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6화 - 살아남는다는건...? 민경이 누나. 그녀도 연약한 여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진해서 미끼가 된다는 것. 아마도 그 중에서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이겠지. 중학생의 초롱이나 그저 울보인 소영이가 미끼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히익...이 괴물자식. 무...무서워...” 민경이 누나는 울 듯한 표정으로 겁에 질려있었다. 슬금슬금 기어가는 생물체. 초롱이와 소영이는 이미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누나. 제발 부탁해. 딱 한번이야. 한번. 그 한번만 피해주면 내가 꼭 작살을 꽂아 넣을게. 부탁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를 보며 조용히 생물체의 뒤를 따라갔다. 누나에게로 다가간 생물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내밀더니 순간 표정이 변했다. 바닥에 엎드리듯 웅크린 후 곧바로 점프를 한 생물체. 침착하게도 누나는 자신의 왼쪽방향으로 넘어지면서 피했다. 그 때를 맞춰 나는 뒤에서 바로 작살을 배에다가 꽂아 넣었다. 푸욱. 분명히 감촉이 느껴졌다. 살에 박히는 느낌. 예전에 느꼈던... 느껴였던... 그 느낌이었다. “까악!!!” 이런 제기랄. 차마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살에 찔리면 분명 내 힘을 받아서 착지점이 달라질게 분명했는데... 운 없게도 작살은 누나의 반대방향으로 찔러 들어갔기 때문에 생물체의 착지점은 곧 누나가 쓰려져있는 방향 쪽으로 바뀌었다. 누나는 넘어지면서 간신히 피한 거라 더 이상은 피할 수가 없었다. 시발. 안 돼. 제발...제발... 난 있는 힘껏 작살을 밀어냈다. 쿵... “으...으...응? 으응? 흐흑...흑...흐흑...” 흐느끼는 소리. 그 소리는 민경이 누나가 내는 소리였다. “누나...괜찮아...?” “응? 흐흑...흐흑...흐흑...” 굉장히 놀란 듯 누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죽을힘을 다해 밀었기 때문에 생물체는 누나의 바로 오른쪽에 떨어졌다. 그때의 굉음을 무방비상태로 듣게 된 누나.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소영이가 달려오더니 민경이 누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니, 위로라기보다는 같이 껴안고 울고 있었다. “휴우...” “오빠...괜찮아?”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초롱이가 다가와 물었다. 나도...사실...무섭고 힘들긴 했는데... 그런데도 혼자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참고 있었던 건데... 내 걱정을 해준 초롱이가 내심 고마웠다. “응...괜찮아. 그나저나 얼른 배를 갈라보자. 뭘로 배를 갈라야 하는지...아아. 도끼로 하면 되겠구나. 좀 도와줄래?” 나와 초롱이는 생물체에게 다가가 몸을 돌리기 위해 밀어봤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만큼이나 무거웠다. “누나. 언제까지 울기만 할 거야? 응? 좀 도와줘. 시간이 없다고.” “응...? 아...알았어...훌쩍...” 4명이 도와서 밀자 가까스로 몸통을 돌릴 수 있었다. 난 시계에서 도끼 버튼을 눌렀고 아까 작살 때처럼 내 오른손에는 도끼가 생겼다. 배를 가르자 파란색 박스가 하나 나왔다. 박스라기보다는 네모난 돌멩이 같았는데, 크기는 주먹정도였다. “벌써 1시간이나 썼어.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이라고. 얼른 잡아야해. 일단 이건 초롱이 네가 가져. 잘 간수하고. 얼른 가자. 시간이 없어.” 초롱이에게 박스를 주고 나서는 이동할 준비를 했다. 시간제한이 지나면 방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너무나도 싫다. 꼭 이곳에서 살아나가리라. 난 그렇게 다짐했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또 다른 생물체를 발견했고, 이번은 아까보단 손쉬웠다. 생물체가 맨 처음 점프할 때는 스피드가 굉장히 느리기 때문에 작살을 꽂아 넣기 굉장히 편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잡고 나니, 어느덧 3마리까지 잡게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박스는 나를 제외하고 하나씩 갖고 있게 했다. 이제 마지막 한 마리. 한 마리의 생물체를 잡기엔 적절한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문 쪽 근처의 생물체를 잡을 생각으로 문부터 찾기로 했다. 시계의 레이더를 이용해 문을 찾았고, 문은 지금까지의 문과 다를 게 없었다. 문을 찾고 나서는 생물체를 찾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생물체는 문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좋아. 저게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민경이 누나가 미끼 역할, 내가 마무리를 하는 식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누나가 먼저 작살을 던져 시선을 끌었고, 난 조용히 생물체의 뒤를 쫓았다. 이윽고 점프를 한 생물체의 배에 작살을 꽂아 넣었고, 생물체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드디어 마지막 박스를 얻는 순간. 생물체를 뒤집어놓는 일까지 끝낸 나는 기진맥진하여 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오빠. 너무 멋져. 히힛.” 초롱이의 말에 뭐라 대꾸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힘도 없다. 그냥 눈을 감고 자고 싶을 정도였다. “박스는 내가 꺼낼게. 쉬고 있어.” 민경이 누나는 내 도끼를 빌려가서는 생물체에게로 다가갔다. 됐어. 이걸로 무사히 다음 방으로 갈 수 있어. “자...이게 마지막 박스...얘들아 드디어 다...허헉...” “언니!!!” 응? 무슨 일이지? 난 일어나서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았다. 아...젠장... 깜빡하고 있었다. 제기랄... “하하. 기다리고 있었다. 박스. 고맙게 갖도록 하지.” 저 놈을 잊고 있었어. 같은 팀인 기분 나쁜 저 놈. 혼자 생물체를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놈은 민경이 누나를 밀치며 박스를 빼앗아 문 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생물체를 잡을 시간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어떡해...흐흐흑...흐잉...” 소영이는 또 울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이게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해. 내가 뺏겼어...박스를...” 우리에게 있는 박스는 이제 3개뿐. 4명 중 한명은...이곳을 못나가게 된다. 박스가 없는 사람... 바로 나다. “안 돼. 기수 오빠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모두 오빠가 한 거나 다름없잖아. 오빠 없이는 이 방을 벗어난 다해도 살 수 없단 말이야!!!” 초롱이의 말에 다들 수긍하는 듯 했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살아야한다면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 저 놈을 팀에 끼는 게 아니었는데. 빠드득. 분노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내...내가 뺏기긴 했지만...그래도 난 많이 도왔어. 내가 미끼를 했잖아!!! 나는 살아야해. 나는!!!” 민경이 누나의 말에 소영이는 혼잣말로 ‘살고 싶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으아아아악!!!” 고작 남은 시간 3분. 시간이 다시 우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기수야...맞잖아. 나는 도움이 되었잖아? 그치?” “그럼 뭐야? 내가 죽으라 이거야?” “아니...너는 꼭 필요한 존재니까. 그러니까...음...뭐 소영이도 일단은 앞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으응...” “먼말이 하고 싶은 건데? 이런 신발.” “그러니까 내말은!!! 초롱이. 초롱이는 몸집도 작고, 가장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허헉...커억!!!” 순간 민경이 누나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누나의 가슴에는 작살의 촉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다. 뒤에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작살을 쥐고 있는 초롱이가 있었다. “초롱이...너...?” “오빠. 이제...사람 3명 된거지...? 그렇지? 시간없으니까...빨리 가자...응?” “쿨럭...커억...흐흑...커커컥...” 민경이 누나의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7화 - 본능이라는 이름. “너 지금...무슨 짓을 한 거야?” “헉...헉...오빠. 시간 없어. 그런 것 따질 때가...아니란 말이야. 하악..하악... 어서 나가야지. 응?” 민경이 누나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려지고 있었다. 너무나 큰 고통에 눈물범벅인체로. 그렇게 죽어갔다. “흐흑...이런 거 싫어...이런 거...흐흑...” 또다시 울기 시작하는 소영. 너무나도 연약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소영이를 보니 왠지 측은하고 가련했다. 표현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나도 이제 이런 건 싫다. “오빠...허헉. 1분 남았어. 빠...빨리...” 초롱이는 내게 박스 하나를 내밀며 재촉했다. 복잡한 심정으로 박스를 받았다. 분명 초롱이가 살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단 이 성기같은 상황이 나를 열 받게 했다. “그래. 가자. 일단은...” “고마워. 오빠...” 우는 소영이를 간신히 달래며 문 쪽으로 뛰어갔다. 문은 별다른 조작 없이 열렸고, 대신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서부터 레이저가 나오더니 우리가 들고 있는 박스를 녹여 없앴다. 그것이 미션 수행에 대한 성공여부를 확인하는 듯 했다. “통과하셨군요. 그럼 다음 관문으로 가겠습니다.” 우린 통로를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또 어떤 미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보다는 짜증과 분노가 느껴졌다. 통로를 따라가니 환한 곳이 나왔고 우린 지체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추위였다. 주위는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넓이는 방금 전에 있었던 방만큼이나 넓었기에 꼭 남극에 온 기분이었다. “오빠...저기...” 초롱이가 피 묻은 손으로 앞을 향해 가리켰다. 그곳에는 그놈. 찢어죽이고 싶은 그 놈이 있었다. “어이. 한명은 어디 갔나? 후훗.” 난 애써 참았다. 