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는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경 131° 52′.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421번지에서 산75번지에 속해있습니다.
울진군 죽변에서는 약 217km, 울릉도에서는 약 87km 떨어져 있는 반면, 일본의 오키제도에서는 약 158km, 시마네현 히노미사끼에서는 약 211km 떨어져 있습니다.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가시거리에 들어오지만 일본에서는 가시거리에 독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국경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보이는 곳까지가 삶의 터전'이었다는 한·일 양국의 공통된 인식(관습)에 근거하여 독도가 우산국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서도와 동도의 2개의 큰 섬과 89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는 독도는 동해의 깊은 해저에서 여러 차례 솟구친 용암이 오랫동안 굳으면서 생겨난 화산섬입니다.
서도와 동도는 폭 151m, 깊이 10m 미만, 길이 330m인 물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뉘어 있고, 이 두 섬을 제외한 다른 섬들은 해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강원대지, 울릉대지, 우산해곡, 우산해저절벽, 온누리분지, 새날분지, 후포퇴, 김인우해산, 이규원해산, 안용복해산 등 동해 해저의 지명이 한국식으로 국제해저지명집에 등재된 것은 지난 1974년 국제등재 업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동해 해저 10곳의 한국식 지명이 국제해저지명집에 실려 국제사회에서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독도가 우리 땅인 세 번째 이유입니다.
2. 독도가우리땅인 역사적이유
* 독도가 우리 조상들의 인식에서 명확하게 기억되어 있는 시점은 512년 6월 삼국사기 기록부터 1990년 10월 대한제국 칙령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증왕 13년 6월 여름 우산국이 귀복…복속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을 아우르고 있었던 나라입니다.
* 광무 4년이 바로 1900년, 10월에 관보 형태로 발표했습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확대해서 볼까요?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울릉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여기에서 석도는 바로 독도를 의미합니다.
대한제국에서 분명히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관할한다는 것을 못 박고 있습니다.
* 고려사에 보면'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陵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산도는 독도를 말하는 지칭합니다. 또 조선 초기에 관찬된 세종실록 지리지(1432년)에도 '우산(독도)·무릉(울릉)...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풍일이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독도가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 육안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팔도총도입니다. 여기 우산도가 독도입니다. 분명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일본 정부에서 만든 태정관 발행문서에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태정관은 일본 내각 총리실입니다.
'書面 竹島外一島之 義本邦關係無之義卜 可相心得事'<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태정관(太政官 문서> "울릉도(당시 竹島)와 그 외 1개 섬인 독도(당시는 松島)는 우리나라(日本)와 관계없다는 것 등 심득(心得,마음에 익힐 것)할 것".
* 일본이 100여 년 전에 제작한 지도에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닌 우리 땅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내무성 지리국이 1880년 제작하고 1883년 개정한 ‘대일본국전도’에는 러시아와 분쟁 중인 쿠릴열도까지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독도와 울릉도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들
“일 고지도에도 한국령 명시”
우리나라는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입증하는 충분한 역사적 자료를 갖고있다.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사기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이었으나 서기512년 신라에 귀순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도 독도는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성종실록, 증보문헌비고 등에 계속 언급되고 있다. 성종 실록에는 독도(삼봉도)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군역을 도피하고 세금을 포탈한 강원도 영안도(함경도)의 유민이 이섬에 많다는 말이 있으므로 이섬을 찾아갔던 김자주 등의 보고서가 성종실록에 비친다. 기사원문: 1977. 2. 8 [경향신문]
1)삼국사기에 서기 512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함으로써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한반도의 일부가 됐습니다.
2)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개의 섬으로 기술한 최초의 문헌인 세종실록에는 “우산과 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의 바로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무릉은 울릉도, 우산은 독도를 말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고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3. 일본 정부에서 만든 태정관 발행문서에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태정관은 일본 내각총리실입니다.
조선시대에 공도정책을 폈습니다.즉 섬을 비우는 정책 이였습니다.
당시 조선왕조는 울릉도가 왜구나 한반도에서 도망간 소굴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섬을 비워놓고 5년에 한번정도 순찰하는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일본어민이 독도에 왔을때 그곳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오랫동안 해산물과 고기를 잡고 돌아갔고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생각한것 입니다.
독도가 한국땅인 이유 정확히 알자.
