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끼고 있는 산자락에 터를 잡고 있는지라 바람의 속살이 들녘의 바람보다는 더 청랭하다. 청랭한 바람 때문에 체감으로 느끼는 기운도 설렁설렁 빨리 익어가고 핀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속 다스리는 부자나 인삼을 쓸 때도 내륙지방 사람들 보다 조금 많이 쓴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기운도 청랭하기만 하다. 여름이 떠나간 빈자리에 바다 새들이 한가로이 발자국을 찍고 가을 속에 더 푸르러진 쪽빛 바다는 옹색해진 마음을 넓게도 열어준다. 무언가 조용히 흐르는 가슴속 뜨거운 바다는 질펀한 문학이기도 하다.
조선조 때 천리 밖 절해고도로 감사도배(減死島配)의 심정으로 유배된 선비들이 남긴 문학의 산실도 기실은 바닷가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립된 바닷가에서 그들의 정열을 불태운 명작들이 만들어졌고 오늘날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살찌우고 있다.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에 연루되어 흑산도로 유배된 손암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생태보고서라는 평가를 받는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흑산도 근해에 사는 어패류들을 55항목으로 나누어 모두 155종의 어류를 다루어 항목이 다양할 뿐 아니라 그 기술이 매우 치밀하고 구체적이어서 지금도 소중한 자료로 소용되고 있다. 한문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작품을 쓴 학자로 불리는 정약전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도 형과 같은 사건으로 경상도 땅 장기에 유배된다. 장기 역시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다. 한문을 수입한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정약용의 집필 처인 다산초당은 강진만을 한눈에 내려 다 보는 곳이다.
조선시대 국문소설의 제 일인자라 할 서포 김만중은 남해 섬도 부족하여 거기서 다시 상주면의 노도라는 작은 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이 귀양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되었다. 김만중은 귀양지에서 홀어머니 윤씨 부인의 적적함과 근심을 풀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구운몽>을 지었다고 한다.
구운몽이 어떠한 소설인가 춘향전과 함께 국문학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구운몽은 이렇게 유배지의 바닷가에서 태어 난 것이다. <서포만필>, <사씨남정기>를 집필한 곳도 유배지 노도다.
1635년 경상도 성산 현감에서 파직되어 해남에 머물고 있던 고산 윤선도는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향족과 집안의 노비 1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했지만 왕(인조)이 무릎을 꿇고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듣고 울분을 견딜 수 없어 제주도로 은거할 결심을 하고 제주도로 향하든 중 풍랑을 만나 기착한 섬 보길도에 터를 잡아 부용동이라 이름 짓고 사계절을 한 편으로 하고 한 편마다 10장으로 한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가 탄생한다.
추사 김정희가 남긴 문인화의 대명사 <세한도>는 어디서 얻었는가? 추사는 경자옥사(庚子獄死)에 연루되어서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된다. 제주도는 최고의 중죄인들만 보내는 유배지였다. 정약용이 강진의 남도 바닷가 초당에서 학문을 정립했다면 제주도 대정 바닷가에서는 김정희가 역시 학문을 가다듬었다. 김정희는 1844년에 세한도를 그린다. 귀양살이하는 자신을 잊지 않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그리고 자신의 발문을 붙였다. 중국의 명사들 16인이 한결같이 격찬하고 찬사를 제(題)하고 그의 문하생들이 찬(贊)하고 오세창이 배관기를 함께 붙여서 후세에 남긴 불후의 명작이다.
조선 숙종 때에 이조판서를 지낸 남용익은 그의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역대 뛰어난 시인 79명을 가려 뽑았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고려 시대에는 이제현·정지상·이규보를 꼽았는데 이규보(1168~1241)는 고려 고종 때 고려 왕조가 강화로 도읍을 옮길 때 함께 옮겨와 살게 되었다. 이규보는 박학다식하고 기품 있는 시로 당대에 명성을 날렸고 강화의 거센 손돌바람 속에서 <동국이상국집>과 <백운소설>등 55권의 저서를 남겼다. 강화도 길상면 길직리 백운곡에 그의 묘가 있다.