저놈과 싸우게 되면 이길지 몰라도 그만큼 체력과 힘을 낭비하게 된다. 게다가 작살과 도끼는 이제 쓰지 못하는 상태. 기회는 나중에 얼마든지 올 거니까 참자. “4번째 관문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이번에는 더욱 간단합니다. 추우시죠? 그냥 버티시면 돼요. 제한시간은 1시간. 여기에는 그 무엇도 없으니 돌아다녀봤자 헛수고일꺼에요.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은 레이더로 보시면 되니 모두들 수고하세요. 아차차. 한 가지를 빼먹었네요. 여기는 다른 방과 달리 규칙이 있답니다. 그전에 시계를 통해 하나를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규칙이라니... 마음에 걸리는 단어였다. 안내말대로 시계를 보니 선택문구가 떴다. 하나는 쾌락이라는 단어가 쓰인 문구였고, 나머지 하나는 본능이라는 단어의 문구였다. 난 본능을 선택했다. “자. 선택이 끝났네요. 그럼 여러분이 선택하신대로 규칙을 시행하도록 할게요.” 불안해하며 안내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맨 뒤에 있던 소영이의 몸이 붕하고 뜨더니 그 놈에게로 날아갔다. “아악!!! 살려줘!!!” “뭐...뭐야? 뭐하는 거야 지금?” 그 놈 바로 옆에 내려진 소영. 소영이는 물론 그 놈도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그것도 잠시 둘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소영아!!! 박소영!!! 이런 제길. 뭐하는 거야 지금? 웅?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아아아 진정하세요. 후훗. 아니 뭐 화내면 열도 나고 좋은 건가요? 호홋. 이번 미션은 남녀로 2인 1조로 움직일거에요. 방금 고른 선택은 팀을 짜는 기준이었구요. 그게 이번 과제의 규칙이랍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호호호호홋.” “으아아아악!!!” 안내가 끝나자 황량한 이곳의 기운이 엄습해왔다. 왜 하필 2인 1조냐고. 왜 하필... 젠장. “오빠...?” 그 울보 분명히 울기만 할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할 텐데. 젠장. 그 애를 팀으로 끌인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그만하고...응? 오빠...” 그래.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해봤자 소용없겠지. 우선은 살고 보자. 그나마 초롱이라도 남은 게 위안이 되었다. “휴우. 그래. 여기는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꼭 살아남도록 하자. 이 개같은것들 꼭 살아서 복수하자고. 제기랄!!!” “으...응...” 주위는 온통 눈뿐이었고,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래도 1시간 정도는 쉽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온몸이 얼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언젠가 TV에서 본대로 눈을 파서 그 안에 있기로 마음먹었다. “여긴 눈이 굉장히 많으니까 일단 눈을 파서 그 속에 있자. 눈 속은 따뜻하다고 하니까.” “응, 알았어. 근데 오빠. 안 물어봐...?” “응? 뭘 물어봐?” “아...아니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일단 그 궁금증은 제쳐두고 난 열심히 눈을 파기 시작했다. 초롱이도 도와서 파기 시작했는데 한 3분쯤 하자 손목이 얼어서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그래도 악을 쓰고 더 열심히 파자 몸을 겨우 뉘일 정도가 되었다. 몸을 집어넣은 다음 옆에 있는 눈으로 몸을 덮었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바람도 덜 맞았고 따뜻했다.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 이거지 이 상태라 해도 견딜만할 정도는 아니었다. “으윽. 으드득...조카게...더덜...춥네...” “오빠. 고...고마워...” “뭐가?” “뭐라 할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가?” 좁은 눈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 껴안는 상태의 우리. 가까이서 본 초롱이는 꽤나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내가 죽였잖아. 민경이 언니...” “뭐냐? 그거였어? 그래. 확실히 넌 사람을 죽였어. 하지만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아마 우린 모두 죽었을 거야. 게다가 이 상황에서 너를 불신하고 멀리 떨어질 수는 없잖아. 네가 못미덥긴 하지만 확실히 이번 미션은 네가 필요하니까.” 사람의 온도 36.5도. 추위에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나...나...꼭 살고 싶었어...”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나는...나는...혼자가 아니란 말이야...흐흑...” 초롱이의 팔베개를 해주던 내 팔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따뜻한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뭐라고?” “나 임신한 상태야. 1달 정도밖에 안됐지만 확실히 임신이야.” “이...임신...?” “응...흐흑...정말 죽고 싶지 않아...” 15살의 중학생인 초롱. 근데 임신을 했다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원조교제를 하고 다녔어. 돈이...필요했거든. 그런데 자주 실수를 해서...낙태도 많이 하고...그랬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정말 아무 느낌 없었는데. 그러다 좋아하는 남자애를 만나게 됐고 임신하게 됐어. 이번만은 지우지 않을 거라고 떼를 쓰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지 뭐야. 정신을 차리니까 이곳에 와 있더라고. 나...죄값을 치르는 건가봐.” 초롱이의 사연을 들으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난 이성을 잃고 폭력을 쓰는 죄목으로 소년원에 있다가 오게 된 것. 그럼 나도 죄값을 치르는 것? 혹시 이곳은 죄값을 치르기 위한 관문이 아닐까? “나 혼자가 아니니까 살아야 했어. 사실...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는데...흐흑...그 언니가 먼저 나를 죽이자고... 그러니까...흐흐흐흐흑...” “그래. 그래. 그만 울고...네 잘못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일단 잊자. 우리 살아야지. 그치?” 고개를 끄덕이는 초롱이를 포근하게 껴안았다. 달래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추위가 더 강해진 탓도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던 초롱이도 울음을 멈추었고, 우린 안은 체 꼼짝도 안하고 누워있었다. 추위도 그렇지만 이제는 배고픔까지 느껴졌다. 이제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당연한 건가...? 시계를 보니 겨우 20분밖에 안 지났다. 이제 남은 시간은 40분. 온몸이 얼음이 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일까? 그것을 떠나서 왜 하필 2명씩 조를 나누어서 미션 수행을 시킨 것일까? 게다가 남녀 2인... 남녀... 추위... 설마...? “오빠...진짜 춥다...근데 왜 하필...이렇게 둘로 나누었을까...?” 초롱이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저 방금 울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게 여간 자극적인 게 아니었다. 너무나도 추워 이성이 마비될 것 같았다. “그냥 서로의 체온으로 껴안으며 버티라고 그런 게 아닐...” “근데 이상한 건 구분지어 남녀로 나눈 거잖아. 오빠...나도 알건 다 알아...” 내 속으로 파고드는 초롱이. 배고픔과 추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 돼. 말도 안 되는 상상 하지 마.” “뭐가 말이 안 돼? 꼭 살아남자고 했잖아. 우리 살아야하잖아.” “닥쳐. 더 이상 말하지 마. 기운만 빠지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겨우 중2짜리를...게다가 임신까지 한 애를 상대로... 말도 안 되지. 응. 말도 안 돼. “나...그렇고 그런 애라니까? 양심의 가책이나 그런 것 느낄만한 애가 아...니야...흐흑...” 겨우 울음을 멈추었나 싶더니 또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까지 했다. “정말 괜찮아 오빠. 나 더러운 년이니까. 이대로 죽을수는 없잖아. 응? 나 이미 임신한 상태니까. 훌쩍. 괜찮아. 제발...흐흑...나 살고 싶어.” 눈이 마주쳤고 초롱이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태연한척 시늉을 하고 있다. 살아야한다는 목적의식으로 죄의식이 사라질리 없지만... 난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거친 초롱이의 숨소리가 더욱 자극적으로 들려왔다. 8화 - 비밀 문구, 그리고 한 명. 끝내 본능이 이성을 누르고 말았다. 살고자하는 본능과 성욕의 본능. 가장 말초적이면서도 강한 본능의 만남은 그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얼어붙은 손으로 초롱이의 옷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눈 속에서의 발버둥은 굉장히 어렵고도 힘들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 입술은 연신 키스를 하고 있었다. 키스의 느낌은 굉장히 따뜻했다. 그 키스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고, 온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는 알몸이 되었고 입고 있었던 옷은 바닥에 깔았다. 서로를 껴안으며 어루만졌고, 추위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렇게 점차 사라져갔다. 추위도 이성도... “후우...” 일을 모두 끝낸 우리는 옷을 이불삼아 서로의 체온을 나눠주고 있었다. 후회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착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사정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이성이 붙잡은 마지막 배려였다. “확실히 이러니까 더 따뜻한 것 같아. 그치 오빠?” “응? 으응. 그렇긴 한데...” “그냥 잊기로 했잖아.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에휴. 차라리 민경이 누나가 나았으려나? 히히.” 민경이 누나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소영이가 생각났다. 소영이는 그 놈과 팀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그 놈도 역시...? 작은 일에도 울기만 하는 소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런 소영이를 녀석이 범하고 있는 장면도... 으드득. 화가 나니 몸에 열기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빠, 왜 그래?” “아...