1. 지리적인 근거
* 독도는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경 131° 52′.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421번지에서 산75번지에 속해있습니다.
울진군 죽변에서는 약 217km, 울릉도에서는 약 87km 떨어져 있는 반면, 일본의 오키제도에서는 약 158km, 시마네현 히노미사끼에서는 약 211km 떨어져 있습니다.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가시거리에 들어오지만 일본에서는 가시거리에 독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국경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보이는 곳까지가 삶의 터전'이었다는 한·일 양국의 공통된 인식(관습)에 근거하여 독도가 우산국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서도와 동도의 2개의 큰 섬과 89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는 독도는 동해의 깊은 해저에서 여러 차례 솟구친 용암이 오랫동안 굳으면서 생겨난 화산섬입니다.
서도와 동도는 폭 151m, 깊이 10m 미만, 길이 330m인 물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뉘어 있고, 이 두 섬을 제외한 다른 섬들은 해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강원대지, 울릉대지, 우산해곡, 우산해저절벽, 온누리분지, 새날분지, 후포퇴, 김인우해산, 이규원해산, 안용복해산 등 동해 해저의 지명이 한국식으로 국제해저지명집에 등재된 것은 지난 1974년 국제등재 업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동해 해저 10곳의 한국식 지명이 국제해저지명집에 실려 국제사회에서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독도가 우리 땅인 세 번째 이유입니다.
2. 독도가우리땅인 역사적이유
* 독도가 우리 조상들의 인식에서 명확하게 기억되어 있는 시점은 512년 6월 삼국사기 기록부터 1990년 10월 대한제국 칙령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증왕 13년 6월 여름 우산국이 귀복…복속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을 아우르고 있었던 나라입니다.
* 광무 4년이 바로 1900년, 10월에 관보 형태로 발표했습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확대해서 볼까요?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울릉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여기에서 석도는 바로 독도를 의미합니다.
대한제국에서 분명히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관할한다는 것을 못 박고 있습니다.
* 고려사에 보면'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陵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산도는 독도를 말하는 지칭합니다. 또 조선 초기에 관찬된 세종실록 지리지(1432년)에도 '우산(독도)·무릉(울릉)...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풍일이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독도가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 육안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팔도총도입니다. 여기 우산도가 독도입니다. 분명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일본 정부에서 만든 태정관 발행문서에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태정관은 일본 내각 총리실입니다.
'書面 竹島外一島之 義本邦關係無之義卜 可相心得事'<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태정관(太政官 문서> "울릉도(당시 竹島)와 그 외 1개 섬인 독도(당시는 松島)는 우리나라(日本)와 관계없다는 것 등 심득(心得,마음에 익힐 것)할 것".
* 일본이 100여 년 전에 제작한 지도에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닌 우리 땅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내무성 지리국이 1880년 제작하고 1883년 개정한 ‘대일본국전도’에는 러시아와 분쟁 중인 쿠릴열도까지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독도와 울릉도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들
“일 고지도에도 한국령 명시”
우리나라는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입증하는 충분한 역사적 자료를 갖고있다.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사기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이었으나 서기512년 신라에 귀순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도 독도는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성종실록, 증보문헌비고 등에 계속 언급되고 있다. 성종 실록에는 독도(삼봉도)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군역을 도피하고 세금을 포탈한 강원도 영안도(함경도)의 유민이 이섬에 많다는 말이 있으므로 이섬을 찾아갔던 김자주 등의 보고서가 성종실록에 비친다.
기사원문: 1977. 2. 8 [경향신문]
1)삼국사기에 서기 512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함으로써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한반도의 일부가 됐습니다.
2)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개의 섬으로 기술한 최초의 문헌인 세종실록에는 “우산과 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의 바로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무릉은 울릉도, 우산은 독도를 말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고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3. 일본 정부에서 만든 태정관 발행문서에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태정관은 일본 내각총리실입니다.
조선시대에 공도정책을 폈습니다.즉 섬을 비우는 정책 이였습니다.
당시 조선왕조는 울릉도가 왜구나 한반도에서 도망간 소굴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섬을 비워놓고 5년에 한번정도 순찰하는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일본어민이 독도에 왔을때 그곳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오랫동안 해산물과 고기를 잡고 돌아갔고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생각한것 입니다.
예전 이승만대통령은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국땅이니 반환하라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현재도 우리는 대마도반환을 요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