다는 겁니다. 적금을 130만원씩 넣고있는데, 제 월급은 세후 176만원입니다. 혼자 살고 있으니 공과금이며.. 남자친구가 있으니 생활비며.. 장난이 아니지요. 허덕입니다. 주말에 일해야지요. 홈페이지나 전단지 만드는 알바 있으면, 해야지요. 이런 생활이 11개월째.. 드디어 몸에 탈이 나네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생활에.. 탈이 나지 않으면 이상하겠지요. 원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24살때 유흥문화에 찌들어 신장에 염증을 얻게 되었고.. 그 이후로 쉽게 피곤하고 몸이 자주 붓더군요. 신장염은 그 후로도 몇차례 재발을 했었습니다. 항생제를 오랬동안 맞았습니다. 경구투여도 오래했네요, 생각해보니. 눈다레끼, 편도염, 비염 모두 달고 살다보니 이제 더이상 항생제가 말을 듣질 않습니다. 눈다레끼를 지금 5개월째 치유가 안돼 병원에 가니, 내과로 가보랍니다. 내과에 가니 항생제 내성이 생겨 일반 약으로는 힘들고, 눈다레끼가 문제가 아니라 장염에 위염도 의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꾸자꾸 마음이 아파옵니다.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죽을 용기도 없는x이야.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이대로 떨어지면 아플까? 이런생각이 듭니다.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나고, 더이상 내가 있을 곳은 없구나 이런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각자 재혼하셔서 부모님께 돌아갈 수도 없고..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시 돌아가서 나 아프니 요양좀 해야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지요. 이미 제 방은 세를 준 상태라 제가 지낼곳도 없구요. 그리고 고모들의 친정인데.. 서로 어색합니다..;;; 고모들도 제가 어릴때 저를 굉장히 많이 구박했었거든요. 고등학교때 둘째 고모랑 머리채 잡고 싸우기도 했었지요 ㅋㅋ 오빠는.. 오빠 가정이 있고, 올케언니도 건강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누이랍시고 짐이 되고 싶지 않구요. 그집은 애기도 둘이나 있어요. 제게는 이제 가족이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드는겁니다. 내가 죽으면, 슬퍼는 해주겠지... 엄마한테 가슴에 못박힐 소리겠지만.. 자꾸 그런생각이 듭니다. 저 하나 없어도 세상이 무너지는건 아니잖아요. 어제는 오빠(남자친구)한테 그런이야기 하다가, 저희 집에서 자고갔는데.. 장난치다가 절 밀어내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그게 너무 서러운겁니다. 펑펑 울면서 "오빠까지 날 밀어내면 나는 누구한테 기대야해?" 이런이야기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저에게 남자친구가 질려서 떠나버릴것만 같아 너무 두렵네요. 언제까지 버려질까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못하고 혼자서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해야되는 걸까요. 가족.. 누군가에게는 짐이 되는 것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저에게는 너무나 그리운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것.. 제가 태어났을때에, 엄마 아빠가 함께 살았을 때도 행복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6살때 아빠에게 발로 걷어 차이고 뺨을 손바닥으로 얻어 맞고 한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하거든요. 이런 제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절때 무슨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게 모든걸 포기해 버릴것만 같기도 하고.. 갑자기 너무나 두렵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 왠지 회사에서도, 제가 세운 목표(내년까지 2000만원 모아서 집 이사가려고 했던 것)에서도 멀어지는것 같아 너무나도 우울합니다. 우울했다가, 또 반짝 괜찮아졌다가. 또 미친듯이 우울해졌다가.. 요즘 제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항생제를 5알, 진통제를 2알씩 먹고있는데.. (진통제는 생리 진통제 타이레x입니다. 병원처방은 아니고, 항생제 먹고 30분 뒤에 먹고 있어요. 너무 통증이 심해서..) 심장이 너무 뛰고.. 죽어버릴것 같습니다. 회사 그만두겠다고 이야기 하고나니.. 실패자.. 패배자.. 결혼도 해야되는데.. 오빠가 날 버리면 어쩌지.. 그냥 모든걸 놓고싶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미칠 것 같습니다. 하아..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남자친구나.. 친구들에게 털어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익명으로나마 제 상황을 정리하고 글로 써보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기분이 나아집니다. 저는 실패한걸까요.. 제가 세운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한것이니.. 이제 저는 패배자인걸까요..
이런 제가.. 결혼해도 될까요.
우선 방탈 죄송합니다.
단 하나의 댓글을 받더라도 생각없이 다는 댓글에 상처받고 싶지않아, 가장 진지한 댓글들이 많이 달리는 이곳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방탈이라면 지긋지긋한 심정 알고 있습니다만..
익명의 힘을 빌어
저는 올해 28살 먹은 여자입니다.
나이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여자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가부장 적인 할아버지와 나쁜 의도는 없지만 결론적으로 이간질이 되어버리는 할머니 아래에서..
그다지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한참 사춘기에 이혼하신 아버지가 새어머니랍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장방으로 내쫓고 데려온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지요.