아니야. 그냥 좀...” “소영이 언니 생각했구나?” “뭐...?” “딱 보면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상황이 이런걸.” 어쩔 수 없는 상황. 확실히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상황 중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선택의 시간이 끝나면 주어진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왜 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어떤 이유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저 해야만 한다. “와와.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어. 이번 미션은 잘 버틴 것 같아. 그치? 히히.” 알몸인체로 껴안고 있는데도 아무런 부끄럼 없이 해맑게 웃는 초롱이를 보니 역시나 어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어린애와 그 짓을 한 나는 도대체가... 또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우. 자 이제 옷을 입고 문을 찾아보자.” “응!!!” 몸의 열기는 거의 다 식어있어 굉장히 추웠지만, 5분정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옷을 입고 레이더를 켜기 위해 시계를 봤는데... 웬 문구가 하나 떠 있었다. ‘이 문구는 비밀 문구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며 말해서도 안 됩니다. 결정은 본인의 의사이니 신중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비밀 문구? 언제 이런 문구가 뜬 거지? 너무 추워서 시계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뜬 것 같았다. “오빠? 찾았어?” 아래옷을 입고 나서 막 윗옷을 입으려던 초롱이가 내게 물어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 문구라... 일단은 이 규칙에 따르도록 했다. “아...아니... 오빠 잠깐 오줌 싸고 올 테니까 네가 좀 찾아봐라.” “그냥 여기서 해결하지. 어차피 다 본 사이인데 뭘. 호호.” “그...그래도!!! 그럼 나 갔다 온다.” “응, 오빠.” 초롱이에게서 약간 떨어져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싸는 척 했다. 시계를 보니 문구 밑에 선택 아이콘이 있었다. ‘비밀 문구를 읽겠다.’, ‘비밀 문구를 읽지 않겠다.’ 이렇게 2개였다. 당연히 ‘비밀 문구를 읽겠다’를 선택했고 시계의 화면은 바뀌었다. 또 다시 새로운 문구가 떴고 나는 천천히 읽어보았다. ‘좋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비밀 문구는 당신에게 힘을 한 가지 줄 겁니다. 무슨 힘이 될지는 선택하기 전까지 알 수 없답니다. 이 힘을 얻음으로써 당신은 미션 수행을 더욱 쉽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밑에는 YES와 NO라고 적힌 아이콘이 있었다. 우리가 행하는 미션은 그저 서바이벌 형식의 게임인건가? 그렇기에 힘을 얻을 수 있는 이 비밀 문구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걸지도. 나와 같이 행동한 모두가 적이며, 경쟁자인 것이다. 뭐가 어찌됐든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이곳의 비밀도 알 수 있고, 복수도 할 수 있게 된다. 난 생각할 것도 없이 YES를 눌렀다. 시계는 잠시 파란색의 화면으로 바뀌더니 새로운 문구가 떴다. ‘힘의 사용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힘은 타임스톱입니다. 10초간 시간을 멈출 수 있습니다. 사용 횟수는 단 한번뿐이니 신중히 쓰세요.’ 그 문구를 끝으로 시계는 다시 평소의 시계로 돌아왔다. 어째서 이런 비밀 문구가 내게 뜬 거지? 주도적으로 미션을 끝낸 우수한 사람에게만 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더 이곳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오빠? 아직 멀었어? 다 찾았는데...이제 가야할 것 같아.” “으응? 아아. 다 됐어.” 초롱이에게 뭔가 숨기는 듯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의 의미로 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초롱이의 레이더를 보며 길을 걷자 저 멀리 문이 보였다. 방금 전 방의 문과 비슷했는데, 이곳이 워낙 추워서 그런지 눈과 얼음이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그 전에 이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기다려야하는지 갈등했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 녀석과 함께 소영이를 만날 수 있다. 그 놈은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놈이 살아야 소영이도 살 수 있을 테니까. 제한시간이 지나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 예외 없이 통과를 축하한다는 안내가 나왔고, 나는 초롱이를 데리고 문 쪽으로 나갔다. 우리앞에 나타난 방은 방금 전에 있었던 곳과는 전혀 달랐다. 주위에 여러 가지 과학용품들이 있어서 꼭 오래된 연구실 같았는데 특이하게도 이방에는 다음방으로 가는 문이 없었다. 새로운 형식의 관문인가? 그런 의문점이 들었으나 어차피 고민해봤자 소용이 없다는것을 알기에 관두기로 했다. 주위는 굉장히 음침하고 폐쇄적이었지만 일단 따뜻했기에 그다지 반감은 들지 않았다. 아직 그놈과 소영이는 도착 안했는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끝까지 거부한 소영이 때문에 둘 다 동사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초조하게 있는데 우리가 걸어온 길의 옆에 있는 길 쪽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살아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일단 살아만 있으면... “꺄악!!! 오빠!!!” 갑자기 초롱이가 소리를 지르며 내 뒤쪽으로 숨듯이 몸을 피했다. 왜...왜 그러는 거지? 점차 다가오던 사람의 형체는 어느덧 뚜렷한 한명의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한명이었다. 한명의 사람. 그건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 놈이었다. 9화 - 이성 마비에 한발자국 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놈은 꼭 악마같았다. 히죽거리며 웃는 표정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너 이 새끼. 소영이는 어떻게 했어? 소영이 어딨냐고!!!” “소영이? 그 년 이름이 소영이었냐?” “어딨냐고 묻잖아 강아지야!!!” 놈은 손에 묻은 피를 한번 핥고는 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뱀이 스물스물 기어가는 듯한 느낌. 소름이 돋았다. “이 피를 보면 모르겠냐?” “뭐?” “멍청하군. 이 피는 그 년...음. 소영이랬냐? 그 년의 피다.” 소영이의 피? 그렇다면 소영이를 죽였다는 건가? “이 년이 영 협조를 안해서 말이지. 하는 수 없잖냐? 다행히 피는 따뜻하더군. 후훗.” 울보인 소영이가 무서워하며 반항하자, 소영이를 죽여서 그 피로 추위를 견뎠다는 말? 사람의 피를 온몸에 뿌려서 추위를 견뎠다고...? 약하디 약한, 그저 울보에 지나지 않는 소영이의 피로? “으아아아악!!!” 그 놈에게로 달려들려는 순간 뒤에서 초롱이가 나를 잡았다. “위험해 오빠.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라고. 다가가면 위험해!!!” “이거 안놔? 죽여버리고 말겠어. 이거 놓으라고!!!” 강하게 뿌리치고는 그놈에게로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나를 보면서도 놈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저건 정말 악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덧 거리가 가까워졌고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으려는 순간, 몸이 멈췄다. 물론 내 의지에 의해 멈춘게 아니었다. 어떠한 힘이 나를 꼼짝도 못하도록 잡아놓은 것이다. “이제 다음 관문이 시작될거에요. 설명도 듣기 전부터 그렇게 다투면 안되죠. 호호.” 이런 씨팔. 내 바로 눈앞에서 윙크를 하는 놈을 보자니 속이 뒤틀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몸은커녕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5번째 관문을 시작하겠어요. 그전에 무기를 선택하도록 할께요. 낫과 칼. 둘중에 하나 선택하세요.” 그제야 내 몸이 자유스러워졌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그놈에게 달려들수는 없었다. 내 주위를 회색빛의 투명한 벽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낫, 칼의 아이콘이 떠 있었다.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에 온몸이 떨려왔다. 도대체 뭔데...이게 다 뭔데... 너무 분해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어서 고르세요. 고르시지 않으면 무기없이 시작할거에요.” 안내로 나오는 여자의 목소리. 그 무엇보다 구역질이 난다. 이런 개같은 짓을 시키면서도 언제나 명랑했기에 더욱 화가났다. “오빠!!! 뭐해? 얼른 골라!!! 얼른!!!” 분노와 허무의 중간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초롱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애의 얼굴에는 온갖 걱정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를 위한 걱정. 우리는 약속했었다. 꼭 살아남자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칼이라는 아이콘을 클릭했다. “모두 선택이 끝났네요. 그럼 일단 이동할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몸이 점차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놈과 초롱이도 마찬가지였다. 빛이 강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고, 강렬한 빛에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자 빛은 점차 사라져갔고 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넓은 방이었다. 총 3개의 문이 있었으며, 넓이는 꽤나 넓었다. 근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초롱이와 그 놈은 없었다. 방은 여러 가지 사무용품들과 잡다한 물건들, 가구들이 있었으나 살아있는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만 있는 공간이었다. “5번째 관문도 간단해요. 지금 보면 총 3개의 문이 보일거에요. 