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은혜의 공허한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며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거니. 아님 그러지 못하는거니.. 마지막 은혜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 대신 갈색의 커다란 후드를 몸에 걸치고 있는 은혜가 왠지 낯설어 보인다.
“아..빠.”
생기를 잃은 은혜의 목소리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런 곳에서 저 사이코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빌어먹을 사이코 새끼들! 그 빌어먹을 사이코 놈들이 이상한 소리로 은혜를 억압하는 장면이 나도 모르게 그려진다. 꽈악. 주먹을 꽉 쥐고 후드에 가려진 얼굴 쪽을 노려본다.
“은혜..야.”
아저씨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저씨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저씨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오늘 은혜를 찾지 못하면 포기할 거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은혜 걱정에 힘겨웠을 것이다. 그간의 걱정과 서러움을 눈물로 씻어 버리려는 듯 아저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
가만.. 민정 누나는 어디에 있지? 은혜 뒤에서 서있는 사이코 녀석들은 정상적인 대화가 될 것 같지 않다. 나는 우두머리를 보며 말했다.
“또 한 명의 여자는 어딨지?”
내 물음에 우두머리는 대답이 없다. 대신 다른 한 명의 후드가 은혜 앞으로 나섰다. 저 후드는.. 처음 김 대위에게 소리를 질렀었던..? 후드는 천천히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모자를 올렸다. 나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천천히 벗겨지며 드러나는 얼굴. 그동안 생사를 같이 해왔던 소중한 동료.. 민정누나였다. 머리가 멍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채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민정 누나에게 내가 해줄 말이라고는..
“누나..” “나는 다시 태어났다.” “..무슨 소리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약간 겁이 많았지만 밝게 웃을 때가 아름다웠던 예전의 누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어쩌다가.. 왜.. 이렇게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다시 태어났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몸에 두른 후드를 망설임 없이 벗어 버리는 민정 누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의 육감적인 몸이 드러났지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누나의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녀석들의 특징인 검은 털이었다.
“..누나..”
더 이상 내가 알던 누나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누나의 모습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제길.. 죽여야만 하는 괴물들과 동급이 되어 나를 가만히 노려보는 누나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우리 둘의 대치를 지켜보던 은혜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지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단 번에 일어서지 못하는 은혜. 몸에 힘이 없는 것 같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화들짝 놀란 우두머리가 은혜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메시아여.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다시 조심스럽게 은혜를 앉힌 우두머리는 은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는 우리를 노려 보았다.
“하찮은 네놈들 때문에!” “....” “메시아께서 혼란스러워 하시지 않느냐!”
그 말에 가만히 옆에 서있던 동생이 나섰다.
“개소리 하지마! 은혜가 어떻게 메시아라는거야. 이 사이코 새끼들아!”
우두머리는 동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개소리? 우리야말로 메시아의 뜻을 받들고 따르는 충실한 천사다. 어디서 개와 비교하려드는 것이냐!” “아..빠.”
버둥거리며 일어나려는 은혜. 우두머리는 뒤에 서있는 세 명의 후드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후드들은 은혜를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의자 뒤편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당장이라고 막고 싶지만 눈 앞에 있는 우두머리와 이젠 사람이라고도 볼 수 없는 민정 누나 때문에 나아갈 수가 없다.
“우리 은혜에게 무슨 짓을 했지?”
간신히 진정한 아저씨는 민정 누나를 스치듯 한 번 보고는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우두머리는 그 말에 두 눈을 빛내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형제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을 때 메시아께서 희생하시어 우리들을 온전케 하셨다. 그 때 그 순간이란..”
두터운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우두머리. 위험하다. 일반적인 우두머리와는 다르게 이 자식은 특히 더 위험한 것 같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었지.. 그 향기로운 살들에서 새어져 나오는 성수.. 아, 아아아!” “강아지..”
동생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미친듯이 떨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석궁을 겨눈다. 우두머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예 양 손과 고개를 높이 들며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한다.
“키키키키. 키키키키킥”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큰 소리로 웃어대는 우두머리.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는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떤다.
“캬하하하!”
