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스승의 은혜는 하늘만큼 높았다

스승님감사합니다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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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학교축제가 코앞인데 과제크리 먹어서 멘붕 뜰 지경에 있는 20살 대학생입니다.

보아하니 내일이 스승의 날이라 Never에서는 스승의 날 편지 등 하며 선생님들께 드릴 편지 등을 짜려고 노력하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세 번의 만남에 선생님이 끼는 만큼, 선생님이란 존재가 그러니까 볼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런데, 선생님들 중에도 유독 기억에 남고,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는 선생님들이 있죠. 우린 그런 분들을 '은사님'이라고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사님을 알고계신가요? 저는 오늘 제가 살면서 가장 감사했던 은사님의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중3때 게임 관련 전문계고를 생각하기도 했고, 인문계를 다니기에는 당시 집안상황이 안좋아서 전문계고를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거세게 반대하시는 바람에, 결국은 인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가 입학하게 된 그 고등학교는 개신교재단의 학교였습니다. 언론에서 보여지는 개신교의 이미지, 그리고 가톨릭 신자인 제가 그런 곳에 입학하면 트러블이 많을 것 같단 생각이 많아서 가기 싫었는데, 컴퓨터가 거기로 골라줘서 그리 가게 된 것이죠.

 

그렇게 그 학교에 가게 되고, 입학 전 배치고사를 보게 되어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보기를 몇십분 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웬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시험 감독을 맡게 되셔서 들어오신 것이었죠. 처음에는 그냥 시험감독이겠거니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배치고사 후에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있었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때 뵜던 그 감독선생님이 저의 담임선생님이라는 겁니다. 즉, 배치고사 때 감독선생님은 그 반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이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이 분이 바로 오늘 제가 말하려는 저의 은사님이십니다.

 

 처음 이 선생님께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선생님의 목소리가 중후하셔서 조금 무거운 느낌의 선생님이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학교 선배님들에게 물어봐도, 제 선생님은 아는 선배가 없으시다보니 어떤 분인지 파악이 잘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교를 입학하고 하루하루 지내면서 학교 생활도 알아가고, 제 선생님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참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선, 학년 초에 담임선생님과 개인면담을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선생님들마다 면담 스타일이 달랐었는데, 제 선생님은 면담하는 시간이나마 제게 친절하게 대하며 저를 알아가려 하셨습니다. 나중엔 같이 잘지내보자며 악수까지 하시더군요. 수업시간에도 저는 선생님께 교사의 품위를 느끼곤 하였습니다. 국어선생님이셨는데, 나름대로 깊이 있는 수업을 진행하셨고, 때론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잘못 쓰는 표현들도 저희한테 알려주곤 하셨지요. (예를 들어,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친자식은 살아계실적에 부모님을 함부로 '아버님', '어머님'해선 안된다는 것을 배웠죠. 편지글이 아닌 이상, 친자식은 '아버님' '어머님'이란 말을 돌아가시고 나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학교에 방문하는 날에, 아버지께서 제가 집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사정을 말씀하시고는, 야간자율학습관에 제 자리를 내어주셔서(제 모교는 야자 하는 학습관에서 학생들을 뽑아다 그 학생들만 야자하게 합니다^^;) 사용하게 하셨죠.

 

 그리고, 이 선생님께서는, 특이하게도(?) 요즘 세상엔 잘 하지 않는 가정방문을 하셨습니다. 전 사실 가정방문을 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잘 사는 편이 아닌 저희 집에 선생님을 모시고 온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하겠다고 가정통신문까지 돌리신데다, 선생님 당신께서도 각 집에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물 한 잔도 준비해 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실제로도 한 집 빼고는 준비한 주전부리에 손을 대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하고 제 순서에 맞춰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정방문에서도 선생님께서는 친절을 갖고 대해주셨습니다. 제 칭찬도 해주시고, 저에게 '학교가 개신교학교인데 다니기 불편하진 않느냐'며 저를 배려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통해 제일 잘 알게 된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저희 집 모습을 보시고(나중에 고3돼서 제게 '그 때 니 공부하는 환경보고 마음이 아팠다'란 말씀을 하셨죠.), 그리고 저희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집안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아시게 되셨죠. 그리고, 제가 잠시 자리를 피한 사이 여러 얘기를 나누시고나서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가정방문은 끝났습니다.

 

 그리고나서 선생님은 저를 도와주시려고 애써주셨습니다. 그것도 저 모르게 말이죠. 일례로, 제가 학비지원을 받게 하시려고 서류를 갖고오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너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학비지원을 받을 수 있다'란 식으로 말씀하시면서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어떤 서류가 필요하게 됐는데 좀 가져다 줬으면 한다'란 식으로 말씀하셨죠. 덕분에 저는 그때부터 3학년때까지 학비지원을 받으며 학교를 생활할 수 있었죠. 그리고, 실제로 2학년 말까지는 저는 제가 학비지원대상자인지 전혀 모르고 자랐습니다.(뭐 제가 눈치가 좀 없기도 하고, 제도상으로도 수혜자가 수혜자인지를 모르게 한다고는 합니다만...)