그 중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문은 다음방으로 가는 문이구요, 나머지 파란색으로 된 2개의 문은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는 문이랍니다. 이곳은 총 3개의 방으로 되어있어요. 각각 한명씩 들어가 있는거죠. 자신은 지금 있는 방에서만 다음방으로 갈 수 있어요. 다른사람의 방에서는 갈 수 없답니다.” 복잡한 룰. 꽤나 머리가 아팠다. “2개의 파란색문으로 다른방에 갈수있으나 똑같은 길로 되돌아 올 수 는 없어요. 다시 돌아오려 할 경우 트랩에 빠지게 될거에요. 자 이제 대략의 설명이 끝났으니 가장 중요한 설명을 해드릴까요?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것은 바로...손목이에요.” 손목? 사람의 손목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빨간색 문을 보면 동그란 구멍이 있어요. 그곳에 손목을 넣으면 문이 열릴거에요. 물론 손목은 사람의 손목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안내가 끝나자 시계에는 다시 제한시간이 떴다. 제한 시간 30분. 또 다시 개같은 관문이 시작 된 것이다. 손목을 넣으라고? 아까 선택한 칼과 낫으로 자신의 손목을 잘라서 다음방으로 가라는 뜻인가? 아니, 그랬으면 다른 방으로 통하는 방따윈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손목은 2개. 한사람의 희생이면 두명이 무사히 다음방으로 갈 수 있다. 우리에게 서로를 죽여야 하는 명분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그 놈. 그 놈의 손목만 자르면 나와 초롱이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씨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안그래도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는데... 너무나도 잘 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놈도 자신의 손목을 자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을 이용할 것이다. 그럼 나와 초롱이 중 하나의 방으로 오겠지. 방은 한번 들어간 길로 나올 수 없기에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선 모든 방을 돌아야 한다. 그 말인즉슨 언제가는 이방에 그놈이 온다는 건데, 그렇지만 마냥 이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운좋게 처음 연 곳이 이곳이라면 나랑 맞닥뜨리겠지만, 내가 아닌 초롱이 방이라면? 초롱이가 위험하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내가 먼저 출발해서 초롱이 방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 놈은 언젠가 초롱이의 방으로 온다. 그럼 그 때 초롱이를 지키며 놈을 상대하면 된다. 반대로 그 놈의 방으로 들어가 놈과 마주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 난 시계를 쳐다보며 칼이라는 아이콘을 눌렀다. 그러자 오른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었다. 꽤나 긴 장검. 꼭 죽여버리고 말겠어. 난 왼쪽에 있는 파란문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10화 -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 파란색 문을 여니 통로가 나왔다. 네모 모양의 통로였는데 그 길이가 꽤 길었다. 바닥과 벽은 모두 철로 되어있었고, 그 외에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갔던 길로 되돌아오면 트랩에 빠진다고 하던데... 바닥에 뭔가가 설치되어 있는 건가? 어느덧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들어왔었던 똑같은 모양의 문. 우선 문 쪽에 귀를 갖다 대며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장검을 움켜쥐며 문을 열었다. 내가 있었던 방과 거의 비슷한 구조의 방. 다만 틀린 게 있다면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의 색깔이 녹색이었다. 아마도 문의 색깔로 자신의 방을 알 수 있도록 설계해 놓은 듯 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으나 초롱이도 그 놈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방은 그놈의 방인건가? 그렇다면 내가 늦었다는 말이 된다. 이미 그 놈은 초롱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는... 난 반대편 파란 문으로 달려갔다. “흐잉...흐흑...” 그 때 실험용 책상 밑에서 여자애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집중해서 듣자 초롱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롱아!!!” 책상 밑을 보니 초롱이가 고개를 숙인 체 흐느끼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초롱아?” “응? 기수오빠? 으아앙!!!” 혼자 있는 이 공간이 무서웠는지 내게 안기며 마냥 울기만 하는 초롱이. 두 번째의 포옹이지만 느낌이 전혀 달랐다. 왠지 나도 따라 울고 싶어졌다. “괜찮아. 내가 왔잖아.” “무서웠어. 흐흑. 정말 싫어 이런 거.” 초롱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내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살아남기로 했잖아. 이렇게 약해지면 어쩌라고. 응?” “흑...알았어. 이제 울지 않을게.” “그래...휴...”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어린 중학생일 뿐이다. 이런 초롱이가 그놈과 맞닥뜨린다면? 내가 먼저 초롱이와 만난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너도 이번 관문의 룰은 들어서 알지? 난 꼭 통과할 거야. 물론 너도 같이 데려갈 거고. 그러기 위해선 그놈과 싸워야해. 그놈의 손목이 필요하거든.”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고는 있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초롱이도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까. “우린 이제부터 함께 행동할거야. 절대 내 곁에서 떨어 지지마. 알았지?” “응...알았어.” “그래. 자 이제 가자. 그놈을 죽이러.” 초롱이를 데리고 반대편 파란색 문으로 갔다. 내가 앞장서서 문을 열었고, 초롱이는 뒤에서 조용히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아까와 같은 통로가 나왔다. 근데 이번 통로는 걸을 수 있는 통로가 아니었다. 통로 자체가 45도 정도의 경사가 있었고 벽면에는 사다리가 있어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관문의 3개방은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는 듯 했다. 나와 초롱이의 방은 수평으로 연결되어있고 그 중간의 밑 부분 쪽에 그놈 방이 있는 삼각형 구도. 내가 먼저 내려가고 초롱이가 위에서 뒤따라 내려오기로 했다. 그리 어둡지가 않아 밑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평의 통로를 걸었던 아까보다는 더욱 긴장이 되었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문이 보였다. 문 또한 아래쪽에 있었기에 황급히 열었다가는 방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초롱아. 잠깐 거기 있어. 오빠가 먼저 살펴볼게.” “조심해 오빠.” “응. 걱정하지 마.” 난 사다리에 다리를 걸고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천천히 문이 열렸고,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내려다 본 방은 이전의 방과 다를 게 없었다. 역시나 이방도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의 색깔이 틀렸다. 이곳은 보라색이었다. 사다리 위에서 이곳저곳을 계속 살폈지만 그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기구들 사이로 숨었을지도 모르기에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오빠가 괜찮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있어. 그리고 내가 소리 지르면 바로 문을 닫아버리고. 알았지?” “제발 오빠, 조심해...” “걱정 마. 난 안 죽으니까.” 천장은 꽤나 높았지만 이방만큼은 천장에 또 다른 사다리가 붙어있기에 가뿐히 내려올 수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장검을 들어 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가구들을 하나씩 살피며 그놈을 찾았다. 마지막 책상의 밑까지 찾아봤지만 그 놈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다른 방으로 가버린건가? 그렇다면 그놈은 지금 내 방에 있다는 건데. 그럼 상황은 더욱 수월해진다. 그놈을 죽이고 내방에서 내가 먼저 탈출하고 바로 다음 방에서 초롱이가 탈출한다. 꽤 괜찮은 상황이었다. “초롱아. 놈은 여기 없어. 괜찮아. 내려와.” 천장 쪽을 향해 말했으나 대꾸가 없었다. “초롱아!!! 뭐해? 어서 내려오지 않고!!!” 너무 높아서 무서워하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도와줘야... 쿵.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무언가는 떨어진 상태그대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바로 초롱이었다. “초롱아!!!” 놀라서 달려가려는 순간 또 한명의 사람이 떨어졌다. 아니, 떨어진 게 아니라 착지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 놈. 그놈이었다. “멍청한 새끼야. 앞만 보지 말고 좀 뒤도 보는 게 어떠냐?” “으윽...아파...아파 오빠...” 떨어진 충격으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초롱이. 그런 초롱이를 보며 그놈은 낫을 높이 들었다. “아...안 돼!!!”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일에 겨우 소리만 지른 그 순간. 그 놈의 낫이 초롱이의 오른손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꺄아아아악!!!” 초롱이의 비명과 함께 선 붉은 선혈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 다른 이야기http://pann.nate.com/b315723228http://pann.nate.com/b315737692http://pann.nate.com/b315738286http://pann.nate.com/b315775792http://pann.nate.com/b315775938http://pann.nate.com/b315783901http://pann.nate.com/b315806213http://pann.nate.com/b315825660http://pann.nate.com/b315839806http://pann.nate.com/b315840325 49
선택(Selective)6~10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6화 - 살아남는다는건...?