마치 하나의 악귀를 보는 것 같다. 그 익숙치 않는 광경에 동생과 우리들은 석궁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잊은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서서히 웃음이 줄어들면서 은혜가 앉았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은 우두머리. 민정 누나는 그런 우두머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엣말로 뭐라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래.”
우두머리는 마음에 든다는 듯 민정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 민정 누나는 우리를 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민정 누나를 바라본다. 선택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콰직.
우리에게 다가오던 민정 누나는 순식간에 자신의 팔뚝을 물어 뜯고는 떼어나온 살들을 빠르게 씹어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단숨에 괴물로 변해버린 민정 누나.. 이제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누나가 아니다.
핑. 피잉.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김 대위와 이 소위가 화살을 날렸다. 빠른 속도로 ‘괴물’의 몸을 꿰 뚫을 기세로 날아가는 화살.
푸슉. 푸슉.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움직임이 우뚝 멈춘다. 복부에 깊게 박힌 두 개의 화살을 느릿하게 바라본 괴물은 일말의 비명소리 없이 낮게 이를 갈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 광경이 그리도 재밌는지 우두머리는 뒤에서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다.
“어서 쏴! 괴물이란 말이다!”
김 대위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간신히 괴물의 이마 부분을 향해 석궁을 겨눈다. 하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손이 떨려온다. 자꾸만 민정 누나의 밝은 미소가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 제길.. 제기라알!
주루룩.
뜨거운 뭔가가 흐른다. 눈물.. 방아쇠에 닿은 손가락이 병신 같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동안 마음을 굳게 먹으며 버텨온 무언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크흑..”
피잉. 핑. 핑.
다시 날아가는 여러개의 화살. 괴물은 용케 급소 부분만 아슬하게 피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슴도치처럼 여기저기 박힌 화살을 빼낼 생각도 하지 않은채로 우리를 보며 낮게 으르렁거린다. 누나.. 누나..
“정신차려 이진성! 이 미친 새끼야!”
동생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다. 턱. 숨이 막힌다. 머리가 멍하다.
“..누나.. 씨팔.. 흐윽.” “크아아!”
어느새 꽤 가까운 거리에 온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높게 도약한다. 날카롭게 빛나는 기다란 손톱과 동물의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자리 잡고 있는 치아들. 괴물은 나를 노리고 있다. 화면이 정지된 것 처럼 그 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 순간에도 살고자 하는 본능이 강하게 꿈틀댔는지 동생을 뒤로 밀쳐내고 옆구리 부분에 달린 단검을 빠르게 빼내어 괴물의 급소부분을 향해 찔러 넣는다.
“크아아!”
사거리가 짧은 단검으로는 괴물을 일격에 죽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반면 상대적으로 손톱이 긴 괴물은 나를 언제든지 공격할 수가 있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괴물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질끈. 눈을 감는다.
푸욱.
살이 깊게 꿰뚫리는 느낌과 소름 돋는 소리. 그리고 뜨거운 뭔가가 내 몸을 적시기 시작한다. 부들부들. 급격히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서있는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몸이 무겁다. 괴물은 심장 쪽이 뚫린 채로 내게 안겨 있는 꼴이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게 안겨 있을 뿐.. 그제서야 괴물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나를 공격하지 않은걸까.
“..끄으..”
힘겨운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떠는 괴물. 나도 모르게 괴물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까칠까칠한 털들이 손안에 가득 잡힌다.
“..미..안...해.”
한 글자. 한 글자. 낯선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은 괴물은 이내 축 늘어진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가 어깨로 전해진다. 서서히 늘어지는 괴물을 보며 가슴 속에 뭔가가 ‘팍’ 하고 터지는 것 같다.
“으아아아아!”
내 목에서 나는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크다. 서서히 내 품에서 미끄러지는 괴물을 꽈악 잡았다.
스르르.
까칠까칠한 털들이 바람에 실려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점점 뽀얀 살을 드러내는.. 숨을 쉬지 않는 민정 누나가 눈에 들어온다. 숨을 쉬지 않는다. 커다란 인형을 안은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다. 누나.. 누나!
“크하하하하하!”
우두머리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나는 두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점차 식어만 가는 누나의 몸을 꼬옥 붙들었다.
