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게임2

왕보리2012.05.19
조회2,054

출처 : http://www.humoruniv.com/
< 웃대 : hirurika님 >

 


[연작] 살인게임 (2)

 

 


지방의 한 사범대학교에 합격하고 오티를 가는 날이었다.

재수까지 해버린 터라 난 대학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설렘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정장까지 갖춰입고,

젤을 발라 최대한 멋을 부린 후 학교로 출발했다.

 

 

"XX과 신입생이세요?"

"네."

"저기 3번 버스에 타세요."

 

 

버스에 오르자 나와 같은 신입생들이 어색하게 차창밖에

시선을 둔 채 mp3를 듣거나, 가벼운 읽을 거리를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크흠."

 

 

버스에 오르는 순간 주위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어색하고 뻘쭘해 습관처럼 기침을 한 후 버스를 이리저리

둘러본 후 빈자리를 찾아갔다.

 

 

"후우..."

 

 

얼핏 본 것 뿐이지만 생각보다 예쁜여자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인형처럼 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차갑고

도도한 듯 보이는 인상이 웬지 모르게 눈에 띄었다.

 

 

"자 이제 10분후에 출발할 건데요, 선배들도 탈거라 자리가

부족하니까 혼자 앉은 사람들은 어색하더라도 둘씩 좀 앉아

주세요."

"네."

 

 

학회장의 말에 나를 비롯해서 띄엄띄엄 앉아있던

신입생들은 빈자리를 메꾸기 시작했고,

난 공교롭게도 처음 버스에 오를때부터 눈에 띄었던 인형처럼

도도한(?) 여자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 저 신입생이세요?"

"네? 네..."

"저도 그런데요. 반갑습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그 여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눈에 띌듯말듯하게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제 이름은 강한석인데요. 그쪽은...?"

"김한경이예요."

"아, 저기 같은 신입생인데 우리 말 놓을까요?"

"그럴까? 헤헤."

 

 

오티장소였던 속리산까지 가는 동안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2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격도 굉장히 좋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버스에 있는 동안 나에게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다왔습니다. 신입생들은 버스에서 내려주세요."

 

 

버스 앞좌석에 앉아있던 학회장의 말에 난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빙긋 웃기만 할 뿐 일어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한경아? 내리래."

"알아. 얼른 내려."

"넌?"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그녀는 장난기 잔뜩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입생들 내리래잖아."

"그러니까 너도... 어...?"

 

 

그녀가 작은 명찰을 들어보였다.

신입생과 재학생을 구분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면서

받았던 그것은 지금 이순간 내 머릿속에 '아뿔싸'란 단어를

거칠게 새겨놓았다.

 

 

"내, 내껀 하얀색인데..."

"헤헤, 가는동안 심심할까봐."

 

 

그녀의 손에 들린 파랑색 명찰이 날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며 난 재빨리 버스에서 내렸다.

 

 

'제길, 날 놀린거였어...'

 

 

당했다는 생각에 쪽팔림이란 바이러스가 머릿속의 주기억장치로

몰려들어 사고기능에 에러를 도출시켰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꼭 그런것만도 아니었다.

 

 

"기분 나빴니?"

"어? 아니야...요."

 

 

어느새 날 따라내린 그녀가 검지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장난스럽게 물어왔다.

기분이 나쁘기엔 그녀가 너무 예뻤다.

 

 

"선배인 줄 몰랐는데요..."

"당연하지. 내가 원래 동안이거든. 호호호."

 

 

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손으로 흐트러뜨린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저렇게 예쁜 선배라면 정말 대학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좀 무표정한게 약간 아쉽지만...

 

 

"XX과 신입생들은 2층에 206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선배들의 말에 따라 우린 털래털래 걸어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고, 커다란 방에 다닥다닥 붙어앉아 짐을 풀었다.

처음이라 서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

끼리 통성명을 하며 첫 인사를 나눴지만 난 버스에서 만난

묘령의 여선배 생각에 그냥 멍청하게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도 재수했으니까 동갑이네... 흐흐흐...'