민경이 누나.
그녀도 연약한 여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진해서 미끼가 된다는 것.
아마도 그 중에서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이겠지.
중학생의 초롱이나 그저 울보인 소영이가 미끼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히익...이 괴물자식. 무...무서워...”
민경이 누나는 울 듯한 표정으로 겁에 질려있었다.
슬금슬금 기어가는 생물체.
초롱이와 소영이는 이미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누나. 제발 부탁해. 딱 한번이야. 한번. 그 한번만 피해주면 내가 꼭 작살을 꽂아 넣을게. 부탁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를 보며 조용히 생물체의 뒤를 따라갔다.
누나에게로 다가간 생물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내밀더니 순간 표정이 변했다.
바닥에 엎드리듯 웅크린 후 곧바로 점프를 한 생물체.
침착하게도 누나는 자신의 왼쪽방향으로 넘어지면서 피했다.
그 때를 맞춰 나는 뒤에서 바로 작살을 배에다가 꽂아 넣었다.
푸욱.
분명히 감촉이 느껴졌다.
살에 박히는 느낌.
예전에 느꼈던...
느껴였던...
그 느낌이었다.
“까악!!!”
이런 제기랄.
차마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살에 찔리면 분명 내 힘을 받아서 착지점이 달라질게 분명했는데...
운 없게도 작살은 누나의 반대방향으로 찔러 들어갔기 때문에 생물체의 착지점은 곧 누나가 쓰려져있는 방향 쪽으로 바뀌었다.
누나는 넘어지면서 간신히 피한 거라 더 이상은 피할 수가 없었다.
시발. 안 돼. 제발...제발...
난 있는 힘껏 작살을 밀어냈다.
쿵...
“으...으...응? 으응? 흐흑...흑...흐흑...”
흐느끼는 소리.
그 소리는 민경이 누나가 내는 소리였다.
“누나...괜찮아...?”
“응? 흐흑...흐흑...흐흑...”
굉장히 놀란 듯 누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죽을힘을 다해 밀었기 때문에 생물체는 누나의 바로 오른쪽에 떨어졌다.
그때의 굉음을 무방비상태로 듣게 된 누나.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소영이가 달려오더니 민경이 누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니, 위로라기보다는 같이 껴안고 울고 있었다.
“휴우...”
“오빠...괜찮아?”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초롱이가 다가와 물었다.
나도...사실...무섭고 힘들긴 했는데...
그런데도 혼자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참고 있었던 건데...
내 걱정을 해준 초롱이가 내심 고마웠다.
“응...괜찮아. 그나저나 얼른 배를 갈라보자. 뭘로 배를 갈라야 하는지...아아. 도끼로 하면 되겠구나. 좀 도와줄래?”
나와 초롱이는 생물체에게 다가가 몸을 돌리기 위해 밀어봤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만큼이나 무거웠다.
“누나. 언제까지 울기만 할 거야? 응? 좀 도와줘. 시간이 없다고.”
“응...? 아...알았어...훌쩍...”
4명이 도와서 밀자 가까스로 몸통을 돌릴 수 있었다.
난 시계에서 도끼 버튼을 눌렀고 아까 작살 때처럼 내 오른손에는 도끼가 생겼다.
배를 가르자 파란색 박스가 하나 나왔다.
박스라기보다는 네모난 돌멩이 같았는데, 크기는 주먹정도였다.
“벌써 1시간이나 썼어.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이라고. 얼른 잡아야해. 일단 이건 초롱이 네가 가져. 잘 간수하고. 얼른 가자. 시간이 없어.”
초롱이에게 박스를 주고 나서는 이동할 준비를 했다.
시간제한이 지나면 방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너무나도 싫다.
꼭 이곳에서 살아나가리라.
난 그렇게 다짐했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또 다른 생물체를 발견했고, 이번은 아까보단 손쉬웠다.
생물체가 맨 처음 점프할 때는 스피드가 굉장히 느리기 때문에 작살을 꽂아 넣기 굉장히 편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잡고 나니, 어느덧 3마리까지 잡게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박스는 나를 제외하고 하나씩 갖고 있게 했다.
이제 마지막 한 마리.
한 마리의 생물체를 잡기엔 적절한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문 쪽 근처의 생물체를 잡을 생각으로 문부터 찾기로 했다.
시계의 레이더를 이용해 문을 찾았고, 문은 지금까지의 문과 다를 게 없었다.
문을 찾고 나서는 생물체를 찾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생물체는 문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좋아.
저게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민경이 누나가 미끼 역할, 내가 마무리를 하는 식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누나가 먼저 작살을 던져 시선을 끌었고, 난 조용히 생물체의 뒤를 쫓았다.
이윽고 점프를 한 생물체의 배에 작살을 꽂아 넣었고, 생물체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드디어 마지막 박스를 얻는 순간.
생물체를 뒤집어놓는 일까지 끝낸 나는 기진맥진하여 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오빠. 너무 멋져. 히힛.”
초롱이의 말에 뭐라 대꾸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힘도 없다.
그냥 눈을 감고 자고 싶을 정도였다.
“박스는 내가 꺼낼게. 쉬고 있어.”
민경이 누나는 내 도끼를 빌려가서는 생물체에게로 다가갔다.
됐어.
이걸로 무사히 다음 방으로 갈 수 있어.
“자...이게 마지막 박스...얘들아 드디어 다...허헉...”
“언니!!!”
응? 무슨 일이지?
난 일어나서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았다.
아...젠장...
깜빡하고 있었다.
제기랄...
“하하. 기다리고 있었다. 박스. 고맙게 갖도록 하지.”
저 놈을 잊고 있었어.
같은 팀인 기분 나쁜 저 놈.
혼자 생물체를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놈은 민경이 누나를 밀치며 박스를 빼앗아 문 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생물체를 잡을 시간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어떡해...흐흐흑...흐잉...”
소영이는 또 울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이게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해. 내가 뺏겼어...박스를...”
우리에게 있는 박스는 이제 3개뿐.
4명 중 한명은...이곳을 못나가게 된다.
박스가 없는 사람...
바로 나다.
“안 돼. 기수 오빠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모두 오빠가 한 거나 다름없잖아. 오빠 없이는 이 방을 벗어난 다해도 살 수 없단 말이야!!!”
초롱이의 말에 다들 수긍하는 듯 했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살아야한다면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
저 놈을 팀에 끼는 게 아니었는데.
빠드득.
분노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내...내가 뺏기긴 했지만...그래도 난 많이 도왔어. 내가 미끼를 했잖아!!! 나는 살아야해. 나는!!!”
민경이 누나의 말에 소영이는 혼잣말로 ‘살고 싶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으아아아악!!!”
고작 남은 시간 3분.
시간이 다시 우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기수야...맞잖아. 나는 도움이 되었잖아? 그치?”
“그럼 뭐야? 내가 죽으라 이거야?”
“아니...너는 꼭 필요한 존재니까. 그러니까...음...뭐 소영이도 일단은 앞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으응...”
“먼말이 하고 싶은 건데? 이런 신발.”
“그러니까 내말은!!! 초롱이. 초롱이는 몸집도 작고, 가장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허헉...커억!!!”
순간 민경이 누나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누나의 가슴에는 작살의 촉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다.
뒤에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작살을 쥐고 있는 초롱이가 있었다.
“초롱이...너...?”
“오빠. 이제...사람 3명 된거지...? 그렇지? 시간없으니까...빨리 가자...응?”
“쿨럭...커억...흐흑...커커컥...”
민경이 누나의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7화 - 본능이라는 이름.
“너 지금...무슨 짓을 한 거야?”
“헉...헉...오빠. 시간 없어. 그런 것 따질 때가...아니란 말이야. 하악..하악... 어서 나가야지. 응?”
민경이 누나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려지고 있었다.
너무나 큰 고통에 눈물범벅인체로.
그렇게 죽어갔다.
“흐흑...이런 거 싫어...이런 거...흐흑...”
또다시 울기 시작하는 소영.
너무나도 연약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소영이를 보니 왠지 측은하고 가련했다.
표현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나도 이제 이런 건 싫다.
“오빠...허헉. 1분 남았어. 빠...빨리...”
초롱이는 내게 박스 하나를 내밀며 재촉했다.
복잡한 심정으로 박스를 받았다.
분명 초롱이가 살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단 이 성기같은 상황이 나를 열 받게 했다.
“그래. 가자. 일단은...”
“고마워. 오빠...”
우는 소영이를 간신히 달래며 문 쪽으로 뛰어갔다.
문은 별다른 조작 없이 열렸고, 대신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서부터 레이저가 나오더니 우리가 들고 있는 박스를 녹여 없앴다.
그것이 미션 수행에 대한 성공여부를 확인하는 듯 했다.