도벽에, 남에 물건 뒤지는 습관에, 잦은 가출..
제가 아니라 새로 들어온 그여자. 그여자의 행동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그 여자분.. 새어머니가 아니더군요. 이혼도 안한 유부녀였습니다.
가출이 아니라 남편이 데리고 간거였더군요.
후에,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던 통장에서 2천만원인가 들고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 1년을 그런 여자와 가부장 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사춘기가 그때 찾아 오더군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해에 경찰까지 찾아오고 제 물건들이 하나씩 없어지면서.. 글 쓰는것을 좋아해 라디오에 올렸던 사연이 몇개인가 채택되어 제게 온 소포가 모두 그 아줌마 손으로 들어가는걸 보며, 더이상은 견딜 수 없더군요.
집을 나와 할아버지 밑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매캐한 공장 연기.. 쇳가루가 날리는 공장길을 10여분 들어가는 공장 지대 안쪽에 방두개와 바깥에 딸린 화장실을 개조해서 살고계신 할아버지 공장방에서 5년정도 살았습니다.
그와중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정에 굼주려 당시 사귄다고 생각했던 남자에게 데이트 강간을 당한일.
이혼하신 엄마의 막내 동생, 즉 이모가 되는 분께서 중국가신다고 하여, 내 미래를 위해 대학 3학년때 가출아닌 가출로 할아버지를 떠나 중국으로 떠났던일.
중국에서 돌변한 이모. 그집 애들 밥차려주고, 설겆이, 청소.. 식모노릇과 주말이면 이모가 중국에서 하시던 장사를 맡아서 해야했고.. 여튼.. 지옥같았던 한달.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할아버지께 돌아갈 수가 없으니(중국 간다는걸 비밀로 하고 있다가, 잘나신 오빠 덕분에 들켜서 쫓겨났었습니다.)
엄마가 계신 부산에서 1년간 자취하면서 일을 했었고, 그때 당시 사귀게된 언니들과 유흥에 빠져 돈을 버는대로 써버리고 1년동안 모은돈이 300만원.
웹디자이너였던 제 첫 월급은 77만원이었습니다.
그나마도 3달만에 그만두고, 그만두고.. 나이트에 클럽에.
처음 겪는 유흥문화는 일종의 컬쳐쇼크 였었습니다. 하지만 제 성격에는 맞는일이 아니더군요.
특별히 남자를 만나고 돌아다니는게 좋았다기보다, 언니들이랑 어울려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들이 신기했었죠.
그 후, 할아버지가 절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고(오빠 여자친구분을 통해서),
다시 할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해 있더군요. 오빠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갔던 할아버지에게, 오빠는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배신아닌 배신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나이때 남자들이 그렇듯,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있던 오빠는 동거를 시작했고, 할아버지의 관심이 저에게 돌아와져 있더군요.
중국 가기전에 할아버지가 아니셨습니다. 평생을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살것 같았던 제가 할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죠.(부모대신 거두어주신 할아버지를 미워..했다고 욕하지 말아주세요. 아버지의 외도도, 어머니의 이혼도.. 할아버지의 시집살이 때문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을 이혼시킨 장본인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의 손녀가 아닌, 할아버지의 아들을 망친x의 딸일 뿐이었습니다. 아주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던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지요.)
그것이 26살때까지의 일이었습니다.
26살 부터 27살 까지.. 저는 .. 뭐라고 해야할까요.
뭐든지 할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몇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일들을 겪어 왔지만, 어디가서 '애미없이 커서 저런다' 소리 듣기 싫어 기를 쓰고 더욱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도 이것저것 청산 하시고 2층짜리 양옥집을 하나 마련하셨습니다. 저는 거기 2층에 1년간 (26살~27살)까지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해야할지, 충실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어땠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리고 27살이 되던해.
저는 서울 행을 결심했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27살 5월.
기왕 태어난거, 한 나라의 수도에서 일은 해보고 죽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20살짜리 청년도 비웃을 꿈을가지고 상경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시집갈때 주려고 모아둔 돈이라며 큰돈을 지원해 주셨고, 그동안 제가 모은돈 얼마를 합하여 전세 대란이라는 이와중에 작고 허름하지만 어쨌든 전세를, 그것도 원룸 전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고 싶었습니다.
죽을만큼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세상일이 뜻대로 되질 않더군요.
가르치는 일이 성격에 맞아, 웹디자인을 접고 디자인 학원에 강사로 다니던 도중에, 학원의 재정상태가 여의치 않아 그만둬야 했고.. 결국 다시 디자인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회사를, 저녁에는 학원을, 주말에도 주말강의를...
그러나 중간에 학원의 사탕발림에 속아 한달에 50만원 조금 더되는 돈으로 생활해야됐었던 적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모은 돈은 얼마 되질 않더군요..
그렇게 서울에 올라온지 11개월째. 1200만원을 조금 넘게 모았네요.(청약 60만원빼고..)
그런데 이제 몸에 탈이 나기 시작합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기 시작하네요.