누에가 자신이 뽑아 낸 고치에 갇히듯이 바다 속에 갇힌 그들의 내면의 지적(知的) 용암은 뜨겁게 분출하여 수많은 명작들로 우리의 문학을 드높이고 있으니 어찌 아이러니가 아닌가. 추방당한 고립된 공간에서 고독과 처절히 싸우며 뱉어 낸 주옥같은 명작들도 파도에 취하고 해무 가득한 바다에서 한 올 두 올 뽑아 낸 푸른 바다 속의 명주실이려니 기실은 고독했지만 영혼만큼은 찬란했던 바다가 아닌가 한다.
바닷가에 살다보니 때 아닌 눈 호강을 할 때도 있다. 나는 요즈음 눈요기 거리가 하나 늘었다. 몇 해 전인가 제주도 산록도로에서 황홀히 바라다보았던 기억의 불빛, 서귀포 앞 바다 범섬 너머로 대낮처럼 바다를 밝히던 불의 향연, 고기잡이배들이 방사하는 휘황한 불빛의 향연, 그 장관에 압도 되어 차를 세우고 넋을 잃고 불빛의 포로가 되었든 기억이 새롭다. 이름 지어 어화라고 부를까? 그 어화가 지금 우리 집 앞 바다 가까이 밤을 밝히는 소리 요란하다.
그 풍경은 가히 불의 산대놀이 판이고 뭍에서 보는 선유놀이다. 그것도 수평선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지척의 거리에서 밤을 수놓는 눈부신 어화의 향연, 수십 척, 수백 척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파도를 타며 너울거리는 숨 가쁜 아우성, 정말 귀하게 볼 수 없는 어화가 그려내는 황홀한 퍼포먼스 야경이다.
저 어화를 사납고 모진 바람끝에 정치적 박해와 소외의 고독 속에, 쓰라린 인고의 세월 속에, 삭탈 관직당한 명예의 추락 속에서 처절히 절규하며 귀양살이한 그들 선인들도 보았으리라. 그러나 고통 없이 어화의 야경을 즐기는 나는 다복한 사람일는지도 모르겠다. 저 어화 아래 오징어 꽃 활짝 피어나 먼저 뭍 구경시켜 달라 야단일 것이다. 뱃사나이들의 지국총 지국총 물레 젖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어부사시사를 보길도 사투리로 읊은 노래가 재미 솔솔하였으니
연잎에 밥 싸 놔두고 반찬일랑은 장만 말어
닻 올레라이 닻 올레라이
삿갓은 쓰고 있응께 도롱이나 갖고 온나
찌그덩 찌그덩 어이차
무심한 갈마구는 내가 쫓냐 지가 쫓냐
밝은 대 낮에 바다 볼 일 아니다. 휘영청 떠오른 둥근 달이 빛을 잃은 밤바다. 나는 어화 풍요로운 눈 잔치를 즐기고 있다. 주말 짬 낼 수 있는 친구들 오징어 쫀득한 맛 볼 수 있으리라 꼬드겨 하루 쯤 취흥 도도하여 황홀한 빛 휘몰아치는 어화의 무도회를 즐기리라. 이것 또한 바닷가에서 피어난 또 다른 시각 예술이 아닌가.
갓 잡은 싱싱한 오징어 한 상자 사들여 주정뱅이 친구들 불러 모아 싱싱한 회 맛 풍성히 맛보이리라. 벌써 입맛이 쩍쩍 달라붙는다. 목젖 뜨겁게 오늘은 독작이라도 해야겠다. 투명하게 겨울 익는 밤, 빈속에 독한 술, 오징어 회로 속이야 쓰려지겠지만 기분은 어화 둥실한 밤하늘처럼 한량히도 상쾌하기만 하다. 어화 아래 춤추던 오징어로 만선하여 귀항하는 어부들이 좋은 금으로 그들의 소금기 묻은 얼굴에 활짝 핀 웃음을 볼 수 있다면 창창한 밤 불의 무도회를 즐긴 내 마음도 한결 속 편하리라.