“통과하셨군요. 그럼 다음 관문으로 가겠습니다.”
우린 통로를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또 어떤 미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보다는 짜증과 분노가 느껴졌다.
통로를 따라가니 환한 곳이 나왔고 우린 지체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추위였다.
주위는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넓이는 방금 전에 있었던 방만큼이나 넓었기에 꼭 남극에 온 기분이었다.
“오빠...저기...”
초롱이가 피 묻은 손으로 앞을 향해 가리켰다.
그곳에는 그놈.
찢어죽이고 싶은 그 놈이 있었다.
“어이. 한명은 어디 갔나? 후훗.”
난 애써 참았다.
저놈과 싸우게 되면 이길지 몰라도 그만큼 체력과 힘을 낭비하게 된다.
게다가 작살과 도끼는 이제 쓰지 못하는 상태.
기회는 나중에 얼마든지 올 거니까 참자.
“4번째 관문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이번에는 더욱 간단합니다. 추우시죠? 그냥 버티시면 돼요.
제한시간은 1시간. 여기에는 그 무엇도 없으니 돌아다녀봤자 헛수고일꺼에요.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은 레이더로 보시면 되니 모두들 수고하세요. 아차차. 한 가지를 빼먹었네요.
여기는 다른 방과 달리 규칙이 있답니다. 그전에 시계를 통해 하나를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규칙이라니...
마음에 걸리는 단어였다.
안내말대로 시계를 보니 선택문구가 떴다.
하나는 쾌락이라는 단어가 쓰인 문구였고, 나머지 하나는 본능이라는 단어의 문구였다.
난 본능을 선택했다.
“자. 선택이 끝났네요. 그럼 여러분이 선택하신대로 규칙을 시행하도록 할게요.”
불안해하며 안내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맨 뒤에 있던 소영이의 몸이 붕하고 뜨더니 그 놈에게로 날아갔다.
“아악!!! 살려줘!!!”
“뭐...뭐야? 뭐하는 거야 지금?”
그 놈 바로 옆에 내려진 소영.
소영이는 물론 그 놈도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그것도 잠시 둘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소영아!!! 박소영!!! 이런 제길. 뭐하는 거야 지금? 웅?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아아아 진정하세요. 후훗. 아니 뭐 화내면 열도 나고 좋은 건가요? 호홋.
이번 미션은 남녀로 2인 1조로 움직일거에요. 방금 고른 선택은 팀을 짜는 기준이었구요.
그게 이번 과제의 규칙이랍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호호호호홋.”
“으아아아악!!!”
안내가 끝나자 황량한 이곳의 기운이 엄습해왔다.
왜 하필 2인 1조냐고. 왜 하필...
젠장.
“오빠...?”
그 울보 분명히 울기만 할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할 텐데.
젠장. 그 애를 팀으로 끌인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그만하고...응? 오빠...”
그래.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해봤자 소용없겠지.
우선은 살고 보자.
그나마 초롱이라도 남은 게 위안이 되었다.
“휴우. 그래. 여기는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꼭 살아남도록 하자. 이 개같은것들 꼭 살아서 복수하자고. 제기랄!!!”
“으...응...”
주위는 온통 눈뿐이었고,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래도 1시간 정도는 쉽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온몸이 얼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언젠가 TV에서 본대로 눈을 파서 그 안에 있기로 마음먹었다.
“여긴 눈이 굉장히 많으니까 일단 눈을 파서 그 속에 있자. 눈 속은 따뜻하다고 하니까.”
“응, 알았어. 근데 오빠. 안 물어봐...?”
“응? 뭘 물어봐?”
“아...아니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일단 그 궁금증은 제쳐두고 난 열심히 눈을 파기 시작했다.
초롱이도 도와서 파기 시작했는데 한 3분쯤 하자 손목이 얼어서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그래도 악을 쓰고 더 열심히 파자 몸을 겨우 뉘일 정도가 되었다.
몸을 집어넣은 다음 옆에 있는 눈으로 몸을 덮었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바람도 덜 맞았고 따뜻했다.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 이거지 이 상태라 해도 견딜만할 정도는 아니었다.
“으윽. 으드득...조카게...더덜...춥네...”
“오빠. 고...고마워...”
“뭐가?”
“뭐라 할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가?”
좁은 눈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 껴안는 상태의 우리.
가까이서 본 초롱이는 꽤나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내가 죽였잖아. 민경이 언니...”
“뭐냐? 그거였어? 그래. 확실히 넌 사람을 죽였어. 하지만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아마 우린 모두 죽었을 거야.
게다가 이 상황에서 너를 불신하고 멀리 떨어질 수는 없잖아. 네가 못미덥긴 하지만 확실히 이번 미션은
네가 필요하니까.”
사람의 온도 36.5도.
추위에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나...나...꼭 살고 싶었어...”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나는...나는...혼자가 아니란 말이야...흐흑...”
초롱이의 팔베개를 해주던 내 팔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따뜻한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뭐라고?”
“나 임신한 상태야. 1달 정도밖에 안됐지만 확실히 임신이야.”
“이...임신...?”
“응...흐흑...정말 죽고 싶지 않아...”
15살의 중학생인 초롱.
근데 임신을 했다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원조교제를 하고 다녔어. 돈이...필요했거든. 그런데 자주 실수를 해서...낙태도 많이 하고...그랬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정말 아무 느낌 없었는데. 그러다 좋아하는 남자애를 만나게 됐고
임신하게 됐어. 이번만은 지우지 않을 거라고 떼를 쓰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지 뭐야. 정신을 차리니까
이곳에 와 있더라고. 나...죄값을 치르는 건가봐.”
초롱이의 사연을 들으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난 이성을 잃고 폭력을 쓰는 죄목으로 소년원에 있다가 오게 된 것.
그럼 나도 죄값을 치르는 것?
혹시 이곳은 죄값을 치르기 위한 관문이 아닐까?
“나 혼자가 아니니까 살아야 했어. 사실...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는데...흐흑...그 언니가 먼저 나를 죽이자고...
그러니까...흐흐흐흐흑...”
“그래. 그래. 그만 울고...네 잘못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일단 잊자. 우리 살아야지. 그치?”
고개를 끄덕이는 초롱이를 포근하게 껴안았다.
달래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추위가 더 강해진 탓도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던 초롱이도 울음을 멈추었고, 우린 안은 체 꼼짝도 안하고 누워있었다.
추위도 그렇지만 이제는 배고픔까지 느껴졌다.
이제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당연한 건가...?
시계를 보니 겨우 20분밖에 안 지났다.
이제 남은 시간은 40분.
온몸이 얼음이 되는 듯 한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일까?
그것을 떠나서 왜 하필 2명씩 조를 나누어서 미션 수행을 시킨 것일까?
게다가 남녀 2인...
남녀...
추위...
설마...?
“오빠...진짜 춥다...근데 왜 하필...이렇게 둘로 나누었을까...?”
초롱이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저 방금 울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게 여간 자극적인 게 아니었다.
너무나도 추워 이성이 마비될 것 같았다.
“그냥 서로의 체온으로 껴안으며 버티라고 그런 게 아닐...”
“근데 이상한 건 구분지어 남녀로 나눈 거잖아. 오빠...나도 알건 다 알아...”
내 속으로 파고드는 초롱이.
배고픔과 추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 돼. 말도 안 되는 상상 하지 마.”
“뭐가 말이 안 돼? 꼭 살아남자고 했잖아. 우리 살아야하잖아.”
“닥쳐. 더 이상 말하지 마. 기운만 빠지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겨우 중2짜리를...게다가 임신까지 한 애를 상대로...
말도 안 되지. 응. 말도 안 돼.
“나...그렇고 그런 애라니까? 양심의 가책이나 그런 것 느낄만한 애가 아...니야...흐흑...”
겨우 울음을 멈추었나 싶더니 또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까지 했다.
“정말 괜찮아 오빠. 나 더러운 년이니까. 이대로 죽을수는 없잖아. 응? 나 이미 임신한 상태니까.
훌쩍. 괜찮아. 제발...흐흑...나 살고 싶어.”
눈이 마주쳤고 초롱이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태연한척 시늉을 하고 있다.
살아야한다는 목적의식으로 죄의식이 사라질리 없지만...
난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거친 초롱이의 숨소리가 더욱 자극적으로 들려왔다.
8화 - 비밀 문구, 그리고 한 명.
끝내 본능이 이성을 누르고 말았다.
살고자하는 본능과 성욕의 본능.
가장 말초적이면서도 강한 본능의 만남은 그 무엇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얼어붙은 손으로 초롱이의 옷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눈 속에서의 발버둥은 굉장히 어렵고도 힘들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 입술은 연신 키스를 하고 있었다.
키스의 느낌은 굉장히 따뜻했다.
