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9일 수요일 PM4: 40 “200점 넘었어, 설마?” “나 아직 언어채점하고 있거든?! 아! 말 시키지마 나 지금 완전 짜증나” “..별로 틀린 것도 없어뵈는구만 뭘 ” 가로7줄 세로6줄, 혹은 7줄로 일렬 나란히 뻗어있는 책상 위엔 몇 장인지 셀 엄두도 못 낼 만큼의 많은 시험지와 답안지가 어지럽게 북적대고, 교실 바닥에는 사회탐구시간 때 버렸던 과목의 시험지들이 회색바닥의 색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널브러져 있다. 펄럭펄럭 삭 삭삭 찌익 아~틀렸어! 오예! 맞았다! 하는 소리들만이 교실을 덮었고, 일찍이 채점 후 좌절까지 끝마치고 친구들 주위를 서성이던 미호는 맨 뒷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멍하게 시험지들이 날아다니는 풍경을 보고 있는 중이다. “너 언어 몇 점이냐, 또 사문(사회.문화)만 잘 봤지?” “넌 몇 점인데” “86” “아 짜증나” “웃기시네, 나 사문은 25점이거든! 넌?!” “...48점. 아하하” 빨간 동그라미로 거의 도배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50점 만점에 48점을 받은 당당한 사회문화 시험지를 팔랑팔랑 흔들며 미호가 일부러 얄미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모습에 경아는 장난스럽게 입을 삐죽이며 미호의 어깨를 퍽하고 친다. 강도가 좀 셌는지 미호가 내내 젖히고 있던 상체를 벌떡 들자 경아는 얼른 펜을 잡고 외국어시험지의 채점에 들어간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미호도 픽 하고 한번 웃더니 다시 몸을 젖혀 멍하게 시선을 둔다. “얘~들아, 시험 어땟니들?” 그 때 열려있던 앞문으로 마치 귀신처럼 스윽 나타난 담임선생님이 싱글벙글 대며 그 특유의 콧소리로 갑자기 소리하자 곳곳에서 ‘아~’하는 앓는 소리가 속출했고 벌써부터 오답노트를 걱정하는 아이들은 서둘러 숙제 분량 협상에 착수하지만 그 소리를 뒷등에도 담지 않고 있는 담임선생님은 출석부를 보다가 교실바닥 보는 것을 반복하더니 칠판에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아마도 분리수거 장 같은 교실을 보곤 벌써 청소당번을 정하고 있는 것이라.. 그때, 또 한 명의 남자가 앞문으로 마치 귀신처럼 스윽 나타났다. 정장을 입은 깔끔한 생김새의 남자였는데 단정하고 서글서글한 그 모양에선 전형적인 미남 아나운서가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점수계산에 여념이 없어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듯 모두가 자신의 시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담임 또한 청소 구역 배정에 정신이 없었는지 통 반응들이 없다. 오직 포기가 빠른 미호 혼자서 만이 그 남자의 존재를 알아채고선 그저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 “경아야” “어” “앞에 봐봐” 아무리 그래도 너무 반응이 없어 보이는 듯 했는지 미호가 총 점수를 계산하느라 정신 없어 보이는 경아를 불러 들인다. 입을 오물거리며 총 합계점수를 계산하고 있던 경아는 그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은근히 손까지 까딱거리면서 계산에 몰두 중이다. 그러나 이내 미동도 않고 말똥 히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미호가 신경이 쓰였는지 ‘358’이라는 숫자를 책상에 휘갈김과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든다. 경아의 눈동자가 그 남자가 서 있는 교단 주위를 요리조리 굴러다녔고 그런 경아의 모습에 미호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장단을 맞추면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 자신에게 의문을 가진다. “...” “졸업 생인가? 아~!, 옆 반에 재수생이 시험 보러 왔다고 했지!. 그 사람인가?” “으잉?” “아니면 교생인가? 일본어 교생 왔다고 했잖아, 그치.” “아니, 우선 일본어 교생은 저번 주에 갔고… 근데 너 지금 뭔 소릴 하고 있냐?” ‘어?’하는 외마디와 함께 미호가 경아를 홱 쳐다본다. 경아도 미호를 보고 있었다. 경아의 이 표정은 마치 어이없게 웃은 직후의 표정과도 같아서 그 영문을 모르는 미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생기는 둘의 정적 사이에 콧소리가 갑자기 끼어든다. “오늘 지각생~?” “…” “각생아?” “…” “미호?!” 갑자기 뒤로 쏠리는 시선과 경아의 은밀한 발길질에 정신이 문뜩 깨어진 미호는 얼결에 ‘네~’하면서 벌떡 일어섬과 동시에 일체 몸이 뻣뻣해진다. 아직도 안 나간, 아직도 미호 빼고 아무도 인식해주지 않고 있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내내 무표정이던 남자는 이내 마치 희한한 것을 본 것 같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미호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렇게 그가 다가오는 동안 미호는 정신 없이 시선을 허우적거리며 연신 기침을 해댄다. 쿵쿵 쿵쿵 심장 뛰는 소리는 웅성웅성 이는 교실 안에서도 들리는 듯 했고 남자의 미소는 줄 어 드는 거리만큼 더 진해져 오고 있다. 해맑아 보이는 미소다. “미호야,” “야~!” “…” 어느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굴이 벌개져선 미동도 없이 서서 있는 미호의 그 모습에 반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에 젖은 듯 펜을 놓았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금새 어떤 긴장감으로 바뀌었고 웅성이던 반 분위기는 이제 적막만이 감돌 뿐이다. 이상함을 감지한 담임은 그렇 게 돌처럼 서있는 미호에게로 다가갔고 어깨를 투욱- 치고선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본다. “왜 그러니?” “선생님. 왜, 윽!!” 찬찬히 또박또박 말을 띄고 있던 미호가 별안간 의자에 내팽개쳐진다. 누가 봐도 자의적으로 앉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담임이 호들갑을 떨며 미호를 흔들어 댔지만 미호는 팔은 떨어뜨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선 발발발 떨면서 뭐라고 중얼거려 댈 뿐 이었다. ‘선생님 어깨, 어깨요, 어깨, 아파..’ “선생님!!미호 어깨가?!” “왜? 왜,.?!” 경아의 절박한 소리에 따라 담임이 미호의 어깨를 보더니 히익- 하는 숨 들이키는 소리를 내면서 미호의 몸에 붙어있던 자신의 손을 튕기듯 떼어버린다. 누군가 뒤에서 미호의 양 어깨를 붙잡고 있는 듯이 교복 어깨부근엔 깊은 주름이 파여져 있고 점점 무게가 더해 가는 것처럼 그 주름은 왔다 갔다 거리면서 멋대로 변형 되고 있었다. 의자바닥을 손바닥으로 꼭 부여 쥐고선 더는 눌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미호의 모습은 그에 현실감을 더 해 줬다. 몇몇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미호주변으로 몰려 들었고, 그 형상을 보고선 무서워하면서도 이상하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 그 주위에서 자리를 뜰 줄을 몰랐다. 그런데 쿵, 쿵. 별안간 앞문, 뒷문이 모두 닫혀버린다. 챙,챙,챙, 또 창문이 모두 닫혀버렸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분위기에서 더 뜬금없는 현상이 일어나자 아이들은 이제야 뭔가를 실감했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뿔뿔이 흩어진다. 흩어 지려고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잠긴 듯이 문을 흔들 때마다 바깥에선 자물쇠 통 소리가 덜컹 덜컹거렸다. 창문을 열라고 싶으면 녹이 슬어 걸쇠가 풀리지 않는 듯 해서 열 수가 없었고 깨부술라고 싶으면 도저히 깨지지가 않았다. 한편 이제야 몸이 자유로워진 미호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지금 이런 사건의 원인은 내 눈앞에서 방글 웃고 있는 이 남자 때문이고, 이 남자는 보통인간이 아닌 듯싶고, 난 이 상황을 알고 있으니까 적어도 이 사실은 알려야 한다’ 라는 것들을 모두 파악 당한 후에 천천히 교단으로 걸어나갔다. “얘들아” 사실 택도 없어 보였지만 나름 큰 소리로 외치더니 잠깐 눈치를 보고선, “조, 조용히 하래-!!” “?” “자리에, 앉아!. 래.” “…“ “너, 누구랑 말해?”/ “쟤 왜 저래” “..” 잠깐 그렇게 침묵이 돈다. 그 침묵이 좀 오래가는 듯 하자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이런 상황 중에서도 명백한 지휘자가 생긴 것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안도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앞에서 바라본 교실의 모습은 외관상 어느 정도 정돈 되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아이들 하나하나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침울하고 복잡한 감정이 눈에 빤히 보이는 듯 하다. 이제 아이들은 저 앞의 명백한 지휘자만을 쳐다보고선 뭔지도 모르는 임무를 기다리고 있다. 타의적으로 지휘자역할을 맡게 된 미호는 그 시선들이 힘겨운 건지, 뭔지 아까보다 한껏 더 힘겹게 입을 뗀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무서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한 번 한눈을 팔고선 숨을 몰아 쉰다. “..라고 전해달래..” 꺄 하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둥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뜨기를 반복하는 둥 책상에 엎어져선 머리카락을 몇 올씩 뜯고 있는 둥 그냥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둥 여러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잠시 잠잠해지는 틈이 생기자 미호가 은근하게 다시 말을 끼운다. “거짓말 아니고 정말이야.. 