밖.에.나.가.지.마.시.오 - 38화
“....”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은혜의 공허한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며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거니. 아님 그러지 못하는거니.. 마지막 은혜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 대신 갈색의 커다란 후드를 몸에 걸치고 있는 은혜가 왠지 낯설어 보인다.
“아..빠.”
생기를 잃은 은혜의 목소리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런 곳에서 저 사이코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빌어먹을 사이코 새끼들! 그 빌어먹을 사이코 놈들이 이상한 소리로 은혜를 억압하는 장면이 나도 모르게 그려진다. 꽈악. 주먹을 꽉 쥐고 후드에 가려진 얼굴 쪽을 노려본다.
“은혜..야.”
아저씨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저씨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저씨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오늘 은혜를 찾지 못하면 포기할 거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은혜 걱정에 힘겨웠을 것이다. 그간의 걱정과 서러움을 눈물로 씻어 버리려는 듯 아저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
가만.. 민정 누나는 어디에 있지? 은혜 뒤에서 서있는 사이코 녀석들은 정상적인 대화가 될 것 같지 않다. 나는 우두머리를 보며 말했다.
“또 한 명의 여자는 어딨지?”
내 물음에 우두머리는 대답이 없다. 대신 다른 한 명의 후드가 은혜 앞으로 나섰다. 저 후드는.. 처음 김 대위에게 소리를 질렀었던..? 후드는 천천히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모자를 올렸다. 나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천천히 벗겨지며 드러나는 얼굴. 그동안 생사를 같이 해왔던 소중한 동료.. 민정누나였다. 머리가 멍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채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민정 누나에게 내가 해줄 말이라고는..
“누나..”
“나는 다시 태어났다.”
“..무슨 소리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약간 겁이 많았지만 밝게 웃을 때가 아름다웠던 예전의 누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어쩌다가.. 왜.. 이렇게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다시 태어났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몸에 두른 후드를 망설임 없이 벗어 버리는 민정 누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의 육감적인 몸이 드러났지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누나의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녀석들의 특징인 검은 털이었다.
“..누나..”
더 이상 내가 알던 누나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누나의 모습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제길.. 죽여야만 하는 괴물들과 동급이 되어 나를 가만히 노려보는 누나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우리 둘의 대치를 지켜보던 은혜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지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단 번에 일어서지 못하는 은혜. 몸에 힘이 없는 것 같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화들짝 놀란 우두머리가 은혜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메시아여.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다시 조심스럽게 은혜를 앉힌 우두머리는 은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는 우리를 노려 보았다.
“하찮은 네놈들 때문에!”
“....”
“메시아께서 혼란스러워 하시지 않느냐!”
그 말에 가만히 옆에 서있던 동생이 나섰다.
“개소리 하지마! 은혜가 어떻게 메시아라는거야. 이 사이코 새끼들아!”
우두머리는 동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개소리? 우리야말로 메시아의 뜻을 받들고 따르는 충실한 천사다. 어디서 개와 비교하려드는 것이냐!”
“아..빠.”
버둥거리며 일어나려는 은혜. 우두머리는 뒤에 서있는 세 명의 후드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후드들은 은혜를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의자 뒤편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당장이라고 막고 싶지만 눈 앞에 있는 우두머리와 이젠 사람이라고도 볼 수 없는 민정 누나 때문에 나아갈 수가 없다.
“우리 은혜에게 무슨 짓을 했지?”
간신히 진정한 아저씨는 민정 누나를 스치듯 한 번 보고는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우두머리는 그 말에 두 눈을 빛내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형제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을 때 메시아께서 희생하시어 우리들을 온전케 하셨다. 그 때 그 순간이란..”
두터운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우두머리. 위험하다. 일반적인 우두머리와는 다르게 이 자식은 특히 더 위험한 것 같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었지.. 그 향기로운 살들에서 새어져 나오는 성수.. 아, 아아아!”
“강아지..”
동생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미친듯이 떨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석궁을 겨눈다. 우두머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예 양 손과 고개를 높이 들며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한다.
“키키키키. 키키키키킥”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큰 소리로 웃어대는 우두머리.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는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떤다.
“캬하하하!”
