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 모처의 중소기업에서 전문직으로 재직 중인 29 솔로남입니다. 요새 이래 저래 씁쓸한 일이 있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전 진지한 남자이므로 음슴체따윈 쓰지 않겠습니다. 글이 굉장히 길어질 것 같으니 스크롤 압박이 느껴지시는 분들은 뒤로 가셔도 좋습니다. ^^ 제목과 같이 저는 검정고시 고졸 출신입니다. 한 달 전쯤 소개팅을 받고 한 여성분을 3번 가량 만났습니다. 배려와 인내심이 돋보이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며, 반듯한 생활자세가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분이라 참 맘에 들었습니다. 여중,여고,대학도 여자만 있는 과를 나와서 주위에 남자가 별로 없는 점. 연애경험도 별로 없어 보이는 점 역시 맘에 들었습니다. 이 여성분은 저와는 사는 곳이 한 시간 반정도 떨어진 분이셨습니다. 첫 데이트 때 남자의 배려로 처음 가 는 동네지만 여자분이 사시는 곳 근처의 번화가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 동네의 맛집 과 애프터할 시 가게 될 장소의 연락처는 물론 대략적인 약도까지 머릿 속에 외워뒀습니다. 이것이 남자로 서의 매너라고 생각했고 상대방 여자분 역시 센스있다며 좋아해주시더군요. 물론 자리에서도 심심하지 않 게 재미있게 해드렸고 어렵지 않게 2번째 데이트도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3번의 데이트 때, 여차저차해서 저녁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 후배들과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내심 마음에 걸렸던 검정고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술을 한 두잔 꺽었드랬습니다. 저는 굉장히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기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지만 여성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인지 첫 만남에서 알 수 없었고, 솔직히 생각으로는 그동안 후회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뭐 어떠냐는 것이 강했습니다. 그렇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그랬더니 여성분이 반문을 하더군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 볼 때까지의 기간동안 뭐하셨냐고, 네, 질문은 저런 거였지만 저는 그 속뜻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혹시나 양아치에 비행청소년이라 학교를 사고치고 그만두고 방황만 하던 것이 아닌지 그런 것들을 물어오신 것이겠죠.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번의 만남에서 내 진실된 모습들을 못 보여드렸기 때문에, 이 분이 아직 고민을 하시고 계신 거구나. 더 노력해야겠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굳어지던 그 여성분의 표정. 뭔가 불길한 느낌이 내내 마음 속에서 자리하여 떠나질 않더군요. 솔직하게 내 모든 과거사를 이야기하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전제 조건이 깔리게 되면, 머리보다는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그 마음에 닿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에 마주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과거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저희 가정은 그래서 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유독 컸고, 해병대 출신의 아버지는 매우 엄하고 술을 좋아하시며 폭력적이시라, 제가 원하는 성적을 잘 못 받아오는 날은 집 안의 초상이라도 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가정 폭력이라 부르는 것들, 저에게는 고문이었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눈이 내리는 매우 추운 한겨울, 발가벗고 찬물 세례를 받는 것은 매우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밖으로 쫓겨나 집 앞 복도에서 그 한겨울의 매서움을 맨 몸뚱아리로 달달 떨며 참아내는 것 역시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원산폭격이라고 아시나요? 초등학생 그 어린 나이에 저와 제 동생은 세 네 시간씩 맞아가며 그 기합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오래 하다보니 나중엔 머리의 껍질이 비듬처럼 벗겨지더군요. 온 몸 어느 한 군데 안 맞아본 곳이 없고, 저희 어머니 역시 많은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엔 너무도 모질고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 3 성적표가 나오던 날이었습니다. 평균 91점. 전교 9등... 제 성적이었습니다. 그런 모진 시달림을 겪어내가며 받아온 성적이었지만,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최고만을 원하는 아버지에게서 이따위 성적으로는 더한 고문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 등수가 5등이나 올랐다며 좋아하던 친구 놈이 보였습니다.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저 녀석은 집에 가면 부모님이 기뻐해주시겠지... 어디 외식이라도 하겠구나..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제 한계가 폭발했습니다. 그 때가 11월에서 12월인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오던 하교길에 저는 아무 기댈 곳 없는 맹목적인 가출을 결심하고 행했습니다. 