근데 내가 보니까 나쁜 거 같진 않아 보이니까.. 그러니까 가만히만 있으면 아니, 부탁이 하나 있다는데 그냥 그것만 들어주기만 하면 갈..지도 모르겠다” 보기 불안하게도 미호는 심하게 벌벌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미호의 습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빤히 보이는 속셈이라고 해도 지금 아이들에겐 믿고 싶고, 또한 믿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대부분 침착하게 미호의 말을 곧이 곳대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그러나 오직 한 명, 담임 선생님만은 이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지 믿고 싶지가 않은 건지 계속 뒷문을 잡고 매달린 듯이 서 있다. 애꿎은 뒷문만 덜컹거리면서 시끄럽게 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던 미호가 잠시 시선을 멈춘 후 말을 꺼내는데, 객관적으로도 그 모습은 마치 사장님의 말을 대신 전달해주는 비서와도 같았다. “저기, 선생님..” “얘들아!! 전부 핸드폰 꺼내, 꺼내서 부모님한테 모두 전화 걸고 또..” “핸드폰 걷은 거 교무실에 있는데..” “니네들이 내란다고 다 내는 얘들이었어?!! 꺼내!” “오늘 모의고사라서 다 냈다고요” “..있는 애 없어?!..없냐고!” 가만히 보고만 있던 미호의 표정이 사뭇 달라진다. “선생님, 그만 진정..” “너?!, 너야말로 그만 진정하셔. 있긴 뭐가 있다는 거니? 뭐가 보여? 우린 안 보이는데 넌 보여? 그럼 너만 이상한거아니니?!” ‘선생님..’ ‘그만하세요’ 곳곳에서 쇳소리가 들려왔고 마땅히 할말이 없는 건지 무의미하게 눈만 굴리고 있던 미호가 무언가를 듣고 놀란 듯이 옆을 휙 돌아본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허공의 물체를 향해서. 그 모습에 담임이 ‘허!’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더 울컥한 모습으로 미호에게 걸어간다. “뭘 보고 있니?!,뭘? 왜 뭐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거야? 너의 그 행동 때문에 얘들이 불안해하는 거 안보이니? 애초에 뭐가 있던 없던 네가 모른 척이라도 했으면 이런 분위기 안 만들어질 수 있었어. 난 정말 이런 분위기 싫거든?! 너! 내 눈 안 봐?!” “선생님, 얘들 불안하게 하시는 건 선생님이에요. 정말 잠깐만!. 조금만! 이 분 말 들어보세요.” “하시고 자시고, 너 핸드폰 있지? 지각해서, 못 냈잖아?” 담임선생님이 숨을 몰아 쉬면서 손을 척 펴내 보인다. 이내 착잡한 표정으로 변한 미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켠다. 그리곤 담임선생님의 손바닥 위에 차분히 올려준다. 핸드폰을 받아 든 담임선생님은 서둘러 자판 키를 누르는 듯 하더니 이내 다급하게 미호를 부른다. “비밀번호가 뭐니?!” “…” “뭐냐니깐?” “말만 다 들으면 그때 알려줄 수 있어요” “한미호.” “정말 한마디면 된 다니깐요?! 정말!” “그 한마디가 뭔 줄 알고 들어, 막말로 들어서 상황 더 나빠지면..” “선생님 때문에 상황 더 나빠지니까 들으시라고요!!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째요?!” “!!뭐?.” 웅성웅성 미호와 담임이 열을 내며 싸우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만 하던 아이들이 미호가 성질에 뱉은 말에 크게 동요한다. 크게 들으면 웅웅 거리는 진동음만이 들렸고 작게 들으면 그 하나하나에 걱정과 놀람과 혼돈..아무튼 좋은 감정 빼고는 다 들어있다. 크게 요동치는 분위기에 말을 뱉은 미호도 적지 않게 당황한 듯 수그러들다가, 갑자기 교탁을 쾅 쾅쾅 세 번 친다. 수업 중에 교탁을 쾅쾅 치며 수업을 정리하는 선생님들을 제일 싫어했던 미호였지만 다급함에 이 요란을 떤 것이다. “야! 다 죽는데? 걔가?” 잠깐 모두가 소리를 멈춘 사이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지한나. 미호가 반에서 가장 관련되고 싶지 않는 부류들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다. 자고로 여학생이란 추접하면 안되고 너무 드세도 보기 싫으며 많은 면들 중에서도 ‘청순’과 ‘발랄’을 1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호에게 한나 무리들은 너무 드세고 짙은 화장에 속은 비어있는 것 같은데도 속이 꽉 찬 양 행동하는 아이들이었으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아 했을 것이다. “할말..그거만 들어주면, 된다고 했는데 죽..는다느니 그런 말은 그냥 한 말같이, 그냥 의미 없는 거였어” “그럼 지금 빨리 말해” 그 말에 미호는 저도 모르게 담임 쪽을 쳐다봤다. 담임도 이젠 체념을 했는지 뭐 했는지 교탁을 끼고 돌아 나와 앞문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다. 어디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불만이 가득 담긴 그 눈빛엔 마치 미호의 잘못된 선택이 큰 일을 불러와서 내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됐으면.. 하는 눈빛이다. “난 그냥 그대로 따라 말 하는 거다?.” 하곤, 침을 꿀꺽 삼켜 목을 가다듬더니 띄엄띄엄 말을 잇는다.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는 그 비서처럼. “이름은 민성태래.. 창 밖에 보니까..당신들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네요, 빨리 가야될거 같아서 본..론만 말할게요. 날 아는 분까진 말 안 하겠고, 날..죽..?” 눈을 내리깔고 차분히 말을 전하던 미호가 별안간 토끼 눈이 되어 버린다. 그리곤 옆을 쳐다보더니 이해하지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다. “여기에?” [네 있습니다] “누구..” [그러니까 그걸 물어보겠다는 겁니다] ”…” 이렇게 혼잣말을 몇 번 하더니 앞의 얘들을 둘러보며 큰 숨을 들이킨다. 내쉬어야 될 한숨은 삼켜버린다. “이 분이 자기를 죽인 사람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게 누군지 우리가 대답해달래” “미친..” “근데 그걸 왜 우리가 대답해? 의무가 없잖아” “그게.” [반장입니까?] 미호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이연하를 보면서 고개를 휘휘 젓는다. [그럼 공부 잘하죠]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이 네 글자네요. 유이연하. 특이한데? 하하] “미호야!” “응?!” “그니까 왜 우리가 하냐고. 우리한테 돌아오는 것도 없으면서, 그 찾는 사람이랑 같은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같은 소속이라는 게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그 사람만 찾으면 전 볼 일없습니다.. 제가 가면 당신들은 편해지잖아요. 이게 바로 편익이 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제 속도가 좀 빨라졌네요?] ”…” “그니까, 바라는 목적이 있어서 왔으면서 부탁을 하진 못할망정 왜 우리한테까지 피해가 오게 만드냐고” “피해안갑니다. 그 사람만 찾으면.” 아까부터 미호, 그러니까 그 남자와 이연하의 대화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한나가 드디어 폭발한 듯 책상을 팡! 치며 소리친다. “지랄하고 있네! 야, 그거 다 허세야. 귀신이 사람 놀래 키는 것 밖에 더해?. 그리고, 누군진 몰라도 남잔지 여잔지는 알 거 아냐. 여기까지 온 거보면,.. 남자면 여자들은 내보내줘” “야!! 미쳤냐?! 조카 지들만 살려고 쏙 빠지냐고.” “그럼 같이 죽냐? 저거 남자라는데 상식적으로 여자가 그랬겠어?” “왜 못해? 하면 다 할 수 있거든? 힘 없으면 못하는 줄 아냐? 아. 조카 무식해” “그만들 해” “지랄 떤다. 체육부장타이틀 걸고 뭐? 힘만? 하하!. 지는 뭐 골 찬 줄 아나” “선생님!!!!!” 별안간 들려오는 째지는 목소리에 따라 아이들의 시선들을 금방 어느 한 곳으로 쏠려버린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선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선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이상한 장면이 보여지고 있다. 휙휙 제멋대로 돌아가는 머리를 가눌 정신도 없는지 문에 쿵쾅쿵쾅. 자꾸 머리를 박는다. 담임선생님이 ‘큭, 끅끅’ 하면서 숨 들어가는 소리를 몇 번이나 낼 동안에도 주위에선 그저 비명을 지르며 방방 뛰고 있을 뿐 아무도 다가가진 못 했다. 그 형상이 너무 기이해서 모두들 겁을 먹은 것이다. 어느새 창 밖에 너무 많이 불어버린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분위기 흐름에 창문이나 문을 두드리면서 반응했다. 동시에 ‘아악!!!’하는 엄청난 함성과도 같은 비명소리들이 전교를 둘러 싸기도 했다. “미호야! 어떻게 좀 해봐!” “내가, 내가 무슨…뭘” 그 남자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는 미호로서는 더욱 힘든 게 당연했다. 아까의 얌전했던 남자의 거동이 지금의 담임선생님의 움직임에 따라 격하게 변하는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으니깐 말이다. 담임의 목을 양손 들어 조르고 있는 그 힘이 들어간 뒷모습은 그 자체로도 공포심을 불러 오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정신이 깬 미호가 어떻게든 달려들어 떼어내 보려 하지만 허공에 손만 휘졌고 있을 뿐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인다. 