2003, 09, 29
김 명 수
.. <IFRAME marginWidth=0 marginHeight=0 src="http://home.cein.or.kr/~kshill/temp/pung.htm" frameBorder=0 width=600 scrolling=no height=450 ,>
비와 외로움 == 바람꽃낯설은 이 비가 내 몸을 적시면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조용한 선술집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길가에 가로등 내 몸을 비추면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조용한 그 카페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그대가 내 곁에서 멀어져 바람속에 묻힐 때또 다시 길을 나서며 맞는 낯설은 비와 외로움내 마음 쓰러져 길가에 쓸쓸함이
신 귀거래사 (新歸去來辭) 20
20
바다를 끼고 있는 산자락에 터를 잡고 있는지라 바람의 속살이 들녘의 바람보다는 더 청랭하다. 청랭한 바람 때문에 체감으로 느끼는 기운도 설렁설렁 빨리 익어가고 핀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속 다스리는 부자나 인삼을 쓸 때도 내륙지방 사람들 보다 조금 많이 쓴다고 한다. 그만큼 바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기운도 청랭하기만 하다. 여름이 떠나간 빈자리에 바다 새들이 한가로이 발자국을 찍고 가을 속에 더 푸르러진 쪽빛 바다는 옹색해진 마음을 넓게도 열어준다. 무언가 조용히 흐르는 가슴속 뜨거운 바다는 질펀한 문학이기도 하다.
조선조 때 천리 밖 절해고도로 감사도배(減死島配)의 심정으로 유배된 선비들이 남긴 문학의 산실도 기실은 바닷가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립된 바닷가에서 그들의 정열을 불태운 명작들이 만들어졌고 오늘날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살찌우고 있다.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에 연루되어 흑산도로 유배된 손암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생태보고서라는 평가를 받는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흑산도 근해에 사는 어패류들을 55항목으로 나누어 모두 155종의 어류를 다루어 항목이 다양할 뿐 아니라 그 기술이 매우 치밀하고 구체적이어서 지금도 소중한 자료로 소용되고 있다. 한문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작품을 쓴 학자로 불리는 정약전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도 형과 같은 사건으로 경상도 땅 장기에 유배된다. 장기 역시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다. 한문을 수입한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정약용의 집필 처인 다산초당은 강진만을 한눈에 내려 다 보는 곳이다.
조선시대 국문소설의 제 일인자라 할 서포 김만중은 남해 섬도 부족하여 거기서 다시 상주면의 노도라는 작은 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이 귀양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되었다. 김만중은 귀양지에서 홀어머니 윤씨 부인의 적적함과 근심을 풀어 주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구운몽>을 지었다고 한다.
구운몽이 어떠한 소설인가 춘향전과 함께 국문학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구운몽은 이렇게 유배지의 바닷가에서 태어 난 것이다. <서포만필>, <사씨남정기>를 집필한 곳도 유배지 노도다.
1635년 경상도 성산 현감에서 파직되어 해남에 머물고 있던 고산 윤선도는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향족과 집안의 노비 1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했지만 왕(인조)이 무릎을 꿇고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듣고 울분을 견딜 수 없어 제주도로 은거할 결심을 하고 제주도로 향하든 중 풍랑을 만나 기착한 섬 보길도에 터를 잡아 부용동이라 이름 짓고 사계절을 한 편으로 하고 한 편마다 10장으로 한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가 탄생한다.
추사 김정희가 남긴 문인화의 대명사 <세한도>는 어디서 얻었는가? 추사는 경자옥사(庚子獄死)에 연루되어서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된다. 제주도는 최고의 중죄인들만 보내는 유배지였다. 정약용이 강진의 남도 바닷가 초당에서 학문을 정립했다면 제주도 대정 바닷가에서는 김정희가 역시 학문을 가다듬었다. 김정희는 1844년에 세한도를 그린다. 귀양살이하는 자신을 잊지 않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그리고 자신의 발문을 붙였다. 중국의 명사들 16인이 한결같이 격찬하고 찬사를 제(題)하고 그의 문하생들이 찬(贊)하고 오세창이 배관기를 함께 붙여서 후세에 남긴 불후의 명작이다.
조선 숙종 때에 이조판서를 지낸 남용익은 그의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역대 뛰어난 시인 79명을 가려 뽑았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고려 시대에는 이제현·정지상·이규보를 꼽았는데 이규보(1168~1241)는 고려 고종 때 고려 왕조가 강화로 도읍을 옮길 때 함께 옮겨와 살게 되었다. 이규보는 박학다식하고 기품 있는 시로 당대에 명성을 날렸고 강화의 거센 손돌바람 속에서 <동국이상국집>과 <백운소설>등 55권의 저서를 남겼다. 강화도 길상면 길직리 백운곡에 그의 묘가 있다.