 

 그 외에도 선생님은 제게 친절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 논술 기출문제를 쓰고나서 선생님께 첨삭을 부탁드린 일이 있었는데, 바쁘셔서 자주 까먹으시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제 첨삭 끝나냐고 묻는 식으로 보채곤 했었는데, 짜증 한 번 안 내시고 '미안하다. 좀만 기다려주겠니?'란 식으로 말씀하시며 첨삭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몇 달이 걸리긴 했지만요.) 또, 학교 내에서 인사하면 웃는 얼굴로 받아주시기도 하시곤 했죠.

 

 하지만, 그 땐 철이 없어서 선생님 속 썩일 일을 몇 번 했었죠. 야자 하기 싫다고 몇 번 도망치고, 언제는 여름방학보충도 듣기싫다고 도망쳤었죠.(나중에 부모님께 들은 얘기인데, 보충 도망간 날에 선생님께서 저희 부모님께 전화거셔서 저 보충 도망갔냐고 물어보셨다더군요.) 그리고, 그러한 친절도 고마운 지 모르고 살았었죠.

 

 1학년이 지나고, 저는 선생님과 만날 기회가 많이 적어졌습니다. 정규수업시간에 선생님을 만나뵐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만나뵐 수 있을 때가 방학보충 때였는데, 그 선생님 시간에는 제가 늘 '차렷 경례'의 인사를 하게 됐었죠. 그 땐 부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선생님께서 저를 아껴주신다는 것도 알게 됐었죠.

 

 그리고 3학년이 되자, 저는 선생님과 다시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정규수업시간에 제가 속한 반에 오셔서 수업을 하셨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그 시간에 또 '차렷 경례'의 인사를 했었습니다. 다시 만나서 수업을 듣게 되었기에, 제 기분은 좋았었죠.

 

 그러나, 저도 고3의 시기를 보내며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낮은 성적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고, 제 목표는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서 내적으로 많은 방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수시전형도 아무렇게나 넣을 수가 없었죠. (지금 다니는 대학도 당시 제 성적으론 힘겨웠을 정도니까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고3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일 입니다. 수시 몇 개 넣어놓은 저는, 정시로는 가망이 없으니 차라리 재수를 생각하잔 식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그나마 하던 과목말고는 거의 포기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선생님께 뜻하지 않은 도움을 얻게 됩니다. 여느 때와 같이 그 선생님과 수업을 하게 됐는데, 출석 부르기 직전에 선생님께서 수업끝나고 당신 자리에 잠깐 왔다가라고 했습니다. 뭔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저는 수업끝나고 잽싸게 찾아뵜습니다. 그러나, 만나뵈서 한 얘기 치고는 뭔가 싱거운 감이 있었습니다. 수시는 어디 넣었느냐, 공부는 안힘드냐 등 그저 의례적인 질문을 하시고 조금의 위로를 하시고는 저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게 뭐지?'란 생각으로 교실로 돌아가고, 모든 학교 일정을 마치고 저는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어머니께서 제게 전화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직접 찾아뵜는데, 저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하시면서 저한테 쓰라고 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그냥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자그마치 100만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월등히 잘했다거나, 여타 선생님과 깊은 친분을 맺지도 않은 제게 이 정도 돈을 준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감사함과 죄송함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해주시는데, 저는 당장 선생님께 기쁨을 드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수시 발표는 언제나나 하며 마음만 초조해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죠. 그러던 중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에 붙은 것입니다. 부모님하며 선생님, 친구들 모두 축하해줬었습니다. 물론 그 선생님도 축하해주셨죠. 그러나, 붙은 뒤에도 문제거리가 있었습니다. 등록금이었습니다. 부족한 형편이었기에 등록금을 내기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줄테니 걱정말라고 하셨지만, 저도 어느정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알바라도 해야 할 것도 같았고, 정 안되면 학자금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또 연락을 드렸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얘기인 즉슨, 제 등록금 내는 것을 조금이나마 도와주시겠단 것입니다. 그런 전화만으로도 고마움이 느껴지는 때였습니다. 멀리서나마 저를 챙겨주시려고 하시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선생님의 도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또 선생님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쓸 돈을 선생님께서 다시 구해주셨다는것입니다. 그 때 액수는 500만원이었습니다. 저번에 주신 것 보다 5배나 많았고, 제 한 학기 등록금을 다 내고도 100만원 가량 남는 돈이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주셔서 감사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칫 등록금 하나에 수많은 방황을 할 수도 있었던 한 청춘에게, 선생님께선 잠시나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자기자식도 아닌, 그렇다고 무엇인가 특출난 것도 아닌, 그저 잠시 담임을 맡았을 뿐인 학생에게 여러분이라면 그 거액을 선뜻 건넬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저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단순한 교과상의 지식 뿐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개신교에 대해 쓰고 있던 색안경을 벗게 되었고, 내가 정말 참스승을 뵈었구나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말 죽어서도 선생님께 대한 은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교사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교사는 그것을 제재할 수단을 점점 잃어가는 듯 합니다. 그러나, 교사의 권위는 그렇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학생에 대한 사랑을 계속 베풀 때, 진정한 교사의 권위가 생겨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 정말 고생많으십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학생들을 조금만 더 사랑으로 대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학생분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했습니다. 조금만 더 선생님께 예의를 갖추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번 스승의 날은 스승과 제자 모두 그런 마음으로 하나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