교실 안은 물론 교실 밖, 교내 안은 이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미호가 열심히 허공에 손을 휘두르고 그만하라고 소리를 하는 동안 잠시 떠있던 담임의 발이 다시 바닥으로 축 내려오더니 그 몸뚱이가 미호의 품으로 풀썩 떨궈진다. 순간, ‘허업!’하고 숨을 들이마신 미호는 저도 모르게 두 발자국 뒤로 얼른 물러나 버렸고 그 몸뚱이는 이제 축 쳐져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교실 안은 물론 교실 밖, 교내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 져버렸다. . . . 담임의 목에 나있던 벌건 자국이 흙빛으로 거의 다 변해버렸다. 문이란 문은 아직도 죄다 열리지 않았고 깨지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미호의 설득아래에 자신의 자리를 모두 채웠지만 여기저기 웅성대는 소리가 웅웅거린다. 창 밖의 이들은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적어도 아까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졌다. 밖에선 삐용삐용.. 경찰차인지 응급차인지 모를 사이렌소리가 여러 개 들려온다. 한참을 교단에 서서 땅만 바라보던 미호가 고개를 스윽 들더니 약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그 쪽들이 내 말을 안 믿고, 또 안 듣길래 정신 좀 차려보라는 의미에서…하고 웃고.” “많이들 놀란 거 같네요. 아무튼 이제 알았으면 내 부탁 좀 들어주세요…라고 말했어” “진짜 누군진 모르겠지만, 자수해라, 진짜...” “야, 다 닥치고, 누구야. 걔만 나오면 되잖아. 누구냐고” “빨리 나와라, 사람이 저 꼴 났는데 가만히 앉아있고 싶냐?!” “나오라고-오!!” [쉽게 나오지 않네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럼 찾아주셔야겠어요] “그걸, 진짜 말이라고 해요?!” [아, 처음부터 찾아달라는 소리였는데요?] “말을!!....어떻게 찾아요.. 우리도 모르는데” “아마도, 계속 이런 식이면 수를 써서 찾을 수 밖에 없을 거 같은데” “무슨 수?”/”게임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나도 몰라. 어쨌든 5분준대. 그때까지 안 나오면..난 몰라” 미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곳곳에선 자리를 박차고 수색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아수라장의 분위기 그 중심에선 미호는 남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만약에 5분이 지나면 어떡할 거예요” [찾아야죠.] “그니깐 어떻게 찾으실 거냐고요” [이럴 줄 알고 방금 생각한 게임이 한 개 있어요 하하] “게임…무슨 게임인데요” [뭐, 그냥...벌써 2분 남았네요?] 그 말을 들은 미호가 얼른 고개를 들어 교실 맨 뒤에 붙어있는 시계를 쳐다본다. 그리곤 다시 묻는다. “그거 위험한 거죠?” [솔직히 모두 무사할 거라곤 장담 못 하겠네요. 그 놈에 따라 달렸는데 워낙 에 그 놈이 양심이란 게 없는 놈이라] “그쪽이 할 말론 안 보이는데..” [1분 남았네요?] 그렇게 난리를 치던 아이들은 시간이 1분 남짓 남게 되자 힘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해 지지는 않았다. 1분이 지났는데도 미호는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선 무심한 표정으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아이들은 이제 미호의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미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별안간 미호의 얼굴이 한 번 꿈틀거리더니 짜증 섞인 미소가 맺힌다. 그리곤 입을 뗀다. “5분이 훨씬 지났죠. 이럴 줄 알고 생각해 온 것이 있습니다. 게임을 만들 시간은 없어서 …마피아 게임 모두들 아시죠. 설명할 필요..없나요.…라는 데. 모르는 사람? “…”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그 놈을 못 찾은 이 사람이 우릴 다 죽이는 것보단 우리가 그 놈을 먼저 찾아서 살아야 한다고 난 생각 하는데..” “…” “아까 봤잖아.” 미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TV장 뒤편으로 향한다. 아까 남자에 의해서 죽은 담임선생님의 시신이 거기에 틀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도 자연히 그 쪽으로 쏠린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 말을 한 미호 자신도 아이들에 대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아이들은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 침묵에 지친 몇몇 아이들이 이윽고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 “설명해봐, 나 모르니까” “한나야!” “왜. 넌 알아?” “…” 담임선생님이 죽은 그 이후부터였나, 내내 침묵과 무표정으로 일관 짓던 천애가 갑자기 손을 살짝 든다. 그리곤 진지하게 말한다. “나도 모르는데. 설명해봐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천애는 한나와 같은 무리의 아이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또래의 느낌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러운 아이다. 자신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왕따에게도 말 벗이 되어주고 남들이 다 하기 싫어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이 자진해서 해왔다. 그렇다고 심성이 착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이 자신에게 고마워 하는 그 모습에 자신이 좀 더 우월하게 느껴지는 그 느낌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천애의 아버지가 유명한 중소기업의 사장인 동시에 이 학교의 든든한 뒷받침이어서 누구 하나 막 대하는 인물이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들 까지도 지나친 편애를 일 삼아, 실질적으로 천애는 아이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다. 특히 여자아이들에겐 더욱. 모두들 지휘자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 미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선 짧은 백묵을 집어 든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찬찬히 써 내려간다. ‘사회자 마피아 경찰 의사 시민’ “사회자는 나고, 마피아는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을 거고. 쪽지를 돌릴 건데 그 쪽지에 자신의 신분이 나와. 경찰은 밤이 지나갈 때마다 범인이 누군지 한 명씩 물어볼 수 있고, 의사는 한 명씩 누군가를 살릴 수 있고 시민은 마피아..와 사회자를 뺀 나머지 모두야. 밤이 아닐 때는 시민들끼리 투표를 해서 마피아를 골라내는 거야” “뭐? 못 알아 듣겠는데?” “맞아. 밤은 뭐고..아무튼 뭔 말인지 모르겠어” “우선 쪽지부터 받아” 그렇게 말하고 나서 교탁 위의 아무 시험지나 골라잡아 뜯어 일일이 조각을 내기 시작한다. “근데 한미호!” “응.” “이거 원래 밤에 마피아가 한 명씩 죽이잖아, 설마 그거 진짜 죽는 건..아니지?” 찌익찌익하던 소리가 잠깐 멈추는 듯 하더니 다시금 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모인 그 시선들이 난감했는지 당황한 미호가 내는 조각들의 모양은 점점 불규칙하게 틀어진다. 체육부장 병철이가 다시 한번 ‘어?’하고 되물었고 미호는 41번째 마지막 조각을 뜯고 난 뒤 대답했다. “아까..봤잖아” “..왜?!, 대체 왜?” “말했잖아, 아까. 억울해도 뭐 어떡해” “뭐!!?, 너 해당 안 된다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미호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도 상황파악을 못 하고 앉았으니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그리고 열 내지마, 너도 아까 그 꼴 날 수도 있으니까” “…뭐..” “쪽지 한 개씩 가져가. 빈 쪽지면 일반 시민이고, 아니면 알아서 표시가 나올 거야” 미호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쪽지들은 모두 제 주인을 만나갔고 미호도 하나 남은 쪽지를 들어 펴보았다. [사회자 인 거 알죠?] “…” [일부러 표시 안 줬습니다. 나도 귀찮거든요] 으헤헤하고 웃으며 능청을 떠는 남자의 말에 미호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쪽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찍 구기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린다. “다 봤지? 그럼..” 잠시 그에게 얘기를 듣는 듯 집중하더니 이내 놀란 듯 눈을 크게 떠 보인다. 그리곤 서둘러 TV장으로 가더니 장문을 열고 TV의전원을 켠다. 파지지직 하는 채널 없는 소리가 시끄럽게 터지자 아이들은 모두 찡그리며 귀를 막는다. 그렇게 한참 채널을 찾더니 어느 한 채널에서 멈춘다. 여기저기서 ‘어?’하는 당황스러운 탄성들이 터져 나왔고 미호도 허탈한 듯 뒷걸음질 친다. 화질이 좋지 않은 화면에 담긴 장면은 지금 이 곳의 모습이였던 것이다. [학생이랑 내가 만났을 때부터 촬영됐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촬영된 거라는데” [그 놈이 자수할 때를 대비한 건데..아, 말을 잘 바꾸거든요. 근데 이제 필요 없겠네요] “…” 팟 하고 TV가 꺼진다. 미호가 얼른 다시 켜보았지만 이미 그 채널은 사라진 후였다. [전국방송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이 학교 선만 건 들였거든요] “대체 저거 무슨 카메라야?”/“저거 아냐? 저거?” 