마치 하나의 악귀를 보는 것 같다. 그 익숙치 않는 광경에 동생과 우리들은 석궁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잊은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서서히 웃음이 줄어들면서 은혜가 앉았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은 우두머리. 민정 누나는 그런 우두머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엣말로 뭐라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래.”
우두머리는 마음에 든다는 듯 민정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 민정 누나는 우리를 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민정 누나를 바라본다. 선택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콰직.
우리에게 다가오던 민정 누나는 순식간에 자신의 팔뚝을 물어 뜯고는 떼어나온 살들을 빠르게 씹어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단숨에 괴물로 변해버린 민정 누나.. 이제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누나가 아니다.
핑. 피잉.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김 대위와 이 소위가 화살을 날렸다. 빠른 속도로 ‘괴물’의 몸을 꿰 뚫을 기세로 날아가는 화살.
푸슉. 푸슉.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움직임이 우뚝 멈춘다. 복부에 깊게 박힌 두 개의 화살을 느릿하게 바라본 괴물은 일말의 비명소리 없이 낮게 이를 갈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 광경이 그리도 재밌는지 우두머리는 뒤에서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다.
“어서 쏴! 괴물이란 말이다!”
김 대위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간신히 괴물의 이마 부분을 향해 석궁을 겨눈다. 하지만 호흡이 가빠지고 손이 떨려온다. 자꾸만 민정 누나의 밝은 미소가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 제길.. 제기라알!
주루룩.
뜨거운 뭔가가 흐른다. 눈물.. 방아쇠에 닿은 손가락이 병신 같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동안 마음을 굳게 먹으며 버텨온 무언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크흑..”
피잉. 핑. 핑.
다시 날아가는 여러개의 화살. 괴물은 용케 급소 부분만 아슬하게 피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슴도치처럼 여기저기 박힌 화살을 빼낼 생각도 하지 않은채로 우리를 보며 낮게 으르렁거린다. 누나.. 누나..
“정신차려 이진성! 이 미친 새끼야!”
동생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다. 턱. 숨이 막힌다. 머리가 멍하다.
“..누나.. 씨팔.. 흐윽.”
“크아아!”
어느새 꽤 가까운 거리에 온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높게 도약한다. 날카롭게 빛나는 기다란 손톱과 동물의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자리 잡고 있는 치아들. 괴물은 나를 노리고 있다. 화면이 정지된 것 처럼 그 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 순간에도 살고자 하는 본능이 강하게 꿈틀댔는지 동생을 뒤로 밀쳐내고 옆구리 부분에 달린 단검을 빠르게 빼내어 괴물의 급소부분을 향해 찔러 넣는다.
“크아아!”
사거리가 짧은 단검으로는 괴물을 일격에 죽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반면 상대적으로 손톱이 긴 괴물은 나를 언제든지 공격할 수가 있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괴물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질끈. 눈을 감는다.
푸욱.
살이 깊게 꿰뚫리는 느낌과 소름 돋는 소리. 그리고 뜨거운 뭔가가 내 몸을 적시기 시작한다. 부들부들. 급격히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서있는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몸이 무겁다. 괴물은 심장 쪽이 뚫린 채로 내게 안겨 있는 꼴이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게 안겨 있을 뿐.. 그제서야 괴물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나를 공격하지 않은걸까.
“..끄으..”
힘겨운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떠는 괴물. 나도 모르게 괴물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까칠까칠한 털들이 손안에 가득 잡힌다.
“..미..안...해.”
한 글자. 한 글자. 낯선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은 괴물은 이내 축 늘어진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가 어깨로 전해진다. 서서히 늘어지는 괴물을 보며 가슴 속에 뭔가가 ‘팍’ 하고 터지는 것 같다.
“으아아아아!”
내 목에서 나는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크다. 서서히 내 품에서 미끄러지는 괴물을 꽈악 잡았다.
스르르.
까칠까칠한 털들이 바람에 실려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점점 뽀얀 살을 드러내는.. 숨을 쉬지 않는 민정 누나가 눈에 들어온다. 숨을 쉬지 않는다. 커다란 인형을 안은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다. 누나.. 누나!
“크하하하하하!”
우두머리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나는 두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점차 식어만 가는 누나의 몸을 꼬옥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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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긴대학 - 삶이무의미함 님이 쓰신거 퍼온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