그 키스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고, 온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는 알몸이 되었고 입고 있었던 옷은 바닥에 깔았다.
서로를 껴안으며 어루만졌고, 추위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렇게 점차 사라져갔다.
추위도 이성도...
“후우...”
일을 모두 끝낸 우리는 옷을 이불삼아 서로의 체온을 나눠주고 있었다.
후회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착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사정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이성이 붙잡은 마지막 배려였다.
“확실히 이러니까 더 따뜻한 것 같아. 그치 오빠?”
“응? 으응. 그렇긴 한데...”
“그냥 잊기로 했잖아.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에휴. 차라리 민경이 누나가 나았으려나? 히히.”
민경이 누나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소영이가 생각났다.
소영이는 그 놈과 팀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그 놈도 역시...?
작은 일에도 울기만 하는 소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런 소영이를 녀석이 범하고 있는 장면도...
으드득.
화가 나니 몸에 열기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빠, 왜 그래?”
“아...아니야. 그냥 좀...”
“소영이 언니 생각했구나?”
“뭐...?”
“딱 보면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상황이 이런걸.”
어쩔 수 없는 상황.
확실히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상황 중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선택의 시간이 끝나면 주어진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왜 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지, 어떤 이유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저 해야만 한다.
“와와.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어. 이번 미션은 잘 버틴 것 같아. 그치? 히히.”
알몸인체로 껴안고 있는데도 아무런 부끄럼 없이 해맑게 웃는 초롱이를 보니 역시나 어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어린애와 그 짓을 한 나는 도대체가...
또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우. 자 이제 옷을 입고 문을 찾아보자.”
“응!!!”
몸의 열기는 거의 다 식어있어 굉장히 추웠지만, 5분정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옷을 입고 레이더를 켜기 위해 시계를 봤는데...
웬 문구가 하나 떠 있었다.
‘이 문구는 비밀 문구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며 말해서도 안 됩니다.
결정은 본인의 의사이니 신중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비밀 문구?
언제 이런 문구가 뜬 거지?
너무 추워서 시계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뜬 것 같았다.
“오빠? 찾았어?”
아래옷을 입고 나서 막 윗옷을 입으려던 초롱이가 내게 물어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 문구라...
일단은 이 규칙에 따르도록 했다.
“아...아니... 오빠 잠깐 오줌 싸고 올 테니까 네가 좀 찾아봐라.”
“그냥 여기서 해결하지. 어차피 다 본 사이인데 뭘. 호호.”
“그...그래도!!! 그럼 나 갔다 온다.”
“응, 오빠.”
초롱이에게서 약간 떨어져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싸는 척 했다.
시계를 보니 문구 밑에 선택 아이콘이 있었다.
‘비밀 문구를 읽겠다.’, ‘비밀 문구를 읽지 않겠다.’ 이렇게 2개였다.
당연히 ‘비밀 문구를 읽겠다’를 선택했고 시계의 화면은 바뀌었다.
또 다시 새로운 문구가 떴고 나는 천천히 읽어보았다.
‘좋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 비밀 문구는 당신에게 힘을 한 가지 줄 겁니다.
무슨 힘이 될지는 선택하기 전까지 알 수 없답니다.
이 힘을 얻음으로써 당신은 미션 수행을 더욱 쉽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밑에는 YES와 NO라고 적힌 아이콘이 있었다.
우리가 행하는 미션은 그저 서바이벌 형식의 게임인건가?
그렇기에 힘을 얻을 수 있는 이 비밀 문구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걸지도.
나와 같이 행동한 모두가 적이며, 경쟁자인 것이다.
뭐가 어찌됐든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이곳의 비밀도 알 수 있고, 복수도 할 수 있게 된다.
난 생각할 것도 없이 YES를 눌렀다.
시계는 잠시 파란색의 화면으로 바뀌더니 새로운 문구가 떴다.
‘힘의 사용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힘은 타임스톱입니다. 10초간 시간을 멈출 수 있습니다.
사용 횟수는 단 한번뿐이니 신중히 쓰세요.’
그 문구를 끝으로 시계는 다시 평소의 시계로 돌아왔다.
어째서 이런 비밀 문구가 내게 뜬 거지?
주도적으로 미션을 끝낸 우수한 사람에게만 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더 이곳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오빠? 아직 멀었어? 다 찾았는데...이제 가야할 것 같아.”
“으응? 아아. 다 됐어.”
초롱이에게 뭔가 숨기는 듯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의 의미로 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초롱이의 레이더를 보며 길을 걷자 저 멀리 문이 보였다.
방금 전 방의 문과 비슷했는데, 이곳이 워낙 추워서 그런지 눈과 얼음이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그 전에 이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기다려야하는지 갈등했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 녀석과 함께 소영이를 만날 수 있다.
그 놈은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놈이 살아야 소영이도 살 수 있을 테니까.
제한시간이 지나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
예외 없이 통과를 축하한다는 안내가 나왔고, 나는 초롱이를 데리고 문 쪽으로 나갔다.
우리앞에 나타난 방은 방금 전에 있었던 곳과는 전혀 달랐다.
주위에 여러 가지 과학용품들이 있어서 꼭 오래된 연구실 같았는데 특이하게도 이방에는 다음방으로 가는 문이 없었다.
새로운 형식의 관문인가?
그런 의문점이 들었으나 어차피 고민해봤자 소용이 없다는것을 알기에 관두기로 했다.
주위는 굉장히 음침하고 폐쇄적이었지만 일단 따뜻했기에 그다지 반감은 들지 않았다.
아직 그놈과 소영이는 도착 안했는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끝까지 거부한 소영이 때문에 둘 다 동사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초조하게 있는데 우리가 걸어온 길의 옆에 있는 길 쪽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살아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일단 살아만 있으면...
“꺄악!!! 오빠!!!”
갑자기 초롱이가 소리를 지르며 내 뒤쪽으로 숨듯이 몸을 피했다.
왜...왜 그러는 거지?
점차 다가오던 사람의 형체는 어느덧 뚜렷한 한명의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한명이었다.
한명의 사람.
그건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 놈이었다.
9화 - 이성 마비에 한발자국 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놈은 꼭 악마같았다.
히죽거리며 웃는 표정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너 이 새끼. 소영이는 어떻게 했어? 소영이 어딨냐고!!!”
“소영이? 그 년 이름이 소영이었냐?”
“어딨냐고 묻잖아 강아지야!!!”
놈은 손에 묻은 피를 한번 핥고는 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뱀이 스물스물 기어가는 듯한 느낌.
소름이 돋았다.
“이 피를 보면 모르겠냐?”
“뭐?”
“멍청하군. 이 피는 그 년...음. 소영이랬냐? 그 년의 피다.”
소영이의 피?
그렇다면 소영이를 죽였다는 건가?
“이 년이 영 협조를 안해서 말이지. 하는 수 없잖냐? 다행히 피는 따뜻하더군. 후훗.”
울보인 소영이가 무서워하며 반항하자, 소영이를 죽여서 그 피로 추위를 견뎠다는 말?
사람의 피를 온몸에 뿌려서 추위를 견뎠다고...?
약하디 약한, 그저 울보에 지나지 않는 소영이의 피로?
“으아아아악!!!”
그 놈에게로 달려들려는 순간 뒤에서 초롱이가 나를 잡았다.
“위험해 오빠.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라고. 다가가면 위험해!!!”
“이거 안놔? 죽여버리고 말겠어. 이거 놓으라고!!!”
강하게 뿌리치고는 그놈에게로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나를 보면서도 놈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저건 정말 악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덧 거리가 가까워졌고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으려는 순간, 몸이 멈췄다.
물론 내 의지에 의해 멈춘게 아니었다.
어떠한 힘이 나를 꼼짝도 못하도록 잡아놓은 것이다.
“이제 다음 관문이 시작될거에요. 설명도 듣기 전부터 그렇게 다투면 안되죠. 호호.”
이런 씨팔.
내 바로 눈앞에서 윙크를 하는 놈을 보자니 속이 뒤틀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몸은커녕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5번째 관문을 시작하겠어요. 그전에 무기를 선택하도록 할께요. 낫과 칼. 둘중에 하나 선택하세요.”
그제야 내 몸이 자유스러워졌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그놈에게 달려들수는 없었다.
내 주위를 회색빛의 투명한 벽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낫, 칼의 아이콘이 떠 있었다.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에 온몸이 떨려왔다.
도대체 뭔데...이게 다 뭔데...
너무 분해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어서 고르세요. 고르시지 않으면 무기없이 시작할거에요.”
안내로 나오는 여자의 목소리.
그 무엇보다 구역질이 난다.
이런 개같은 짓을 시키면서도 언제나 명랑했기에 더욱 화가났다.
“오빠!!! 뭐해? 얼른 골라!!! 얼른!!!”