한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모두 고개가 돌아간다. “저거 밤에만 작동되는거 아니였어?”/“뭐야 어이없어..” 금년 들어 교실에서 도난사건이 부쩍 늘어 두 달 전에 교실 맨 앞 태극기 속에 CCTV를 설치했었다. 밤8시부터 작동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카메라가 있다는 그 압박감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했는지 도난사건이 줄어드는 데는 충분히 효력이 있었다. 그 카메라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모습이 담겨 전교에 방송이 되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어쩌다가 한 교실이 TV를 보게 되었고 그게 소문이나 전교생들은 모두 이 교실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제야 미호는 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났고 운동장에는 경찰차와 구급차, 정체 모를 중고차들이 즐비해있었다. 복도 쪽에는 역시 경찰들이 아까부터 난리를 치고 있었다. 미호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이제야 바깥사건을 인식하게 되었다. 서서히 좁혀만 오던 긴장감은 이 계기로 이제 확실히 피부에 다가오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할 말을 잃었고 처음 그 때처럼 다시 미호만을 바라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아무튼..전국에 방송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니까 신경 쓰지 말자” “어떻게…” 서러움, 억울함, 공포심. 그런 것들을 느껴버렸는지 한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고 그것은 무슨 전염병이 옮듯이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옮아 버렸다. 삽시간에 교실은 훌쩍 훌쩍이는 소리에 가득 찼고 몇몇 아이들은 그 모습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눈 밑은 벌개져 있었다. 미호는 입술을 꽉 한 번 깨물더니 교탁으로 돌아 걸어 간다. “자기가 뭔지 다 확인했지? 아무한테도 말 하지 말고, 그리고 또 음..” 하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그..게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학교에서 나가면 안돼. 그리고 반에 모여야 할 시간도 잘 지켜야 되고..” 아마도 그 남자가 하는 말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지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또 다시 백묵을 집어 들어 천천히 판서한다. ‘토론 30분 투표. 변론1분. 즉결심판 밤’ “이 구조로 반복할 거니까..” “어이, 잠깐만” “어?” “얘들 하나도 안 듣고 있는 거 같은데” 그 말이 맞는 것이 분위기는 심히 흐트러져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미호와 마찬가지로 곧 평정 심을 찾고 침착하게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도 현실을 찾지 못한 듯 보였다. “그렇게들 걱정만 하고 울고만 있으면 해결될 것도 안 될걸.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쟤가 앞에 나와서 하는 얘기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 다 알았을 거 아냐. 알면서도 그러면.. 정말 아닌데.” 얌전히 앉아만 있던 강우가 드디어 말을 텄다. 강우는 반에서 대체로 조용하게 있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그의 존재감은 매우 큰 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 하고만 엮이려 하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쌀쌀맞게 대하는 성격 때문에 남녀모두에게 미운 못이 박혀있긴 하지만 반에서 가장 나은 외모, 아니 전교에서 제일 가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은연중에 내심 강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강우를 인/적성 반에 들여오려고 하는 선생님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강우가 지능점수로 전교1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암암리에 그의 팬클럽까지 생긴 듯하다. 모두 겉으로는 재수없네, 뭐네 하면서도 회원 수는 점점 불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 명이라도 쟤 말 허투루 들으면 우리 다 죽을 수도 있는 거..? 집에 가고 싶으면 정신 못 차리는 옆에 놈들 다 흔들어 깨워야 겠네, 그 전에 너네부터 정신차리고..” “야. 우리도 다 알거든? 왜 괜히 혼자 영웅인 척이야” “지한나. 뭐가 맘에 안드는지, 너무 많아서 확실히 알 진 못하겠지만 해결을 하고 싶으면 해설부터 집어치워야 되는거 아닌가?.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 새꺄?!, 아,나 진짜 너..” “한미호 계속 해야지?” “야..그러는 넌 이 게임하고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애 같다? 사람이 죽는 다는데 넌 뭐가 좋아서..” 이제껏 고개만 돌려 말을 잇던 강우가 한나의 도발에 더 할 말이 생긴 듯 이번엔 한나쪽으로 몸을 돌린다. 진심으로 답답했던 건지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그러면 또 다른 방법이..? 생각해 놓은 건 있는지?" 강우 특유의 말을 흐리는 투로 그렇게 묻자, 한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한나가 아니고 다른 아이였더라고 해도 반응은 같았을 것이다. 한나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강우가 뭔가를 더 말하려 하다가 다시 참는 듯 잠깐 멈칫거리더니 이내 미호를 보고선 눈짓한다. 그 눈짓을 엉겹결에 읽은 듯, 미호가 다시 말을 잇는다. “토론할 시간은 30분이고 학교 밖으로 나가면 안돼. 어떻게 될 진 모르니까 나가지 말자. 그리고 웬만하면 다들 교실에 붙어서 있으면 좋겠고.” 한나와 강우의 말다툼 이후 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긴장감은 말 할 것도 없었고 나약한 표정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투지를 불태우는 분위기인 것은 아니다. 그저 점심식사 후에 듣는 수업인 마냥 다들 멍하게 귀에 담아두고는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이니까 패도 있고 승도 있어. 그 사람이 살아있는 데 인원이 반이 아웃되면 그 사람의 승리로 끝나는 거고. 그 전에 그 사람을 찾으면 당연히 집에 갈 수 있는거고” “적어도 반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네” “어?,응.. 그런데 그건 최악의 상황이니까..” “맞아,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 놈부터 찾아낼 생각을 해야지” “그럼 따로따로 떨어지지 말자. 단합밖에는 빠른 길이 없네.” “30분전에..아니, 20분전에 교실로 다 들어와라~!” “그러자,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행동 보면 바로 신고하고..” [ 순식간에 적응들 해 버리네요.]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비아냥거리는 듯 빙글 웃으며 말하는 남자를 미호는 은근히 한번 째려보고선 다시 똘똘 뭉치는 중인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이 상황에서 미호는 기뻐해야 할지 씁쓸해 해야 할지 정확한 감정의 갈피는 못 잡고 있지만, 두리뭉실하게나마 희망이라는 놈을 잡고 있는 중이다. 끝이 어떻게 끝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정도 단합이라면 그 놈 하나쯤은 금방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안심을 해 버린다. “근데 언제부터 하는 거야?” [지금..?] “어!, 지금부터!” 콰광 미호가 튕기듯 내뱉은 말이 맺힘과 동시에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지 못해서 진작에 바깥 사람들도 손을 놓았던 앞문과 뒷문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살짝 열렸고 그로 인해 바깥사람들이 문을 손쉽게 열고 들어 닥칠 수 있었다. “어?어? 얘, 얘들아 시간!.."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오는 사람들로 인해 미호의 외침은 들리나 마나 였고, 아이들도 순식간에 어디로 다 흩어졌는지 좀 체 찾을 수가 없었다. 미호의 주변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금새 쫙 깔렸고 정신 없이 사람들에게 채이는 미호에게 그들은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해 댄다. TV장 구석에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임선생님의 시신을 들 것에 올린 후 흰 천으로 아무렇게나 덮어 서둘러 교실을 빠져 나갔으며 어떻게 소식을 듣고 왔는지 5~6쌍 정도 되어 보이는 엄마, 아빠들이 자신의 아들, 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게 중에는 허리가 잔뜩 굽어선 제 몸 조차 못 가눌 것 같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이리저리 채이면서도 중얼중얼 자신의 손녀 이름을 읊으며 허둥지둥 헤매이는 모습도 보인다. 0편보기 출처: 웃긴대학 [풍운풍신]님의글 11
【공포의교실】-1 ~ 2-
2010년 5월 19일 수요일 PM4: 40
“200점 넘었어, 설마?”