그리고 4년여간의 긴 시간을 홀로 지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하고 조금 모은 돈으로 방을 잡고..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배웠고, 아버지의 고문에 시달리며 집안에서만 존재하던 저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었던 성격을 많은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깨우치며 바꿔나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들이 흐르고 제가 성인이 되고 조금 흐른 어느 날 가족이 그리워지더군요. 혼자 산다는 것에 너무 지쳐갔을 때였습니다. 이유없이 슬픔이 차오르던 날에도, 몸이 심하게 아프던 날에 도 모든 것을 혼자 겪어가야 한다는 것에 한 번, 이런 식으로는 내 젊음이 너무 안타깝고 변할 게 없다는 슬픈 현실에 두 번... 그런 식으로 말이죠. 씁쓸하지만 아버지란 사람도 보고싶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동생이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집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한 분만이 그 자리에 계시더군요. 제가 나간 얼마 후 어머니 역시 견디다 못해 나가셨고, 제 동생은 방황을 하다 절도로 소년감호소 같은 곳에 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께도 동생한테도 죄스런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그 4년이란 시간 동안에 너무도 많이 늙어버리고 쇠약해지셨더군요. 미안하다며, 당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었다는 걸 느꼈다고... 미안하다고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그렇게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 역시 어떻게 제 소식을 들으셨는지 몇 개월 후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동생 역시 감호소에 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저희 네 가족은 그렇게 다시 뭉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이런저런 공백없이 지금의 회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사이버대도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는 동생 후배, 선배들은 전혀 저의 이러한 면을 알고 있지 못합니다. 항상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남자다운 밝은 사람으로만 저를 알고 있죠. 부끄럼없이 살아왔고, 목표가 있으며 항상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과거는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아쉬울 뿐이라고 더 노력해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게 중요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그 후 그 여자분 제 연락을 피하시는 건지 바쁘신 건지 받지를 않네요 ^^; 이번 한 번만이 아닙니다. 그 전에 소개받았던 여성분도 제가 검정고시를 본 사실에 대해서 실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더라구요 ... 아래는 제가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일기로 써두었던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어제 마신 술에 숙취까지 더불어 골을 지끈거리게 만든다.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러주고 담배 한 개피에 훌훌 근심 걱정 날려버리고 싶지만, 쓴 연기는 속을 더 쓰라리게 할 뿐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녹차 한 잔 마셔봐도 버릴 대로 버렸는지 속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문득 어제 새벽 느꼈던 치욕스런 감정이 되살아나 한숨을 내뱉게 만든다. 그녀는 내게 진정성의 표현을 위해 솔직한 감정 그대로를 내게 전달했겠지만, 결국엔 긍정적이라는 아리송한 마무리로 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금이 간 자존심은 상처가 되어 울컥 쏟아진 눈물과 콧물이 한동안 멈출 줄 몰랐다. 현실의 쓰라린 시선들은 때로 나를 믿고 설레게 만드는 사람에게도 종종 엿보인다는 그 사실이 나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어버렸다. 검정고시 졸업 후, 부족한 나를 알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나를 위한 노력을 그리 해왔건만, 어쩔 수 없는 시선들과 선입견들에 대한 것들을 나름의 위로로, 결국엔 정상에 서 있는 자가 승리할거라는 믿음으로 극복해왔건만 나를 믿고 설레는 사람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비참하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에 두 번 비참함을 느껴버렸다.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인 사고를 위시한 나를 향한 화이팅이 필요하 다는 걸 알지만, 가끔 이유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슬퍼하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한 법. 이것이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를 어떤 결과의 문 앞으로 데려다 둘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착잡함이 쉬이 가시진 않을 것 같다. 검정고시 고졸 출신은 연애하기 이리 힘든 겁니까 ? 가슴이 울컥해 장문의 글 남겨봅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1
검정고시 고졸 출신 연애하기 참 힘드네요
안녕하세요.
