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잘 잊고 지내지만 과거에는 절대 잊을 수 없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까지 나를 쭈욱 괴롭히던 그아이 그 당시 그아이의 아버지는 중동에서 건설업을 크게 하시던분이셨고 우리집은 드라마에서 나오듯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그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시고 그 덕에 딸린 반지하방에서 사는 그런 처지였지요. 그당시는 가사도우미라는 표현대신에 식모나 파출부라는 표현을 썼었고 그 친구는 매년 자기가방을 들게 시켰고, 자기집에 빌붙어 사는 아이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했으며 맘에 안들면 뺨을 때리기도 했지요. 너무 분해 눈물이 고여있던 나에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꼬으면 꺼져 이 거지식구들아." 그 잔인하던 그 아이와는 반대로 그 집 어른들은 매우 양반이셨고, 공부에 관심이 없던 저에게 자기딸과 같이 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항상 자매처럼 지내라고 하셨고 자매처럼 지내는 줄 아셨을 겁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춤을 잘 추고 무용을 잘하는 재주가 있었고, 저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 아이의 무시와 멸시 괴롭힘에 나는 하루에도 수백번 죽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기 몇일전 영문도 모른채 어머니가 이사가야한다고 하셔서 그 이후로는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지요. 어머니는 시장에서 국밥집 주방서빙을 하시다가 그간 모으신 돈으로 그집을 인수하셔서 제법 손님 많은 국밥집 사장님이 되셨고, 저는 하던 무용을 더 열심히 해서 대학을 무용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 무용을 가르치며 지내던중 그 무용학원 다니던 어떤 학부모님이 자기 동생 소개를 해주신다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과고출신에 명문대학을 나온 변리사이고 성격이 굉장히 좋습니다. 능력이 좋은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물론 저도 제가 하는일 계속하면서도 남편 뒷바라지에 애들 뒷바라지등등 열심히 살았습니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남편이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고 지금의 집은 도저히 일을 하면서 살림까지 병행하기 힘들어서 가사도우미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러 오신분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분이셨고 말도 잘 통하고 싹싹하게 일도 잘하셔서 집안일을 믿고 맡겼습니다. 그리고 저번주 월요일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이번에는 동창회에 꼭 나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초등학교 기억은 안좋은 기억들로 가득하지만 이번에는 그 트라우마를 꼭 벗어나고 싶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옷들을 입고 가장 좋은 백을 들고 나갔습니다. (막상 그리 좋은 녀석들이 없어서 내가 참 검소하게 살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만 ^^) 잘풀린 친구들이 많더군요. 영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님이 된 친구도 있고 그런데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다들 얼굴이 잘 매치가 안되더라구요. 하지만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동질감때문인지 금방 익숙해지고 친해지더라구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영화같지요? 그아이가 우리집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시더라구요. 게다가 제 옷을 입고 나왔더라고요. 둘다 놀랐습니다. 그 친구 아무렇지도 않은듯 친한척 했고, 저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 그친구집이 고등학교 갈때쯤 부도가 나서 완전 망했고 그 이후 험난한 생활을 많이 한것 같더라구요.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은혜받은게 많다고 도와드려야 한다고 하시길래 이전이야기를 하며 부둥켜 안고 오래동안 울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변한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아이도 마찬가지구요. 서로 이름부를 일이 없는 사이여서 더 못알아봤겠지요. 하지만 둘의 상황은 참 많이 바뀌어 있더라구요. 세상살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52
동창회에서 그아이를 만났습니다. ( 세상은 참 신기해요)
지금은 잘 잊고 지내지만 과거에는 절대 잊을 수 없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까지 나를 쭈욱 괴롭히던 그아이
그 당시 그아이의 아버지는 중동에서 건설업을 크게 하시던분이셨고
우리집은 드라마에서 나오듯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그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시고
그 덕에 딸린 반지하방에서 사는 그런 처지였지요.
그당시는 가사도우미라는 표현대신에 식모나 파출부라는 표현을 썼었고
그 친구는 매년 자기가방을 들게 시켰고, 자기집에 빌붙어 사는 아이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했으며
맘에 안들면 뺨을 때리기도 했지요. 너무 분해 눈물이 고여있던 나에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꼬으면 꺼져 이 거지식구들아."
그 잔인하던 그 아이와는 반대로 그 집 어른들은 매우 양반이셨고, 공부에 관심이 없던 저에게
자기딸과 같이 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항상 자매처럼 지내라고 하셨고
자매처럼 지내는 줄 아셨을 겁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춤을 잘 추고 무용을 잘하는 재주가
있었고, 저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 아이의 무시와 멸시
괴롭힘에 나는 하루에도 수백번 죽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기 몇일전 영문도 모른채 어머니가
이사가야한다고 하셔서 그 이후로는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지요.
어머니는 시장에서 국밥집 주방서빙을 하시다가 그간 모으신 돈으로 그집을 인수하셔서
제법 손님 많은 국밥집 사장님이 되셨고, 저는 하던 무용을 더 열심히 해서 대학을 무용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 무용을 가르치며 지내던중 그 무용학원 다니던 어떤 학부모님이 자기 동생 소개를
해주신다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과고출신에 명문대학을 나온 변리사이고 성격이 굉장히 좋습니다.
능력이 좋은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물론 저도 제가 하는일 계속하면서도 남편 뒷바라지에
애들 뒷바라지등등 열심히 살았습니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남편이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고
지금의 집은 도저히 일을 하면서 살림까지 병행하기 힘들어서 가사도우미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러 오신분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분이셨고 말도 잘 통하고 싹싹하게 일도 잘하셔서
집안일을 믿고 맡겼습니다.
그리고 저번주 월요일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이번에는 동창회에 꼭 나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초등학교 기억은 안좋은 기억들로 가득하지만
이번에는 그 트라우마를 꼭 벗어나고 싶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옷들을 입고
가장 좋은 백을 들고 나갔습니다. (막상 그리 좋은 녀석들이 없어서 내가 참 검소하게 살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만 ^^)
잘풀린 친구들이 많더군요. 영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님이 된 친구도 있고
그런데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다들 얼굴이 잘 매치가 안되더라구요.
하지만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동질감때문인지 금방 익숙해지고 친해지더라구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영화같지요? 그아이가 우리집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시더라구요.
게다가 제 옷을 입고 나왔더라고요. 둘다 놀랐습니다.
그 친구 아무렇지도 않은듯 친한척 했고, 저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 그친구집이 고등학교 갈때쯤 부도가 나서 완전 망했고 그 이후 험난한 생활을
많이 한것 같더라구요.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은혜받은게 많다고 도와드려야 한다고 하시길래
이전이야기를 하며 부둥켜 안고 오래동안 울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변한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아이도 마찬가지구요.
서로 이름부를 일이 없는 사이여서 더 못알아봤겠지요.
하지만 둘의 상황은 참 많이 바뀌어 있더라구요.
세상살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