누에가 자신이 뽑아 낸 고치에 갇히듯이 바다 속에 갇힌 그들의 내면의 지적(知的) 용암은 뜨겁게 분출하여 수많은 명작들로 우리의 문학을 드높이고 있으니 어찌 아이러니가 아닌가. 추방당한 고립된 공간에서 고독과 처절히 싸우며 뱉어 낸 주옥같은 명작들도 파도에 취하고 해무 가득한 바다에서 한 올 두 올 뽑아 낸 푸른 바다 속의 명주실이려니 기실은 고독했지만 영혼만큼은 찬란했던 바다가 아닌가 한다.
바닷가에 살다보니 때 아닌 눈 호강을 할 때도 있다. 나는 요즈음 눈요기 거리가 하나 늘었다. 몇 해 전인가 제주도 산록도로에서 황홀히 바라다보았던 기억의 불빛, 서귀포 앞 바다 범섬 너머로 대낮처럼 바다를 밝히던 불의 향연, 고기잡이배들이 방사하는 휘황한 불빛의 향연, 그 장관에 압도 되어 차를 세우고 넋을 잃고 불빛의 포로가 되었든 기억이 새롭다. 이름 지어 어화라고 부를까? 그 어화가 지금 우리 집 앞 바다 가까이 밤을 밝히는 소리 요란하다.
그 풍경은 가히 불의 산대놀이 판이고 뭍에서 보는 선유놀이다. 그것도 수평선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지척의 거리에서 밤을 수놓는 눈부신 어화의 향연, 수십 척, 수백 척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파도를 타며 너울거리는 숨 가쁜 아우성, 정말 귀하게 볼 수 없는 어화가 그려내는 황홀한 퍼포먼스 야경이다.
저 어화를 사납고 모진 바람끝에 정치적 박해와 소외의 고독 속에, 쓰라린 인고의 세월 속에, 삭탈 관직당한 명예의 추락 속에서 처절히 절규하며 귀양살이한 그들 선인들도 보았으리라. 그러나 고통 없이 어화의 야경을 즐기는 나는 다복한 사람일는지도 모르겠다. 저 어화 아래 오징어 꽃 활짝 피어나 먼저 뭍 구경시켜 달라 야단일 것이다. 뱃사나이들의 지국총 지국총 물레 젖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어부사시사를 보길도 사투리로 읊은 노래가 재미 솔솔하였으니
연잎에 밥 싸 놔두고 반찬일랑은 장만 말어
닻 올레라이 닻 올레라이
삿갓은 쓰고 있응께 도롱이나 갖고 온나
찌그덩 찌그덩 어이차
무심한 갈마구는 내가 쫓냐 지가 쫓냐
밝은 대 낮에 바다 볼 일 아니다. 휘영청 떠오른 둥근 달이 빛을 잃은 밤바다. 나는 어화 풍요로운 눈 잔치를 즐기고 있다. 주말 짬 낼 수 있는 친구들 오징어 쫀득한 맛 볼 수 있으리라 꼬드겨 하루 쯤 취흥 도도하여 황홀한 빛 휘몰아치는 어화의 무도회를 즐기리라. 이것 또한 바닷가에서 피어난 또 다른 시각 예술이 아닌가.
갓 잡은 싱싱한 오징어 한 상자 사들여 주정뱅이 친구들 불러 모아 싱싱한 회 맛 풍성히 맛보이리라. 벌써 입맛이 쩍쩍 달라붙는다. 목젖 뜨겁게 오늘은 독작이라도 해야겠다. 투명하게 겨울 익는 밤, 빈속에 독한 술, 오징어 회로 속이야 쓰려지겠지만 기분은 어화 둥실한 밤하늘처럼 한량히도 상쾌하기만 하다. 어화 아래 춤추던 오징어로 만선하여 귀항하는 어부들이 좋은 금으로 그들의 소금기 묻은 얼굴에 활짝 핀 웃음을 볼 수 있다면 창창한 밤 불의 무도회를 즐긴 내 마음도 한결 속 편하리라.
2003, 09, 29
김 명 수
.. <IFRAME marginWidth=0 marginHeight=0 src="http://home.cein.or.kr/~kshill/temp/pung.htm" frameBorder=0 width=600 scrolling=no height=450 ,>
비와 외로움 == 바람꽃낯설은 이 비가 내 몸을 적시면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조용한 선술집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길가에 가로등 내 몸을 비추면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조용한 그 카페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그대가 내 곁에서 멀어져 바람속에 묻힐 때또 다시 길을 나서며 맞는 낯설은 비와 외로움내 마음 쓰러져 길가에 쓸쓸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