서울 모처의 중소기업에서 전문직으로 재직 중인 29 솔로남입니다.
요새 이래 저래 씁쓸한 일이 있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전 진지한 남자이므로 음슴체따윈 쓰지 않겠습니다.
글이 굉장히 길어질 것 같으니 스크롤 압박이 느껴지시는 분들은 뒤로 가셔도 좋습니다. ^^
제목과 같이 저는 검정고시 고졸 출신입니다.
한 달 전쯤 소개팅을 받고 한 여성분을 3번 가량 만났습니다. 배려와 인내심이 돋보이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며, 반듯한 생활자세가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분이라 참 맘에 들었습니다. 여중,여고,대학도 여자만
있는 과를 나와서 주위에 남자가 별로 없는 점. 연애경험도 별로 없어 보이는 점 역시 맘에 들었습니다.
이 여성분은 저와는 사는 곳이 한 시간 반정도 떨어진 분이셨습니다. 첫 데이트 때 남자의 배려로 처음 가
는 동네지만 여자분이 사시는 곳 근처의 번화가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 동네의 맛집
과 애프터할 시 가게 될 장소의 연락처는 물론 대략적인 약도까지 머릿 속에 외워뒀습니다. 이것이 남자로
서의 매너라고 생각했고 상대방 여자분 역시 센스있다며 좋아해주시더군요. 물론 자리에서도 심심하지 않
게 재미있게 해드렸고 어렵지 않게 2번째 데이트도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3번의 데이트 때, 여차저차해서 저녁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 후배들과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내심 마음에 걸렸던 검정고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술을 한 두잔 꺽었드랬습니다.
저는 굉장히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기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지만
여성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인지 첫 만남에서 알 수 없었고, 솔직히 생각으로는 그동안 후회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뭐 어떠냐는 것이 강했습니다.
그렇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그랬더니 여성분이 반문을 하더군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 볼 때까지의 기간동안 뭐하셨냐고,
네, 질문은 저런 거였지만 저는 그 속뜻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혹시나 양아치에 비행청소년이라 학교를 사고치고 그만두고
방황만 하던 것이 아닌지 그런 것들을 물어오신 것이겠죠.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번의 만남에서 내 진실된 모습들을 못 보여드렸기 때문에, 이 분이 아직
고민을 하시고 계신 거구나. 더 노력해야겠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굳어지던 그 여성분의 표정. 뭔가 불길한 느낌이 내내 마음 속에서 자리하여 떠나질 않더군요.
솔직하게 내 모든 과거사를 이야기하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전제 조건이 깔리게 되면, 머리보다는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그 마음에 닿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에 마주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과거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저희 가정은 그래서 저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유독 컸고, 해병대 출신의 아버지는 매우 엄하고 술을 좋아하시며 폭력적이시라,
제가 원하는 성적을 잘 못 받아오는 날은 집 안의 초상이라도 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가정 폭력이라 부르는 것들, 저에게는 고문이었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눈이 내리는 매우 추운 한겨울, 발가벗고 찬물 세례를 받는 것은 매우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밖으로 쫓겨나 집 앞 복도에서 그 한겨울의 매서움을 맨 몸뚱아리로 달달 떨며 참아내는 것 역시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원산폭격이라고 아시나요? 초등학생 그 어린 나이에 저와 제 동생은 세 네 시간씩 맞아가며 그 기합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오래 하다보니 나중엔 머리의 껍질이 비듬처럼 벗겨지더군요.
온 몸 어느 한 군데 안 맞아본 곳이 없고, 저희 어머니 역시 많은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엔 너무도 모질고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 3 성적표가 나오던 날이었습니다.
평균 91점. 전교 9등... 제 성적이었습니다. 그런 모진 시달림을 겪어내가며 받아온 성적이었지만,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최고만을 원하는 아버지에게서 이따위 성적으로는 더한 고문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 등수가 5등이나 올랐다며 좋아하던 친구 놈이 보였습니다.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저 녀석은 집에 가면 부모님이 기뻐해주시겠지... 어디 외식이라도 하겠구나..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제 한계가 폭발했습니다.