저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만난지는 이제8개월째 되어갑니다.
서울 올라와서 한참 멋모르고 세상에 취해있을때 만난 소중한 사람이지요.
제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성격을 현명하다고, 귀엽다고 여겨준 사람입니다.
무한긍정의 사나이.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납니다. ㅎㅎㅎ 동글동글 이 귀여운 남자는 제게, 부정적이지 않은 삶. 행복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는 현재야 말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사람입니다.
당장은 힘들지만 2년.. 제가 30살이 되던해에 결혼하자고 우리끼리 약속을 했지요. 그리고 매일매일 만나며 미래를 계획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싸우기도하고 다투기도 하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요즘 너무 지친다는 겁니다.
적금을 130만원씩 넣고있는데, 제 월급은 세후 176만원입니다.
혼자 살고 있으니 공과금이며.. 남자친구가 있으니 생활비며.. 장난이 아니지요. 허덕입니다.
주말에 일해야지요. 홈페이지나 전단지 만드는 알바 있으면, 해야지요.
이런 생활이 11개월째.. 드디어 몸에 탈이 나네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생활에.. 탈이 나지 않으면 이상하겠지요.
원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24살때 유흥문화에 찌들어 신장에 염증을 얻게 되었고.. 그 이후로 쉽게 피곤하고 몸이 자주 붓더군요.
신장염은 그 후로도 몇차례 재발을 했었습니다.
항생제를 오랬동안 맞았습니다. 경구투여도 오래했네요, 생각해보니. 눈다레끼, 편도염, 비염 모두 달고 살다보니 이제 더이상 항생제가 말을 듣질 않습니다.
눈다레끼를 지금 5개월째 치유가 안돼 병원에 가니, 내과로 가보랍니다.
내과에 가니 항생제 내성이 생겨 일반 약으로는 힘들고, 눈다레끼가 문제가 아니라 장염에 위염도 의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꾸자꾸 마음이 아파옵니다.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죽을 용기도 없는x이야.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이대로 떨어지면 아플까? 이런생각이 듭니다.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나고, 더이상 내가 있을 곳은 없구나 이런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각자 재혼하셔서 부모님께 돌아갈 수도 없고..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시 돌아가서 나 아프니 요양좀 해야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지요.
이미 제 방은 세를 준 상태라 제가 지낼곳도 없구요.
그리고 고모들의 친정인데.. 서로 어색합니다..;;; 고모들도 제가 어릴때 저를 굉장히 많이 구박했었거든요. 고등학교때 둘째 고모랑 머리채 잡고 싸우기도 했었지요 ㅋㅋ
오빠는.. 오빠 가정이 있고, 올케언니도 건강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누이랍시고 짐이 되고 싶지 않구요. 그집은 애기도 둘이나 있어요.
제게는 이제 가족이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드는겁니다. 내가 죽으면, 슬퍼는 해주겠지...
엄마한테 가슴에 못박힐 소리겠지만.. 자꾸 그런생각이 듭니다.
저 하나 없어도 세상이 무너지는건 아니잖아요.
어제는 오빠(남자친구)한테 그런이야기 하다가, 저희 집에서 자고갔는데.. 장난치다가 절 밀어내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그게 너무 서러운겁니다. 펑펑 울면서 "오빠까지 날 밀어내면 나는 누구한테 기대야해?" 이런이야기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저에게 남자친구가 질려서 떠나버릴것만 같아 너무 두렵네요.
언제까지 버려질까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못하고 혼자서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해야되는 걸까요.
가족..
누군가에게는 짐이 되는 것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저에게는 너무나 그리운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것..
제가 태어났을때에, 엄마 아빠가 함께 살았을 때도 행복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6살때 아빠에게 발로 걷어 차이고 뺨을 손바닥으로 얻어 맞고 한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하거든요.
이런 제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절때 무슨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게 모든걸 포기해 버릴것만 같기도 하고.. 갑자기 너무나 두렵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
왠지 회사에서도, 제가 세운 목표(내년까지 2000만원 모아서 집 이사가려고 했던 것)에서도 멀어지는것 같아 너무나도 우울합니다.
우울했다가, 또 반짝 괜찮아졌다가. 또 미친듯이 우울해졌다가..
요즘 제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항생제를 5알, 진통제를 2알씩 먹고있는데.. (진통제는 생리 진통제 타이레x입니다. 병원처방은 아니고, 항생제 먹고 30분 뒤에 먹고 있어요. 너무 통증이 심해서..)
심장이 너무 뛰고.. 죽어버릴것 같습니다.
회사 그만두겠다고 이야기 하고나니.. 실패자.. 패배자.. 결혼도 해야되는데.. 오빠가 날 버리면 어쩌지.. 그냥 모든걸 놓고싶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미칠 것 같습니다.
하아..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남자친구나.. 친구들에게 털어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익명으로나마 제 상황을 정리하고 글로 써보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기분이 나아집니다.
저는 실패한걸까요.. 제가 세운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한것이니.. 이제 저는 패배자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