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영어교사입니다. 우리 학교는 대부분이 40~50대의 만학도 아줌마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학교입니다. 저희학교 졸업생의 감동적인 사연이 있어 소개 하고자 합니다.
학교전화번호 : 070-4000-8516
학교 홈페이지 : www.ajummaschool.com
당당한 내 인생
(일성여고 졸업생 이명수)
10월의 가을 햇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한 무리의 옆 학교 여고생들이 긴 생머리를 나풀대며 뛰어가는 모습이 더없이 싱그럽다.
중학교 입학 후 4년째 염리동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꾸었던 꿈이 현실로 나타나, 이제 구름다리 사이로 펼쳐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지금 여고 졸업반이다. 담벼락을 오르는 담쟁이넝쿨만큼이나 질기고 억척스럽게 학교생활을 했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영어 암송 90회를 하여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전에 통과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중학교 입학식에서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생활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이제껏 미루었던 공부를 사회인이 되어서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배움에 늘 갈증을 느꼈던 나는 중 1부터 여고 졸업반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 결과 간체자 읽기 활용 사자성어를 최고 급수까지 두 번 통과하고, 양원 한자 지도사 과정을 수료한 후 자격증도 취득했다. 영어는 PELT standard 3급까지 공부하고, 글쓰기도 꾸준히 하여 각 대회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일성이라는 보석 광산에서 참으로 욕심 많게 한 아름의 보석을 캐내서 가득 안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의 역할을 맡아 마포문화회관 무대에 서기도 했고, 3학년 때는 팝송대회에서 4중창으로 대상을 받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양원 지역 봉사회 회원으로 4년간 봉사를 다니면서 주변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며, 목요 당번장, 급장, 대의원 등의 직책을 맡았을 때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성여고에 입학해서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고,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오른쪽 손목을 다쳐 두 달여 동안 깁스를 했지만 그때도 빠짐없이 등교했다. 1400여 명의 학생들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도리어 많은 학우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누가 손을 다쳤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기억은 내 가슴에 평생토록 간직될 것이다.
또한 서울 교육청 강당에서 ‘서울학생상’을 받고 어린 학생들 앞에서 실천 사례를 발표하는 영광을 안았는데, 그때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이 많은 제자들을 보살피느라 늘 애쓰시는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제 당당한 대학생이 되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의 꽃을 피우고 싶다.
만학도의 아버지로 이 땅에 우뚝 서 계신 존경하는 이선재 교장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 드리며, 끝으로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과 늘 버팀목이 되어 준 남편에게 글이나 말로써는 부족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
만학도의 열정과 배움이 있는 곳!!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영어교사입니다. 우리 학교는 대부분이 40~50대의 만학도 아줌마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학교입니다. 저희학교 졸업생의 감동적인 사연이 있어 소개 하고자 합니다.
학교전화번호 : 070-4000-8516
학교 홈페이지 : www.ajummaschool.com
당당한 내 인생
(일성여고 졸업생 이명수)
10월의 가을 햇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한 무리의 옆 학교 여고생들이 긴 생머리를 나풀대며 뛰어가는 모습이 더없이 싱그럽다.
중학교 입학 후 4년째 염리동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꾸었던 꿈이 현실로 나타나, 이제 구름다리 사이로 펼쳐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지금 여고 졸업반이다. 담벼락을 오르는 담쟁이넝쿨만큼이나 질기고 억척스럽게 학교생활을 했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영어 암송 90회를 하여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전에 통과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중학교 입학식에서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생활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이제껏 미루었던 공부를 사회인이 되어서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배움에 늘 갈증을 느꼈던 나는 중 1부터 여고 졸업반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 결과 간체자 읽기 활용 사자성어를 최고 급수까지 두 번 통과하고, 양원 한자 지도사 과정을 수료한 후 자격증도 취득했다. 영어는 PELT standard 3급까지 공부하고, 글쓰기도 꾸준히 하여 각 대회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일성이라는 보석 광산에서 참으로 욕심 많게 한 아름의 보석을 캐내서 가득 안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의 역할을 맡아 마포문화회관 무대에 서기도 했고, 3학년 때는 팝송대회에서 4중창으로 대상을 받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양원 지역 봉사회 회원으로 4년간 봉사를 다니면서 주변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며, 목요 당번장, 급장, 대의원 등의 직책을 맡았을 때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성여고에 입학해서는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고,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오른쪽 손목을 다쳐 두 달여 동안 깁스를 했지만 그때도 빠짐없이 등교했다. 1400여 명의 학생들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도리어 많은 학우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누가 손을 다쳤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기억은 내 가슴에 평생토록 간직될 것이다.
또한 서울 교육청 강당에서 ‘서울학생상’을 받고 어린 학생들 앞에서 실천 사례를 발표하는 영광을 안았는데, 그때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이 많은 제자들을 보살피느라 늘 애쓰시는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제 당당한 대학생이 되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의 꽃을 피우고 싶다.
만학도의 아버지로 이 땅에 우뚝 서 계신 존경하는 이선재 교장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 드리며, 끝으로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과 늘 버팀목이 되어 준 남편에게 글이나 말로써는 부족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
이제 명문 일성의 학생으로, 그리고 졸업생으로서 당당하게 내일을 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