그 때가 11월에서 12월인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오던 하교길에 저는 아무 기댈 곳 없는
맹목적인 가출을 결심하고 행했습니다. 그리고 4년여간의 긴 시간을 홀로 지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하고 조금 모은 돈으로 방을 잡고..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배웠고, 아버지의 고문에 시달리며 집안에서만 존재하던 저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었던 성격을 많은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깨우치며 바꿔나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들이 흐르고 제가 성인이 되고 조금 흐른 어느 날 가족이 그리워지더군요.
혼자 산다는 것에 너무 지쳐갔을 때였습니다. 이유없이 슬픔이 차오르던 날에도, 몸이 심하게 아프던 날에
도 모든 것을 혼자 겪어가야 한다는 것에 한 번, 이런 식으로는 내 젊음이 너무 안타깝고 변할 게 없다는
슬픈 현실에 두 번... 그런 식으로 말이죠.
씁쓸하지만 아버지란 사람도 보고싶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동생이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집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한 분만이 그 자리에 계시더군요.
제가 나간 얼마 후 어머니 역시 견디다 못해 나가셨고, 제 동생은 방황을 하다 절도로
소년감호소 같은 곳에 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께도 동생한테도 죄스런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그 4년이란 시간 동안에 너무도 많이 늙어버리고 쇠약해지셨더군요.
미안하다며, 당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었다는 걸 느꼈다고... 미안하다고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그렇게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 역시 어떻게 제 소식을 들으셨는지 몇 개월 후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동생 역시 감호소에 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저희 네 가족은 그렇게 다시 뭉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이런저런 공백없이 지금의 회사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사이버대도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는 동생 후배, 선배들은 전혀 저의 이러한 면을 알고 있지 못합니다.
항상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남자다운 밝은 사람으로만 저를 알고 있죠.
부끄럼없이 살아왔고, 목표가 있으며 항상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과거는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아쉬울 뿐이라고 더 노력해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게 중요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그 후 그 여자분 제 연락을 피하시는 건지 바쁘신 건지 받지를
않네요 ^^;
이번 한 번만이 아닙니다. 그 전에 소개받았던 여성분도 제가 검정고시를 본 사실에 대해서 실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더라구요 ... 아래는 제가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일기로 써두었던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어제 마신 술에 숙취까지 더불어 골을 지끈거리게 만든다.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러주고 담배 한 개피에 훌훌 근심 걱정
날려버리고 싶지만,
쓴 연기는 속을 더 쓰라리게 할 뿐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녹차 한 잔 마셔봐도 버릴 대로 버렸는지
속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문득 어제 새벽 느꼈던 치욕스런 감정이 되살아나 한숨을 내뱉게
만든다.
그녀는 내게 진정성의 표현을 위해 솔직한 감정 그대로를 내게
전달했겠지만, 결국엔 긍정적이라는 아리송한 마무리로 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금이 간 자존심은 상처가 되어 울컥 쏟아진
눈물과 콧물이 한동안 멈출 줄 몰랐다.
현실의 쓰라린 시선들은 때로 나를 믿고 설레게 만드는 사람에게도
종종 엿보인다는 그 사실이 나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어버렸다.
검정고시 졸업 후, 부족한 나를 알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나를 위한 노력을 그리 해왔건만,
어쩔 수 없는 시선들과 선입견들에 대한 것들을 나름의 위로로,
결국엔 정상에 서 있는 자가 승리할거라는 믿음으로 극복해왔건만
나를 믿고 설레는 사람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비참하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에 두 번 비참함을 느껴버렸다.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인 사고를 위시한 나를 향한 화이팅이 필요하
다는 걸 알지만,
가끔 이유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슬퍼하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한 법.
이것이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를 어떤 결과의 문 앞으로 데려다
둘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착잡함이 쉬이 가시진 않을 것 같다.
검정고시 고졸 출신은 연애하기 이리 힘든 겁니까 ?
가슴이 울컥해 장문의 글 남겨봅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