“나 아직 언어채점하고 있거든?! 아! 말 시키지마 나 지금 완전 짜증나”
“..별로 틀린 것도 없어뵈는구만 뭘 ”
가로7줄 세로6줄, 혹은 7줄로 일렬 나란히 뻗어있는 책상 위엔 몇 장인지 셀 엄두도
못 낼 만큼의 많은 시험지와 답안지가 어지럽게 북적대고, 교실 바닥에는 사회탐구시간 때
버렸던 과목의 시험지들이 회색바닥의 색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널브러져 있다.
펄럭펄럭 삭 삭삭 찌익 아~틀렸어! 오예! 맞았다! 하는 소리들만이 교실을 덮었고,
일찍이 채점 후 좌절까지 끝마치고 친구들 주위를 서성이던 미호는 맨 뒷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멍하게 시험지들이 날아다니는 풍경을 보고 있는 중이다.
“너 언어 몇 점이냐, 또 사문(사회.문화)만 잘 봤지?”
“넌 몇 점인데”
“86”
“아 짜증나”
“웃기시네, 나 사문은 25점이거든! 넌?!”
“...48점. 아하하”
빨간 동그라미로 거의 도배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50점 만점에 48점을 받은
당당한 사회문화 시험지를 팔랑팔랑 흔들며 미호가 일부러 얄미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모습에 경아는 장난스럽게 입을 삐죽이며 미호의 어깨를 퍽하고 친다.
강도가 좀 셌는지 미호가 내내 젖히고 있던 상체를 벌떡 들자 경아는 얼른 펜을 잡고
외국어시험지의 채점에 들어간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미호도 픽 하고 한번 웃더니
다시 몸을 젖혀 멍하게 시선을 둔다.
“얘~들아, 시험 어땟니들?”
그 때 열려있던 앞문으로 마치 귀신처럼 스윽 나타난 담임선생님이 싱글벙글 대며
그 특유의 콧소리로 갑자기 소리하자 곳곳에서 ‘아~’하는 앓는 소리가 속출했고 벌써부터
오답노트를 걱정하는 아이들은 서둘러 숙제 분량 협상에 착수하지만 그 소리를 뒷등에도
담지 않고 있는 담임선생님은 출석부를 보다가 교실바닥 보는 것을 반복하더니 칠판에 뭔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아마도 분리수거 장 같은 교실을 보곤 벌써 청소당번을 정하고 있는 것이라..
그때, 또 한 명의 남자가 앞문으로 마치 귀신처럼 스윽 나타났다. 정장을 입은 깔끔한 생김새의
남자였는데 단정하고 서글서글한 그 모양에선 전형적인 미남 아나운서가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점수계산에 여념이 없어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듯
모두가 자신의 시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담임 또한 청소 구역 배정에 정신이 없었는지
통 반응들이 없다. 오직 포기가 빠른 미호 혼자서 만이 그 남자의 존재를 알아채고선 그저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
“경아야”
“어”
“앞에 봐봐”
아무리 그래도 너무 반응이 없어 보이는 듯 했는지 미호가 총 점수를 계산하느라
정신 없어 보이는 경아를 불러 들인다. 입을 오물거리며 총 합계점수를 계산하고 있던 경아는
그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은근히 손까지 까딱거리면서 계산에 몰두 중이다.
그러나 이내 미동도 않고 말똥 히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미호가 신경이 쓰였는지 ‘358’이라는
숫자를 책상에 휘갈김과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든다. 경아의 눈동자가 그 남자가 서 있는
교단 주위를 요리조리 굴러다녔고 그런 경아의 모습에 미호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장단을 맞추면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 자신에게 의문을 가진다.
“...”
“졸업 생인가? 아~!, 옆 반에 재수생이 시험 보러 왔다고 했지!. 그 사람인가?”
“으잉?”
“아니면 교생인가? 일본어 교생 왔다고 했잖아, 그치.”
“아니, 우선 일본어 교생은 저번 주에 갔고… 근데 너 지금 뭔 소릴 하고 있냐?”
‘어?’하는 외마디와 함께 미호가 경아를 홱 쳐다본다. 경아도 미호를 보고 있었다. 경아의
이 표정은 마치 어이없게 웃은 직후의 표정과도 같아서 그 영문을 모르는 미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생기는 둘의 정적 사이에 콧소리가
갑자기 끼어든다.
“오늘 지각생~?”
“…”
“각생아?”
“…”
“미호?!”
갑자기 뒤로 쏠리는 시선과 경아의 은밀한 발길질에 정신이 문뜩 깨어진 미호는 얼결에
‘네~’하면서 벌떡 일어섬과 동시에 일체 몸이 뻣뻣해진다.
아직도 안 나간, 아직도 미호 빼고 아무도 인식해주지 않고 있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내내 무표정이던 남자는 이내 마치 희한한 것을 본 것 같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미호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렇게 그가 다가오는 동안 미호는 정신 없이 시선을 허우적거리며 연신 기침을 해댄다.
쿵쿵 쿵쿵 심장 뛰는 소리는 웅성웅성 이는 교실 안에서도 들리는 듯 했고 남자의 미소는 줄
어 드는 거리만큼 더 진해져 오고 있다. 해맑아 보이는 미소다.
“미호야,”
“야~!”
“…”
어느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굴이 벌개져선 미동도 없이 서서 있는 미호의 그 모습에 반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에 젖은 듯 펜을 놓았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금새 어떤 긴장감으로
바뀌었고 웅성이던 반 분위기는 이제 적막만이 감돌 뿐이다. 이상함을 감지한 담임은 그렇
게 돌처럼 서있는 미호에게로 다가갔고 어깨를 투욱- 치고선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본다.
“왜 그러니?”
“선생님. 왜, 윽!!”
찬찬히 또박또박 말을 띄고 있던 미호가 별안간 의자에 내팽개쳐진다.
누가 봐도 자의적으로 앉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담임이 호들갑을 떨며
미호를 흔들어 댔지만 미호는 팔은 떨어뜨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선 발발발 떨면서
뭐라고 중얼거려 댈 뿐 이었다. ‘선생님 어깨, 어깨요, 어깨, 아파..’
“선생님!!미호 어깨가?!”
“왜? 왜,.?!”
경아의 절박한 소리에 따라 담임이 미호의 어깨를 보더니 히익- 하는 숨 들이키는 소리를
내면서 미호의 몸에 붙어있던 자신의 손을 튕기듯 떼어버린다. 누군가 뒤에서 미호의
양 어깨를 붙잡고 있는 듯이 교복 어깨부근엔 깊은 주름이 파여져 있고 점점 무게가 더해 가는 것처럼
그 주름은 왔다 갔다 거리면서 멋대로 변형 되고 있었다. 의자바닥을 손바닥으로 꼭 부여 쥐고선
더는 눌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미호의 모습은 그에 현실감을 더 해 줬다.
몇몇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미호주변으로 몰려 들었고, 그 형상을 보고선 무서워하면서도
이상하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 그 주위에서 자리를 뜰 줄을 몰랐다.
그런데
쿵, 쿵.
별안간 앞문, 뒷문이 모두 닫혀버린다.
챙,챙,챙,
또 창문이 모두 닫혀버렸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분위기에서 더 뜬금없는 현상이 일어나자 아이들은 이제야
뭔가를 실감했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뿔뿔이 흩어진다. 흩어 지려고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잠긴 듯이 문을 흔들 때마다
바깥에선 자물쇠 통 소리가 덜컹 덜컹거렸다.
창문을 열라고 싶으면 녹이 슬어 걸쇠가 풀리지 않는 듯 해서 열 수가 없었고 깨부술라고
싶으면 도저히 깨지지가 않았다.
한편 이제야 몸이 자유로워진 미호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지금 이런 사건의 원인은 내 눈앞에서 방글 웃고 있는 이 남자 때문이고,
이 남자는 보통인간이 아닌 듯싶고, 난 이 상황을 알고 있으니까 적어도 이 사실은 알려야 한다’
라는 것들을 모두 파악 당한 후에 천천히 교단으로 걸어나갔다.
“얘들아”
사실 택도 없어 보였지만 나름 큰 소리로 외치더니 잠깐 눈치를 보고선,
“조, 조용히 하래-!!”
“?”
“자리에, 앉아!. 래.”
“…“
“너, 누구랑 말해?”/ “쟤 왜 저래”
“..”
잠깐 그렇게 침묵이 돈다.
그 침묵이 좀 오래가는 듯 하자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이런 상황 중에서도 명백한 지휘자가 생긴 것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안도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앞에서 바라본 교실의 모습은 외관상 어느 정도 정돈 되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아이들 하나하나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침울하고 복잡한 감정이 눈에 빤히 보이는 듯 하다.
이제 아이들은 저 앞의 명백한 지휘자만을 쳐다보고선 뭔지도 모르는 임무를 기다리고 있다.