분노와 허무의 중간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초롱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애의 얼굴에는 온갖 걱정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를 위한 걱정.
우리는 약속했었다.
꼭 살아남자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칼이라는 아이콘을 클릭했다.
“모두 선택이 끝났네요. 그럼 일단 이동할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몸이 점차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놈과 초롱이도 마찬가지였다.
빛이 강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고, 강렬한 빛에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자 빛은 점차 사라져갔고 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넓은 방이었다.
총 3개의 문이 있었으며, 넓이는 꽤나 넓었다.
근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초롱이와 그 놈은 없었다.
방은 여러 가지 사무용품들과 잡다한 물건들, 가구들이 있었으나 살아있는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만 있는 공간이었다.
“5번째 관문도 간단해요. 지금 보면 총 3개의 문이 보일거에요. 그 중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문은 다음방으로
가는 문이구요, 나머지 파란색으로 된 2개의 문은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는 문이랍니다. 이곳은 총 3개의
방으로 되어있어요. 각각 한명씩 들어가 있는거죠. 자신은 지금 있는 방에서만 다음방으로 갈 수 있어요.
다른사람의 방에서는 갈 수 없답니다.”
복잡한 룰.
꽤나 머리가 아팠다.
“2개의 파란색문으로 다른방에 갈수있으나 똑같은 길로 되돌아 올 수 는 없어요. 다시 돌아오려 할 경우
트랩에 빠지게 될거에요. 자 이제 대략의 설명이 끝났으니 가장 중요한 설명을 해드릴까요?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것은 바로...손목이에요.”
손목?
사람의 손목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빨간색 문을 보면 동그란 구멍이 있어요. 그곳에 손목을 넣으면 문이 열릴거에요. 물론 손목은 사람의
손목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안내가 끝나자 시계에는 다시 제한시간이 떴다.
제한 시간 30분.
또 다시 개같은 관문이 시작 된 것이다.
손목을 넣으라고?
아까 선택한 칼과 낫으로 자신의 손목을 잘라서 다음방으로 가라는 뜻인가?
아니, 그랬으면 다른 방으로 통하는 방따윈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손목은 2개.
한사람의 희생이면 두명이 무사히 다음방으로 갈 수 있다.
우리에게 서로를 죽여야 하는 명분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그 놈.
그 놈의 손목만 자르면 나와 초롱이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씨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안그래도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는데...
너무나도 잘 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놈도 자신의 손목을 자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을 이용할 것이다.
그럼 나와 초롱이 중 하나의 방으로 오겠지.
방은 한번 들어간 길로 나올 수 없기에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선 모든 방을 돌아야 한다.
그 말인즉슨 언제가는 이방에 그놈이 온다는 건데, 그렇지만 마냥 이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운좋게 처음 연 곳이 이곳이라면 나랑 맞닥뜨리겠지만, 내가 아닌 초롱이 방이라면?
초롱이가 위험하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내가 먼저 출발해서 초롱이 방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 놈은 언젠가 초롱이의 방으로 온다.
그럼 그 때 초롱이를 지키며 놈을 상대하면 된다.
반대로 그 놈의 방으로 들어가 놈과 마주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
난 시계를 쳐다보며 칼이라는 아이콘을 눌렀다.
그러자 오른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었다.
꽤나 긴 장검.
꼭 죽여버리고 말겠어.
난 왼쪽에 있는 파란문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10화 -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
파란색 문을 여니 통로가 나왔다.
네모 모양의 통로였는데 그 길이가 꽤 길었다.
바닥과 벽은 모두 철로 되어있었고, 그 외에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갔던 길로 되돌아오면 트랩에 빠진다고 하던데...
바닥에 뭔가가 설치되어 있는 건가?
어느덧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들어왔었던 똑같은 모양의 문.
우선 문 쪽에 귀를 갖다 대며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장검을 움켜쥐며 문을 열었다.
내가 있었던 방과 거의 비슷한 구조의 방.
다만 틀린 게 있다면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의 색깔이 녹색이었다.
아마도 문의 색깔로 자신의 방을 알 수 있도록 설계해 놓은 듯 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으나 초롱이도 그 놈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방은 그놈의 방인건가?
그렇다면 내가 늦었다는 말이 된다.
이미 그 놈은 초롱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는...
난 반대편 파란 문으로 달려갔다.
“흐잉...흐흑...”
그 때 실험용 책상 밑에서 여자애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집중해서 듣자 초롱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롱아!!!”
책상 밑을 보니 초롱이가 고개를 숙인 체 흐느끼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초롱아?”
“응? 기수오빠? 으아앙!!!”
혼자 있는 이 공간이 무서웠는지 내게 안기며 마냥 울기만 하는 초롱이.
두 번째의 포옹이지만 느낌이 전혀 달랐다.
왠지 나도 따라 울고 싶어졌다.
“괜찮아. 내가 왔잖아.”
“무서웠어. 흐흑. 정말 싫어 이런 거.”
초롱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내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살아남기로 했잖아. 이렇게 약해지면 어쩌라고. 응?”
“흑...알았어. 이제 울지 않을게.”
“그래...휴...”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어린 중학생일 뿐이다.
이런 초롱이가 그놈과 맞닥뜨린다면?
내가 먼저 초롱이와 만난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너도 이번 관문의 룰은 들어서 알지? 난 꼭 통과할 거야. 물론 너도 같이 데려갈 거고. 그러기 위해선
그놈과 싸워야해. 그놈의 손목이 필요하거든.”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고는 있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초롱이도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까.
“우린 이제부터 함께 행동할거야. 절대 내 곁에서 떨어 지지마. 알았지?”
“응...알았어.”
“그래. 자 이제 가자. 그놈을 죽이러.”
초롱이를 데리고 반대편 파란색 문으로 갔다.
내가 앞장서서 문을 열었고, 초롱이는 뒤에서 조용히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아까와 같은 통로가 나왔다.
근데 이번 통로는 걸을 수 있는 통로가 아니었다.
통로 자체가 45도 정도의 경사가 있었고 벽면에는 사다리가 있어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관문의 3개방은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는 듯 했다.
나와 초롱이의 방은 수평으로 연결되어있고 그 중간의 밑 부분 쪽에 그놈 방이 있는 삼각형 구도.
내가 먼저 내려가고 초롱이가 위에서 뒤따라 내려오기로 했다.
그리 어둡지가 않아 밑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평의 통로를 걸었던 아까보다는 더욱 긴장이 되었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문이 보였다.
문 또한 아래쪽에 있었기에 황급히 열었다가는 방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초롱아. 잠깐 거기 있어. 오빠가 먼저 살펴볼게.”
“조심해 오빠.”
“응. 걱정하지 마.”
난 사다리에 다리를 걸고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천천히 문이 열렸고,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내려다 본 방은 이전의 방과 다를 게 없었다.
역시나 이방도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의 색깔이 틀렸다.
이곳은 보라색이었다.
사다리 위에서 이곳저곳을 계속 살폈지만 그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기구들 사이로 숨었을지도 모르기에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오빠가 괜찮다고 하기 전까지는 그대로 있어. 그리고 내가 소리 지르면 바로 문을 닫아버리고. 알았지?”
“제발 오빠, 조심해...”
“걱정 마. 난 안 죽으니까.”
천장은 꽤나 높았지만 이방만큼은 천장에 또 다른 사다리가 붙어있기에 가뿐히 내려올 수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장검을 들어 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가구들을 하나씩 살피며 그놈을 찾았다.
마지막 책상의 밑까지 찾아봤지만 그 놈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다른 방으로 가버린건가?
그렇다면 그놈은 지금 내 방에 있다는 건데.
그럼 상황은 더욱 수월해진다.
그놈을 죽이고 내방에서 내가 먼저 탈출하고 바로 다음 방에서 초롱이가 탈출한다.
꽤 괜찮은 상황이었다.
“초롱아. 놈은 여기 없어. 괜찮아. 내려와.”
천장 쪽을 향해 말했으나 대꾸가 없었다.
“초롱아!!! 뭐해? 어서 내려오지 않고!!!”
너무 높아서 무서워하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도와줘야...
쿵.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무언가는 떨어진 상태그대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바로 초롱이었다.
“초롱아!!!”
놀라서 달려가려는 순간 또 한명의 사람이 떨어졌다.
아니, 떨어진 게 아니라 착지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 놈. 그놈이었다.
“멍청한 새끼야. 앞만 보지 말고 좀 뒤도 보는 게 어떠냐?”
“으윽...아파...아파 오빠...”
떨어진 충격으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초롱이.
그런 초롱이를 보며 그놈은 낫을 높이 들었다.
“아...안 돼!!!”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일에 겨우 소리만 지른 그 순간.
그 놈의 낫이 초롱이의 오른손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꺄아아아악!!!”
초롱이의 비명과 함께 선 붉은 선혈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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