 

 

흐믓하게 혼자 쪼개고 있으려니 옆에 앉은 여자동기들이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슬금슬금 내 옆에서 멀어져갔다.

 

 

"뭐가 그렇게 좋냐?"

"어엉?"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쾌활한 목소리에 준수한 얼굴로 싱긋 웃는 그를 보니 나름데로

외모엔 자신있던 난 강한 라이벌 의식이 불타올랐다.

명찰은 하얀색으로 나와 같았다.

 

 

"그냥..."

"유민수라고 해. 첫인상이 니가 젤 괜찮아 보여서."

"하하... 빈말이라도 고맙군. 강한석이야."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약간의 대화를 나눠본 결과 녀석도

나처럼 재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재수생이라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 탓인지 녀석과는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저 여자선배 괜찮지 않냐?"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에 갔을 때 민수녀석이 한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긴 생머리를 어깨너머로 늘어뜨린 차갑고 도도한 인상의

그녀는 버스에서 만난 나만의 그녀... 는 아니지만 어쨌든

김한경이었다.

 

 

"왜? 관심이라도 있나보지?"

"아니."

 

 

혹시나 하는 맘에 녀석을 슬쩍 떠봤지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일언지하에 거절을 해버렸다.

 

 

"괜찮다면서?"

"저 얼굴 다 뜯어고친거야."

"니가 어떻게 알아?"

"우리 아버지가 성형외과 의사시거든. 어렸을때 부터

어깨 너머로 배운게 있지. 직접 수술은 못하지만 이론

상으론 준전문가 수준은 되거든."

 

 

민수의 말로는 한경은 얼굴 전체를 실리콘으로

덮어씌운것 같다고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표정변화도 거의 없고 웃을때도

어색해 보이는 것이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 한석아."

 

 

그 때 한경이 날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민수는 약간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는 사이였어?"

"아냐 오늘 처음 만났는데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았거든."

"그래? 휴... 난 또. 다행이다."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학교소개를 듣고 선배들의 공연을

감상하는 하루의 일정이 대충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인원에 맞게 술잔과 안주가 먹음직스럽게 세팅되어 있었다.

 

 

"오늘은 어색함을 없애고 친목을 도모하자는 의미로 술자리를

준비했으니까 선배들의 정성을 봐서라도 마음껏 취해주세요."

"와~ 휘익~"

 

 

약간은 들뜬 분위기에서 시작한 술판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찌감치 술 몇잔에 뻗어버린 사람을 비롯해 한창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과 벌써부터 눈이 맞아 둘이서 은근슬쩍 자리를

이탈하는 커플까지 여러부류의 패거리로 나뉘었다.

 

 

"후후, 그럼 나랑 동갑이네? 우리 말 놓자."

"그럴까? 허헛."

 

 

아무리 성형수술을 했다지만 이쁘면 뭐든 용서가 되는 법이다.

난 기회를 잘 봐서 한경선배에게 접근했고,

둘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붉게 달아오른 취기를

빌미로 그녀에게 서서히 작업을 걸었다.

그녀도 내가 그리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근데말야 옛날에 알던 사람이랑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데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

"하하, 그럴리가 난 너 처음보는데. 용문초등학교 나왔어."

"요, 용문? 6학년때... 몇반이었는데?

"글쎄 몇반이었더라? 6반이었나?"

 

 

긴가민가해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한 내 대답에

그녀는 갑자기 싸늘해진 목소리로 날 다그쳤다.

 

 

"똑바로 말해. 6반이었어?"

"어...? 왜, 왜그래 한경아..."

"6반이었냐고."

"으응... 맞아 6반이었어..."

 

 

그녀는 지독하게도 증오스런 눈빛으로 날 노려보더니

이내 방을 뛰쳐나갔다.

갑작스런 그녀의 돌출행동에 나는 물론, 방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가 나간 자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뭐야? 왜그래 한석아?"

"나도 몰라. 초등학교 때 6반이었다니까 갑자기..."

 

 

민수에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하는 순간 난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 한 부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무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던 죄책감이었다.

 


"김한경... 김한경... 설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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