타의적으로 지휘자역할을 맡게 된 미호는 그 시선들이 힘겨운 건지, 뭔지 아까보다 한껏 더 힘겹게 입을 뗀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무서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한 번 한눈을 팔고선 숨을 몰아 쉰다.
“..라고 전해달래..”
꺄 하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둥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뜨기를 반복하는 둥 책상에 엎어져선
머리카락을 몇 올씩 뜯고 있는 둥 그냥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둥 여러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잠시 잠잠해지는 틈이 생기자 미호가 은근하게 다시 말을 끼운다.
“거짓말 아니고 정말이야.. 근데 내가 보니까 나쁜 거 같진 않아 보이니까..
그러니까 가만히만 있으면 아니, 부탁이 하나 있다는데 그냥 그것만 들어주기만 하면 갈..지도 모르겠다”
보기 불안하게도 미호는 심하게 벌벌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미호의 습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빤히 보이는 속셈이라고 해도 지금 아이들에겐 믿고 싶고,
또한 믿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대부분 침착하게 미호의 말을 곧이 곳대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그러나 오직 한 명, 담임 선생님만은 이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지 믿고 싶지가 않은 건지
계속 뒷문을 잡고 매달린 듯이 서 있다. 애꿎은 뒷문만 덜컹거리면서 시끄럽게 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던 미호가 잠시 시선을 멈춘 후 말을 꺼내는데,
객관적으로도 그 모습은 마치 사장님의 말을 대신 전달해주는 비서와도 같았다.
“저기, 선생님..”
“얘들아!! 전부 핸드폰 꺼내, 꺼내서 부모님한테 모두 전화 걸고 또..”
“핸드폰 걷은 거 교무실에 있는데..”
“니네들이 내란다고 다 내는 얘들이었어?!! 꺼내!”
“오늘 모의고사라서 다 냈다고요”
“..있는 애 없어?!..없냐고!”
가만히 보고만 있던 미호의 표정이 사뭇 달라진다.
“선생님, 그만 진정..”
“너?!, 너야말로 그만 진정하셔. 있긴 뭐가 있다는 거니? 뭐가 보여?
우린 안 보이는데 넌 보여? 그럼 너만 이상한거아니니?!”
‘선생님..’ ‘그만하세요’ 곳곳에서 쇳소리가 들려왔고 마땅히 할말이 없는 건지
무의미하게 눈만 굴리고 있던 미호가 무언가를 듣고 놀란 듯이 옆을 휙 돌아본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허공의 물체를 향해서.
그 모습에 담임이 ‘허!’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더 울컥한 모습으로 미호에게 걸어간다.
“뭘 보고 있니?!,뭘? 왜 뭐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거야? 너의 그 행동 때문에 얘들이
불안해하는 거 안보이니? 애초에 뭐가 있던 없던 네가 모른 척이라도 했으면
이런 분위기 안 만들어질 수 있었어. 난 정말 이런 분위기 싫거든?! 너! 내 눈 안 봐?!”
“선생님, 얘들 불안하게 하시는 건 선생님이에요. 정말 잠깐만!. 조금만! 이 분 말 들어보세요.”
“하시고 자시고, 너 핸드폰 있지? 지각해서, 못 냈잖아?”
담임선생님이 숨을 몰아 쉬면서 손을 척 펴내 보인다. 이내 착잡한 표정으로 변한 미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켠다. 그리곤 담임선생님의 손바닥 위에 차분히 올려준다.
핸드폰을 받아 든 담임선생님은 서둘러 자판 키를 누르는 듯 하더니 이내 다급하게 미호를 부른다.
“비밀번호가 뭐니?!”
“…”
“뭐냐니깐?”
“말만 다 들으면 그때 알려줄 수 있어요”
“한미호.”
“정말 한마디면 된 다니깐요?! 정말!”
“그 한마디가 뭔 줄 알고 들어, 막말로 들어서 상황 더 나빠지면..”
“선생님 때문에 상황 더 나빠지니까 들으시라고요!!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째요?!”
“!!뭐?.”
웅성웅성
미호와 담임이 열을 내며 싸우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만
하던 아이들이 미호가 성질에 뱉은 말에 크게 동요한다. 크게 들으면 웅웅 거리는 진동음만이 들렸고
작게 들으면 그 하나하나에 걱정과 놀람과 혼돈..아무튼 좋은 감정 빼고는 다 들어있다.
크게 요동치는 분위기에 말을 뱉은 미호도 적지 않게 당황한 듯 수그러들다가,
갑자기 교탁을 쾅 쾅쾅 세 번 친다. 수업 중에 교탁을 쾅쾅 치며 수업을 정리하는 선생님들을
제일 싫어했던 미호였지만 다급함에 이 요란을 떤 것이다.
“야! 다 죽는데? 걔가?”
잠깐 모두가 소리를 멈춘 사이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지한나.
미호가 반에서 가장 관련되고 싶지 않는 부류들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다.
자고로 여학생이란 추접하면 안되고 너무 드세도 보기 싫으며 많은 면들 중에서도
‘청순’과 ‘발랄’을 1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호에게 한나 무리들은 너무 드세고
짙은 화장에 속은 비어있는 것 같은데도 속이 꽉 찬 양 행동하는 아이들이었으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아 했을 것이다.
“할말..그거만 들어주면, 된다고 했는데 죽..는다느니 그런 말은 그냥 한 말같이, 그냥 의미 없는 거였어”
“그럼 지금 빨리 말해”
그 말에 미호는 저도 모르게 담임 쪽을 쳐다봤다. 담임도 이젠 체념을 했는지 뭐 했는지
교탁을 끼고 돌아 나와 앞문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다. 어디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불만이 가득 담긴 그 눈빛엔 마치 미호의 잘못된 선택이 큰 일을 불러와서 내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됐으면.. 하는 눈빛이다.
“난 그냥 그대로 따라 말 하는 거다?.”
하곤, 침을 꿀꺽 삼켜 목을 가다듬더니 띄엄띄엄 말을 잇는다.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는 그 비서처럼.
“이름은 민성태래.. 창 밖에 보니까..당신들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네요,
빨리 가야될거 같아서 본..론만 말할게요. 날 아는 분까진 말 안 하겠고, 날..죽..?”
눈을 내리깔고 차분히 말을 전하던 미호가 별안간 토끼 눈이 되어 버린다.
그리곤 옆을 쳐다보더니 이해하지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다.
“여기에?”
[네 있습니다]
“누구..”
[그러니까 그걸 물어보겠다는 겁니다]
”…”
이렇게 혼잣말을 몇 번 하더니 앞의 얘들을 둘러보며 큰 숨을 들이킨다. 내쉬어야 될 한숨은 삼켜버린다.
“이 분이 자기를 죽인 사람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게 누군지 우리가 대답해달래”
“미친..”
“근데 그걸 왜 우리가 대답해? 의무가 없잖아”
“그게.”
[반장입니까?]
미호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이연하를 보면서 고개를 휘휘 젓는다.
[그럼 공부 잘하죠]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이 네 글자네요. 유이연하. 특이한데? 하하]
“미호야!”
“응?!”
“그니까 왜 우리가 하냐고. 우리한테 돌아오는 것도 없으면서, 그 찾는 사람이랑 같은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같은 소속이라는 게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그 사람만 찾으면 전 볼 일없습니다..
제가 가면 당신들은 편해지잖아요. 이게 바로 편익이 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제 속도가 좀 빨라졌네요?]
”…”
“그니까, 바라는 목적이 있어서 왔으면서 부탁을 하진 못할망정 왜 우리한테까지 피해가 오게 만드냐고”
“피해안갑니다. 그 사람만 찾으면.”
아까부터 미호, 그러니까 그 남자와 이연하의 대화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한나가
드디어 폭발한 듯 책상을 팡! 치며 소리친다.
“지랄하고 있네! 야, 그거 다 허세야. 귀신이 사람 놀래 키는 것 밖에 더해?.
그리고, 누군진 몰라도 남잔지 여잔지는 알 거 아냐. 여기까지 온 거보면,.. 남자면 여자들은 내보내줘”
“야!! 미쳤냐?! 조카 지들만 살려고 쏙 빠지냐고.”
“그럼 같이 죽냐? 저거 남자라는데 상식적으로 여자가 그랬겠어?”
“왜 못해? 하면 다 할 수 있거든? 힘 없으면 못하는 줄 아냐? 아. 조카 무식해”
“그만들 해”
“지랄 떤다. 체육부장타이틀 걸고 뭐? 힘만? 하하!. 지는 뭐 골 찬 줄 아나”
“선생님!!!!!”
별안간 들려오는 째지는 목소리에 따라 아이들의 시선들을 금방 어느 한 곳으로 쏠려버린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선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선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이상한 장면이 보여지고 있다. 휙휙 제멋대로 돌아가는 머리를 가눌 정신도 없는지 문에 쿵쾅쿵쾅.
자꾸 머리를 박는다. 담임선생님이 ‘큭, 끅끅’ 하면서 숨 들어가는 소리를 몇 번이나 낼 동안에도
주위에선 그저 비명을 지르며 방방 뛰고 있을 뿐 아무도 다가가진 못 했다.
그 형상이 너무 기이해서 모두들 겁을 먹은 것이다. 어느새 창 밖에 너무 많이 불어버린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분위기 흐름에 창문이나 문을 두드리면서 반응했다.
동시에 ‘아악!!!’하는 엄청난 함성과도 같은 비명소리들이 전교를 둘러 싸기도 했다.
“미호야! 어떻게 좀 해봐!”
“내가, 내가 무슨…뭘”
그 남자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는 미호로서는 더욱 힘든 게 당연했다.
아까의 얌전했던 남자의 거동이 지금의 담임선생님의 움직임에 따라 격하게 변하는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으니깐 말이다. 담임의 목을 양손 들어 조르고 있는 그 힘이 들어간 뒷모습은
그 자체로도 공포심을 불러 오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정신이 깬 미호가 어떻게든
달려들어 떼어내 보려 하지만 허공에 손만 휘졌고 있을 뿐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인다.
교실 안은 물론 교실 밖, 교내 안은 이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미호가 열심히 허공에 손을 휘두르고 그만하라고 소리를 하는 동안 잠시 떠있던 담임의 발이
다시 바닥으로 축 내려오더니 그 몸뚱이가 미호의 품으로 풀썩 떨궈진다.
순간, ‘허업!’하고 숨을 들이마신 미호는 저도 모르게 두 발자국 뒤로 얼른 물러나 버렸고
그 몸뚱이는 이제 축 쳐져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교실 안은 물론 교실 밖, 교내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 져버렸다.
.
.
.
담임의 목에 나있던 벌건 자국이 흙빛으로 거의 다 변해버렸다.
문이란 문은 아직도 죄다 열리지 않았고 깨지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미호의 설득아래에 자신의 자리를 모두 채웠지만 여기저기 웅성대는 소리가 웅웅거린다.
창 밖의 이들은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적어도 아까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졌다.
밖에선 삐용삐용.. 경찰차인지 응급차인지 모를 사이렌소리가 여러 개 들려온다.
한참을 교단에 서서 땅만 바라보던 미호가 고개를 스윽 들더니 약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그 쪽들이 내 말을 안 믿고, 또 안 듣길래 정신 좀 차려보라는 의미에서…하고 웃고.”
“많이들 놀란 거 같네요. 아무튼 이제 알았으면 내 부탁 좀 들어주세요…라고 말했어”
“진짜 누군진 모르겠지만, 자수해라, 진짜...”
“야, 다 닥치고, 누구야. 걔만 나오면 되잖아. 누구냐고”
“빨리 나와라, 사람이 저 꼴 났는데 가만히 앉아있고 싶냐?!”
“나오라고-오!!”
[쉽게 나오지 않네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럼 찾아주셔야겠어요]
“그걸, 진짜 말이라고 해요?!”
[아, 처음부터 찾아달라는 소리였는데요?]
“말을!!....어떻게 찾아요.. 우리도 모르는데”
“아마도, 계속 이런 식이면 수를 써서 찾을 수 밖에 없을 거 같은데”
“무슨 수?”/”게임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나도 몰라. 어쨌든 5분준대. 그때까지 안 나오면..난 몰라”
미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곳곳에선 자리를 박차고 수색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아수라장의 분위기 그 중심에선 미호는 남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만약에 5분이 지나면 어떡할 거예요”
[찾아야죠.]
“그니깐 어떻게 찾으실 거냐고요”
[이럴 줄 알고 방금 생각한 게임이 한 개 있어요 하하]
“게임…무슨 게임인데요”
[뭐, 그냥...벌써 2분 남았네요?]
그 말을 들은 미호가 얼른 고개를 들어 교실 맨 뒤에 붙어있는 시계를 쳐다본다. 그리곤 다시 묻는다.
“그거 위험한 거죠?”
[솔직히 모두 무사할 거라곤 장담 못 하겠네요. 그 놈에 따라 달렸는데 워낙 에 그 놈이 양심이란 게 없는 놈이라]
“그쪽이 할 말론 안 보이는데..”
[1분 남았네요?]
그렇게 난리를 치던 아이들은 시간이 1분 남짓 남게 되자 힘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해 지지는 않았다.
1분이 지났는데도 미호는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선 무심한 표정으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아이들은 이제 미호의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미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별안간 미호의 얼굴이 한 번 꿈틀거리더니 짜증 섞인 미소가 맺힌다. 그리곤 입을 뗀다.
“5분이 훨씬 지났죠. 이럴 줄 알고 생각해 온 것이 있습니다. 게임을 만들 시간은 없어서
…마피아 게임 모두들 아시죠. 설명할 필요..없나요.…라는 데. 모르는 사람?
“…”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겠지만 그 놈을 못 찾은 이 사람이 우릴 다 죽이는 것보단
우리가 그 놈을 먼저 찾아서 살아야 한다고 난 생각 하는데..”
“…”
“아까 봤잖아.”
미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TV장 뒤편으로 향한다.
아까 남자에 의해서 죽은 담임선생님의 시신이 거기에 틀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도 자연히 그 쪽으로 쏠린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
말을 한 미호 자신도 아이들에 대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아이들은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 침묵에 지친 몇몇
아이들이 이윽고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
“설명해봐, 나 모르니까”
“한나야!”
“왜. 넌 알아?”
“…”
담임선생님이 죽은 그 이후부터였나, 내내 침묵과 무표정으로 일관 짓던 천애가 갑자기 손을 살짝 든다.
그리곤 진지하게 말한다.
“나도 모르는데. 설명해봐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천애는 한나와 같은 무리의 아이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또래의 느낌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러운 아이다. 자신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왕따에게도 말 벗이 되어주고 남들이 다 하기
싫어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이 자진해서 해왔다.
그렇다고 심성이 착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이 자신에게 고마워 하는 그 모습에 자신이
좀 더 우월하게 느껴지는 그 느낌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천애의 아버지가 유명한
중소기업의 사장인 동시에 이 학교의 든든한 뒷받침이어서 누구 하나 막 대하는 인물이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들 까지도 지나친 편애를 일 삼아, 실질적으로 천애는 아이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다.
특히 여자아이들에겐 더욱.
모두들 지휘자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 미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선 짧은 백묵을 집어 든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찬찬히 써 내려간다.
‘사회자
마피아
경찰
의사
시민’
“사회자는 나고, 마피아는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을 거고. 쪽지를 돌릴 건데 그 쪽지에 자신의 신분이 나와.
경찰은 밤이 지나갈 때마다 범인이 누군지 한 명씩 물어볼 수 있고, 의사는 한 명씩 누군가를 살릴 수 있고
시민은 마피아..와 사회자를 뺀 나머지 모두야. 밤이 아닐 때는 시민들끼리 투표를 해서 마피아를 골라내는 거야”
“뭐? 못 알아 듣겠는데?”
“맞아. 밤은 뭐고..아무튼 뭔 말인지 모르겠어”
“우선 쪽지부터 받아”
그렇게 말하고 나서 교탁 위의 아무 시험지나 골라잡아 뜯어 일일이 조각을 내기 시작한다.
“근데 한미호!”
“응.”
“이거 원래 밤에 마피아가 한 명씩 죽이잖아, 설마 그거 진짜 죽는 건..아니지?”
찌익찌익하던 소리가 잠깐 멈추는 듯 하더니 다시금 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모인 그 시선들이 난감했는지 당황한 미호가 내는 조각들의 모양은 점점 불규칙하게 틀어진다.
체육부장 병철이가 다시 한번 ‘어?’하고 되물었고 미호는 41번째 마지막 조각을 뜯고 난 뒤 대답했다.
“아까..봤잖아”
“..왜?!, 대체 왜?”
“말했잖아, 아까. 억울해도 뭐 어떡해”
“뭐!!?, 너 해당 안 된다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미호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도 상황파악을 못 하고 앉았으니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그리고 열 내지마, 너도 아까 그 꼴 날 수도 있으니까”
“…뭐..”
“쪽지 한 개씩 가져가. 빈 쪽지면 일반 시민이고, 아니면 알아서 표시가 나올 거야”
미호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쪽지들은 모두 제 주인을 만나갔고 미호도 하나 남은 쪽지를 들어 펴보았다.
[사회자 인 거 알죠?]
“…”
[일부러 표시 안 줬습니다. 나도 귀찮거든요]
으헤헤하고 웃으며 능청을 떠는 남자의 말에 미호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쪽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찍 구기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린다.
“다 봤지? 그럼..”
잠시 그에게 얘기를 듣는 듯 집중하더니 이내 놀란 듯 눈을 크게 떠 보인다.
그리곤 서둘러 TV장으로 가더니 장문을 열고 TV의전원을 켠다.
파지지직 하는 채널 없는 소리가 시끄럽게 터지자 아이들은 모두 찡그리며 귀를 막는다.
그렇게 한참 채널을 찾더니 어느 한 채널에서 멈춘다. 여기저기서 ‘어?’하는
당황스러운 탄성들이 터져 나왔고 미호도 허탈한 듯 뒷걸음질 친다.
화질이 좋지 않은 화면에 담긴 장면은 지금 이 곳의 모습이였던 것이다.
[학생이랑 내가 만났을 때부터 촬영됐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촬영된 거라는데”
[그 놈이 자수할 때를 대비한 건데..아, 말을 잘 바꾸거든요. 근데 이제 필요 없겠네요]
“…”
팟 하고 TV가 꺼진다. 미호가 얼른 다시 켜보았지만 이미 그 채널은 사라진 후였다.
[전국방송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이 학교 선만 건 들였거든요]
“대체 저거 무슨 카메라야?”/“저거 아냐? 저거?”
한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모두 고개가 돌아간다.
“저거 밤에만 작동되는거 아니였어?”/“뭐야 어이없어..”
금년 들어 교실에서 도난사건이 부쩍 늘어 두 달 전에 교실 맨 앞 태극기 속에 CCTV를 설치했었다.
밤8시부터 작동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카메라가 있다는 그 압박감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했는지
도난사건이 줄어드는 데는 충분히 효력이 있었다. 그 카메라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모습이
담겨 전교에 방송이 되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어쩌다가 한 교실이 TV를 보게 되었고 그게 소문이나
전교생들은 모두 이 교실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제야 미호는 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났고 운동장에는 경찰차와 구급차, 정체 모를 중고차들이 즐비해있었다.
복도 쪽에는 역시 경찰들이 아까부터 난리를 치고 있었다. 미호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이제야 바깥사건을 인식하게 되었다. 서서히 좁혀만 오던 긴장감은 이 계기로 이제 확실히
피부에 다가오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할 말을 잃었고
처음 그 때처럼 다시 미호만을 바라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아무튼..전국에 방송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니까 신경 쓰지 말자”
“어떻게…”
서러움, 억울함, 공포심. 그런 것들을 느껴버렸는지 한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고
그것은 무슨 전염병이 옮듯이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옮아 버렸다.
삽시간에 교실은 훌쩍 훌쩍이는 소리에 가득 찼고 몇몇 아이들은 그 모습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눈 밑은 벌개져 있었다. 미호는 입술을 꽉 한 번 깨물더니 교탁으로 돌아 걸어 간다.
“자기가 뭔지 다 확인했지? 아무한테도 말 하지 말고, 그리고 또 음..”
하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그..게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학교에서 나가면 안돼. 그리고 반에 모여야 할 시간도 잘 지켜야 되고..”
아마도 그 남자가 하는 말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지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또 다시 백묵을 집어 들어 천천히 판서한다.
‘토론 30분
투표. 변론1분. 즉결심판
밤’
“이 구조로 반복할 거니까..”
“어이, 잠깐만”
“어?”
“얘들 하나도 안 듣고 있는 거 같은데”
그 말이 맞는 것이 분위기는 심히 흐트러져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미호와 마찬가지로 곧 평정 심을 찾고 침착하게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도 현실을 찾지 못한 듯 보였다.
“그렇게들 걱정만 하고 울고만 있으면 해결될 것도 안 될걸.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쟤가
앞에 나와서 하는 얘기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 다 알았을 거 아냐. 알면서도 그러면.. 정말 아닌데.”
얌전히 앉아만 있던 강우가 드디어 말을 텄다. 강우는 반에서 대체로 조용하게 있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그의 존재감은 매우 큰 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 하고만 엮이려 하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쌀쌀맞게 대하는 성격 때문에 남녀모두에게 미운 못이 박혀있긴
하지만 반에서 가장 나은 외모, 아니 전교에서 제일 가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은연중에 내심 강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강우를 인/적성 반에 들여오려고 하는 선생님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강우가 지능점수로 전교1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암암리에 그의 팬클럽까지 생긴 듯하다.
모두 겉으로는 재수없네, 뭐네 하면서도 회원 수는 점점 불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 명이라도 쟤 말 허투루 들으면 우리 다 죽을 수도 있는 거..? 집에 가고 싶으면 정신 못
차리는 옆에 놈들 다 흔들어 깨워야 겠네, 그 전에 너네부터 정신차리고..”
“야. 우리도 다 알거든? 왜 괜히 혼자 영웅인 척이야”
“지한나. 뭐가 맘에 안드는지, 너무 많아서 확실히 알 진 못하겠지만 해결을 하고 싶으면
해설부터 집어치워야 되는거 아닌가?.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 새꺄?!, 아,나 진짜 너..”
“한미호 계속 해야지?”
“야..그러는 넌 이 게임하고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애 같다? 사람이 죽는 다는데 넌 뭐가 좋아서..”
이제껏 고개만 돌려 말을 잇던 강우가 한나의 도발에 더 할 말이 생긴 듯 이번엔 한나쪽으로 몸을 돌린다.
진심으로 답답했던 건지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그러면 또 다른 방법이..? 생각해 놓은 건 있는지?"
강우 특유의 말을 흐리는 투로 그렇게 묻자, 한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한나가 아니고 다른 아이였더라고 해도 반응은 같았을 것이다.
한나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강우가 뭔가를 더 말하려 하다가
다시 참는 듯 잠깐 멈칫거리더니 이내 미호를 보고선 눈짓한다. 그 눈짓을 엉겹결에 읽은 듯,
미호가 다시 말을 잇는다.
“토론할 시간은 30분이고 학교 밖으로 나가면 안돼. 어떻게 될 진 모르니까 나가지 말자.
그리고 웬만하면 다들 교실에 붙어서 있으면 좋겠고.”
한나와 강우의 말다툼 이후 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긴장감은 말 할 것도 없었고 나약한 표정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투지를 불태우는 분위기인 것은 아니다.
그저 점심식사 후에 듣는 수업인 마냥 다들 멍하게 귀에 담아두고는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이니까 패도 있고 승도 있어. 그 사람이 살아있는 데 인원이 반이 아웃되면
그 사람의 승리로 끝나는 거고. 그 전에 그 사람을 찾으면 당연히 집에 갈 수 있는거고”
“적어도 반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네”
“어?,응.. 그런데 그건 최악의 상황이니까..”
“맞아,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 놈부터 찾아낼 생각을 해야지”
“그럼 따로따로 떨어지지 말자. 단합밖에는 빠른 길이 없네.”
“30분전에..아니, 20분전에 교실로 다 들어와라~!”
“그러자,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행동 보면 바로 신고하고..”
[ 순식간에 적응들 해 버리네요.]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비아냥거리는 듯 빙글 웃으며 말하는 남자를 미호는 은근히
한번 째려보고선 다시 똘똘 뭉치는 중인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이 상황에서 미호는 기뻐해야 할지 씁쓸해 해야 할지 정확한 감정의 갈피는 못 잡고 있지만,
두리뭉실하게나마 희망이라는 놈을 잡고 있는 중이다.
끝이 어떻게 끝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정도 단합이라면 그 놈 하나쯤은 금방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은 안심을 해 버린다.
“근데 언제부터 하는 거야?”
[지금..?]
“어!, 지금부터!”
콰광
미호가 튕기듯 내뱉은 말이 맺힘과 동시에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지 못해서 진작에
바깥 사람들도 손을 놓았던 앞문과 뒷문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살짝 열렸고 그로 인해
바깥사람들이 문을 손쉽게 열고 들어 닥칠 수 있었다.
“어?어? 얘, 얘들아 시간!.."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오는 사람들로 인해 미호의 외침은 들리나 마나 였고,
아이들도 순식간에 어디로 다 흩어졌는지 좀 체 찾을 수가 없었다.
미호의 주변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금새 쫙 깔렸고 정신 없이 사람들에게 채이는 미호에게
그들은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해 댄다.
TV장 구석에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임선생님의 시신을 들 것에 올린 후
흰 천으로 아무렇게나 덮어 서둘러 교실을 빠져 나갔으며 어떻게 소식을 듣고 왔는지 5~6쌍 정도
되어 보이는 엄마, 아빠들이 자신의 아들, 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게 중에는 허리가 잔뜩 굽어선 제 몸 조차 못 가눌 것 같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이리저리 채이면서도
중얼중얼 자신의 손녀 이름을 읊으며 허둥지둥 헤매이는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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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긴대학 [풍운풍신]님의글